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99)
제 200화
존재할 리가 없다.
지금의 나를 죽이려면 툴칸 제국 전체가 나서야 한다.
하물며 최약소국인 테슬란이 나선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웃긴 거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에 네가 그랬잖아, ‘그때 그 자리’에 있고 싶다고.”
작게 웃으며 그레이의 어깨를 짚었다.
“그러니 판 한번 짜 봐.”
“……제가, 말씀이십니까?”
“어, 다른 이도 아닌 네가.”
그레이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지 생각지도 못한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마저 말했다.
“왕국 상황 신경 쓰는 것도 귀찮고, 내 앞에서 배경 내밀면서 깝죽대는 것들도 보기 싫다. 정치 싸움, 피곤하게 머리 굴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러니 깔끔하게 정리하고 더러워진 불판 좀 새 걸로 갈아 보자고.”
개인적으로 아베이루가 만드는 판을 보고 싶긴 하지만 그레이가 만드는 판도 한 번은 보고 싶다.
“테슬란 왕국의 위원회에 속했던 놈들부터 발 한 번 걸친 놈들까지 죄다 모아. 병력이 포함되든 상관없어, 아주 먹기 좋게, 음식들 가지런히 정리해서.”
슬쩍 웃고 말았다.
“시간은 얼마나 줄까?”
그레이 시어런.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장 학습이 끝나기 전이면 충분합니다.”
“그래, 준비되면 불러.”
그레이가 믿음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chapter 2
현장 학습이 시작되었다.
매 학기마다 주기적으로 하는 현장 학습은 사실 재학생들에게 있어서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현장 학습 기간에는 아카데미가 텅 비게 된다.
빈집, 이라는 뜻이다.
학생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비어 있는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지를.
그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학생들과 시험 준비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것처럼 눈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이들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들은 앞서 말했듯 현장 학습을 미리 겪어 본 이들이다.
그래서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현장 학습이 처음인 샬롯에게는 아니었다.
샬롯은 이 현장 학습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했다.
거의 천에 달하는 대인원이 마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부터 야영지에 도착해 천막을 짓고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산짐승들을 잡는 것까지.
거기다 대륙전장 소속의 고서클 마나 유저들이 실전과도 같은 강의를 하는 것과 대륙에서 유일하게 활을 다룬다는 마스터 베네딕트의 화려한 궁술 실력까지.
정말 볼게 많았다.
하지만 샬롯은 웃을 수 없었다.
“괜찮아?”
그렇게 묻는 타노스도 그렇게 기뻐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그래요.”
“뭐가?”
“잭 오빠……가 아니라, 보스는 저의 은인이거든요.”
타노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잭은 샬롯에게만이 아니라 타노스에게도 은인, 그 이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잘못 들었나.
얘 지금 잭 오빠라고 했나?
“보스가 없었더라면 저, 진작에 죽었을지도 몰라요. 은혜를 갚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은데.”
“싶은데?”
“자꾸 짐 덩어리가 된 것처럼 느껴져요.”
“…….”
“왜 보스의 옆에는 항상 셀이 있는 걸까요.”
타노스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 타노스의 귓가에 발란티에 후작가에서 내가 셀한테 져서 그런가…… 하는, 샬롯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이번에도 타노스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둥치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샬롯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보스가 저한테 숙제 내린 거 있잖아요.”
“‘그거’?”
“네.”
여기서 말하는 ‘그거’는 별 게 아니었다.
샬롯은 피안화 상태일 때 이성을 잃는다.
정확히는 정신은 멀쩡한 상태로 본능이 육체 전부를 지배하는 것.
샬롯은 피안화 상태일 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만 할 뿐 육체를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잭은 샬롯에게 피안화 상태일 때 이성을 잃지 말라고, 더 나아가 피안화를 한번 조절해 보라고.
그렇게 숙제를 내려 주었다.
실제로 샬롯은 그 이후 명상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모든 정신을 잭의 숙제를 푸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런 샬롯이, 고개를 든다.
“감을 잡긴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둥치에 앉아 있던 샬롯이 힘차게 일어난다.
“대련해요, 우리.”
“……지금?”
“네.”
타노스는 거절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안 했다.
타노스도 지금 내색만 안 했다 뿐이지 샬롯처럼 섭섭한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그 섭섭함의 대상은 잭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도 잭의 옆에 있을 셀.
꼬맹이 드래곤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셀이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샬롯은 그걸 느꼈고 타노스도 그걸 느꼈다.
그래서 이 두 명이 지금 이렇게 궁상떨고 있는 거다.
* * *
현장 학습 일정이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현장 학습 일정이 시작되고 하루가 지났다.
즉, 내가 그레이에게 판을 짜 보라고 말한 그 순간부터 총 ‘4일’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그 4일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이 벌어졌다.
정말 흥미진진하다고 해야 할까.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느끼긴 했는데 우리 그레이 시어런.
확실히 능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레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아카데미 학생들을 죽인 일을 ‘은폐’하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의 나름 핵심 부서인 검술학부의 학부장이라는 자리에다가 최근 들어 매우 바빠진 영감님이 그레이에게 대부분의 일을 위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소문을 통제한 뒤 그레이는 곧바로 왕성으로 이동했고 왕과 독대하게 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곧 아카데미도 바뀌고, 전 대륙적으로 아카데미의 교류가 활발해지려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모든 귀족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허심탄회하게 왕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좌에 앉아있는 아가레스 테슬란.
그가 그레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는 나도 안다.
아마 굉장히 떨떠름했겠지.
자기 사람도 아닌데 보면 국가적으로 영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미친놈이라 불리는 잭 발란티에의 가신인데 떨떠름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거다.
왜냐면 상당히 괜찮게 들렸을 테니까.
‘모든 귀족이라…….’
‘거기다 아직 왕위 계승식이 끝나지 않았잖습니까? 이참에 모든 귀족을 모아서 연명서 같은 걸 적는 게 어떠신지요.’
‘연명서라…… 모든 귀족들이 나를 지지한다는 형식적인 증거를 남겨 명분을 만들자?’
‘그렇습니다, 폐하.’
아가레스 테슬란이 왕좌에 앉아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왕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귀족들이 으레 그렇듯 아가레스도 대의명분을 세웠을 뿐이다.
현재 국왕인 마자르 테슬란이 병상에 누웠고 왕의 직무를 행할 수가 없어 왕세자인 아가레스가 왕의 직무를 대신 행한다…… 그게 지금 테슬란의 상황이었다.
슬슬 왕위 계승식을 준비하는 아가레스에게 있어서 그레이의 말은 정말, 마른하늘에 단비처럼 느껴졌을 거다.
‘상당히 괜찮게 들리는군, 장소는?’
‘아카데미 대회의실입니다. 현재 현장 학습으로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모든 학생들이 아카데미를 비운 상황이니 자리는 넘쳐 납니다. 적어도 며칠 더 한가할 텐데, 어떠십니까?’
왕국 연합이 출범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각 왕국의 귀족들끼리 교류가 조금씩 활발해지려는 그런 상황에서 자국의 귀족들끼리 서먹서먹하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레이가 말하기를,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아가레스는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단다.
‘만약 한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그대의 말대로 하지.’
‘어떤 조건입니까?’
‘대륙전장, 적어도 롤랜드 린치의 아들인 해럴드급의 인물이 참석해 주었으면 해. 롤랜드 린치가 직접 오면 더 좋고. 물론 이건 필수 사항이고 조건은 따로 있다네.’
‘…….’
‘지금부터 그 조건을 말하겠네.’
그레이는 이 부분에서 왕세자가 아주 음흉하게 웃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어지는 말을 들어 보면 확실히 그렇게 느껴질 만도 했다.
왜냐면 놈이 이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잭 발란티에, 그를 직접 보았으면 해. 설령 대륙전장이 참석한다고 해도 잭 발란티에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 대화는 없던 일이 될 것이네. 하지만 그가 참석한다면 짐은 짐의 이름을 걸고 자네의 말 대로 모든 귀족에게 공문을 내려주지. 어떤가? 이게 짐의 조건일세.’
갑이 아닌데도 갑처럼 조건을 내세우는 꼬락서니가 우습기도 했지만, 그레이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건 계획대로, 그리고 예상한 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레이는 별장으로 왔고 나한테 모든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다.
그레이의 말이 끝난 즉시, 나는 곧바로 롤랜드에게 편지를 한 장 써서 보냈고,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 이런 답장이 오더라.
(참석하겠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그날.
국왕의 이름으로 테슬란 왕국 내의 모든 귀족들에게 공문이 내려갔다.
‘테슬란 왕국은 아카데미의 명칭을 밀로스로 바꾸며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거기다 급변하는 대륙의 정세에 더욱더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어쩌구저쩌구…… 왕국의 중추인 귀족들이 모두 모여 단합을 이뤄야 하지 않겠는가…… 블라블라.’
뭐 대충 이런 식으로 공문이 내려갔고. 영감님은 아가레스 테슬란을 지지하며 참석 의사를 내비쳤다.
영감님이 동의하니 영감님을 따르던 모든 귀족들도 기다렸다는 듯 참석 의사를 내비쳤고 그렇게 오늘이 온 거다.
나는 스승님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가장 높은 곳.
마탑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는데요.
아, 깜빡했다.
내 옆에는 셀도 있었다.
-실험실에 있었을 때, 저는 그곳에 왔었던 이들의 얼굴을 ‘전부’ 보지 못했어요.
녀석의 시선은 아래.
약 200미터 아래에서 보이는 한 남자에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몇 명은 기억해요. 시야를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 마법을 강제로 걷어 달라고 했던 이들, 저를 보면서 조롱하고 이게 그 드래곤이 맞냐고, 마치 애완동물을 바라보듯 하던 놈들 중 한 명이, 지금 저기서 걸어오고 있네요.
녀석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보이는 일련의 무리.
하나하나가 쉽게 볼 이들은 아니었다.
7서클에서 9서클 사이로 보이는 이들이 약 서른 명.
그리고 그 뒤쪽으로 약 90명 정도의 6서클 마나 유저들까지.
솔직히 말하면 저 덥수룩한 수염과 우락부락한 신체가 나름 특징적인 것 같긴 한데, 계속 봐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는 없는 인물이거든.
하지만 추리는 가능했다.
이런 최약소국인 테슬란 왕국에서 저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다닐 수 있는 가문은 정확히 세 곳이다.
왕가王家, 어센블가, 그리고 말론가.
왕가였으면 근위 기사단이 왔을 테고, 실제로 근위기사단이 왔다.
걔네들 아까 와서 미리 자리 잡고 있는 중이고 그다음으로 도착한 게 바로 어센블 가문이다.
즉,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지금 저곳에 있는 저 산적 같은 남자는 말론 공작가의 가주.
바스티안 말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