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79)
제 480화
* * *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밖으로 나온다.
“흑막인가.”
뜬금없는 말에 옆에서 걷던 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흑막이요?”
답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론이 재차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그 천외천이었나, 걔네 말씀하시는 거죠?”
“비슷한 맥락이지.”
론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한다.
“지금 우리 대화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는데 이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
“그렇다고 치지 뭐.”
“…….”
“왜?”
“……역시 도련님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양파 같은 남자다, 까면 깔수록 매력이 넘쳐 흐른다, 이런 소리지?”
“그렇다고 치죠 뭐.”
전부터 생각한 건데.
“그거 알아? 우리 론의 말투가 내 말투랑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거.”
“좋은 거 아닙니까?”
손으로 론의 어깨를 툭 쳤다.
“당연히 좋은 거지. 내가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을 닮으려는 좋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
“그건 또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내 마음속에서.”
지어낸 소리라는 것을 조금 돌려 말하니까 론의 표정은 더 괴상해졌다.
“흑막이니 뭐니 하는 소리 하시더니, 천외천이라는 걔네가 어지간히 신경 쓰이시나 봅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어쩌면 걔네가.”
잠시 말을 멈췄다. 뭐라고 단어 선택을 해야 할까.
“걔네가, 그다음은요?”
재촉하는 론에게 그냥 내 생각 그대로의 말을 들려주었다.
“워밍업,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론이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라고 해야 하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론.
“나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있어?”
“제가요?”
“어. 론이, 나한테.”
론의 복잡한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그런 론에게 나는 슬쩍 떠보듯 이야기했다.
“꿈을 꿨어.”
“꿈이요?”
“스승님이 나오는 꿈.”
“…….”
“론한테만 이야기해 주는 건데, 난 잠을 잘 때, 혹은 기절했을 때 항상 스승님에 대한 꿈을 꿔. 벽을 보는 무의식의 경계에 다다랐어도 그 과정은 꼭 이어지더라고.”
“…….”
“그런데 어제 그 꿈은 조금 이상했어.”
“이상해요? 뭐가요?”
“스승님이, 지척에서 느껴졌거든.”
“…….”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게 아닌가, 스승님이 동대륙으로 온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해?”
결국 못 이기겠다는 듯 론이 어깨를 으쓱한다.
“사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많이 했는데. 맞습니다. 발렌타인 님이 왔습니다. 이곳 동대륙에.”
잠시 말을 멈췄다. 눈도 감았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약간의 화도 나는 거 같고 약간의 미안함도 생기는 거 같고.
동대륙에는 괴물이 아닌 사람이 있었다. 나는 키메라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완전히 틀렸다.
문제는 그걸 스승님이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서대륙을 지킬 유일한 사람은 스승님 말고는 없다. 그런데 스승님은 동대륙으로 왔다. 서대륙을 버린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고 약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에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여기로 바로 안 오신 걸 보면 팔자가 참 좋으신 거 같네.”
“……화나신 겁니까?”
“어쩌면 조금.”
이래서 이야기하지 않은 거라는 듯 론이 머리를 긁적인다. 론이랑 대화는 거기까지 했다.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 쪽으로 돌렸냐면 반대쪽으로.
앞서 걷는 수라도제 유제하 쪽이 아니다.
등에 긴 창을 메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 말은 안 했는데 쟤 얼굴에 수염이 되게 많이 났거든.
저거 밤에 보면 산적인 줄 아는 애들도 많을 거다. 정확히 말하면 예쁘장한 꼬맹이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산적.
그러니까.
“너넨 왜 따라오냐?”
뒤따라오던 하후돈이 움찔 몸을 떨고 그 옆에 있던 하후영도 몸을 떤다.
여기가 마궁이 있는 팔달산 입구다. 말은 안 했는데 여기까지 쟤네 두 명이 따라오더라고.
가는 길이 비슷한가 싶었는데 이거 보니까 아니더라.
당연히 앞서 걷던 수라도제도 자리에서 멈췄다.
“빚은 다 갚았잖아. 가는 곳이 같은 것도 아닐 텐데 왜 따라오냐.”
하후돈이 입을 뻐끔댄다. 말을 하려다 마는, 이걸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산적 같은 모습의 남자가 저러고 있으니 조금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러자 하후영이 자기 오빠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 찌른다. 그거 빨리 말해, 내 입으로 말하는 거보다 오빠가 오빠 입으로 말하는 게 낫겠다며, 그런데 왜 이렇게 어물쩍거려. 그렇게 말하더라. 이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 거지만 내 청각이 보통 청각인가.
자랑은 아닌데, 난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결국 하후돈이 말했다.
“귀인을, 아니지. 우리는 ‘폐하’를 따라가고 싶소.”
“마궁으로?”
하후돈이 고개를 젓는다.
“……그 서대륙, 그곳으로 가고 싶소.”
말이 나오니까 자신감이 붙나 보다. 하후돈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온다.
“당신이 다스리는 땅의 백성이 되고 싶소.”
당당하게 허리도 편다.
“당신의 창이, 되고 싶소.”
“내 창?”
“토끼를 잡을 때도 호랑이는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그건 뭣 모르는 이들이 지껄이는 개소리에 불과하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을 거요.”
“그러니까?”
하후돈이 그 상태에서 창을 뽑는다. 그리고 푹, 땅에 꽂았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동생인 하후영도 그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닭을 잡겠소. 당신 앞을 막는 닭들의 목을 치겠소. 그대 정도의 강자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나 정도면 닭 잡는 칼로 충분하다 생각되오. 한때는.”
“한때는?”
“20년 후의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적도 있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하는 걸 보니까, 진짜인가 보다. 동대륙 전체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면 될 듯.
솔직히 하후돈 정도의 강자면 곁에 두는 게 여러모로 좋긴 하다. 하지만.
“그, 네 동생 치료해 주는 약초 이름이 생령초였나?”
“그렇소.”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 같은데, 그거 내가 구해 준 거 아니잖아.”
그냥 타이밍이 얼추 맞았던 거고 하후돈의 입장에서는 운이 좋았던 상황이었을 뿐이다. 내가 어디 산속에 가서 그 생령초라는 걸 구해 온 게 아니잖아. 나는 그냥, 나를 머저리로 보는 놈을 죽였을 뿐이고 안쓰러워 보여서 그 생령초라는 걸 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대가는 의궁에서, 호법을 받는 것과 론을 수련시켜 준 것으로 충분히 받았다. 아니지, 오히려 넘쳤다. 하지만 하후돈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하후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령초는 그대가 구해 준 게 맞소.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생령초를 얻지 못했을 거고 내 동생도 구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과 내가 지금 그대의 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관계가 없소.”
“관계가 없다?”
“생령초에 대한 일이 어느 정도 영향은 미쳤겠지만 전부는 아니오. 의탁하고 싶소.”
조금 애매하다고 해야 하나.
의탁하고 싶다는 저 말이 조금 미심쩍게 들린다.
그게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나 보다.
“수라도제와 있었던 일을 나는 들었소. 태극검제가 있는 종도에서 마찰이 있었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 이후, 수라도제와 그대는 다시 만나 무언가 약속을 했소. 그리고 지금 그대는 그 약속을 지키러 마궁으로 가고 있소.”
이것도 사실이다.
“그대는 강자요. 내가 천마나 검존을 직접 본 적은 없어서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대는 천하제일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강자요. 또한 동대륙에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오. 그런데 지금 그대는 본래의 목적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소. 그 정도의 강자가, 그런 강자가 자기보다 약한 이와의 약속을 지킨다, 심지어 다른 목적이 있는데도 그걸 치워두고 지킨다? 나는 이런 걸 살면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소.”
하후돈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소. 울타리를 지키는 양치기가 되고 싶소.”
슬쩍 웃고 말았다. 솔직히 약속을 지키는 거야 나한테는 어려운 게 아니다. 난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으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약하건 강하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약속이라는 것에 그런 게 들어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약속이 아니니까. 하후돈은 그런 내가 신기했나 보다. 이쪽 동대륙의 정신이 ‘강자존’ 이었던 거 같은데, 확실히 서대륙보다 더 노골적이다. 하후돈과 저쪽에 있는 유제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던 거다.
물끄러미 하후돈을 바라보았다.
내 밑으로 들어오고 싶다, 울타리 안에 들어와서 양치기가 되고 싶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마음에 드는 말이기도 하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두어 걸음 다가가자 하후돈의 코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난 배신이라는 걸 굉장히 싫어해.”
내 말에 하후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 사람이 되면 절대 배신이라는 건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워질 만한 행동도 하지 마.”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워질 만한 행동이란.
“나름 힘이 있다고 깝죽거리거나, 너보다 못난 이들을 착취하거나, 그럴 자신 없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마라.”
하후돈이 고개를 든다. 그의 이글거리는 두 눈이, 가슴에 꽂혔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걸 지킨다면.”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내 울타리 안에 넣어 준다. 양치기로 삼아 준다.”
그제야 하후돈의 입가에도 웃음이 피어올랐다.
“나 하후돈,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남자가 아니오. 감당하겠소. 아니 할 수 있소. 무조건 하겠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해 보자.”
그건 허락의 의미였고 하후돈은 두 손으로 내 팔을 냉큼 붙잡았다.
녀석을 일으켜 세워 주고 그 옆에 있는 하후영도 일으켜 세워 줬다.
뭔가 감회에 젖어 있는 듯한 두 녀석에게 마저 말했다.
“너흰 오늘부터 밀로스 제국의 주민이다. 앞으로.”
슬쩍 론을 바라보았다. 론도 웃고 있었다. 이런 걸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겁다는 듯.
말을 이었다.
“폐하라고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