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05)
제 506화
눈매가 찌푸려진다. 이건 좀 다른데.
“왜?”
“왜라니요. 당연히 하나 말고 더 있습니까?”
말없이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죽이려면 당연히 불러와야지요.”
“자신감이 대단한데. 절대자라던데 무섭지도 않나 봐.”
천월이 고개를 저었다. 두려움이나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중요한 것은 이거다.
“우리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래?”
“인정합니다. 묵시록은 절대적이라는 거. 하지만 세상은 죽은 자가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산 자가 이끄는 것이지.”
천월은 굉장히 진지했다. 세상을 이끄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다. 이건 천마신교 전체의 의지였다.
“달마의 예언은 이미 수백 년이 넘도록 이 무림을 지배했습니다. 그걸 끊고 싶습니다. 천마신교는 그걸 끊어 버리고 결정되지 않은 베일에 싸인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미래를 만드는 게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 라그나로크를 죽여야 합니다.”
고개를 들어 천월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저 두 눈은 분명 진심이다. 뼛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
그가 말을 잇는다.
“천년이 넘도록 라그나로크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았습니다. 그 의지를 다음 대의 후손에게 물려주었고 그 후손이 다음 후손에게, 그 후손이 또 다음 후손에게, 이제는 한계입니다.”
“…….”
“천마신교는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생사경의 고수가 50명, 신화경의 고수가 20명, 자연경이 3명. 현경, 화경, 초절정, 그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유례없는 최전성기를 맞고 있는 거죠.”
“흥미롭네.”
“예. 저희도 느낍니다. 이제 끝이 도래했다는 것을.”
“끝?”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아온 일념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열쇠가 지금 당신입니다.”
“그래?”
“당신은 분명 라그나로크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이 라그나로크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당신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을 하십시오. 모든 것을 하십시오. 마음이 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
“단?”
“천마는 쉽게 만날 수 없을 겁니다.”
물음표가 지어진다.
“하고 싶은 걸 하라며?”
“그것과 불가항력적인 것은 다릅니다. 천마는 지금 폐관 수련 중이십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깨달음?”
“당신이 오기 전, 개방에서 시체로 탑을 쌓았다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언가 느낀 모양입니다. 그때 이 말을 남기셨죠. 마음이 길을 인도한다, 그리고 폐관에 들어갔습니다.”
“음.”
“그대가 과격하다고는 하지만 경우는 있는 남자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어떻게 아냐면…….”
“자연경이니까?”
“예. 그냥 보입니다. 자세한 성격은 몰라도 짐작할 만한 그런 성격.”
피식 웃자 그가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천마신교에는 총 다섯 개의 문파가 있습니다.”
“백마교…… 천화교…… 등등등, 그거?”
“예. 그 문파들의 교주들은 전부가 신화경의 고수들이죠. 자연경을 앞둔 이들도 있고, 그들과 한 번씩 만나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왜 굳이?”
부교주 천월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솔직히 말하면 난 당신을 모르는 것만큼 천마도 모릅니다. 부교주이긴 해도 천마는 굉장히…… 무거운 분이시거든요. 그런데 제 직감이 지금 외치고 있습니다.”
“무엇을?”
“당신과 천마는…… 싸울 것 같다고.”
“안 싸우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나.”
“글쎄요. 아마 천마를 만나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 말만 남기고 천월은 사라졌다.
허름한 식당에 묘한 침묵이 자리한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우리 스승님이었다.
[생각이 깊어 보이는구나.]“티 많이 납니까?”
[그래. 많이 난다.]턱을 긁적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참 묘하다.
[천외천이라는 조직과 천마신교라는 조직은 같지만 다르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이건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라그나로크의 행방을 그 두 조직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 얻을 정보는 전부 얻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구나.]천외천이 뭘 하든 천마신교가 뭘 하든 난 관심 없다.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니까.
천마신교의 천마라면 뭘 좀 아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아는 것의 종류는 딱 하나다. 라그나로크의 행방.
난 그거만 봤다. 그런데 부교주인 천월이라는 남자의 태도와 이 천마신교의 태도, 그리고 폐관에 들어갔다는 천마까지.
천마를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이 천마신교의 태도와 스탠스를 보면 답이 나온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다.
보자. 우선 라그나로크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어떻게 부활하는지, 부활한다면 어떤 식으로 부활하는지. 이것을 아는 이는 없다.
이 동대륙을 지배하는 두 개의 조직은 묵시록이라는 것을 발판 삼아 라그나로크가 ‘나’를 기점으로 부활한다는 것. 이거 하나만 보고 있는 거다.
천외천은 나를 이용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지켜만 보려 했다.
천마신교는 방관한 게 아니었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거다.
라그나로크의 부활을 원하고, 라그나로크의 죽음을 원하고, 세상의 평화, 즉 태평성대를 위한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결사대. 이 두 개의 조직은 준비되었고 기다릴 뿐이다.
다시, 다시 보자.
“두 조직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저 기다렸다…… 기다렸다…… 음…….”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다리도 꼬았다.
미간이 좁혀진다. 오랜만에 생각에 잠겼다.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기분이다. 정확히는 퍼즐 맞추기.
수없이 나열된 퍼즐이 있다.
지금껏 얻은 정보가 전부 나열되었다. 그리고 저들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정보도 나열되었다.
그게 뭐냐면, 내가 전생에서 죽였던 수많은 하프 블러드들.
천마신교의 목적을 알아낸 순간 이 동대륙에서 나는, 적어도 정보력 면만큼은 그 누구보다 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런 내게 론이 묻는다.
“결국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도련님이 라그나로크를 부활시키는 기점이 된다는 건데…… 사실 도련님이 한 건 거의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난 정말 한 게 없다.
내가 동대륙에서 한 건 태극검제랑 염존을 죽이고 정천맹을 무너뜨리고, 광존을 죽인 뒤 개방을 무너뜨리는 것, 이거 외에는 없다.
그때였다.
스승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스승님이 고개를 돌린다. 나와 눈을 맞춘다.
[너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를 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스승님은 굉장히 진지했다. 당연히 나도 진지했다. 스승님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예를 들면, 그다음은요?”
스승님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그나로크를 만났거나, 혹은 부활시키려는 자를 만났거나.]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러자 심각한 표정이었던 스승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다.
[짐작 가는 게 있는 것이구나.]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저 ‘광기’를 숨기고 있고 ‘거짓말’을 면상 하나 안 바꾸고 하는 그 태도에 의구심을 품었다. 또한 천외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한데도 그는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내 몸을 치료했다. 영약까지 쏟아부었다.
신의 부운영.
아니, 검존의 동생 신의 혁운영.
그는 너무나도 이상한 존재였다. 휴가를 가겠다고? 천외천과 내가 싸울 거 같으니까 다른 곳으로 피신해 있고 싶다고?
그 모든 말은 진심을 가장했지만 절대 진심은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나한텐 그게 보인다. 물론 100% 확신하지는 않았다. 80% 정도 확신했다.
신의에게 고마움을 느낀 건 맞다. 그래서 선물을 줬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뜬금없이 텔레포트 마법진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결정한 거다.
난 그 어느 순간이건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신의에게 선물을 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각을 넓혔다. 신의의 위치가 잡힌다. 그는 여전히 의궁에 있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무엇을?]“스승님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찾을 거라고 한 세 번 정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 기억난다. 분명 그랬지.]“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의 의술은 엉망진창이 된 제 몸을 회복시킬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영약의 기운을 증폭시킨 뒤, 그걸 선천지기로 치환해서 타인의 몸에 이식시켜 줄 수가 있더라고요.”
그 말은.
“예. 스승님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은 겁니다.”
스승님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리고 그건 잠시였다. 대화의 흐름상, 그리고 지금 흘러가는 상황이 말해 준다. 그냥 돌아가는 꼬라지 보니까 매우 높은 확률로.
[그가 라그나로크를 부활시킬 남자다?]“스승님도 이곳에 오면서 저에 대한 소문 들으셨지 않습니까.”
[들었지. 아주 요란하더구나.]웃고 말았다.
“제가 한 행동들 중에 조금 특색이 있는 것은 신의를 만난 것, 그리고 그와 약간의 관계를 맺게 된 것, 그거 말고는 없습니다. 그에게 기묘한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라그나로크는 솔직히 저도 조금 의외입니다.”
[의외다?]“하지만, 라그나로크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분명 신의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거치고는 여유롭구나.]맞다. 스승님의 말대로 나는 여유로웠다. 왜냐면.
“신의는 실패할 테니까요.”
“그냥…… 느껴집니다.”
잠시 침묵하던 스승님이 묻는다.
[무엇이?]“미래가.”
* * *
신의 부운영은 밀실에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신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묻는다.
“살왕 신우가 여화와 동귀어진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신가?”
그러신가? 너무 평온했다. 그 태도에 말을 건 남자, 제갈선의 미간이 구겨졌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작…….”
“내가 죽였나?”
입이 닫힌다.
“내가 죽였냔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당신이 그를 여화에게 보낸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죽였냐고.”
“…….”
“난 그에게 죽으라고 한 적이 없어. 거기다 여화와 싸우라고 한 적도 없지. 난 그저 패력무제 진우에게 정보를 주고 여화를 천외천으로 끌어들여라, 그렇게만 말했어. 이게 내 잘못인가?”
“…….”
“자네도 알다시피 생사경의 고수들부터는 힘을 쓸수록 수명이 줄어들어. 살왕이 살아 돌아왔다면 나는 살왕의 선천지기를 회복시켜 주었겠지.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는가?”
“좋소. 그 일에 대한 것은 그렇다 치고 왜 나를 보자 한 것이오.”
신의가 웃었다.
“자네가 한 가지 일을 해 줬으면 해서.”
“……나를 살왕처럼 휘둘러 볼 생각이시오?”
신의가 어깨를 으쓱한다.
“난 누군가를 휘두르거나 그러지 않는다네. 그저 거래를 할 뿐이지.”
“……거래?”
“오래 살고 싶지 않은가? 보아하니 그대의 수명은…… 길어야 14년 남았군. 힘을 쓰면 쓸수록 더 줄어들겠지. 지금 있는 그 경지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갈 자신이 있으신가?”
없었다. 없었기에 그냥 답하지 않았다. 신의가 웃는다.
“없나 보군. 살왕도 그대와 마찬가지였지. 엄밀히 말하면 살왕은 그대보다 많이 남았었어. 무공의 특성 때문인지 수명이 대략 20년은 남았더군. 그런데 그는 그걸 굉장히 적게 느끼더군.”
제갈선도 마찬가지였다.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천외천의 무인들 중 오래 살고 싶은 무인은 수도 없이 많다.
“자, 보자고. 라그나로크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쳐. 천외천의 모든 이들과 천마신교의 모든 이들, 그리고 서쪽에서 왔다는 그 황제까지. 그들이 라그나로크를 설마 못 죽이겠나? 그럼 그 이후에는? 말 그대로 태평성대가 오는 거지.”
신의가 양팔을 쫙 펼쳐 들었다. 입가에 환한 미소는 덤이었다.
“그래, 태평성대. 미래의 위협이 없는 무인들의 세상이 도래하는 거지. 아주 꿈같은 세상이야. 그런 세상을 직접 보고 싶지 않으신가? 그 세상이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하지 않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