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71)
제 272화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쩝.
새삼스럽지만 적색 마스터쯤 되는 이는 보통 이들보다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스승님의 두 눈과 마주쳤다.
“전생에 스승님과 제가 어떤 사이였는지 궁금하십니까?”
[…….]“원하시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저는 개인적으로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새로 시작한다?]“전생에서 어떠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씀드리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적절하다?]“예. 그건 스승님조차 겪지 못한 다른 세상의 일에 불과하며. 제 기억 속의 스승님은 지금 눈앞에 계신 스승님과 같지만 다른 사람이니까요.”
같지만 다르다.
그보다 적절한 말은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스승님과 지금의 스승님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첫 단추가 달랐고, 첫 만남이 달랐고 끝이 달랐으니까.
[그래서 새로 시작한다는 말을 쓴 것이구나. 새로운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롭게 발전해 나가고 싶다…… 전생에서 너와 나의 끝을 바꾸고 싶다…… 그러기 위해.]잠시 말을 멈춘 스승님이 잔을 들고는 작게 한 모금 마신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너의 기억 속에 있는 ‘나’를 지금의 ‘나’에게 대입하는 것이기에 두 명의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맞느냐?]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스승님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내가 괜한 말을 해서 신경 쓰게 했나 보구나. 미안하구나.]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신경은 제가 쓰이게 만들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웃으며 손에 들린 우유를 스승님의 잔과 부딪쳤다.
그러고는 사미트를 향해 잔을 들었다.
“화풀이해서 미안하다. 너도 잘 알다시피 내 성격이 조금 그래. 뒤끝이 좀 세다고 해야 할까.”
피식 웃은 사미트가 잔을 들어 올리고는 내 잔에 부딪쳤다.
“뒤끝이라면, 그때 마차에서 내가 위협했던 그때를 말하는 거겠지?”
“그렇지. 그런데 신경 쓰지 마, 이러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그보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요즘에 너를 막 대했잖아. 음, 왜 그랬지.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인데.”
술을 원샷한 사미트가 흘러가는 어조로 툭 던진다.
“왕이 왕답지 않았으니 그랬겠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거든.
그렇게 물끄러미 사미트를 바라보다, 깨달았다.
“전생에서, 너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됐거든.”
“…….”
“넌 왕보다는 전사 체질이야. 정치 같은 거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너 스스로를 단련하고 했으면.”
“했으면?”
“내가 쓰는 ‘흑색 마나’를 쓰게 됐을지도 몰라. 한 5년 안으로.”
식당이 조용해진다.
침묵을 깨고 사미트가 물었다.
“아까부터 전생, 전생, 그러던데. 그것부터 설명해 주지 않겠는가.”
말없이 웃었다.
“대체, 너는 누구지?”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맛있네.
그러고는 포크를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내가 누구냐고?”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없는 식견, 그리고 분위기. 그리고 힘. 14살? 15살? 세상에는 천재라는 이들이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그대는 그런 부류가 아니야. 물론 천재는 맞겠지. 하지만 천재라는 것도 결국 그가 존재하는 세상과 사회 안의 상식에서 움직이지. 하지만.”
숨을 몰아쉰 사미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대처럼 모든 것을 초월할 수는 없어. 대체, 너는, 아니 당신은 누구지?”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같은데. 나, 떠버리다.
“약 20년 후의 미래에서 왔어. 회귀를 했다고 해야 하나.”
“……회귀?”
“어, 그러니까 나는 그거지. 회귀자.”
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사미트는 꽤나 재미있는 리액션을 보여 주었다.
일단 두 손으로 얼굴을 쭉 쓸어내리더니, 진정이 안 되는지 한 번 더 쓸어내리고는 마지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정수리부터 턱까지 한 번 더 쭉 쓸어내린다.
“……회……귀라고?”
사미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두 눈은 목소리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
충격, 많이 받은 모양이다.
나는 들고 있던 빈 잔에 우유를 채워 주고는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걸 또 받아먹는다.
우유는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더니 벌컥벌컥 마시네.
진짜 충격인가 본데.
* * *
충격을 받은 사미트는 꽤, 오랫동안 진정하지 못했다.
그거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느라 식탁을 전부 비웠을 정도다.
“……허어, 회귀? 회귀…… 그래서 그대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거군. 원래라면 믿지 못했겠지만 결과물이 있으니 믿어야지. 믿을 수밖에, 그런데 그게 가능이나 한 것인가?”
“어느 부분이?”
“회귀를 하는 부분, 시간을 되돌렸다는 것.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말대로 결과물이 네 앞에 있잖아. 그럼 가능한 거지.”
사미트는 순간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대는, 대체 무엇을 할 생각이지?”
“응?”
“국가를 만들려 하는가?”
“……응?”
“황태자를 죽이고 난 뒤, 무엇을 하려는가? 회귀를 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게 자네는 가능하다는 건데, 그대는…… 신神이 맞았군.”
아, 이제야 이해했다.
왜 사미트가 저렇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는지를.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그런데, 나도 내가 왜 회귀를 했는지 몰라.”
“……뭐?”
“그냥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뜨니까 14살의 몸이더라고.”
“정말인가?”
거참, 내가 무슨 허풍쟁이로 보이나.
“그럼 구라겠냐?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구라를 쳐?”
“……괜찮으면 미래에 벌어질 일을 조금 알려 주었으면 하는데, 괜찮겠는가.”
어려울 것도 없지.
나는 그냥 전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미트에게 이야기해 줬다.
그냥 가벼운 흐름.
모든 왕국이 모두 무너지고 툴칸이 대륙을 통일하는 결과.
아, 이것도 이야기해 줘야겠다.
사실 지금껏 한 번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이스칸다르는 인간들이 사는 지역만 통일했다.
그가 유일하게 지배하지 못한 게 바로 마수의 숲이다.
그걸 하려는 중간에 내가 끼어들었거든.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대충 요약해서 들려주자 사미트는 아까처럼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그냥, 이번에도 기다려 주었다.
미래를 알려 줄 건데 생각 안 하는 게 이상하지.
그것도 멸망의 미래를 알려 줬는데.
사미트가 말했다.
“그대는 스스로가 신이 아니라고 했지.”
“그랬지.”
“그런데, 마치 그대는 신처럼 많은 걸 알고 있어.”
그런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는가?”
답하지 않았다.
“한 치 앞의 일도 모르는 게 인간이지. 아니, 정확히는 그 어떤 지성체도 한 치 앞의 일, 단 1분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물론 비슷하게 짐작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대는 ‘확실하게’ 알아. 그 차이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 말 그대로 초월의 영역이지.”
말을 잠시 멈춘 사미트는 그대로 침묵했다.
한 5분 정도, 이번에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사미트가 내게 묻는다.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어.”
기왕 이야기 나온 거 못해 줄 것도 없지.
“뭔데?”
“이스칸다르 툴칸, 그가 그렇게 뛰어난가?”
그 누구도 물어보지 못했던, 정확히는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주제다.
이스칸다르 툴칸.
그가 뛰어나다면, 대체 어느 부분이 뛰어날까.
음. 이번 건 답하기 조금 어려운데.
“툴칸 제국이 거대하긴 해도 그것과 대륙을 통일한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가? 그대가 말한 하프 블러드, 수명을 깎아 힘을 얻은 이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다 하더라도, 글쎄. 내가 정치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영토가 그 정도로 넓어졌다면 자연스럽게 과도기가 생길 거고 욕심을 부리는 이가 생기겠지.”
역사적인 필연을 말하는 것이라면 공감한다.
사미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얘가, 이렇게 말이 많은 애였구나.
“그래, 욕심.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어. 앞서 말한 하프 블러드, 나는 그게 의아스러워. 그들이 가만히 있었다고? 그 과도기에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었다고? 이스칸다르 툴칸이 그들을 한 번에 묶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인케스 베커만이 대륙 최강의 검사라 해도 심지어 그가 하프 블러드였다고 해도 다른 하프 블러드가 연합을 한다면 권력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 텐데, 수명을 제한당한 하프 블러드가, 그 거대한 욕심을 죽였다고?”
확실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일 수도 있다.
아무 사정 모르는 나였어도 저런 의문을 표했을 테니까.
“거기다 나는 이스칸다르를 7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마나 유저가 아니었어. 지금 나이가 30대 초반으로 알고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이 부분이면 충분하지.
내가 이래서 툴칸을 높게 치고 이스칸다르를 높게 치는 거다.
적색 마스터이자 대륙 최강의 전사라 불리는 템-사미트조차도 모르고 있잖아.
그것도 실제로 보았는데도 모르잖아.
“이스칸다르 걔, 지금 너랑 같은 적색 마스터일걸.”
“……어?”
“검술은 베커만과 동급, 마법을 다루는 기술은 드래곤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고서클 마법 정도는 창시할 수 있을 정도고, 가장 압권인건 허공의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거. 그냥 쉽게 말하면 그거지.”
슬쩍, 손을 들어 검지를 펼쳤다.
“나와 스승님을 제외하고 현재 대륙 최강의 마나 유저는 과연 누굴까.”
사미트는 이야기의 흐름으로 짐작했을 거다.
그런데도 말하지 못했다.
“대륙 최강의 검사는 베커만, 대륙 최강의 전사는 템-사미트 이스마엘, 대륙 최강의 마법사는 듀크 헬, 안젤라 헬이 듀크 헬의 자리를 대체한 게 약 2년이니까 안젤라 헬이라고 하자고. 그런데, 여기서 베커만은 대륙 최강의 검사이자 대륙 최강의 마나 유저라고 불리잖아. 맞지?”
툴칸이 대륙을 통일할 때까지도 베커만은 쭉 최강의 검사이자 최강의 마나 유저라고 불렸었다.
그게 세상에 알려진 상식이고 나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왜냐면 관심이 없었으니까.
서열을 정하는 게 무슨 의미야, 나나 스승님 아래에서는 전부 평등한데. 그러니 그냥 무시하는 게 낫지.
지금도 그냥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거지. 아니었으면 굳이 나오지 않았을 이야기다.
그러니 이야기 나온 김에 그냥 화끈하게 해줘야지.
“경험이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으니, 대륙 최강의 검사는 하인케스 베커만, 대륙 최강의 전사는 너, 대륙 최강의 마법사는 안젤라 헬, 그리고 대륙 최강의 마나 유저는.”
포크로 고기를 푹- 찍었다.
“이스칸다르 툴칸.”
이게 끝이면 조금은 허무했을 거다.
“그리고 놈은 향후 2년에서 3년 안으로 스스로 혼의 힘을 깨닫게 돼. 생각해보니까 재미있지? 베커만이라는 오른팔을 얼굴마담으로 세워놓는 그 배짱. 네가 말했지. 왜 그 당시 하프 블러드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냐고, 정확히는 못 한 거야.”
고기를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욕심을 부렸으면 그 즉시 뒤졌을 테니까.”
포크를 내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늘어트렸다.
“반쪽짜리 초월자인 하프 블러드들이 과연 누구를 보고 혼의 힘을 깨달았을 것 같아? 실체조차 잡지 못한 혼의 힘을 아무리 드래곤과 신체를 결합했다 해도 놈들이 무슨 수로? 간단해. 표본이 있었으니까 깨달은 거야. 전생에서 이스칸다르 툴칸은 개인의 힘, 단체의 힘, 그 두 가지 모두 정상에서 꽉 쥐고 있던 놈이거든. 아주, 음흉한 놈이지.”
그게 이스칸다르 툴칸이다.
힘을 숨긴 찐…… 음, 권력자.
이제 좀 교양 있게 말해야지.
힘을 숨긴 권력자.
이게 딱 적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