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96)
제 297화
잭 발란티에.
저놈은 대체 좋아하는 게 뭘까.
보통 남자라면 여자를 떠올렸겠지만 잭의 주변에는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과거의 영웅이 있었다.
심지어 그 영웅은 외모만으로도 대륙을 씹어 먹을 정도였다.
브랜뉴는 곧이어 여자라는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그대로 지웠다.
앞서 말한 대로 돈도 아닐 거고, 정보.
그래, 정보.
‘우선 첫째 정보.’
둘째.
순간 브랜뉴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이 아카데미 대전에 저 남자는 참석했다. 그리고 이후 저 남자의 모든 행보는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쏠려 있었어. 즉.’
브랜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건 모르던 사실을 깨우친 게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사실이 매우 중요한 사실이 된, 그런 사소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아카데미에, 즉 학생들에게 미래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지.’
아카데미 간의 교류.
더 나아가 아카데미 발전 기금.
‘그가 돈이 많건 없건, 그런 것과는 별개로 기금을 조성해 주고 기부해 준다면 그건 성의가 된다. 그래, 그거다.’
웃음을 터트리는 잭을 바라보며, 브랜뉴도 웃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일까.
브랜뉴 옆에 있던 다른 아카데미의 책임자들도 동시에 웃었다.
마치,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그들을 멀찍이 물러서서 바라보는 템-사미트는 그들이 지은 웃음과는 조금 다른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이리 보니 인형과 다름이 없군. 허허.’
* * *
툴칸의 숙소에 있던 하인케스 베커만은 텅 비어 있는 팔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프군.’
실제로 통증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아프다는 표현이 나왔다.
마음의 상처라느니 그런 웃기지도 않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냥, 아프다.
누군가를 상대할 때 조금이라도 틈이 보였다면 그건 승기가 될 수 있다.
다른 이도 아닌 베커만 정도의 남자라면 그런 것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스칸다르 툴칸에게서도 틈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건 일종의 확률로 표현이 가능했다.
싸워서 이길 확률.
목숨을 건다면 약 15%, 목숨을 걸지 않는다면 0%.
놀라운 건, 이스칸다르의 재능은 검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거다.
마법에도 재능이 있고 결정적으로 마나 그 자체에 대한 재능이 그 누구보다 월등했다.
그런 걸 진짜 천재라고 하고, 어마어마한 재능의 결정체라고 한다.
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재능이고 그 야망까지 모든 게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이른바 제왕.
베커만 스스로와는 다른 그런 남자.
베커만은 이스칸다르를 그리 평가했다.
이 세상에서 강한 이들은 많았어도 지존의 자리에 어울리는 이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맹세했다.
충성을.
그런데 잭 발란티에.
그는 혜성처럼 너무나도 뜬금없이 등장했다.
틈도 보이지 않고, 무엇을 해도 절대 이기지 못할 그런 힘을 가졌으며 그릇도 넓다.
세상 전부를 품을 정도로 거대한 그릇.
베커만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말았다.
‘만약, 내가 잭 발란티에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베커만은 스스로의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그리고 다른 이가 보았을 때 얼마나 우습게 보일지 알고 있었다.
누가 보면 팔랑귀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분명한 근거가 있는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사미트는 군주의 자리에 앉아 있는 전사. 그는 군주의 자질보다 전사의 자질이 더 어울린다. 그런 남자니까.’
그에 반해 이스칸다르는 어떠한가.
‘그는 완벽한 제왕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 포용력, 스스로의 힘, 두뇌, 여유, 실행력까지. 나에게는 없는 그런 자질을 그는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충성을 맹세한 거다.
그런데 잭 발란티에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이스칸다르는 잭 발란티에보다 모자라다.
잭 발란티에가 보여 주는 그것이 진짜 제왕의 자질이고.
이스칸다르가 보여 주는 것은 그저 왕의 자질이라는 것을 베커만은 깨달았다.
꽈악- 주먹이 쥐어진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었다.
가슴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균열.
이 균열을 베커만은 최대한 잠재웠으며 가라앉혔다.
한번 맹세를 했고, 그 맹세를 지키는 것.
그게, 진짜 전사로서 해야 할 일.
‘나는 군주가 아닌 전사다.’
검을 잡으면서 스스로 세웠던 정체성을 베커만은 잊지 않았다.
‘나는, 한 길만 보고 간다.’
이게 베커만이라는 남자의 신념이며 철학이었다.
잭 발란티에는 적.
그게 전부다.
얼굴을 가린 손을 슬그머니 치운 그때.
쿠궁-!!
숙소 벤치에 앉아 있던 베커만은 느꼈다.
무언가.
세상에 무언가 강림했다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미친.”
그 말 말고는 다른 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하늘이, 열리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이스마엘 왕성 바로 위에 있는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등장한 인외의 존재.
이마에 나 있는 수많은 뿔들과 검게 물든 얼굴.
거대한 송곳니.
그리고 칠흑처럼 어두운 입.
그게 열리고, 그곳에서 송곳니 형태의 거대한 거검이 천천히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이스마엘 왕성의 어느 한구석에 꽂혔다.
콰앙.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쩌면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7천? 8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그 정도 숫자의 마나 유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없다.
허탈함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다른 길에 몰린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베커만은 벤치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한동안, 쭉.
chapter 8
말은 안 했는데.
신체를 강제로 성장시키고 서클을 강제로 늘렸을 때. 그 이후 나는 제대로 된 잠을 자지 않았다.
왜냐면 잠을 자면 최소 이틀에서 삼 일 정도는 누워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노곤함과 피곤함이 밀려와도 그냥 참았었다.
스승님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 날도 마찬가지.
스승님과 시내를 돌아다니고, 시내에서 로만을 만나고 베커만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갔던 그 날도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스승님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웠더랬지.
그러다 최근 나름의 기술을 쓰며 한 번 더 무리를 했는데, 그걸로 내가 녹초가 되어 곧 쓰러질 거라는 게 확정되었다.
손을 떨던 그 작은 행동이 완전히 연기만은 아니었던 거지.
그렇게 며칠을 정신력으로 버티다 결국 쓰러졌다.
그리고 예상했듯,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예지 비스무리한 게 눈앞에 펼쳐졌다.
치지지직 하며, 웬 노이즈가 낀 것 같은 회색빛 세상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약 아홉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들은 일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마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냐면.
저 ‘무언가’라는 게 참 익숙한 거였거든.
팔, 목, 다리 등등. 모든 신체 부위를 절단하고 그걸 다시 이어붙이면 저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흉측하고, 꼴보기 싫다.
문제는 그 조립된 바비인형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바로 ‘전생의 나’였다는 거다.
저걸 다 어떻게 주워 왔대.
놀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말 가능한 겁니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한 남자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
저 목소리가.
왜 이렇게 익숙하게 들리는 거지?
이윽고.
익숙한 목소리의 남자가 한 손으로 후드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 나타난 그의 얼굴.
……어?
(도련님을 살리는 게 정말 가능한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남자가 고개를 젓는다.
“부작용인가, 데스 나이트가 뭐 이리 말이 많은 건지.”
“알지 않으십니까. 시체 상태가 좋지도 않고 원래 데스 나이트가 된 지도 꽤 오래돼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개체라는 거. 보통 오래된 개체는 저렇게 분열을 일으키더군요.”
“십수 년 전에 도망쳤던 배반자 새끼가 데스 나이트가 되어서도 저리 주둥이를 털어 대니 참으로 거슬립니다. 그냥 죽여 버릴까요?”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자 모두가 입을 다문다.
후드를 뒤집어쓴, 그리고 목에 드래곤 뼈로 추정되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남자가 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개량된 흑마법은 토막 나고 썩어 가던 고깃덩어리였던 자네를 되살렸지. 직접 겪고 있으면서도 모르는가.”
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지금의 저와 경우가 같을 리 없지 않습니까. 도련님은 자그마치 초월자. 하프 블러드들을 넘어선 진짜 세상의 정점이었는데.)
후드를 쓴 이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건 자신감.
자기들 눈앞에 있는 잭 발란티에의 시체를 되살려서 온전히 조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런 자신감이었다.
“잊지 마시게. 동쪽 대륙에서 이상한 괴물들이 몰려왔고 그 괴물을 막기 위해서는 괴물이 필요하지. 그리고 우리 도관은.”
책임자.
이름은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하지만 경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상급 마스터.
하지만 그런 경지여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간땡이가 보통 사람보다 천 배 이상 부풀어 오른 이들이 할 법한 그런 소리였다.
왜냐면, 이렇게 말했거든.
“그런 괴물을 길들이고 그 괴물로 세상을 구하는, 그래, 우리 도관은 대륙의 수호자, 그 자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야.”
개소리는 그냥 무시했다.
그보다, 난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놀랍다.
왜.
왜 론이 저기 있는 거지?
얼굴에 흉터가 가득했고, 왼쪽 팔은 언제 잘려 나갔는지 휑했으며 후드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와 얼굴, 심지어 머리 쪽에는 눈을 찌푸리게 할 정도의 끔찍한 수포 자국들이 가득했다.
그것은 흡사 역병에 걸린 환자들의 모습.
더 놀라운 건, 그런 론의 두 눈동자가 칠흑처럼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는 거다.
저런 모습의 남자를 론이라고 알아본 것도 신기하긴 한데, 오히려 의문이 앞선다.
아니지.
지금 이 감정은 의문이 아니다.
꽈악 하고, 주먹이 쥐어진다.
의문이 아닌 분노.
전후 상황은 앞선 대화로 파악이 끝난 지 오래다.
전생에서 론은 죽은 게 아니라 데스 나이트가 되었다.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었고, 누군가의 명령만 받아 움직이는 개새끼가, 되어 있던 거다.
더 나아가 지금은 데스 나이트로서의 힘이 희미해졌고 거의 죽음을 앞둔 상황.
얼마나 굴린 건지.
얼마나 가지고 논 건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론은 죽었지만 죽었으면서도 살아있었던.
그런 상황을 전생에서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열린 이 이후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혼자 걸을 필요가 없었구나.
같이 걸을 수 있었구나.
이윽고 론을 제외한 여덟 명의 남자들이 걸음을 옮겼다.
바비 인형처럼 신체 곳곳을 바늘 같은 것으로 꿰맨 ‘내 시체’를 둘러싼 그들은 그 자리에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이상학적인 단어들이 수도 없이 그려지고, 그들 모두가 마법진의 한 축이 된 것처럼 각자 자리에 위치한다.
이어서, 중간에 있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호령하던 자여. 세상을 발아래에 두었던 자여! 죽은 자의 영혼이 무류의 일그러짐이 되어 외치니! 각성의 때가 왔도다! 내 명령에 답하라!”
아홉 명의 남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애니메이티드 데드Animated d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