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ince of the Ossuary RAW novel - chapter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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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바람 (16)
독립기념일의 시가지 행진은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독립대대의 순번은 JROTC와 러시아 공수군 사이에 끼어있었다. 시민들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는데, 겨울을 포함한 전쟁영웅들이 참가하기도 했거니와, 미국에선 애당초 이 정도 규모의 열병식을 볼 기회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역병 이전까지의 미군은 열병식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우리가 최강인 걸 온 세상이 다 아는 마당에 뭘 더 과시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하물며 오늘은 D.C와 덴버 양쪽에서 시차를 두고 각각의 열병식이 행해진다. D.C에서야 규모를 떠나 매년 치르던 행사였지만, 덴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척이나 이례적인 경우. 이는 전적으로 공수군과 독립대대의 편의를 봐준 결과다. 지역사회의 관심이 비등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열렬한 반응으로 미루어, 적어도 콜로라도에서만큼은 중국 진공에 대한 반대여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듯 했다.
한편, 난민 출신이 다수인 독립대대원들은 다른 의미에서 행사의 분위기에 당황했다.
“상상하던 거랑 많이 다르군요.”
차례를 기다리는 막간에 넷 워리어 단말로 생중계를 본 리아이링의 말이었다. 꽤나 떨떠름한 목소리였다. 맥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중대들도 비슷했으되, 그녀가 속한 브라보 중대는 이번 행사에 대하여 강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행진 연습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단체로 망신을 시키려고 일부러 연습을 안 시키는 게 아니냐는 불만마저 제기되었을 정도.
그러나 미군의 행진은 중국식의 각 잡힌 사열과 거리가 멀었다.
엑셀에 탄 겨울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걱정할 것 없다고. 대충 발만 맞춰서 걸으면 돼요.”
심지어 발이 안 맞아도 괜찮다. 안심시키려고 몇 번이나 반복했던 말이었다. 역병 확산 이전의 기록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턱을 고정시키고자 옷깃 안쪽에 바늘을 꽂는 나라에서 온 장병들은 도무지 마음을 놓질 못했다. 이번엔 뭔가 다르지 않겠느냐는 것.
이는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처지를 불안정하게 느낀다는 방증이었다.
여기엔 물론 크레이머가 미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중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
멀지 않은 곳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바라보면, 이제 곧 순서가 돌아오는 고등학교 취주악단 및 응원단원들이었다. 이쪽을 보며 소리를 지르거나 손을 흔들고 있다. 겨울이 간단한 경례를 보내자 한층 더 높아진 환호성이 돌아왔다. 리아이링은 옆에서 더욱 기운이 없어졌다. 말이 열병식이지, 실제론 군이 참가하는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응원단과 취주악단이 행진곡을 연주하며 나가고, 그 뒤를 JROTC. 즉 이 지역의 청소년 학군단이 뒤따랐다. 이제 독립대대가 나갈 차례다. 겨울이 고삐를 틀어 대대의 전면으로 나아갔다.
“알죠? 각 중대, 알아서 따라와요.”
무전으로 내리는 명령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횡대로 늘어선 기병 한 줄이 깃발을 들고 겨울을 뒤따랐다.
“이러고 있으려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에일’ 알레한드로가 하는 말. 올레마를 거점으로 삼아 기병대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때맞춰 엑셀이 푸르륵 거렸다. 겨울은 갈기를 쓰다듬으며 시선을 정면에 두고 답했다.
“힘들 때였죠. 용케 여기까지 왔다 싶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입니다. 유머감각을 빼면 완벽한 상관을 만나기도 했고요.”
“내 유머감각이 뭐가 어때서요?”
“정말로 몰라서 물으십니까?”
“모르겠는데요.”
겨울이 시침을 뚝 떼자 에일이 혼잣말로 궁시렁거렸다. 뒤끝이 무척 긴 남자였다.
나아가는 길의 좌우에서 크고 작은 성조기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겨울은 뒤따라오는 병사들의 분위기가 궁금해졌다. 알파중대는 시민사회의 높은 호의를 경험한 적이 많지만, 그 외의 다른 중대들은 오늘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리드빌 주민들도 독립대대를 좋아하긴 했으나, 거긴 애초에 거주인구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지라 병사들의 인식을 바꿀 만한 영향은 기대할 수 없었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좋겠는데.’
기왕 하는 퍼레이드라면 병사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기를 바란다. 지휘관으로서 겨울이 품은 생각이었다. 중국계나 일본계 장병들에겐 일종의 방어적인 공격성이 존재했으니까. 부러움과 경계심, 그리고 열등감과 피해의식. 대부분은 출신성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데에, 시민들의 호의와 직접 대면하는 오늘이 큰 도움이 되진 않을까.
독립대대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지 못했다.
반대로 독립대대가 그것을 이룬다면, 장차 난민구역에서도 가능하리라 기대해볼 법 하다.
앞서 가던 취주악대의 연주곡이 바뀌었다. 러시아의 곡조였다. 후속하는 퍼레이드 카 위에서 러시아 군복을 입은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사과나무 꽃과 배꽃이 피고,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
말이 군가지 기본적으로는 민요로부터 따온 가락으로, 2차 대전기에 만들어진 가사는 카츄샤라는 여성이 전장으로 떠난 연인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로 번갈아 부르는 노래에 시민들의 반응이 약간 잦아들었다. 조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마저 엿보였다. 하기야 미국 도시 한복판에서 러시아군이 행진하는 것부터가 일부 보수적인 시민들에겐 초현실적인 일일 것인데, 군가마저 러시아의 것이라 더더욱 당황할 법 하다.
그래도 역병에 맞서 제대로 싸워주는 소수의 동맹군 가운데 하나인지라, 시민들은 살짝 식은 분위기 속에서도 열심히 성조기를 흔들어 환영해주었다. 과거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광경. 인류 멸종의 위기가 만들어낸 동료의식이었다.
겨울은 낙선한 민주당 대선주자의 공약을 떠올렸다.
인류 합중국.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긴 했으나, 이상적인 만큼 긍정적인 미래의 청사진이기도 했다.
이미 지나간 분기를 새롭게 곱씹는 것은, 마치 바깥세상의 지난날을 상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구성된 과거를 거듭 겪어온 겨울이 생각하기로, 저 바깥이 그 모양 그 꼴로 전락하기까지, 사람들이 걸어온 길은 결코 외길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어떤 임계점을 지나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리라는 짐작이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겨울은 여기서 쓴웃음을 머금었다.
‘앤의 표현이 정확하단 말이지.’
자신의 소망은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다.
퍼레이드는 도시 중심부의 마일 하이 스타디움(Mile high stadium)에 입성하면서 끝났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손을 흔들며 퇴장.
그 뒤로는 넓은 주차장에서 반나절에 걸쳐 시민들에게 각종 기갑차량과 장비들을 공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공수장갑차 및 전차들을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였다. 일상복에도 생존주의 컨셉의 위장 패턴이 유행하는 시대인지라, 평범한 시민들 중에서도 새로운 무기체계를 궁금해 하는 이가 많았다.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았다.
“Sir, Sir!”
군복을 입은 여덟 살짜리 아이가 유라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작은 해병님?”
웃으며 눈높이를 맞추는 유라. 그녀에게 자그마한 손으로 경례한 어린 해병은 곧바로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호랑이 가죽 망토는 어디다 두셨어요?”
공보처에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에게 망토 착용을 권고했다. 그러나 강요하진 않았다. 덴버가 해발 1마일의 도시여도 여름의 낮은 덥고 습하기로 유명하다.
그래도 끈질기게 권하긴 한지라, 유라는 이제 망토를 보기만 해도 진저리를 친다.
“이렇게 더운 날 망토를 두르고 다닐 순 없잖아요? 나도 사람인데.”
유라가 애써 부드럽게 하는 말을 듣고, 호랑이 여전사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더위를 탄다는 사실에 실망한 아이가 이번엔 진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대위님, 대위님!”
진석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불길함을 느낀 눈치였다.
“뭐지?”
“대위님의 별명인 ‘빠쿙’은 무슨 뜻인가요?”
“…….”
정확하게는 빠쿙이 아니라 빡형이다. 빡친 형님을 줄인 것으로, 병사들끼리 대화할 때 나오곤 하는 별명이었다. 당연히 진석이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본인은 이걸 빡친석보다 더 싫어했다. 겨울은 어린 소년이 이 별명을 어찌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진석은 소리 죽여 웃는 유라를 노려보곤, 아이에게 순화된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건 한국어로 매우 엄격한 성격의 중대장이란 뜻이다.”
“아하, 그렇구나.”
끄덕인 아이가 보다 강력한 공격을 꽂아 넣었다.
“저는요, 빠쿙이 Fuck you랑 발음이 비슷해서 뭔가 관련이 있는 줄 알았어요.”
“지미! 그런 말은 쓰면 안 돼!”
같이 온 어머니가 황급히 아들을 나무랐다.
“대위님께 사과드리렴. 어서!”
아이는 순순히 사과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나쁜 뜻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그거 땜에 대위님을 캡틴 Fuck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한테도 그러지 말라고 할게요.”
“…….”
사과는 사과인데 무척 찜찜하고 괴로워지는 사과였다. 진석의 얼굴이 침묵 속에 벌개졌고, 어쩔 줄 몰라하던 어머니가 아이 대신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겨울을 응시했다. 눈이 기대감으로 차있었다. 케이크 위의 딸기를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성격으로 보였다.
“중령님, 중령님!”
“응?”
“제가 그 칼을 만져 봐도 될까요?”
다행히 정상적인 요청이었다. 겨울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장검을 풀어 건네주며 당부했다.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완전히 뽑으면 안 돼.”
열렬히 끄덕이고 칼을 받은 어린 소년은, 그 무게에 휘청이며 놀라워했다. 날은 티타늄이어도 심은 텅스텐 합금이다. 겨울이 얼른 붙잡아 중심을 회복시켜주었다. 칼이 칼집에서 반 뼘쯤 빠져나왔다. 새까만 칼집과 칼날의 대조가 선명했다. 겨울은 아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단단히 포개어 안전을 확보했다. 아이는 검의 반사광을 보고 입을 벌렸다.
“와! 이거 엄청 무거워요!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휘두르실 수가 있어요?”
“너도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을 거야.”
이에 아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저는 커서 아빠나 중령님처럼 될 거예요.”
“그러니?”
“네. 그래서 수많은 변종들을 찢고 죽일 거예요!”
“…….”
“근데 제가 어른이 되기 전에 중령님께서 다 죽여 버리실까봐 걱정이 많이 돼요. 제발 제 몫은 남겨주세요.”
겨울이 차마 대답은 못하고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아이 어머니는 이마를 감싸며 탄식했다. 오, 지미…….
아이가 추가로 바란 것은 겨울의 사인, 그리고 겨울과 함께 엑셀을 타보는 것이었다. 안장 위에서 높아진 시야를 즐거워하던 아이가 등 뒤의 겨울에게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중령님은 왜 해병이 되지 않으셨어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
“그럼 이제라도 해병이 되는 건 어떠세요? 우리 아빠가 진짜 남자는 해병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리고?”
“한 중령님이 해병대로 오셨다면 지금보다 세 배는 더 강해졌을 거라고도 하셨어요.”
지금보다 세 배 더 강한 한겨울이라. 변종들 입장에선 끔찍할 이야기였다.
아이의 죽은 아버지는 자신이 해병이라는 사실에 깊은 자부심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미와 지미의 어머니를 포함한 전몰장병의 유가족들은, 일종의 우대조치로서 겨울을 비롯한 전쟁영웅들을 먼저 만나볼 기회를 누렸다.
잠시 후 아이를 돌려주며, 겨울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부인. 지미는 아버지만큼 훌륭한 어른이 될 겁니다.”
어머니는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서는, 조용히 끄덕이고 아이를 챙겨 돌아섰다. 지미는 겨울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뒤를 돌아보며 활발하게 손을 흔들었다.
다른 유가족들을 상대하는 동안, 겨울은 머릿속엔 때때로 지미가 내비쳤던 순수한 증오가 맴돌았다. 변종들이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동기가 오직 본능뿐이기에, 역병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 또한 원초적인 영역에 머물렀다. 어떤 이성적인 사고나 타산적인 의도, 혹은 사회적 갈등과 이해관계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즉 원초적인 증오는 이 세계의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의 한 갈래였다. 인류 합중국을 포함하여 겨울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든 미래의 가능성들은, 그 기저에서 어쩔 수 없이 위기와 증오에 의지하는 면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이제 와서 처음 하는 생각이 아닌데도, 이 시점의 겨울은 못내 그 사실이 신경 쓰였다.
바깥세상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같은 증오가 있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