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tel life of the returning champion RAW novel - Chapter 87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86화
-별거 안 했는데 호감도 오른 거 보면 조건이 어려운 건 아닐 텐데, 대체 뭐지?
-다른 유저들이랑 디지의 차이가 뭐가 있을까.
-피지컬?
-에이 그런 거였으면 다회차 플레이어들 중에 이미 조건 발견한 사람이 있었어야지.
열심히 토론하는 시청자들을 보면서 스트리밍 채널로 왕삼을 불렀다.
“삼아”
[왜 부르시오? 혹시 짐작가는 이유가 있으시오?]“일일리행은 미모에 눈이 먼 남자들을 싫어하는 거랬잖아.”
[그렇소.]“근데 난 이미 눈이 멀었잖아.”
[음? 설마?]왕삼도 그가 눈치챈 조건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그랬다면 여자 캐릭터로 플레이해 본 유저 중에 누군가는 조건을 만족시켰을 테니까.
‘아름다운 미모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지.’
NPC를 이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저라 해도.
얼굴을 본 이상 본능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경향이 있었을 터다.
즉.
조금은 무례하게 여겨질 정도로 검에 대한 열정이나 호승심을 보여주는 게 조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여튼, 상황을 보니 좀 더 강하게 나가도 될 것 같네.’
“검희의 가르침을 몸에 새겨 더욱 정진하고자 합니다. 부디 기회를.”
“…….”
일곱 자루의 검 중 한 자루가 스르르 일일리행의 손에 쥐여졌다.
“자만과 과욕은 언젠가 화를 부르는 법. 그대를 위해서라도 가르침을 내려야겠군요. 일 합이어요. 동료의 도움을 받아도 좋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야 할 거예요.”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청려 도사님, 부디 도술을.”
디지는 가보보쾌의 주술이 몸에 임하는 걸 느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좌검은 하단세, 우검은 중단세.
어디에서 공격이 날아오든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다.
“본녀는 손속을 너그러이 하지 않을 터이니 바짝 긴장하도록 하여요.”
“알겠습니다.”
그리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일일리행. 동방서토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NPC.
‘할 수 있을까?’
현실이라면 몰라도, 게임이기에 확신할 수 없다.
남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열광하는 게임이건만.
항상 그래왔듯 그에게는 반대였으니까.
‘뭐, 죽이진 않을 테니까. 다치더라도 포션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겠지.’
아, 동양 배경이니까 포션이 아니라 금창약이려나.
챙그랑.
일일리행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느릿하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따라잡기 힘들 정도일 터다.
시스템적으로 엄청난 이속 공속 차이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최소한의 방비는 할 수 있어.’
그러한 자신이 디지에겐 있었다.
챙그랑.
청명한 쇳소리를 들으며,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확연하게 도전자의 입장에 선 건 진짜 오랜만이군. 재밌어.’
확신할 수 없는 모험. 그러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유희.
게임.
언제나 그랬듯, 디지는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게임이 너무나도 좋았다.
물론.
가장 즐거운 게임은 이기는 게임인 법!
챙그랑!
일일리행의 몸이 사라졌다. 그렇게 여겨질 만큼 빠르게 이동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시스템 보정 없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지만.
그는 달랐다.
[스킬: 공명기파(共鳴氣波)]전력으로 진기를 돌리며 일일리행의 몸을 시선의 포커스에서 놓치지 않는다.
체중 이동으로 힘을 가증할 시간은 없으니, 그저 팔의 움직임만으로 쏘아지는 검격을 막는다.
‘부족한 힘은 진기로 충당하면 돼.’
[스킬: 강검(强劍)]빛의 실이 팔에서 손으로, 손에서 검봉으로 이어지며 검날이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곤.
콰앙!
사람을 해하는 무기라 하나, 얇디얇은 철판에 불과한 검.
검과 검이 부딪힌 거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파열음이 울려 퍼지고.
디지의 몸이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쿨럭쿨럭쿨럭!”
강대한 충격이 봉랑의 아바타가 그의 의지를 벗어나 마구 기침을 토해냈다.
-방금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실 분 구합니다~
-너무 빨라서 뭐가 뭔지 보지도 못했네……
-난 딱 검끼리 부딪치는 것까지는 봤음.
일일리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문득, 그녀가 자신의 옷자락을 잡았다.
조금이지만, 분명히 베어져 있는 옷자락을.
디지가 천천히 몸을 일이키는 걸 응시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일 합을 삼 합으로 만들었군요.”
나직하고 차분하나, 분명 옅은 당황이 배어든 목소리.
디지가 씨익 웃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좌검으로 두 번, 우검으로 한 번.
그는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이 담긴 일검을 쌍검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대처로 극복해 냈다.
“이 정도면 합격입니까?”
“…….”
일일리행이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자 살짝 불안해졌다.
‘설마 빡쳤나?’
본디 막거나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반격까지 성공시켰다.
동방십천(東方十天)의 일좌이자 칠인검희(七刃劍姬)라는 무명을 지닌, 고고함 그 자체인 자의 기휘를 하찮은 낭인이 범한 것이다.
마땅히 분노할 만도 하단 뜻.
다행히 일일리행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무명이 있나요?”
꽃이 피었다.
그리 느껴지도록 아름다운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와, 진짜 이쁘다.
-웃는 거 보니까 심장이 저릿저릿함.
-ㄹㅇ 섬찟함이 느껴질 정도로 이쁘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시청자 반응으로 대충 일일리행의 심기를 짐작하곤 물음에 답했다.
“절 아는 이들은 암안휘검이라 부르곤 합니다.”
“어두운 눈, 그러나 빛나는 검…… 실로 그대에게 어울리는 무명이어요.”
[페널티를 가진 캐릭터로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을 일궜음을 증명했습니다.] [시스템의 보정 없이 일일리행의 일격을 받아내는 걸 넘어, 반격을 가했습니다.] [모든 조건의 초과 만족을 확인. 숨겨진 루트가 개방됩니다.]“소년이여.”
일일리행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대는 씨앗이로군요.”
-또 루트 개방?! 이러면 신규 루트의 히든 루트인 건가?
-아니ㅋㅋㅋㅋㅋㅋㅋ 방장아 전생에 고고학자였어? 왤캐 뭘 자꾸 찾아내냐ㅋㅋㅋㅋㅋ
-큰손 갈취자ㅋㅋㅋㅋㅋㅋㅋㅋ
디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밝아졌기 때문.
자동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며 컷신이 재생되고 있었다.
[동방십천(東方十天) 일일리행(一日利行).] [하루에 한 번 이로움을 행하니, 이는 나의 협(俠)이로다.]중국풍의 조용한 실내, 일일리행이 일곱 검날을 두른 채 명상을 취하고 있었다.
내레이션처럼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부친의 유언을 이름으로 삼으며 평생을 협과 의를 위해 헌신하겠다 다짐했건만…….”
일일리행이 침중한 안색으로 읊조렸다.
“본녀의 힘으론 역부족이로구나.”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이니. 흑막의 암약을, 막아야 한다.”
다음 장면은 일일리행이 한 무리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똑같은 검은 옷을 입고 표식에 새겨진 역오망성 문양이 그려진 두건을 쓰고 있었다.
“대충 우리의 복수 대상이 동방 전체에 암약하는 흑막 같은 포지션이었나 보네. 맞아, 삼아?”
“맞소이다, 딱빵 선배. 이후의 재미를 위해서 자세히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꽤나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기다릴 거요.”
적을 모두 격살한 일일리행이 지친 표정을 짓고.
시스템 메시지가 상황을 해설했다.
[동방 천하에 적수(敵手)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라 일컬어지는 칠인검희(七刃劍姬)라 하나,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 [일일리행은 여력의 부족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다.]“찾아야 하여요. 악의에 대항할 방패를. 길러야 한다. 민초를 구원할 새로운 협의지사를.
장면 재생이 끝나고, 현재를 담기 시작하는 시나리오 컷신.
쌍검을 뽑아 드는 봉랑의, 즉, 디지의 행동을 보는 일일리행의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본녀의 관심을 끌려는 걸까요? 이미 눈이 먼 소년이여, 그대는 과욕에 눈이 먼 건가요, 아니면 다른 것에 홀린 건가요.’
[그러나, 봉랑의 눈엔 세인들이 갖추지 못한 일심(一心)이 타오르고 있었으니!]“복수에 눈이 멀어 과욕을 범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검희의 일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할 뿐.”
[강자 앞에 꺾이지 않는 호승심(好勝心). 굴하지 않고 검을 추구하는 향상심(向上心).]“……본녀 검이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하다고 하였나요?”
[봉랑의 열망(熱望)은, 일일리행의 마음에 닿는 데 성공했다.]난세의 혼탁함은 정결한 마음마저도 흔드는 법.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일심(一心)은.
“눈이 멀었다 하나, 그대는 검수로군요.”
일일리행이 타인을 평가하는 첫 번째 자질이었다.
‘어쩌면…… 만약, 무에 대한 자질마저도 갖추고 있다면.’
[저 소년이야말로 간절히 소원하며 찾아온 영웅의 씨앗일진저!]검과 검들이 교차한다.
봉랑의 좌검이 일일리행이 휘두르는 검의 밑동을 가격하여 무게 중심을 흐트러뜨리고.
이어지는 우검이 가득 실린 진기를 동력 삼아 일일리행의 검로를 틀어 막는다.
콰앙!
물론, 담긴 거력의 차이는 거인과 소인과도 같았으니, 날아가지 않고 배길 수는 없다.
그러나.
봉랑의 몸이 뒤로 튕겨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베어진 좌검은 틀림없이 일일리행의 옷자락에 갈라낸다.
[대지의 토룡(土龍)이 천외천(天外天)을 노니는 신룡(神龍)에 닿았으니, 재능의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랴!]“저 소년이야말로…… 본녀가 그토록 찾아 열망하던 영웅의 씨앗. 본녀의…… 제잣감.”
[일수(一手)로 막을 수 없다면, 겹겹이 손을 쌓아 올려줄 이가 필요한 법!] [개화(開花)하라, 영웅의 씨앗이여!] [구원(救援)하라, 동방천하를!]“눈먼 소년이여, 선과 협을 위해 살리라 맹세하여요. 그리한다면, 그대와 일행들에게 성결지의 절기를 전수하고 복수의 대상 또한 알려드리겠어요.”
“기꺼이, 맹세하겠습니다!”
“검희의 조건이 없더라도 우리는 이미 의협을 곁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일일리행이 다시 한번 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군요.”
-어? 잠깐……
-이거 흐름이……
“암안휘검 봉랑이라 하였나요? 그대를 본녀의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미천한 몸을 귀히 여겨 주시니, 스승을 받들어 효와 충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순간.
채팅창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제자?
-일일이 누나의 제자아???
-개부러워 개부러워 개부러워 개부러워 개부러워 개부러워 개부러워
-제자면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그냥 막 다 할 거 아니야. 일일이 누나랑 디지가 그렇고 그런……아우부ㄹㅓ어주벌!!
“지금까지 일일리행의 제자가 되었다는 유저는 나온 적이 없는데…… 히든 루트의 정체가 이것이었나 보구려.”
“그럼 바로 성결지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거요.”
“이야, 디지 덕분에 귀찮은 과정을 싹 다 스킵한 거네.”
컷신 속 일행들의 아바타가 일일리행의 뒤를 따라 성결지로 진입하는 순간.
시점이 다시 1인칭으로 돌아오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대들이여, 성결지에 온 걸 환영하여요.”
[칼날(刃)은 더없이 날카로워야 하는 법. 그것이 협(俠)을 수호하는 자의 것이라면 더더욱!] [성결지 출입 권한을 얻으셨습니다.] [일일리행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결지에서 악에 대항할 힘을 쌓고 복수를 위한 역량을 기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