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74)
제 575화
신나게 적개산을 뚜드려 패고 있을 때였다.
본능이, 경고를 보내온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느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적개산을 패던 손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팼다.
주변 사람들이 ‘압박감’에 못 이겨 그대로 쓰러진다.
무시하고 팼다.
머지않아 내가 패고 있던 적개산도 그대로 기절했다.
쥐고 있던 그의 멱살을 놓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머리.
그리고, 이게 조금 의외였는데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입던 드레스를 왜 입은 걸까.
내 기억상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거나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닌 것 같더구나.”
턱을 긁적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이가 적건 많건 부모라는 존재는 항상 어렵다.
특히 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어려웠다.
지금처럼.
말없이 가만히 있자 내게 다가온 어머니가, 내 볼을 쓰다듬는다.
“오랜만에 만난 어미인데, 아무 말 하지 않을 생각인 것이냐.”
짧게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니. 그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안부 인사라……. 거의 2년 만에 만나서 듣는 소리여서 그런지 기분이 참 좋구나.”
일단 나는 천공성으로 부모님을 뵈러 간 적이 최근에는 없다.
그나마 있던 게 지금 어머니의 말씀대로 정확히 2년 전이다.
2년 전, 딱 한 번 천공성으로 가서 부모님을 뵈었고 그 이후에는 쭉 아카데미에서만 있었다.
졸업식 때 직접 상을 받긴 했으나 그건 만났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그때의 나는 ‘다니엘 밀로스’가 아니라 ‘메론’이었으니까.
“아버지는요? 함께 오신 겁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걱정돼서, 오신 겁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겠더구나. 들려오는 소식들이 워낙 평범해야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어머니가 잠시 턱짓했다. 그건 자리를 옮기자는 뜻이었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먼 거리를 온 것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있던 주막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는 꽤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쪽으로 온 거다.
어머니가 나무에 등을 기대시고 나는 어머니의 앞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뜬금없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믿는다.”
“……어머니?”
“나뿐만이 아니라 잭도 너를 믿는다. 각오는 단단히 한 것이냐.”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나는 금방 눈치챘다.
“……예. 각오했습니다. 다만.”
“다만?”
“제 결정이 어머니와 아버지께 누를 끼칠 것 같아 조금은 걱정입니다.”
어머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진다.
“너는 끝까지 갈 생각이겠지. 맞느냐.”
“예.”
“끝까지 가려는 이가 걱정을 한다……. 재미있구나. 심지어 그 걱정이 너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걱정이라니.”
고개를 저었다.
“그 말씀은 틀린 것 같습니다.”
“틀리다? 무엇이 틀리다는 것이냐.”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타인입니까.”
그 말에 어머니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타인이다.”
“…….”
“가족이라 해도, 아무리 피가 통했다 해도 타인이다. 내게는 나만의 삶이 있고 잭에게도 잭만의 삶이 있으며 너에게도 너의 삶이 있다.”
잠시 말을 멈춘 어머니가 입가의 미소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왕의 마음가짐이 일반 백성의 마음가짐과 같아서는 아니 된다.”
“…….”
“네가 걸어갈 길은 왕의 길이다. 백성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좋다. 백성이 걷고자 하는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각오와 그들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건, 내가 천공성에서 항상 봐 왔던 어머니의 그것과 같았다.
“그들이 선택하지 못하는 것을 너는 선택해야 한다. 그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너는 해야 한다. 다니엘.”
“예, 어머니.”
“네가 하는 그 걱정이 부모에게 누를 끼칠지에 대한 걱정인지, 아니면 네가 너 스스로 걸어갈 그 길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생겨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막말로,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너보다 더한 짓을 했으니까.”
나는 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밀로스 제국은 평화 위에 세워 올려진 국가가 아니다.
피로 물든 땅에 세워 올려진 국가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 생각을 바로 꿰뚫어 보았다.
나도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걱정거리가 있는 법이다. 내 유일한 걱정은, 내가 할 행동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까 하는, 그런 걱정이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이를 그 누가 믿고 따르겠느냐.”
이건 결정타였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가슴이 아프다.
아카데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교육받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금을 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들으니까 다르다.
“너 스스로가 믿는다면, 망설이지 말거라.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네가 걷는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손을 들어 내 볼을 쓸어내린다.
“너는 너의 삶을 어떻게 살지 이미 결정했다. 나는 어미로서 지켜만 볼 것이다. 너를 믿기에 네가 가려는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다만.”
다만, 이다음이 중요했다.
“잭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부자끼리 알아서 풀거라.”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 ‘아직’ 아버지한테는 안 됩니다.”
“아마 평생 안 될 것이다. 네 아버지 이전에 내 남자니까.”
눈을 끔뻑이고 말았다.
입가에 생긴 미소가 사라지지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제가 아카데미에서 어머니에 대한 것을 배우긴 했었습니다.”
“그래?”
“예. 그런데 제가 교과서로 배운 어머니의 모습과 살면서 봐 온 어머니의 모습이 참, 괴리감이 크다 싶습니다.”
어머니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네가 아는 잭의 모습도 교과서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왜인지 아느냐?”
“왜입니까?”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쟁취하거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쟁취하라는 저 말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건 분명하다.
어머니가 몸을 돌렸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구나.”
어머니의 몸이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텔레포트가 분명하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왕의 자격이라는 것은 뒤가 아니라 앞을 바라볼 때 증명되는 것이다.”
“……항상,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조만간 집에 한번 들르거라.”
그렇게,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홀로 남은 나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랗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 *
아들과의 재회를 끝낸 발렌타인은 정면에 있는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아름답다고 하겠지만 스스로는 조금 불만족스러웠다.
눈동자는 또렷했고 코는 오뚝했으며 턱은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입술은 작았고 머리는 길었으며 흑색으로 찰랑거렸으며 피부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미인의 상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곳 서대륙과 동대륙 전체에서 단순히 외모로 발렌타인과 견줄 수 있는 여인은 한 손으로 꼽기에도 부족할 정도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주름이 생겼나.’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느낌이 그랬다.
‘살이 찐 거 같기도 하고.’
아들 앞에서는 무게를 잡긴 했으나 여자다.
발렌타인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놨다.
테슬란 제국을 건국했을 때 도움을 주었다거나, 건국왕의 동료라거나 그런 건 전부 의미 없다.
밀로스 아카데미의 전신이었던 테슬란 아카데미를 만들고 현 밀로스 아카데미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밀로스 제국의 건국에도 큰 도움을 주긴 했으나 거기까지다.
발렌타인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지위, 명예, 그런 건 의미 없다.
자신만을 바라봐 주고,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생을 이어 가기로 다짐했다.
후회는 없다. 그 남자를 만나고 나서 단 한순간도 후회 비슷한 것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있어서만큼은 항상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곳은 발란티에 공작령이다.
발렌타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넓은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그 남자는 어렸을 때 이 복도를 항상 혼자 걸었다고 했었다. 혼자 걸어서 식당으로 가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간혹, 누나였던 엘리자베스가 반겨 주긴 했으나 당시의 엘리자베스의 처지도 그렇게 좋지는 못했기에 함께 식사를 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발렌타인은 이 복도를 걸으며 항상 생각한다.
어린 시절 그 남자는 이 복도를 어떤 느낌으로 걸었을까.
그 누구도 반겨 주지 않는 그곳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어린 시절의 그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손으로 벽을 쓸어내리며 발렌타인은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 그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항상 저랬다.
부드럽게 웃었다.
밥을 먹을 때도,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잘 때도, 함께 아침을 맞이할 때도 그 모든 순간 저 남자는 저렇게 웃었다.
“왔어? 얼른 앉아. 밥 식겠다.”
올 때까지 수저도 들지 않고 기다린 게 분명했다. 발렌타인은 그의 옆에 앉았다.
남자, 잭 밀로스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발렌타인의 볼에 키스했다.
그제서야 발렌타인은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 * *
남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기절했던 건 확실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맑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닌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전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들이 보인다. 얼떨떨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일시에 기절을 한다고?
조금 시간차가 있었을 뿐 남전도 저들과 같았다. 그저, 등장했던 사람이 ‘여성’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쩌면 남전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 정도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거기까지였다.
그 외에는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메론이 보인다.
메론은 근처에 있던 나무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깊게 생각할 거리라도 있는 걸까.
머지않아 메론이 몸을 돌린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걷던 메론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적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서대륙으로 가시겠습니까?”
“……엿이나 처먹어.”
적의 가득한 적개산의 말에 메론은, 행동으로 답했다.
그리고 그 행동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모두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콰직!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메론이 적개산의 머리를 터트리는 소리다.
남전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이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