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80)
제 481화
* * *
수라도제 유제하는 뭐라 설명하지 못할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오제 중 한 명인 흑마창제 하후돈이 서대륙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정확히는 그의 주민이 되었고 그의 울타리로 들어갔다.
얼마 전 당왕산에서 서대륙으로 오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그때, 솔직히 말하면 가고 싶었다.
저 잭 밀로스라는 남자. 서쪽의 황제라는 남자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 힘이 있는 자는 오만하다. 유제하 스스로도 스스로를 오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뿐일까, 유제하의 눈에 비친 모든 무인들은 오만했다. 힘이 있으니까. 강자니까.
무림에서 힘이 있는 강자는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 오만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거다. 뿐이랴, 저 잭이라는 남자는 괴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나름 강자라 불리는 이들을 전부 발아래에 둘 정도의 힘.
현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을 다툴 수준일 거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고금제일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는 약속을 지킨다. 그는 오만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감이 넘칠 뿐이다.
그런 황제는 지금 하후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흑마문?”
“예. 제가 나고 자랐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비전절기인 흑마심법을 배웠습니다.”
“우리 론한테 알려준 그거?”
“예. 아까 한번 훑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하후돈이 웃으며 질문했다.
“어떠셨습니까?”
“괜찮더라.”
“그렇습니까?”
“몇 개의 혈맥을 중심으로 삼고 그곳에 마나를 뭉치고, 또 뭉쳐서 한 번에 폭발시키는 거, 꽤 신선하더라. 일정한 동작마다 폭발적인 힘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그 부분이, 묘하게 닮았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하후돈이 다시 질문했다.
“무엇이 닮았는지요.”
“오우거들이 사용하던 강체술.”
하후돈이 눈을 껌뻑였다. 오우거?
“처음, 들어봅니다. 혹 서대륙의 어떤 집단을 뜻하는 단어입니까?”
황제가 피식 웃는다.
“키는 최소 3미터, 가진 힘은 인간들보다 우월한 종족인데 걔네가 강체술을 썼거든. 마나를 이용해 신체를 증폭시켜서 안 그래도 우월한 힘을 더 우월하게 사용하던 종족, 지금은 멸종했어. 한 400년쯤 됐지.”
등등등.
유제하는 태극검제의 이간질로 서쪽의 황제와 싸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미 우열은 가려졌다. 위와 아래가 정해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간에 ‘약속’이라는 게 생겼다. 보통의 무인들이었다면 얻을 것만 얻었을 거다. 물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두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서로의 약속은 지켜질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쪽의 황제에게 수라도제 유제하라는 존재가 과연 필요가 있냐는 거다.
그는 혼자서 수만이 넘는 이들을 썰어 댈 정도의 괴물이다. 힘? 부족하지도 않다. 오히려 넘친다.
그의 입장에서는 얻을 게 없다는 거다.
백번 양보한다 해도 그가 얻을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약속을 지켰다는 성취감.
그건 분명하게 말하는데 이 동대륙에 있는 그 어떤 무인들도 보여 주지 않은 모습이다.
저 정도의 힘을 지닌 이가 자신의 아까운 시간을 버려 가며, 그리고 귀찮음을 무릎 쓰며 마궁까지 와서 ‘수련’을 해 주려고 한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건 배포다.
그릇이었고 정체성이었다. 그런 남자가 다스리는 나라다. 절대 엉망인 나라는 아닐 거다. 지존이, 꼭대기에 앉아 있는 남자가 저런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 그게 엉망이면 말도 안 되는 거지.
“뭔 생각을 그리하냐.”
묻는 황제의 말에도 힘이 느껴졌다. 말 하나하나가 매력 있다.
“내 말 씹냐?”
저렇게 상스러운 말을 하는 그 모습도, 아.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음.”
잠시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수라도제의 가슴속에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다시 피어올랐다.
일단.
“거의 다 왔네, 따라오시게.”
다시 걸었다. 마궁은 산속에 있다. 산에서 살던 화전민들이 모이고 모였던 것이 마궁의 시초였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마궁이 있는 산은 말 그대로의 영지가 되었다. 산 위에 존재하는 영지.
고지대에 위치한 영지. 밤에 달을 보는 풍경이 기가 막혀서 만월대라는 명소도 있다.
그런 마궁에 속한 이들은 무려 23만.
그들 전부가 전투 병력이다.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모두가 무공을 사용한다. 비록 모두가 일류 고수는 아닐지라도 나름의 전투 병력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다.
분명 영지는 산에 위치해 있지만 그들의 일터는 다른 곳에 있다. 산 아래에 농지가 있고, 근처에서 소를 기르고 양을 기르고 돼지를 기르고, 마궁은 생각보다 굉장히 유명한 영지였다. 살기 좋은 영지이기도 했고.
복잡한 표정의 유제하는 애써 웃음 지었다.
“환영하네. 이곳이 마궁이라네.”
* * *
하후영은 걷고 있었다. 오빠인 하후돈이 생령초를 얻으려고 세상을 돌아다닐 때, 당연한 소리지만 같이 돌아다녔다.
중원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방방곡곡, 안 가 본 곳이 없다.
하지만 그건 아팠을 때다.
아파서 사리 분별을 못 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항상 추워서 오돌오돌 떨던 그때 보았던 것들이, 지금 같게 다가올 리 없다.
근처에 있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산이라 그런가, 꽤 볼만하다. 가슴이 편해지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 있었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오빠의, 그러니까 하후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황제의 목소리였다.
“아…… 폐하.”
황제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어온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정말 당연한 사실인데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도 멋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비록 외모적인 부분일지라도 그게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팩트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자 진리.
잭 밀로스.
서대륙을 힘으로 찍어 눌렀고 황제가 되어 서대륙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그의 나이가 현재 10대에 불과하다는 거다. 역천이라는 걸 했다고 하는데, 했다 해도 고작 30대다.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다. 키는 컸고 몸은, 하후영은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런 황제가 다가온다. 다가오더니 그 널따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바위를 툭툭 친다.
와서 앉으라는, 그런 모습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황제의 옆자리에 앉았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는 내 귀에도 이렇게 크게 들리는데 황제의 귀에는 더 크게 들리겠지.
“몸은 괜찮고?”
“예…… 괜찮습니다. 폐하.”
밀로스라는 국가의 백성이 되어서 신경 써 주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안에서 이야기 나누시는 것 같던데, 어인 일로…….”
마궁에 도착한 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일단 식사를 했다는 거고, 그 식사가 끝날 때쯤에 하후영은 미리 일어나 바깥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는 거다.
그 뒤를 황제가 따라온 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황제와 단둘뿐이다. 마궁의 유제하가 거주하는 큰 성의 뒤편에 황제와 단둘이 있다. 쿵쿵 다시 심장이 뛴다.
“내가 나온 게 뭐 중요한가, 그런데.”
황제의 눈이 하후영의 눈을 바라본다.
“몸, 정말 괜찮은 거 같아?”
같은 질문이 두 번 나왔다. 하후영의 힘차게 뛰던 심장이 빠른 속도로 잦아들었다.
죽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침착함이 생긴 거다. 큰 의문이 생긴 거다. 왜,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단순히 걱정이 되어서?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왜냐면 황제의 눈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대체 왜?
“마나를, 아니지. 내공을 쓸 수 없게 된 몸이 된 거 하후돈한테는 말 안 한 거 같은데, 맞지?”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다른 뜻은 없었다. 그냥 놀라움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설마.
“……들으신 건가요?”
“신의한테?”
“예.”
황제가 피식 웃는다.
“그럴 리가 있나. 넌 모르겠지만 나 정도 되면 대충 보면 알아.”
“아…….”
작게 탄성을 내지르던 하후영은 순간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황제의 표정.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가라앉아 있다.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듯. 그러다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다.
“이런 게 참 무서워.”
“……네?”
“사람의 신념이라는 게, 나고 자란 환경을 보면서 깨우치고 습득하는 거잖아. 내가 웬만한 건 다 예측이 되는데 그런 과정 같은 건 전혀 예측이 안 되더라.”
하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름 똑똑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실제로 하후영은 똑똑했다. 하지만 지금 황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게 맞나?
“구음절맥, 그거랑 비슷한 병이 서대륙에도 있었거든.”
“네?”
“혈맥섬유화라고 하거든, 혈맥이 섬유가 되어 버리면서 마나가 통하지 못하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증상이 대표적인데, 이게 왜 발생했는지 알아?”
하후영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고 있었으니까. 사실 혈맥섬유화라는 말도 지금 처음 들었다.
황제는 친절했다. 황제가 곧바로 말해 준다.
“유전자로 장난질해서.”
“장난질……이요?”
“아까 들어 보니까 ‘흑마문’이라는 곳에서 무공을 배웠다며?”
하후돈이 론에게 건네준 흑마심법은 흑마문의 비전심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전심법이란 직계들에게만 내려오는 심법이라는 뜻이다. 그걸 하후돈이 배웠다는 것은.
“흑마문의 핏줄이다, 이런 결론이 내려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흑마문의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유전자로 장난질을 했다는 거지.”
하후영의 눈이 크게 떠진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황제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 게 무서워질 정도야. 이런 게 역사인가.”
서대륙에서 혈맥섬유화가 일어났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서 군나르는 자기 자손을 집어삼키고 그 신체로 교배를 해서 또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그릇을 다시 집어삼키고 또다시 교배를 하고, 이걸 수백 년 동안 반복했기에 그릇과 그릇이 충돌했고 영혼과 영혼이 충돌했다.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게 혈맥섬유화다.
물론 군나르의 핏줄 모두에게 발병하는 건 아니다. 그저 핏줄 중 누군가에게, 마치 랜덤으로 뽑기를 하듯 불규칙적으로 발병한다.
잭은 30대가 넘었을 때도 혈맥섬유화에 걸리지 않았다. 잭의 몸에는 이상이 없다. 그 누구보다 자기 몸을 잘 아는 잭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에 만약 잭이 자식을 낳는다면, 그 자식이 또 다른 자식을 낳는다면 그 누군가는 무조건 걸린다. 왜냐면 군나르의 핏줄이니까.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잭의 피에는 아서 군나르가 했던 추악한 짓거리가 섞여 있다.
잭이 하고 싶은 일은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앞에서 두 번째 내지 세 번째에 속해 있는 게 바로 이 혈맥섬유화를 지워 버리는 거다. 그래서 강해지려는 거고.
“여하튼, 내가 볼 땐 동대륙이나 서대륙은 별반 다르지가 않아. 솔직히 쓰는 단어랑 입는 옷의 모양만 다를 뿐 같은 대륙이라 봐도 무방하거든.”
그런데 혈맥섬유화랑 비슷한 병이 나타났다. 이건 너무 뻔한 거다.
재미있는 건 생령초라는 걸로 그 혈맥섬유화가 치료되었다는 거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건 그걸 신의라는 남자가 치료했다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는 황제에게 하후영이 물었다.
“……그래서 화가 나신 거예요?”
“화? 내가?”
“네. 사실 흑마문이라는 곳에서 저와 오빠는 도망쳤어요.”
“언제?”
“제가 여섯 살 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