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51)
제 552화
로만은 거절했다. 잭의 손을 뿌리치고 베커만을 따랐다. 그리고 베커만과 함께 이곳 동대륙에서 무려 14년을 지냈다. 경지도 드높였다.
무림서열록의 23위가 바로 로만 스튜어트다.
타노스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로만의 몸에서 점점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분노였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뻔했다.
지금부터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하인케스 베커만과 셀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없는 사이였다. 그것을 네가 모를 리 없겠지.”
당연히 모를 리 없다. 베커만이 과거 무슨 짓을 했는지 로만이 모를 리 없으니까.
아무리 툴칸 제국이 멸망했다고 해도 남아 있는 기록이라는 게 있다. 모르면 나가 죽어야 한다.
로만이 물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어린 셀을 고문했던 베커만은 이제 시체가 되었으니까.
그때의 일은, 이제 명백히 과거가 되었으며 마무리가 끝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것을 넘어서 당장 코앞에 닥친 일에 관해서다.
타노스가 물었다.
“앞으로 어찌할 거지?”
“복수할 거다.”
타노스가 후우, 숨을 터트린다.
“정말 그래야 하나?”
“내 스승을 죽였다.”
“…….”
“제자로서 스승의 복수를 하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로만이 고개를 돌렸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타노스를 노려보았다.
“셀에게 전해라. 이제는 내 차례라고.”
“네 차례?”
“셀은 내 원수다. 드래곤 로드라지? 그년을 비롯한 모든 드래곤들을 죽일 것이다.”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해보기 전엔 모르지.”
로만은 확고했다. 타노스는 그 의지를 읽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건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다.
로만은 복수를 다짐했고 조용히 살아갈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다.
로만은 이제부터 밀로스 제국에 위협이 될 존재가 되었다. 그 위협을 방치하게 되면 더 큰 재앙이 될 것이 확실했다.
로만은 지금 피어오르는 분란의 씨앗이다. 싹을 틔우는 모습이 너무나도 훤히 보인다.
그렇기에, 타노스는 결정했다.
이후 벌어진 행동은, 로만이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것은 거의 빛과도 같았다.
타노스의 검이 뽑혀 나오고, 그 검을 초월자 특유의 혼기가 은은하게 감싸고, 휘둘러진다.
전력, 그 이상이었다.
일순간에 휘둘러지는 그 섬광 앞에서 로만은 눈을 크게 뜨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걱-!
로만의 머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 * *
셀은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에는 흔하디흔한 장식도 거의 없을 정도로 매우 심플했는데, 이건 이 ‘성’에 사는 부부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했다.
적어도 셀이 아는 한 이 성에 사는 이들은 물욕이 거의 없다.
그 둘이 붓을 든다면 세계 최고의 명작이 만들어지고 손을 뻗으면 세상 모든 게 손에 들어온다.
둘은,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그렇기에 장식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없는 게 없었기에.
그곳을 바라보며 셀은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
복도 끝에, 문이 있었다. 열려 있는 문.
그 문으로 들어섰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쌍꺼풀 짙은 두 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이곳은 천공성이다.
셀의 눈앞에 있는 저 남자는 모든 대륙의 지존.
모든 대륙의 황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의 폭군이자 성군.
잭, 밀로스다.
“왔냐.”
셀의 시선이 잭의 손에 들려 있던 물뿌리개로 향했다.
“아 이거? 너도 알잖아. 발렌타인이 꽃 좋아하는 거.”
그래서 물 주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잭을 셀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얽혀 있던 것을 끊어 버리고 왔는데.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질까.
“보스.”
“어. 왜?”
“행복해 보이시네요.”
잭이 빙긋 웃는다.
“당연히 행복하지. 그런데 너는?”
“…….”
“우리 셀이 잘 자라 준 건 정말 고마운데, 옛날보다 더 과묵해졌네. 그건 좀 안타깝긴 해.”
잠시 말을 멈춘 잭이 물뿌리개를 근처 탁자에 내려놓은 뒤 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끝났어?”
뜬금없는 질문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이 둘에게는 아니었다.
셀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 끝났으니까. 베커만을 죽였으니까.
천천히 잭이 다가온다.
잭이 손을 뻗어 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고생했다.”
셀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듣고자 했던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 이럴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그런 걸까.
“정말 고생했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은데, 자리 비켜 줄까?”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천공성.
황제의 거처다. 셀은 ‘이방인’이고.
아무리 ‘밀로스’라는 이름을 쓴다 해도 이방인이다. 잭의 피가 섞이지 않은.
더 나아가 잭을 가질 수 없는 그런 이방인이다.
셀은 애써 웃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셀은 그렇게 방을 나섰다.
다시 긴 복도를 걸어서 바깥으로 향했다.
구름과 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경관이 훤히 보이는 언덕에 벤치가 있었는데, 셀은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좋은 경관이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 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그냥 공허했다.
그런 셀에게 한 명의 꼬마가 다가온다.
“스승님.”
이 천공성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셀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는 단 한 명밖에 없다.
셀이 고개를 돌렸다.
키는 약 160cm.
현재 나이는 14살.
그의 외모는 셀이 처음 잭을 보았을 때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 정도로 닮았다. 아니, 똑같았다.
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그래, 그때가 시작이었다.
삶 자체가 변하던 최초의 순간, 그때의 그 순간을 셀은 절대로 잊지 못한다.
잭은 셀을 가슴으로 품은 자식으로 생각했겠지만 셀은 아니다.
셀은 정말로, 잭을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속에 너무 깊게 품어 버렸기에.
어린 시절 잭의 외모를 똑 닮은 그 아이가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손에 들려 있던 유리잔을 셀에게 건넸다.
어린 시절부터 잭이 과일 주스를, 그중에서도 토마토와 레몬 주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발렌타인은 위스키를 좋아하며 샬롯은 피를 좋아하고 타노스는 고기를 좋아한다.
셀은, 멜론을 올린 블렌디드를 좋아했다.
지금 꼬마가 건넨 잔에 담긴 게 멜론 블렌디드다.
그걸 받아들인 셀은 묘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예. 스승님.”
셀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런 셀을 다니엘은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나이가 분명 14살이었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답지 않게 다니엘은 성숙했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셀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무것도 아니다. 고맙다.”
셀이 고개를 돌린다. 다시 정면을 바라보던 셀은 다니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혹은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했거나.
셀은 조용히 있었다. 다니엘이 옆으로 와서 앉는 것과 똑같이 정면을 바라보는 그 모든 것을 느끼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벤치에 나란히 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의 가장 높은 땅에서 그림으로도 전부 담지 못할 그런 경관을 바라보며 둘은 조용히 있었다.
셀이 입을 열었다.
“왜, 가지 않는 것이냐.”
“가고 싶지 않아서요.”
“…….”
“그냥 있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에.”
의자 등받이에 다니엘이 등을 기댔다.
“이제, 꾸지 않으시는 겁니까?”
꾸지 않는다?
“무엇을?”
“악몽이요.”
“…….”
“매일 악몽에 시달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확답은 어려웠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아직 잠에 들지 않았으니 확인은 못 하겠구나.”
블렌디드를 한 모금 마신 셀이 그대로 벤치 옆에 잔을 내려놓았다.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그럴 리가. 맛은 훌륭했다. 그저, 마음이 조금 공허하구나.”
그 말 그대로였다.
셀은 정말로 마음이 공허했다. 가장 좋아하는 멜론을 먹었음에도 여전했다.
그런 셀에게 다니엘이 말한다.
“원래 잠은 회복의 과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악몽의 근원을 끊어내셨으니 이제 편하게 잠에 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공허했던 마음도 채워지실 거고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전부 셀이 원했던 일이다. 아마 더 이상 악몽은 꾸지 않을 거다. 그건 확실했다.
본능이었고 직감이었지만 때론 그게 정답을 맞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금이 그 경우였을 뿐이다.
다니엘이 말을 이었다.
“저는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
“예. 지금의 이 외모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 외모와 거의 같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 외모를 하고 있을 때 스승님을 연구실에서 구해 주셨지요.”
전부 맞는 말이다. 다니엘은 잭과 비교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이가 안 좋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아버지랑 비교하기엔 아버지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다니엘은 어렸을지언정 오만하지는 않았다.
다니엘이 고개를 돌려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셀과 눈을 맞췄다.
“오늘만큼은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
“저는 아버지를 잘 압니다. 그때의 아버지였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지금의 잭은 과거의 잭과 같다.
하지만 지금의 셀은 과거의 셀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것이 변한다. 셀은 특히 더 많이 변했다.
잭에게 품고 있던 감정이 처음에는 존경이라는 감정이 바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잭을 향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눈치채기 전에. 잭과 함께하던 그 모든 순간들과 잭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가 눈치채기 전에 잭에게 느꼈던 감정들.
그 외, 잭이 해 주던 말과 모든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싶었다.
다시는 어렵겠지만 느끼고 싶었다.
방금, 천공성 내부에서 잭은 말했다. 고생했다고.
가슴은 때때로 이성을 벗어나기도 한다.
그 말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말로 듣고 싶었다. 그런데 크게 채워지지 않았다.
가질 수 없기에.
이제는 다른 이의 것이 되어 버렸기에.
가지려고 노력을 하면 모든 것을 잃기에.
그래서 공허했다.
다니엘은 말했다.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이 싫다고, 그때의 아버지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과연 어떤 말을 하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