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want to play RAW novel - Chapter 61
061화
‘뭐? 대신으로 임명한다고?’
필리프와 그 일행은 물론,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근위 기사들까지 깜짝 놀랐다.
카를의 제안이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변경의 귀족,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이에게 대신 직책을 준다니!
“보통 대신 직위는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들에게 돌아가는 거 아냐? 그중 공무대신이면 건축, 토목 사업을 관리하는 자리잖아.”
“왕국 전역에 있는 광산과 공방 등 생산 시설이나 각종 기자재 개발도 감독하지. 직책의 특성상 큰돈이 오가다 보니, 누구나 탐을 내는 요직이야.”
“아무리 요즘 명성이 자자한 엘디르의 사도라지만 이건 좀…….”
근위 기사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눈길이 필리프에게 쏟아졌다.
저도 모르게 혹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필리프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기다려, 낚이지 마라! 이건 왕자의 함정이다!’
아무리 꿀이 뚝뚝 떨어지는 자리라도, 그리고 나름 취향에 맞는 관직이라 해도 덥석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
잡은 순간 코가 꿰게 될 테니까.
그리 판단한 필리프는 침착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전하, 어찌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 아르트리아 왕실에 대한 저의 충성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대를 시험하려 하는 것도 아니고, 충성심도 믿어요. 그저 더 가까이서 봉사해 주면 안 되겠냐는 거예요.”
“건국 이후로 저희 가문의 소임은 왕국의 변경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중앙에도 인재가 많은데 굳이 제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카를은 연거푸 영입 의사를 보냈으나 필리프는 최대한 정중히 거절했다.
완강한 필리프의 태도에 어린 왕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들은 왕도에서 출세해서 화려한 생활을 하려 애쓰는데…… 그대는 참으로 특이하군요.”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니까요.”
화려한 왕도 생활이라고 해 봤자, 사교계에서 밤늦게까지 춤추고 마시며 하하호호 하는 것뿐.
유흥과 사치를 부리는 것 외에 즐길 거리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왕의 노예로 갈리고 주변의 시기와 질투로 스트레스를 받느니, 조용한 시골에서 하고 싶은 만큼 취미 활동을 하는 게 나았다.
물론 그러자면 적당히 상대를 달래고 꼬실 필요가 있다.
“전하, 저는 제 위치에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왕실을 돕겠습니다.”
“그대가 잘하는 일이라면…….”
“저는 대장장이 신의 사도지요. 쇠를 다루는 일은 자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필리프는 테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에 테리가 조심스럽게 검을 뽑아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다마스 강철검입니다. 비싸고 성능이 뛰어나 근위 기사들 정도는 되어야 가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카를뿐만 아니라 가만히 지켜보던 마르켈 백작과 근위 기사들도 휘둥그렇게 눈을 뜨고 테리의 검을 바라보았다.
설마 변경의 기사가 저 귀한 검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걸 귀공이 만들었단 말이에요?”
“만드는 방법을 아니까요.”
정확히는 다마스쿠스 강철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Y튜버 시절 깊이 있게 파고든 적이 있기 때문.
빙의 초반에는 아무런 생산 기반이 없어서 황금 망치 스킬로 만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영지의 대장간에 평로와 수력이나 축력을 이용한 압연 단조 기계 등을 도입하기도 했고, 한스를 비롯한 장인들의 실력도 높아져서 기사들의 장비를 다마스 강철로 교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제련 전문 대장간까지 만들 예정이니 양산에는 더욱 문제없다.
“중앙 기사단, 아니, 앞으로 중앙군까지 이 강철로 만든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하께 충분히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생산되는 무기를 최우선으로 왕실에 보내겠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
카를은 필리프가 합당한 값에 팔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거래 계약으로만 관계를 맺기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를 휘하에 둔 인망, 그리고 불의 영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생각하면 훨씬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두어야 해.’
안 그래도 카를은 필리프의 영입에 대비해, 그의 환심을 살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재능을 생각하면 재물은 얼마든지 벌 수 있겠지. 작위나 관직은 마다하니 소용없어. 그렇다면 역시…….’
필리프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한 카를의 입가에 자신감이 서린 미소가 떠올랐다.
***
“귀공이 왕도에 온 건 단지 선왕의 장례식과 내 즉위식 때문은 아닐 것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예, 다른 볼일이 좀 있긴 합니다.”
“그 볼 일이라는 것 중에 인재 영입이 있지요?”
카를의 말에 필리프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치 과자를 훔쳐 먹은 아이가 들통난 듯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야 귀공의 영지는 최근에 한창 발전하는 중이라고 들었으니까요.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니 인재가 필요한 건 분명하지 않나요.”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명석한 사람이라면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카를은 한 발 더 나가서 필리프를 놀라게 했다.
“특히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가 아쉽겠지요.”
“하하, 진짜 잘 아시는군요.”
“추측한 거예요. 원래 변경에는 제대로 된 마법사가 부족하니까.”
보통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귀족들은 기사뿐만 아니라, 마법사도 키우거나 영입한다.
마법의 활용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를은 필리프도 마법사가 필요할 것이라 봤다.
그리고 실제 필리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재가 마법사였다.
마법사가 있으면 더 뛰어난 성능의 기물이나 무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현재 브란델 영지에는 마법사가 없다.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만한 부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마법사는 전투와 치유 전문의 딜러나 힐러가 아니라, 아티펙트 제작에 뛰어나거나 연금술 같은 화학 지식에 해박한 이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인재들은 왕실이나 대영주 밑에서 일하고 있어 영입이 쉽지 않았다.
“귀공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내가 소개해 줄 수 있어요.”
“정말이십니까?”
“그래요. 왕립 마탑에는 마법사가 많으니까. 대신 그들을 영입해 가는 건 전적으로 귀공의 역량에 달렸어요.”
마법사들은 대게 고집이 세거나 괴짜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법이라는 심오한 학문에 접근해서 성과를 내기 힘들기 때문.
그러한 이들 중에 과연 변경의 영주를 따라나설 사람이 있을까.
카를이 보기에 그걸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듯했다.
“소개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혹시 다른 인재들도 필요하면 말만 하세요.”
카를이 그리 제의했지만, 필리프는 너무 신세 질 생각은 없었다.
준다고 넙죽넙죽 받다 간 주변에 온통 카를에게 충성하는 자들만 가득 찰 거고, 그럼 자신도 그들에게 등 떠밀리게 될 테니까.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예,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카를과 원만하게 대화를 마친 필리프.
그가 이만 물러서려 할 때, 카를의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하, 이야기가 다 끝나신 듯한데 소신이 나서도 되겠는지요?”
“단장도 브란델 남작에게 할 말이 있나요?”
카를의 물음에 근위 기사단장 마르켈은 고개를 저으며 테리를 지목했다.
“남작이 아니라 저 젊은 기사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그리 대답한 마르켈은 필리프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근위 기사단장 마르켈 백작일세. 브란델 남작, 자네 호위 기사를 잠시 데려가도 되겠나?”
“네?”
“꽤 실력이 좋아 보이는데 대련을 해보고 싶어서 말이야.”
단장의 말에 필리프는 테리가 물의 대신전에서 카를을 호위하던 근위 기사들을 때려눕힌 일을 떠올렸다.
‘혹시 그때의 일을 전해 듣고 대련을 빙자한 보복을 하려는 건……?’
필리프가 망설이고 있을 때, 뒤에서 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고개를 돌리니 기대와 의욕이 가득한 테리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하긴,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검호와 맞붙어 볼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겠지.’
필리프가 알기로 테리는 21살의 나이에 오러 익스퍼트 상급에 한 발을 걸칠 정도로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1년째 지지부진 발전이 없었다.
‘카펜터 단장 말로는 영지 내에 그보다 강자가 없기 때문이라지.’
한 수 위의 상대에게 박살 나고 땅도 구르고, 목숨이 좀 왔다 갔다 하는 실전을 겪어야 발전한다던가.
그런데 브란델 영지에는 테리보다 강자도 없고, 간간이 이루어진 몬스터 토벌도 보통 소형이나 중형 몬스터였다.
게다가 총이라는 강력한 신형 무기가 등장하면서 기사가 전면에서 치열하게 싸울 기회도 많이 줄었다.
그런데 익스퍼트 최상급의 검호가 대련해 준다니!
기사로서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주님, 허락해 줘요. 그리고 기왕 달링이 대련하는 김에 나도……!”
시리아가 다가와 자신도 끼워달라며 요청해 왔다.
눈에 불이 들어온 둘의 모습에 필리프는 결국 승낙해 주었다.
“좋아, 대신 다치지 마.”
“감사합니다, 영주님.”
“헤헷! 걱정 말라고요.”
근위 기사들이 후원 한가운데 공간을 벌려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임시로 만들어진 대련장에 선 마르켈 백작은 시리아가 쌍검을 들고 나서자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에겐 용건이 없네만.”
“헷! 아저씨 설마 자식뻘의 여자에게 깨질까 봐 무서운 거야?”
“허, 맹랑한 녀석이군. 그래, 한 명 정도 먼저 상대해도 상관없지. 세 수를 양보할 테니 마음껏 공격해 보도록.”
마르켈은 얼마든지 와보라는 듯 검을 든 채 뒷짐을 졌다.
기본자세조차도 취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 내심 부아가 치민 시리아는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하고, 문신의 힘을 최대로 발동했다.
쿵—!
강하게 발을 내디딘 그녀가 섬전 같이 마르켈에게 쇄도했다.
“빠, 빨라!”
순식간에 시리아의 쌍검이 마르켈의 몸을 가르자, 그녀의 실력을 모르고 있던 근위 기사들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문신 전사인가. 브란델 남작은 재미있는 부하를 데리고 있군.”
“이잇!”
시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분명히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마르켈이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 서 있었기 때문.
황급히 등을 돌려 검을 휘둘렀지만, 이번에도 허공만 갈랐다.
“눈으로만 상대를 쫓으려 해서는 안 되지.”
“에잇! 그럼 이건 어떠셔?”
시리아의 양팔 문신에서 불꽃 같은 열기가 일어났다.
그 열기를 쌍검에 담은 시리아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비기를 선보였다.
“받아라, 불사조의 춤!”
“자네, 쓸데없이 힘을 쓰는군.”
강하면서도 화려한 공격이 들어왔지만, 안 맞으면 그만.
그렇게 양보하기로 한 세 수가 넘자, 마르켈은 그제야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불새 같은 형상의 기운을 머금고 재차 날아드는 시리아의 쌍검을 향해 빠르게 찔렀다.
챙! 쨍강!
“어?”
자기 손에서 떠난 쌍검을 보고 시리아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르켈이 칼자루 끝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끄엑!”
“문신에 너무 의존해서 검술에 허점이 많군. 더 수련에 맹진하도록!”
골통이 쪼개지는 듯한 아픔에 눈물이 핑 돌았던 시리아.
마르켈의 호통을 듣고 냉큼 그의 앞에서 물러났다.
‘으으, 무서운 아저씨다.’
테리나 그의 부친인 카펜터도 곤란해하던 자신의 비기가 이렇게 가볍게 격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심해, 달링. 저 아저씨 장난 아니야.”
“그래, 이미 알고 있다.”
마르켈의 앞으로 걸어간 테리.
그가 검을 뽑자, 마르켈 백작도 중단으로 검을 세우며 자세를 잡았다.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옷자락이 펄럭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것이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세인가.’
‘훗, 확실히 앞서 튀어나온 왈가닥이랑 다르구만.’
한동안 미동 없이 대치하던 두 사람.
먼저 선공을 날린 것은 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