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27)
제 128화
* * *
롤랜드와 나는 대화를 나눴다.
내가 최근에 벌인 일 때문에 현재 아카데미의 교관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배경 설명은 당연히 생략했다.
눈앞의 있는 이는 전 대륙이라는 큰 무대에서 놀고 있는 전무후무한 단체의 수장이다.
그런 잡다한 것까지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깔끔하게 본론으로 들어갔고, 그 본론의 내용은 이랬다.
상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새로운 학부를 만들 생각이고, 그 학부의 교관이 될 이들을 대륙전장 내에서 추천해 달라는 것과 가능하면 대륙전장에 몸을 의탁한 고서클 유저들을 검술학부, 그리고 마법학부 교관으로 보내 달라는 이야기.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지만, 핵심은 간단했다.
같이 일하자.
“흥미롭군요. 상업학부라…… 만들 자신은 있으신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자신만만한 내 대답에 롤랜드가 눈빛을 빛낸다.
솔직히, 내가 한 제안치고는 꽤 달콤하다.
손해 보는 게 전혀 없잖아.
롤랜드는 당연히 내 제안에 수락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이 나온다.
이렇게.
“갚아야 하는 돈과 별개의 일이라면, 이 일은 힘들 것 같습니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예의상 한 번 튕겨 보는 거지?”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닙니다.”
“진짜 아니야?”
“예. 아닙니다.”
짝-!
손뼉이 절로 쳐진다.
묻지 않을 수가 없네.
“왜?”
“저희 대륙전장의 신념과 맞질 않습니다.”
“신념? 무슨 신념?”
롤랜드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내 이야기를 들을 때와 돈에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는 누군가의 위에 서려는 자세가 아니라 경청하는 자세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런 자세라고 해야 할까.
이런 걸 위압감이라고 부르지.
“제가 그것까지 말씀드려야 합니까?”
혀로 입술을 핥고 말았다.
“재미있네. 누구한테 말 못 할 신념은 절대 좋은 신념이 아닐 텐데.”
“……도박을 했고, 돈을 따셨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거참.
“내가 왜 돈을 따러 왔겠어?”
“…….”
“너희 대륙전장이랑 같이 일하려는 목적이 1순위였고 돈은 2순위였어. 지금 이야기하는 이게 진짜 핵심이고 본론인데, 2순위만 이야기하자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확실히 소문대로시군요.”
무시했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가 조금 갑작스러워서 생각을 깊게 못한 모양인데.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한 1분 정도를 기다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 정도 뜸 들였으면 됐잖아. 이제 말해 봐. 왜 거절하는 건데?”
롤랜드의 표정은 여전했고, 보여 주는 위압감도 여전했다.
그런데, 위압감이니 무게감이니 하는 그런 거.
말은 안 했지만, 굉장히 추상적인 단어이자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을 알고, 그 힘을 깨우치고 그 힘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단어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건 이 세상에서 나밖에 없을 거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위압감.
무게감.
이딴 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면 내가 어쩔 수 없잖아.
말하게 만들어야지.
어휴.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
“이제부터 내 입에서 같은 질문이 두 번 나오게 하지 마라.”
“……뭐?”
“난 두 번 말하는 걸 매우, 몹시 싫어해. 처음이니까 넘어가 줄게. 두 번은 없어. 만약 내 입에서 같은 질문이 두 번 이상 나온다? 그날 대륙전장은 세상에서 지워질 거다.”
“……하…… 하하…….”
어처구니없다는 듯 롤랜드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내 말이 장난처럼 들렸나.
“웃어?”
말없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한 번 툭 쳤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 동작이 불러일으킨 여파는 절대 작지 않았다.
허공에서 생겨난 작은 바람.
그 바람은 돌풍이 되었고, 이 밀실에서 태풍이 되었다.
콰아아아아-!!
태풍은 사방을 휩쓸었고, 밀실이었던 벽을 강제로 갈아 버렸다.
그때, 밀실 바깥에서 몇몇의 인기척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손가락을, 한 번 더 까딱이자.
콰아아아아아앙-!!
정체 모를 세 명의 남자가 그대로 태풍에 휩쓸려 벽에 처박혔다.
이건 마법이 아니다.
그냥 혼기로 사용하는 마나 변환 술식.
10서클 마법인 싸이클론에서 영감을 얻은 거라,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싸이클론 세퍼레이터Cyclone Separator가 좋을 듯하다.
고개를 들자,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롤랜드 린치가 보인다.
그런데,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위압감과 무게감.
그 끝을 보여 줘야지.
“믿음이 매우 부족한 모양인데.”
천천히, 탁자에 올려진 손가락이 검게 물들었다.
마치 백지에 먹물을 쏟아부은 것처럼.
“내가 죽이고자 하면 죽고.”
팔 전체가 검게 물들었고, 몸이 물들었다.
“내가 없애고자 하면, 그게 국가든 단체든 무조건 없어져.”
혼기를 온몸에 두른 뒤.
탁자에 올려진 손가락으로 탁자를 천천히 그었다.
스아아아-
검은 기운이 탁자에 하나의 선을 새겼고, 그 선에서 기이한 기운이 뭉글뭉글 솟아오른다.
“너희한테 남은 미래, 내가 끼어들지 않은 그 미래는 분명 어떻게든 벌어질 수밖에 없어. 내가 보기엔 니들 전부 우물 안 개구리거든.”
고개를 들었다.
“재미있지? 너희가 모르고 있는 게 대체 뭘까. 단순히 내 힘일까 아니면 너희도 알지 못하는 ‘툴칸 제국’에 대한 정보일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롤랜드 린치는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
의자는 뒤로 넘어가 있었고, 롤랜드는 그 의자 앞에 주저앉아 있다.
그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완전히 검게 물든 인간.
거의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그런 생명체.
“너희는 몰라, 너희에게 닥칠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 굳이 내가 살려 줄 필요? 없어. 살릴 생각? 없었어. 그런데, 아주 재미있게도 너희가 나한테 필요해졌어. 그래서 기회를 좀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버티고 있네?”
롤랜드는 확실하게 느끼고, 깨달은 것 같았다.
하룻강아지 따위가, 감히 호랑이 앞에서 무게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지금부터 말을 아주 잘해야 할 거다. 기회는 한 번이면 족하니까.”
내가 앉은 의자는 왕좌가 되었고, 내 앞에 주저앉아 있는 롤랜드는 신하, 아니 그 이하의 처지가 되었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래.”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냐면.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그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제안은 롤랜드에게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될 일은 없거든.
“말해 봐. 왜 못 한다는 거지?”
롤랜드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말했다.
“……앞서 말했듯, 신념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신념? 설마, 정치적으로 중립에 서야 한다는 그 신념?”
“그렇습니다.”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이가 없네.
“아카데미에 상업학부를 만들고, 그곳에 교관으로 부임하는 게 어떻게 그 신념에 위반되는 거지?”
“…….”
“내가 알기로 대륙전장에서는 주기적으로 상인들을 불러모아 따로 교육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왜 하는지는 뻔하지. 능력 부족인 상인이 많아서잖아. 내 말 틀려?”
롤랜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상업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안다.
상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 기관은 없다는 거.
그건 툴칸 제국, 그리고 이스마엘 왕국 등등.
이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들 중 단 한 군데도 없다.
최초로 그걸 시작하려는 거고, 이건 누가 봐도 성공할 일이다.
왜냐면.
상인을 전문적으로 기르는 그런 기관을, 다른 이도 아닌 내가 만드는 거니까.
또한 그 기관이 만들어지면 상인의 전체적인 질은 올라간다.
조금 포장해서 말하면 상업의 활성화가 더욱더 촉진되고, 세상이 발전하는 거지.
그걸 롤랜드가 모를 리 없다.
“신념……. 신념이라…….”
새삼스럽지만 타인은 각자의 개성이 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장한 배경이 다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은 다른 누군가가 하찮다고 쉽게 매도할 수 없다.
매도한다면 그건 지나치게 오만한 거지.
내가 좀 막 나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짓은 안 한다.
“대륙전장의 시조가 테슬란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건 나도 알아. 교수진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테슬란 아카데미의 법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걸 조금 변형해서 대륙전장을 만들었지. 생각해 보면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긴 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상인. 공정한 상인을 표방하고 온갖 상인들을 전부 규합해 덩치를 키우고 상업 활동을 했지. 그리고 지금, 대륙전장은 이 대륙의 모든 상인을 지배하고 있는 전무후무한 단체가 되었어. 대단한 일이지. 축하할 일이고,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
“나랑 내기 하나 할래?”
“……내기?”
“툴칸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면 과연 대륙전장은 어떻게 될까?”
“…….”
“롤랜드 린치, 그리고 너랑 관계되어 있는 친척들, 그 외 너의 최측근들의 가족들까지. 그들 모두 씨가 마른다는 것에 나는 내 전 재산 모두랑 내 목을 건다. 너는 뭘 걸 수 있냐?”
“…….”
“아, 걸 게 없겠구나. 그때가 되면 어차피 다 뒤질 테니까. 유언장이라도 미리 쓸래?”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다.
그 신념으로 대륙전장이 성공한 거? 인정한다.
인정하는데, 거기까지다.
정치적인 중립.
수도 없이 언급했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사상이다.
하지만 그런 사상이 빛을 보는 것은 아카데미 같은 교육의 평등을 내세우는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대륙전장같이 전 대륙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에게는 의미가 없다.
정확히는 그 효용이 전부 끝났다고 해야겠지.
왜냐면.
전 대륙적인 단체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중립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적을 만들 수밖에 없는 사상이니까.
그런 사상이 살아남으려면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맞춘다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툴칸 제국이라는 말도 안 되는 괴물 국가가 버젓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중립의 스탠스를 취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단 한 번, 아니.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건 꼬투리가 될 거고, 그 즉시 먹힌다.
그게 대륙전장의 미래다.
내가 개입하지 않은 미래.
“지금이 9월 6일. 내년 1학기가 개강할 때 상업학부 애들도 같이 개강식을 받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겠지? 못해도 한 달에서 두 달.”
“……나는 자네의 말에 수락한다고 한 적이 없네.”
호칭도 바뀌었고, 말투도 바뀌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나도 반말로 시작했는데 신경 쓰는 게 이상하지.
새삼스럽게.
그런데.
“상황 파악이 느린 건지, 아니면 롤랜드 린치라는 사람이 생각 외로 무능한 건지 이해가 안 가네. 둘 중 뭐야?”
“…….”
“내가 지금 부탁하는 걸로 보여?”
“…….”
“네가 아무 말 안 하니까. 내가 혼잣말하는 것 같잖아. 금충아, 상황 파악이 느린 금충아. 신념을 지키고 싶으면 상황 파악부터 해야지. 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어?”
내가 말을 이렇게 했어도, 대륙전장은 바보가 아니고, 그 장주인 눈앞의 롤랜드 린치도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