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02)
제 403화
다음 날 아침.
창밖으로 내비치는 햇살에 눈을 떴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찾았다.
스승님은 거실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사각-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승님의 뒤쪽으로 가자, 그제야 고개를 돌리신다.
[일어났느냐.]“예,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뭘 그리 재미있게 보십니까.”
내 물음에 스승님은 그대로 책을 덮더니 제목을 내게 보여 주셨다.
‘건축학개론’.
그리고 그 밑에 저자, 에두아르 잔레그리.
“밤새 이걸 보신 겁니까?”
받아 들고는 책장을 촤르륵, 넘겼다.
수작업으로 직접 한 땀 한 땀 써 내린 책.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생의 역작이 아닌가 싶다.
어젯밤에 아베이루한테 자세하게 들었는데, 에두아르 잔레그리라는 이름은 전 대륙에 퍼져 있다고 하더라.
건축하는 이들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고 하던데.
나도 모르는 진짜 인재였던 거지.
[읽다 보니 재미있더구나.]“그렇습니까?”
스승님은 정말 재미있었는지, 입가에 웃음까지 띠며 말씀하셨다.
[24페이지 세 번째 줄을 보면 이런 게 나오더구나. 돔-이노Dom-Inno.]돔-이노?
“도미노를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스승님이 고개를 저었다.
[25페이지 첫 번째 줄에 이런 말이 있다. ‘건물의 주요 기능들을 구획하는 벽체와 지붕은 구조체와 분리하고 모든 하중을 기둥이 지탱하게 하며 내부의 입면이나 평면은 자유롭게 구성한다.’. 즉, 벽이 필요 없다는 뜻이지.]새삼스러운 눈으로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24페이지 세 번째 줄? 25페이지 첫 번째 줄?
지금 책은 내 손에 있는데.
“그걸 다 외우신 겁니까?”
오히려 스승님이 내게 물었다.
[기본 아니더냐?]웃고 말았다.
맞아, 기본이지.
나랑 스승님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건 기본이지.
그보다 정말 인상 깊게 보신 듯하다.
“즐거워 보이십니다.”
[그래, 확실히 재미있더구나. 세상이 달라지긴 했어. 이런 인재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걸 보면.]나는 스승님에게 다시 책을 건네주고는 욕실로 향했다.
가볍게 씻으려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귀찮으니까 마법으로 해결해야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마나가 내 몸을 순식간에 씻어 주었다.
옷을 가볍게 털어 내며 바로 욕실에서 나오자 책을 펼치려던 스승님이 눈살을 찌푸린다.
[씻는 게 귀찮아서 마법으로 해결했느냐.]어깨를 으쓱했다.
“만능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스승님의 옆에 앉았다.
“우리들의 마법은 만능이 아니다, 스승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겁니다.”
[……그래?]“예. 그래도 이번에는 좀 넘어가 주십시오.”
[왜?]스승님을 안아 들고는, 내 어깨에 앉혔다.
“전 씻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스승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말문이 막힌 듯, 스승님이 그대로 입을 다무셨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스승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지만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부끄러워하는 건지 부담스러워하는 건지.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그거야, 네가 아깝다는데 어쩌겠느냐.]못 이기는 척 내 머리를 툭, 치신다.
그렇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놀랍게도 거실에는 에두아르가 있었다.
밤새 잠을 안 잔 건지 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가 대뜸, 내게 물었다.
“자네, 혹시 하늘에 집을 띄울 수도 있나?”
이건 또 뭔 소리야.
* * *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나와 스승님은 거실 탁자에 앉아 에두아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집을 왜 땅에만 지어야 할까. 기본적으로 집이란 땅이 있어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땅을 하늘로 올려 버린다면? 마도공학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왜 이런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을까.”
등등.
“자네는 황제가 되겠지. 대륙 전체를 통일한 역사상에도 없던 유일무이한 황제. 그리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까지 했으며 모든 종족이 모여 사는 신도시를 계획하고 있어. 그런 업적에 걸맞은 사람은 그 업적에 걸맞게 살아야 하지. 아니 그런가?”
대답하지 않고 잠시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이거 보니까, 밤을 새운 에두아르는 우리 스승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느낌상 꽤 많은 걸 아는 듯한 느낌이거든.
“아니 그러냐니까?”
재촉하는 그에게 나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까 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게. 땅을 하늘로 띄울 수 있나?”
“띄울 수는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본질부터 잘못되었다는 듯.
“그냥 띄우는 거야 마스터쯤 되는 마법사들이면 다 하겠지. 내가 말하는 건 그냥 띄우는 게 아니라 영원히 띄우는 걸 말해.”
에두아르는 슬쩍 우리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자네 스승에게 듣기로 자네는 마법을 졸업했다고 하더군. 모르는 마법이 없고 드래곤들이 사용하는 언령마저 사용할 수 있는 초월자. 그리고 이 대륙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마나 유저들보다 강하고 그 어떤 마법사들보다 이해력이 뛰어난 마나의 지배자.”
전생에서 꽤 많이 듣던 별명이 여기서 죄다 튀어나오네.
“자네는 새롭게 만들어질 새로운 수도에서 살겠지. 하지만 자네의 권력은 일반인들과는 달라. 여기서 일반인이라는 건 그냥 편의상 부를 뿐, 쉽게 말하면 자네를 제외한 모두를 말하는 거라네. 유일무이한 권력을 가진 유일무이한 황제. 자네는 그들과 같은 높이에서 지내면 안 돼. 세상의 정점이니까. 그러니 그런 자네가 거주할 곳은 더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하지 않겠나.”
잠시 말을 멈춘 에두아르 잔레그리, 우리 예술가 영감님이 잠깐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집이란 얼굴이라네. 자네의 얼굴을 꾸며 주고 싶은데. 왜, 마음에 들지 않는가?”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들지 않긴. 마음에 든다.
“신 수도의 상공, 구름 위에 황가皇家가 거주하는 ‘천공성天空城’이 자네의 집이 될 것이야. 상상만 해도 떨리지 않는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흥미로운 수준. 그런데 진짜 이거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았다.
에두아르는 진짜 진심이었거든.
천공성.
솔직히 안 될 것도 없다.
땅 하나를 하늘 위로 올리고 온갖 마법진을 그리고 흑마법도 새겨 주고, 혼기로 절대 깰 수 없는 실드나 그 외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하면,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가능은 하다.
“진짜 설계해 줄 겁니까?”
에두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여태껏 존재한 적이 없던 전무후무한 황성을 설계해 주겠네.”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준다는데 어떻게 해. 받아야지.
“그럼 그렇게 하시죠. 설계도 나오면 말해요. 드워프랑 인력들 다 보내 줄 테니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에두아르는 대문 쪽으로 이동했다.
대화를 나누는 듯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머지않아 에두아르가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레오폴드 후작.
오전 08시에 온다고 했었는데, 지금이 08시였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공자님. 좋은 아침입니다.”
에두아르의 눈이 충혈된 것만큼 레오폴드 후작의 눈도 충혈되어 있었다.
에두아르처럼 밤을 새웠나 보다.
아니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왔거나.
간밤에 아베이루와 나눴던 대화 중에 레오폴드 후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녀석이 먼저 꺼낸 게 아니라 내가 물어본 거다.
철도 건설에서 지분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게 핵심인데.
아베이루는 레오폴드 후작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는 넘어가 줘도 된다고, 앞으로는 그런 욕심 부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판단했고, 나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예?”
작게 웃었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욕심도 부리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절제하느냐, 그어져 있는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레오폴드 후작의 표정이 굳어진다.
“한번 실수한 사람은 보통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하는데 후작님은 큰 교훈 하나 얻으셨으니 안 그러시겠지요. 그러니 앞으로 잘해 봅시다.”
어제처럼 악수를 건넸다.
침을 꿀꺽 삼킨 레오폴드 후작이 내 손을 붙잡았고 나는, 왼손으로 레오폴드 후작의 손을 덮었다.
양손으로 덮은 모양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인 겁니다. 아시겠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건국하기 전에 필요한 일은 다 해결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후작령을 떠나, 아카데미가 있는 어센블로 향했다.
* * *
잭이 편하게 놀고먹는 동안 셀은, 툴칸 제국의 보아스 후작령에 와 있었다.
블랙 드래곤 카르타스 타츠로트.
그는 흔한 드래곤들답게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인간 행세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그런 유희.
가끔 인간들끼리 사랑도 하고 마나 유저로 두각도 드러내고, 가끔 상인 행세도 하고 어부 행세도 하며 은거기인 흉내도 내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면 행복한가요?
스스로를 드래곤 로드라 소개한 작은 드래곤.
분명 가진 힘은 해츨링 수준인데 풍기는 분위기가 참으로 묘했다.
그 괴리감에 카르타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유를 가장한 채 한심하게 사는 게 행복한 거냐고 물었는데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게 미쳤나.
-답이 없으시네요. 벙어리도 아니고.
결국 답하고 말았다.
“자유를 가장했다? 행복하냐? 하…… 웃기는군. 그래 말 나왔으니 묻지. 그리 말씀하시는 그대는 진정한 자유가 뭔지는 아나?”
스스로를 로드라 소개했고 네 명의 드래곤까지 동행한 셀이었기에 마주하고 있는 카르타스는 호칭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 봤자 ‘그대’에서 그쳤지만.
그 질문에 셀이 답했다.
-알지요.
라고.
오히려 카르타스가 놀랐다.
“안다고? 고작 해츨링밖에 안 되는 당신이?”
그대가 당신이 되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보여 줄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눈앞의 꼬마 드래곤.
그건 고독.
밑바닥에서 올라온 그런 이들만 지을 수 있고 풍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죽음에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게 진정한 자유이며 다른 자유는 그것을 빙자한 것에 불과해요.
카르타스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셀의 뒤쪽에 있던 네 명의 드래곤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셀의 말에 담긴 그 무게가 와 닿았기에.
어린애가 대체 어떤 경험을 하고 누구를 봐 왔으며 어떻게 살았길래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거지.
카르타스는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건 당연한 거다.
지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는 지옥을 경험해 본 이를 마주했을 때 압도당한다. 그리고 잡아먹힌다.
잭이 괜히 셀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까.
다 그럴 만했기에 삼은 거다.
카르타스는 느끼고 있는 거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로서의 본능을.
셀이 말했다.
말도 높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높일 필요도 없었기에.
-당신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지. 대신 그만한 대가를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