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95
수도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도미닉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파티 준비는 다른 이들에게 맡겨 놓고 수도 이곳 저곳을 쏘다니느라 저택에서는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테오. 도미닉은 오늘도 아침부터 외출했대?”
“그렇다더군. 카림의 소개로 만나 볼 이들이 많다던데, 허허. 이거, 수도의 쓸만한 인재들을 죄다 스카우트 할 모양이야.”
“차라리 잘됐지. 여기 있어봐야 크게 쓰이지도 못할 이들이라면 차라리 거처를 옮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안 그래?”
“그래도 고향을 등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게야.”
“뿌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테오, 뿌리를 말라죽이려는 땅을 고집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 알잖아?”
아침부터 거하게 한 상 차려놓고 식사를 하는 노영주와 드워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고 자란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기도 하지.”
“그래서 숨긴 거야?”
“음?”
“품 안에 감춰둔 그 목걸이 말이야.”
포크를 들어 노영주의 가슴팍을 가리키는 스톤해머의 가벼운 행동에 잠시 멈칫한 노영주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 알았나?”
“테오, 혹시 노망 났어?”
스톤해머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 정도 되는 드워프가 설마 직접 세공한 마석의 기운도 잊어버렸을까봐?”
“하하하! 이런, 맞아. 가끔 자네가 드워프란 사실을 잊어버리곤 하는구만.”
노영주가 품에서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안이 잃어버렸던 바로 그 마도구였다.
“쯧쯧-. 설마했는데 역시 그런 거야?”
“미안하네. 자네한테는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어.”
“인간들이란.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대체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사는 거야? 알 수가 없어, 알 수가.”
“비밀로 해 줄텐가?”
“오크를 피해서 도망을 간 곳에 드래곤이 있는 꼴이라니. 내 팔자야. 친우를 잘못 사귀었어. 앗!”
스톤해머가 툴툴거리며 두툼한 베이컨을 한 입에 삼키다가 문득 생각이 하나 났는지 포크질을 멈추었다.
“테오! 그럼 남부로 오라고 했던 것도 처음부터 계획한 거였어?”
“아, 오해하지 마. 거기까지 생각했던 것은 절대 아니니까. 쉴 곳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자네가 왜 수도를 떠나려고 했는지는 몰랐다고, 난. 그러니 이거, 내가 슬쩍 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겠나?”
“난 인간들의 분쟁 같은 것에는 개입하고 싶지 않아. 그런 건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그러니 하나만 대답해준다면 조용히 할게.”
“무엇인가?”
“곱상한 기사, 혹시 네 딸이야?”
“뭐? 으하하하!”
오래된 친우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노영주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쳇. 반응을 보니 아닌가 보네. 그런데 이건 왜 훔친 거야?”
“훔치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도미닉에게 보여주려고 한 거지? 만날 붙어다니는 기사가 사실은 여자라고.”
“그래.”
“중매를 서려는 거야?”
“글쎄.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하지만 그보다는, 음. 이안 그 아이도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친우가 하나쯤 생기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테오. 너는 예전부터 인간이지만 나보다 더 인간을 모르는 것 같군 그래.”
스톤해머가 수염을 문지르며 테이블을 톡톡 쳤다.
“얼른 펜던트나 돌려줘. 비밀을 알리는 건 본인에게 맡겨두고 말이야.”
“그게 나으려나?”
“당연하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 펜던트가 없는데 왜 얼굴이 그대로였지?”
“사막의 여인이 도와준 모양이더군. 늘 끼고 다니던 반지가 사라졌으니 분명해.”
“오호. 그럼 사막도 이 사실을 알았겠네?”
“…그렇겠군.”
“혹시 문제가 있어?”
“글쎄. ”
처음부터 작정하고 벌인 일은 아니었다.
이안의 진짜 신분은 몰라도 적어도 여인이라는 사실이라도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긴장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순간적으로 행한 일이었다.
‘늘 들킬까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벽을 넘질 못하는 게지.’
벌써 이 년 가까이 벽을 깨지 못하고 있는 이안.
노영주는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 원인임을 알고 있었다.
‘가여운 아이.’
돕고 싶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벽은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
수도에 있는 싱클레어 백작저는 원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오오, 그렇지! 바로 이거야!”
도미닉은 완성되어가는 연회장을 보며 매우 만족해했다.
대략적인 방향만을 지시했을 뿐, 실제 지휘를 한 것은 카림과 도미닉의 참모진 역할을 하는 행정관들이었는데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완벽하게 구현을 해 놓은 것에 감탄을 한 것이다.
“어때요, 기사님? 확실히 아름답지 않아요?”
“꽃이라. 설마 이거 모두 생화는 아니겠지?”
“당연히 생화죠!”
“…밤인데 꽃이 보이겠나?”
“그래서 조명을 이렇게 사방에 박아 넣었잖아요.”
“……”
이안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도미닉은 그 속에 담긴 말을 알 것만 같았다.
“돈지랄한다고 생각했죠?”
“스스로도 알긴 아는 모양이군.”
“두고 보세요. 이번 파티를 준비한 값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도 넘게 뽑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잘 관리된 잔디 위에 발광구를 박아 넣어 밤에도 휘황찬란하도록 만든 도미닉 특유의 이브닝파티.
한쪽에는 보기에도 화려한 디저트와 술들이 놓였고, 또 한 쪽 테이블에는 곧바로 따뜻한 음식을 서빙할 수 있도록 요리사들도 불을 조절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악단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조명이 켜지자, 연회장 안에는 미풍이 불며 수천 송이의 꽃에서 일제히 향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주홍빛 노을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히이잉-.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이제 파티의 시작이네요.”
도미닉이 씩 웃으며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검은색 나비 가면을 착용했다.
그의 모습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악사와 하인들은 물론 연회장에 나온 모든 이들이 저마다 준비한 가면을 쓰고 얼굴을 감추었다.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을 하려는 것인지, 원.”
혼잣말을 하긴 했어도 역시 순순히 가면을 쓴 이안은 어쩐지 조금은 해방감을 느끼며 보다 편하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
에버그린에 있으면서도 몇 번 가면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에버그린에서는 아름다운 금발과 살짝 드러난 턱 선과 입술만으로도 자신인 것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기에 가면을 쓴다 해도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었는데 수도에서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후우-.”
“하아-.”
슬쩍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카림을 비롯해 수도에서 온 행정관과 엘프들, 심지어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끼는 하인들까지 크고 작은 자유로움을 느기며 낮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손님들은 순식간에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도미닉은 평민과 귀족을 가리지 않고 삼백 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참석을 한 것이다.
싱클레어 백작저가 상당한 규모라고는 해도 삼백 명에 가까운 이들이 몰려들자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찼다.
“도미닉.”
“아! 노영주님.”
“손님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다 생각한 겁니다. 원래 익명이라는 걸 제대로 보장 받으려면 얼굴과 신분도 감추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인파에 몸을 숨기는 게 더 먼저거든요.”
생각해 보라.
가면을 썼다고 해도 커다란 연회장에 고작 서른 명이 있다면 누가 어떤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뻔히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가면을 씌운 이유가 없거든.’
두둥-!
손님들 사이에 충분한 술이 돌았다. 미리 도미닉이 말해 둔 양의 술이 나가자마자 하인들은 능숙하게 마법 영상구를 조작해 연회장의 하늘로 영상을 쏘아 올렸다.
영상의 시작은 바닷속.
신비로운 산호 바다 속에 열대어가 가득했다. 곧이어 거북과 함께 바다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엘프의 등장!
“인어? 인어인가?”
“엘프잖아!”
어느덧 악단들이 연주하는 노랫소리도 흥겨운 춤곡에서 로맨틱한 멜로디로 바뀌었다.
영상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엘프를 시작으로, 탄성을 자아내며 야외 온천을 즐기는 기사, 리조트의 해안가와 시설들을 즐기며 여유로운 휴가를 만끽하는 귀부인들, 활기찬 상점가와 이색적인 물건들로 가득한 거래소, 젊은 열기가 가득한 아카데미 앞 거리와 야시장, 끊임없는 파티들을 줄줄이 보여주었다.
영상 중간중간 드워프의 공방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한정판 도자기나, 커피와 텀블러 세트, 고급 향신료 믹스, 에버그린 산 장신구나 교역품들도 슬쩍슬쩍 곁들여졌다.
“요리대회 영상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네. 그건 영상 자체를 팔아먹는 용도였고 이건 광고를 하는 겁니다.”
“광고? 무엇을? 에버그린을?”
“곧 나옵니다.”
– 로맨스를 다시 한 번! 에버그린 행 정기 여객선 신설!
밤하늘에 볓빛이 흩뿌려지듯 수놓아진 선전 문구에 알딸딸하게 술이 오른 손님들이 휘파람을 불고 고함을 치며 환호했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로 열광하진 않았겠지만 가면 덕분에 체면 같은 것은 모두 제쳐두고 욕망에만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법도와 예의에 매여 살던 이들이라 도미닉을 비롯한 남부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유로움에 취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반응이면 옥장판도 팔아먹겠네, 아주.’
그들의 이런 열광적인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일반적으로 수도의 파티에서 춤을 추려면 우선 신사는 마음에 든 레이디가 대동한 시녀나 가족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녀의 춤 상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다음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만약 리스트에 세 칸이 모두 찼다면 기회는 사라졌다.
한 파티에서 세 명 이상의 상대방과 춤을 추는 것은 현숙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는 미리 정해진 춤곡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습한 스텝을 밟아야 했는데, 어디로보나 자연스러운 연애나 감정의 교류는 쉽지 않은 형태였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처음 들어보는 춤곡 멜로디에 맞춰 마음에 드는 상대와 얼마든지 춤을 추고, 웃고, 떠들고, 술을 마셨다.
가면 아래 외모를 상상하며 간질거리는 마음을 주고받는 수많은 사람들!
여인들은 동화 책에서나 보았던 신분은 낮지만 능력 있고 멋있는 사내와의 불같은 로맨스를 슬며시 꿈꿨고, 사내들은 어떤 조건도 보지 않고 오롯이 서로에 대한 호감만을 주고 받는 새로운 형태의 설렘에 사춘기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흠, 흠. 남부는 가을과 겨울도 무척이나 따뜻하다지요? 저는 가문의 사업 확장을 위해서라도 올 하반기를 에버그린에서 보낼까 하는데…”
“어머, 저도 실은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올 가을에 저 곳으로 떠날 생각이었답니다!”
여기저기에서 가족들이 들으면 이게 뭔 소린가 싶은 계획들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이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면을 벗고 이 파티장을 떠나는 순간. 다시 경직된 춤을 추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에 든 상대에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란 것을.
“하긴. 젊었을 때는 저런 것에 목을 메곤 하지. 그런데 배는 있고?”
소드마스터의 청력은 소곤대는 젊은이들의, 누가 들어도 방금 막 생각해낸 휴가 계획을 엿듣는데 문제가 없었다.
“네, 술탄에게서 받은 것이 있어요.”
라비아의 요리대회 전야제 공연 영상을 매우 흡족해한데다 엘프들의 만족도까지 높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술탄이 도미닉이 수도로 오기 직전 통 크게 배 세 척에 선물을 가득 실어보냈었다.
[이게 다 선물이라고요? 진짜로?] [술탄의 배포는 사해와 같으니까.] [감사합니다. 배도 잘 쓸게요!] [음? 배라니?] [다 선물이라면서요.]반쯤 우겨서 얻은 세 척의 배.
그 중 두 척을 개조해서 크루즈를 만들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손님들이 오기만을 기다려? 이참에 돈이 썩어 넘쳐나는 수도 놈들 주머니나 정기적으로 털어 먹어야지.’
그러니 모두 와서 연애 하렴.
원래 연애를 하다 보면 씀씀이도 커지고, 썸이라도 타게 되면 일주일 여행이 한 달이 되고 뭐 그러는 거 아니겠어?
지금까지 에버그린의 콘셉트가 힐링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여기에다 로맨틱을 추가할 작정이었다.
‘이 참에 확 예식장도 만들어 봐?’
역시 단일행사 규모 대비 가장 쏠쏠히 남는 장사는 결혼식장인데.
도미닉이 새로운 사업을 떠올리며 돈 벌 궁리에 빠져들 때 즈음, 이안은 연회장의 후미진 곳에서 사건에 휘말리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