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33)
제 434화
별장 밖에서 대기하던 무명의 조직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그렇게 소식을 전하는 동안 아베이루는 별장의 회의실에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크흠.”
몸에 묻은 먼지도 털고 주름도 편 아베이루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었다.
며칠 동안 누워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의 잭. 이 대륙의 지배자.
그가 회의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다.
아베이루는 준비했던 말을 하려 했다. 황제가 되어 달라. 취임해 달라. 하지만 짐작이라도 한 걸까. 잭이 말했다.
“아베이루야.”
“……예, 주군.”
“취임식 준비해라.”
아베이루의 표정이 환해졌다. 당연히 아베이루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잭에게 줄을 댄 이들, 정확히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전부의 표정이 환해졌다.
황제가 언제까지 공석일 수는 없다. 취임은 무조건 해야 한다. 그 시기는 지금이 가장 적당했다. 적당한 것을 넘어 최적, 완벽했다.
모두가 잭의 힘에 전율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이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절차가 조금 길겠지만, ‘폐하’께서는 간편한 것을 좋아하시니 최대한 짧게 준비해 보겠…….”
아베이루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잭이 고개를 젓고 있었기에.
무슨 말 실수라도 한 걸까.
아베이루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잭이 말했다.
“1시간 내로 준비해.”
순간 아베이루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1시간? 10시간이 아니고 1시간?
“내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갈 거 아니야. 건국식 할 때처럼 통신구 각 지역에 가져다 놓고 대기해.”
분명 잭의 성향을 모르는 이는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잭은 간편한 것을 좋아한다. 허례허식 같은 것을 혐오한다고 해야 할까.
사실 간편한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시간 낭비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게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조금 심하다.
건국식 준비도 최소 일주일을 계획했고 전체적으로 점검하는 데에만 이틀이 소모됐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잭의 성향을 고려해서 짧게 끝낸 게 그 정도다. 그런데 그거보다 더 중요한 ‘즉위식’을 1시간 내로 끝내라고?
“폐하…….”
잭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모두의 심정을 잭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즉위식, 해야겠지.
지금보다 더 이상적인 상황은 나오지 않을 거고 향후 잭이 하려는 일을 생각하면 분명 지금이 가장 적당했다.
다만, 모두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런 잭을 바라보며 아베이루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떠올렸다.
아베이루는 스스로를 충신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도信徒라고 생각한다. 아베이루의 세상에서 잭은 살아 있는 신 그 자체다.
신을 모시는 이가 충성을 논한다? 의미 없다. 신도에게 있어서 충성이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잭이 1시간을 주었다. 그럼, 1시간 내로 끝내면 된다. 1시간 내로 인재들을 갈아서라도 즉위식을 준비하면 된다.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아베이루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저 잭이 조금 더 빨랐을 뿐이다.
“즉위, 해야겠지. 황제, 돼야겠지. 그런데 니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뉘앙스가 묘했다. 묘했기에 아베이루는 곧바로 알아챘다. 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설마 그걸 여기서 말한다고?
아베이루는 직감했다. 잭은 지금 ‘동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구나.
그리고 그건 정확했다.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겠지. 내가 그걸 모를까.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더라. 메인디쉬가 하나 남았거든.”
잭이 그대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아베이루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흑해 너머에 다른 대륙이 하나 있는 거, 혹시 아냐?”
“……다른 대륙이요?”
“왜, 그 전설 같은 거 있잖아. 저 흑해 너머에는 다른 대륙이 있다 그런 거. 못 들어 봤어?”
아베이루는 눈치가 빠르다. 이미 동대륙에 대한 것은 발렌타인에게 들었다. 하지만 이 주변에 있는 이들은 아니다.
지금은 정보 전달에 주력해야 했다.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아베이루가 말했다.
“다른 대륙, 예. 들어는 봤지만 전부 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확인을 했던 이들이 없으니까요.”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뽑았어. 그리 생각하며 웃는 잭이었다.
“내가 회귀자인 건 알지?”
어색한 침묵이 잠깐 자리했다. 사실 아는 이들만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다 알게 되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다.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냥 보여 줄게.”
잭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건 곧 모두의 머릿속에 꽂혔다.
모두의 눈이 흐릿하게 변한다.
그런 그들을 잭은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피가 들끓고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잭이 툴칸 제국에서 벌였던 일, 그것과 비슷하면 비슷했지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시체로 가득한 그곳에 괴생명체가 있었다.
네발로 엎드린 동체는 약 3m.
온몸에는 약 3cm 크기의 가시가 돌기 형태로 돋아나 있었다.
눈은 네 개였으며 사각이 없었다. 심지어 네 개의 눈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그 괴물이 먹고 있는 것은 인간이었다. 그것도 어린 남자.
아직 살아 있는지 양팔로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의미 없었다. 괴생명체, 대륙에서 처음 등장하고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키메라’는 어린아이를 산 채로 씹어 먹고 있었다.
복부를 씹고 장기를 씹는다. 잔인했다. 아이는 계속 버둥거렸다. 역시 의미 없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덩치의 누군가가 뛰어내린다.
그의 손에 들린 두 개의 도끼 중 하나가 하늘을 찢으며 내려찍혔다.
굉장히 민첩하고, 굉장히 빨랐다. 하지만.
괴물은 그 즉시 몸을 뒤로 박찼다.
순식간에 5m 이상 거리를 벌린 괴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린다. 입가에 묻은 피와 살점이 키메라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놈이 왔구나, 라고.
키메라의 눈에는 검은색 피부의 한 남자가 있었다. 인간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트롤이라기엔 조금 작은 동체.
그의 두 눈이 키메라를 노려본다.
오크 로드, 톤 그륜힐. 분노한 그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가슴에 새겨진 것은 검은색 독수리, 그것도 포효하는 검은색 독수리였다.
바로 ‘고금제일검 잭 발란티에’를 기리는 상징.
원래 발란티에 후작가의 상징이었던 고개 숙인 진홍빛 독수리에서 변형된 형태인 그 상징이 그륜힐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그의 시선이 어린아이에게로 옮겨진다.
아이는 가망이 없었다.
복부는 헤집어졌고,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이건 신의 물약인 엘릭서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손쓸 수가 없을 정도다.
그륜힐이 아이에게 말했다.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짧은 말이었다. 그 말에는 많은 게 담겨 있었다. 아이는 읽었다. 이 오크가 내 복수를 해 주겠구나.
아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륜힐의 도끼가 아래로 내려찍혔다.
서걱.
아이의 목이 잘려 나간다.
마지막 순간 고통을 덜어 주려는 의도였다.
힘겹게나마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던 그륜힐이 몸을 돌렸다. 쿠궁.
적색의 기운이 몸을 덮는다.
괴물이 자리를 박찬다. 그륜힐도 자리를 박찼다.
이어서 콰직, 섬뜩한 소리가 울린다.
그륜힐의 도끼는 키메라의 어깨에 박혀 있었고 키메라의 이빨은 그륜힐의 어깨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파고드는 그륜힐의 도끼와는 다르게 키메라의 이빨은 물기만 했을 뿐 파고들거나 그러지를 못했다.
적색 마스터의 투신갑.
그걸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까드득, 까득.
천천히 파고들었다.
도끼가 키메라의 폐를 파고들고, 심장을 파고든다.
키메라가 고통에 겨운 듯 몸부림친다. 이어서 키메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붉은 피가.
놀랄 일은 거기서 벌어졌다.
붉은 피는 그륜힐의 어깨를 덮었다. 그리고.
파스스스스-!
놀랍게도 적색 마스터의 마나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륜힐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키메라의 몸이 두 동강 났다.
그륜힐은 익숙한 듯 빠르게 도끼의 피를 털어 냈다. 어깨를 물고 있던 키메라의 머리를 움켜쥐고 집어 던졌다.
그 이후 어깨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너무나도 신속한 동작이었다.
상황은 간단했다.
키메라의 피는 적색 마스터의 마나를 조금이나마 밀어냈다는 거. 정확히는 산성 작용으로 마나 자체를 녹여 버렸다는 거.
그저 수준에서 차이가 났을 뿐이다. 그륜힐은 적색 마스터니까. 여기서 팩트는 하나였다.
이 키메라는 마나 유저의 천적이라는 거.
이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던 하피가 블랙맨에게 말했다.
“정면에 9마리, 본대는 보이지 않아. 숨어 있는 걸 수도 있고, 어떻게 할 거야? 도망칠까?”
블랙맨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정면에서 빌레아의 말대로 총 9마리의 키메라가 달려온다.
“우리가 피할 곳은 없어. 그리고 이 정도의 연합군이 모이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 그러니 여기서 끝을 본다.”
블랙맨이 손을 들어 올리자 먼 곳에 있던 한 오크가 깃발을 들어 올렸다.
포효하는 검은색 독수리.
블랙맨이 외쳤다.
“진격하라-!!”
곳곳에 있던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인간, 오크, 하피, 그들의 숫자는 거의 2만에 달했다.
그들이 달려 나가 9마리의 괴물과 맞섰다.
모두가 마나 유저였지만 의미 없었다.
블랙맨과 빌레아가 각각 한 마리씩의 키메라를 죽이고 있을 때 나머지 7마리의 키메라가 순식간에 수천 명을 학살했다.
블랙맨과 빌레아, 그리고 그 많은 마나 유저들이 9마리의 키메라를 전부 죽였을 때, ‘연합군’은 3분의 1이 줄어들어 있었다.
끝난 걸까.
아마 이대로 끝났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을 거다.
-캬르르르륵.
사방에서 괴물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피로 물든 평원 전체를 울린다.
블랙맨이 고개를 들었다. 빌레아도 고개를 들었다.
언덕으로 보이는 곳에서 무언가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퍼석.
키메라가 땅에서 솟구친다.
그리고 반대편.
또 다른 언덕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검은색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었다.
몇 마리지? 100마리? 모르겠다.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빌레아가 눈을 크게 뜬다.
“저쪽 방향에서는…… 분명 없었는데?”
블랙맨이 고개를 젓는다.
“없는 것처럼 보인 거겠지.”
“…….”
“놈들은 바다를 헤엄쳐서 왔다. 그 먼 거리를 쉬지도 않고 달려올 정도의 괴물이다. 구조상 그 단단한 손톱과 가벼운 동체로 땅을 바다처럼 헤엄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가설이 맞았을 뿐이다. 그러니 낙담하지 마라.”
빌레아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블랙맨이 자조적으로 웃고 있었다는 것을.
그건 상황에 대한 허탈감이었다.
“그런데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많군.”
숫자가 끊임없이 늘어난다. 연합군은 포위되었다.
블랙맨은 직감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본대를 노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노려진 것 같다. 저게 전부일 것 같지도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분명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