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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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소탕과 야전식당 (3)
도미닉의 가슴 속에 작은 불씨가 당겨졌다.
‘이건 자존심 문제지!’
사람들은 영양사가 언제 가장 서러운지 알까?
온갖 것을 다 고려해 식단을 짜야 할 때?
여사님들이 지시를 따라주지 않고 텃세를 부릴 때?
한정된 예산에 참기름 한 방울도 벌벌 떨면서 써야 할 때?
아니다.
그 고생을 해서 만든 한 끼 식단이, ‘옆에 학교는 랍스터 나온다는데 우리는 왜 만날 풀떼기 밖에 없어요?’ 하는 악의 없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다.
초짜 영양사 때는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손품을 덜 팔았고 발품을 덜 팔아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식단을 차려내지 못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망할 놈의 이사장!’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학교 이사장이 식자재 납품 업체에게 뒤로 봉투를 받고 있었다는, 흔하다면 흔한 결말이었다.
어쨌든 그 학교에 근무를 하는 동안 투명한 예산 집행을 하던 옆 학교와 얼마나 비교를 당했는지 모른다.
“무조건 화려하게 간다! 부드러운 밀 빵에 고기 스튜, 신선한 과일과 샐러드!”
“병사 식사에 배정된 예산은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안의 말에 푸시식, 타오르던 열정이 꺼져 버린 도미닉이었다.
“아… 예산…”
21세기 대한민국이나 여신력 532년 베로나 제국이나 그 놈의 예산이 문제다.
마법도 정령도 신도 존재하는 세계에서 고작 예산이 발목을 잡다니, 오호통재라.
“병력을 운용하는데 있어 예산의 구애를 받지 않는 곳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병사들 먹일 건데 그렇게 짜게 주실까요, 어디?”
“병사들 식사비까지 아까워하는 몇몇 영주들과는 다른 분이시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할 수 있을 만큼 넉넉히 주실 분도 아니시다. 어디까지나 상식선에서 책정 될 거야.”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상식선이라면…?”
도미닉이 마른 침을 삼켰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저 ‘상식선’이라는 말이 참 무서울 때가 있곤 했다.
[너한텐 이게 상식이냐? 응? 상식이야?]도미닉도 전생에 이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사람들마다, 위치에 따라 그놈의 ‘상식선’은 참 많이 달라지곤 했다.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평소 병사들의 식사와 크게 차이는 나지 않을 듯 한데, 모르겠군.”
“안되겠어요. 일단 물어보고 올게요.”
도미닉이 급히 몸을 돌려 재정관의 집무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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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진짜 이것 뿐…?”
“우리 영지는 그래도 책정이 꽤 많이 되는 편이니 너무 그러지 말게나.”
재정관 밑의 관리가 시무룩해진 도미닉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저번 소탕 작전 때에 비하면 무려 이 할이나 오른 것이오.”
“그게 정말이에요?”
“물론. 델트 자작가의 예산과 얼추 비슷하게 맞추라는 지시가 있었거든.”
관리의 말에 도미닉의 귀가 움찔 했다.
“델트 자작가요? 갑자기 옆 동네 영주님 이름이 왜 나옵니까?”
“응? …아, 그렇지! 에버그린은 신생 마을이라 아직 영주성에 병사를 보내지 않지? 그렇다면 그 때 소문을 듣지 못했겠구먼.”
관리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델트 자작가는 남부를 넘어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옥토 중의 옥토라는 건 알지?”
“예. 흉년이 들어도 영지민들이 배곯을 걱정을 하지 않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 그런데 델트 자작님도 머리 아픈 게 하나 있지. 그게 뭔 줄 아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배가 불러 칼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땅이라고…”
“맞았어! 기사의 실력도 약하고, 병력도 많지 않지. 여차하면 용병을 고용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으니까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 하여튼 참 특이해. 하지만 델트 자작님 입장에선 이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나 봐.”
“이웃 영지들과 연합 군사 작전을 할 때는 더더욱 자존심이 상했겠지요. 병사들의 수준이 곧바로 비교 되니까요.”
“바로 그거야!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아. 저번 몬스터 소탕 작전 때 희한한 걸로 기세를 잡으셨거든.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공적이었고.”
“식사였군요?”
“바로 맞췄네. 허허.”
이제야 흩어져있던 퍼즐이 맞춰졌다.
병사들의 만족도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겠다는 백작.
다른 영지의 식사와 서로 비교 하며 점수를 매기는 병사들.
약한 군사력을 다른 것으로 만회해보려는 이웃 영주.
‘라이벌로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아서 기분이 나쁘다, 그거구나, 지금?’
싱클레어 백작가는 대대로 무가였지만 현재의 영주는 검을 잡는 기사가 아니었다.
훌륭한 문관으로 인정받는 좋은 영주이기는 하나 속으론 병사와 관련 된 것들을 전대 백작 수준에서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강박적일만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영지들이 모여 함께 실시하는 몬스터 소탕 작전은 잘 관리된 무가의 병력을 선보이는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그런데 엄한 놈이 무력도 아니고 고작해야 먹을 걸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면… 화나지, 음. 그럴 만 해.’
예산을 딱 델트 자작의 병사들만큼 맞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 분명했다.
‘같은 돈을 들였는데 우린 더 잘 먹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네. 쯧. 처음부터 그러면 그렇다고 얘기를 하지. 또 직접 말하기엔 부끄러웠나?’
중구난방이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역시 일을 하기 전엔 의뢰인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뭘 해야 하는지도 말이에요.”
“쉽지는 않을 걸세. 기본적으로 델트 영지는 식재료 값도 싸거든.”
“네. 조언 감사합니다.”
“뭘, 이런 것 가지고. 그런데 혹시 자네 리조트에 겨울 즈음 남는 호실 하나 없겠나? 내 처가 그 때 즈음 몸을 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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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식단을 짜기 위해 종이를 펼친 도미닉.
하지만 몇 시간 째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산은 같지만 재료 수급은 저 쪽이 우위야.’
특이한 조리법으로 변주를 주고 싶어도 여의치 못했다.
‘이 곳에서 잘 쓰지 않는 향신료나 식자재는 그만큼 값이 비싸니까 안 돼. 특이한 조리법을 쓰자니 시간이 문제라 야전에선 써먹기 어렵겠고.’
해산물을 써 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운송이 문제였으니 이것도 기각.
아예 건면이나 훈제 고기처럼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식자재를 가져 가자니 출병 전까지 준비가 어려웠다.
“이백 명이라던데.”
“네.”
“나는 이번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군. 차출 명령이 떨어졌어.”
“차출이요?”
“이번 작전을 지휘하게 되었거든.”
“누가요? 기사님이요?”
도미닉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 눈빛은 뭐지? 내가 지휘를 한다는 게 이상한 일인가?”
“만날 제 옆에서 빈둥대시기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그런 기사님인 줄 알았거든요. 실은 영주님이 기사님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 싶었다니까요?”
“…그런 말은 굳이 입 밖으로 뱉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솔직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무엇이 말이지?”
“그… 지휘관이면 앞에 나가서 막 싸우고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해주는 것인가?”
“아니, 실력 막 들통나고 그러면 부끄럽잖아요. 병사들 앞에서.”
“…그대가 몰라서 그런데 내가 오러를 다루는 경지가…”
“여튼, 각자 자리에서 수고하십시다. 될 수 있으면 앞에 나서지 마시고요. 몸 사리세요. 쪽팔림은 한 번이지만 상처는 평생 갑니다.”
“이 봐.”
“그럼 저는 식사 계획을 마저 짜 볼게요. 출정식 때 봐요!”
일개 촌장이 기사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것도 이상했지만,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생각한 이안은 작게 한숨을 한 번 쉬곤 손님방을 나섰다.
“흐음… 어쩐다…”
이안이 나간 뒤로도 손님방은 한참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 고민이 이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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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발주를 하긴 했는데요. 정말 이것 가지고 충분하시겠어요?”
다음 날, 도미닉은 벌겋게 핏줄 터진 눈을 하곤 곧장 안톤 상회를 찾아갔다.
“왜? 이백 명이 훈련 기간 동안 먹을 양으론 충분하지 않아? 넉넉히 계산한 건데.”
“양으로 보면 그렇긴 한데요.”
안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목소리를 낮췄다.
“저희 할아버지가 인맥이 넓으시잖아요. 그래서 들은 건데, 이번에 델트 자작가의 병사들보다 무조건 잘 입히고 잘 먹여야 한다고 그러던데…”
“맞아. 소식 빠르시네?”
“그런데 이걸로 되시겠어요? 혹시 돈이 모자라서 향신료 같은 걸 못 사시는 거면 제가 도움 받은 것도 있고 하니까…”
“그만. 만약 그렇게 해서 만든 식단이면 영주님이 델트 자작 앞에서 당당하시겠어? 창피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이렇게 정직하게 경쟁하면 그쪽엔 절대 못 이겨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아, 아는 대장장이 있지? 목수도.”
“대장장이랑 목수요? 물론이죠. 아, 그릇 같은 것도 주문 넣으셔야 되죠?”
“응. 솜씨 좋은 데로 소개 좀 시켜 줘. 아니다, 만들기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꼼꼼하기만 하면 되겠어. 대신 주문을 좀 넣어줄 수 있지?”
“그럴 게요. 냄비? 칼? 아니면 그릇? 뭐가 필요하세요?”
“바트.”
“…네?”
“국솥도 필요하지. 이왕이면 회전 되는 걸로. 잔반처리대도 있어야 하고 대형카트도 있으면 좋은데.”
“그게 뭐예요?”
“뭐긴 뭐야. 대량 급식할 때 필요한 것들이지. 스테인리스강이 없는 건 아쉽지만 디펜스 마법을 걸면 몇 시간 정도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이래서 아는 마법사 하나 쯤 있는 게 좋다니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도미닉이었다.
전기도 가스도 없지만 마법 도구를 사용하면 불편해도 어느 정도는 보강이 가능할 것이다.
‘딸기 쇼트케이크 잔뜩 만들어주고 필요한 만큼 얻어와야지.’
다행히 도미닉이 아는 유일한 마법사인 페롯은 홀케이크 몇 개에 신기한 마도구를 척척 건네주는 교환비 좋은 이였다.
‘완전히 소유권을 넘겨주진 않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지. 그럼 이제 도구 준비도 대충 끝난 건가?’
일회성이면 몰라도 이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하루 세 끼, 열흘을 넘게 먹여야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주방 일꾼들과 병사 몇 명을 지원해준다고는 해도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몸으로 부딪힐 수는 없었다.
“아, 제일 중요한 걸 잊어버릴 뻔 했네.”
도미닉이 종이 하나를 꺼냈다.
종이에는 안톤이 처음 보는 형태의 그릇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예요?”
“그거? 챠핑 디쉬. 알콜 램프도 취급하지?”
“촌장님. 조리장 맡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지.”
“그런데 왜 알콜 램프가 필요해요? 그거 되게 조그만 거 말하시는 거 맞죠?”
“응. 그거 맞아.”
“화력 되게 약할 텐데요? 화구 대신 쓰기엔 절대 무리에요.”
“아, 글쎄 구할 수 있지?”
“구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럼 됐어. 난 그럼 준비하느라 바빠서 간다. 착오 없이 운송 해 줘.”
“…네. 살펴가세요!”
이제 일꾼들을 가르쳐야 할 시간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맞추려면 교육은 필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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