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304
EP.304
#2-28 향락의 도시로, 그리고…(2)
“그냥 집에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죽을 것 같은가 봐. 그 멍청한 여동생은….”
탁.
탁탁.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메니라 불린 여자는 초조한 듯이, 혹은 짜증나는 듯이 발로 끊임없이 바닥을 두드렸다.
그녀의 여동생 미리.
금수저인 메니와 자매인 만큼 당연히 돈에 부족함 없을 셀럽인 그녀는, 자유분방한 성격에 항상 어딘가로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나.
흥미로운 것을 찾아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쪽에 가깝지만.
‘나랑은 정반대네. 나는 평생 집에만 박혀 있고 싶은데.’
만 있다면 평생 집이나 근처 편의점만 왔다갔다해도 만족하고 살 수 있는데….
평생 먹고 살 돈이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어지는 걸까. 있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안 그래도 요즘은 위험하니까, 연락은 계속하라고 했는데….”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연락도 듬성듬성 하던 편이지만, 그래도 어느 시점부터 이상할 정도로 오랫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 쪽에서 연락을 하려 했더니 연락은 닿지 않고.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뒤로는 온갖 방면으로 조사해봐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 연락은 안 되고, GPS 기능도 전부 꺼져있는지 위치를 측정할 수가 없고.”
“……저기….”
“안 그래도 수도의 움직임이 수상하니까 조심하라고 일렀던 참인데…!”
쩌적, 쩌적!
째앵―!
와그작와그작!
메니의 손에 들린 유리잔은 불쌍할 정도로 와그작 깨져버렸다.
그래놓아서 그 파편마저도 가루로 만들 생각인지 손안에서 철저하게 분쇄시키고 있다.
주변에 앉았던 이들도 깜짝 놀란 듯 조금씩 거리를 뒀다.
뭔가, 처음에 봤을 때랑 인상이 좀 달라졌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감정이 격해진 것뿐인지 아무튼 약간 소극적이던 첫인상에 비해 위험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느낌이다.
아니, 진짜로 희미하게 거친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다.
“메니!”
“……테트라.”
“진정!”
“……알았어.”
메니는 한숨과 함께 손에 들린 파편을 소파 옆 바닥에 후두둑 떨어뜨렸다.
반짝이는 파편을, 옆에 있던 청소로봇이 깔끔하게 흡입하고 떠나갔다.
“어… 그런데 왜 미네 씨는 직접 이렇게…?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뭘 믿고 남한테 맡겨? 어차피 시간도 남아돌겠다 동생 찾는 김에 여행이나 나다닐까 하는 것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 녀석한테 손댈 수 있는 놈이 있을리도 없고.”
“왜요?”
“그 녀석 나보다 세거든.”
아아, 하고 금세 납득했다.
날카로운 유리잔을 손수 가루로 만들어버렸는데도, 메니의 가녀리고 흰 손은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 별의 여자들은 저마다 잘 사용하는 마법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저런 곡예가 가능할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리라.
“이 별의 허접한 남자들 따위, 백 명이 달려들어도 쪽도 못 쓸걸? 분명 【귀족】한테도 꿀리지 않을 아이거든.”
“어머나, 메니. 그거 불경한 말인데~.”
“그렇지만 사실인걸. …어쨌든, 정말이지 만에 하나 그 아이한테 손을 댄 놈이 있기라도 하면, 그놈 온몸의 뼈마디를 꼼꼼하게 아작아작 부숴버리겠어.”
미네의 살기 어린 눈이 나를 슬쩍 쳐다봤다.
“그래서, 케이가 여행중인 몸이면 뭔가 들은게 있나 물어보고 싶긴 한데…”
“저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냥 푸념한 것 뿐이야.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미네는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로봇 종업원이 가져온 새로운 잔을 손에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얘기에 주변에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서로 막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몰라 눈치를 보고.
……으, 뭔가 불편한 분위기.
체할 것 같다.
‘애초에 내 처지에 남의 별 금수저님을 가아아암히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짝짝!
“어이쿠, 분위기가 무거워졌네. 가볍게 여행하려고 탄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좋지 않은걸~.”
둘러 앉은 테이블 주변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테트라가 손뼉을 치며 환기시켰다.
“그보다 메니도. 나한테 말할 때는 걱정 같은 거 하나~도 안 된다며~!”
“…걱정 안 된다고 했잖아. 그냥 연락이 안 되니까 짜증난 것 뿐이고… 아~아! 네네.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메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자, 조금 전 잔을 가져다 준 로봇 종업원이 다시 다가왔다.
이어서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밀어 종업원 앞에 뜬 홀로그램을 조작했다.
“이야기 들어준 값으로 살게요. 다들 술 괜찮죠? 논 알콜도 있으니까 필요한 사람은 말해줘요.”
“그렇대~. 다들 오늘은 메니를 맛있게 뜯어먹고, 호오오옥~시 나중에 뭔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자!”
“도와달라고 할 일 없어… 앉아, 테트라.”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이 분위기를 삽시간에 편안하게 만들었다.
뭔가, 어머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 젊긴 한데… 풍만한 가슴 때문일까. 어쨌든 외모와 포근한 분위기까지 합쳐지니 진짜로.
그 뒤로는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음식이 잔뜩 나오고, 지루한 셀럽 여자들의 토크가 이어졌다.
중간에는 그냥 귀찮아져서 몸이 안 좋아졌다고 말하고 빠져나왔다.
* * *
“흐아아아아….”
풀썩.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몸을 맡겼다.
이 열차의 탑승객들에게는 각자의 객실이 주어진다. 가장 싼 티켓을 구입한 내게도 호텔 스위트룸 정도는 될 법한 방을 배정받았다.
‘뭔가, 지구에서 내가 살던 방보다 더 좋은 것 같은….’
【향락의 도시】까지는 이 열차로도 이틀은 걸린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도 좋지 않으니, 잘 된 거겠지. 감사하면서 누리자.
달칵.
손에 들고 있던 기묘한 형상의 비싸 보이는 오브제도 대충 옆에 던져둔다.
먼저 일어서겠다고 했더니,
――‘이건 선물이에요. 전 이 열차의 최대주주거든요. 앞으로도 또 이용해주시면 좋겠네요.’
그 테트라라는 여자가 온후한 미소와 함께 건네주었다.
소재가 은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기이할 정도로 고풍스런 빛을 반사하는 이 오브제가 결코 싼 것은 아니리란 건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걸 그냥 만난 기념으로 나눠주다니, 이게 셀럽…!’
다만 실용성 제로인데다 딱히 내 취향도 아니라서, 팔 수 있다면 팔고 싶다.
돈 좀 되려나.
“아, 그러고보니.”
마침 생각나서 인벤토리에서 자그마한 손가방을 꺼냈다.
그러자 가방의 지퍼가 알아서 열리더니, 투명한 물로 된 몸체의 손바닥만한 골렘이 튀어나왔다.
“드디어 나왔습니돠! 왜 이제 꺼내는 겁니꽈!”
“시끄러우니까.”
이 팬더 형상의 골렘은 판돌이. 아데가 맡겨 준 통신용 사역마다.
펫을 동반하려면 추가요금이 든대서 인벤토리에 넣어뒀었다.
“어쨌든 이걸로 【향락의 도시】로 출발이야. 아데한테는 전했어?”
“못했습니돠! 물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가야되는 겁니돠. 황야에서는 제가 힘을 못 씁니돠!”
“너 정말 쓸모 없네.”
“뭣이?! 나 없었으면 황야에서 미아가 되어 객사했을 썅년이 말은 잘합니다?!”
“말 조심해라.”
판돌이의 몸을 꽉 붙들고 벽을 향해 집어던졌다.
철퍽―!
그러자 판돌이의 몸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흩어진 몸은 웬만해선 알아서 꼬물꼬물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거리낌은 없다.
“자, 그러면.”
가방을 꺼낸 건 딱히 판돌이 때문은 아니다.
작은 손가방에 두손을 집어넣고, 조심조심 어떤 꾸러미를 꺼냈다.
아저씨가 싸준 도시락이다.
사이즈로 봤을 때 이 작은 가방 안에 들어갈 부피가 아니지만, 에서 구매한 이 가방은 보이는 것보다 용량이 훨씬 크다.
“도시락이면 오늘 안에 먹어야겠지?”
조금 전에 비싼 요리들이 나오긴 했는데, 거의 간식 같은 종류였고 눈치가 보여서 영 먹기 껄끄러웠다.
거기다 왜 그렇게 쪼꼼쪼꼼씩 나오는지.
부자들은 다 위가 작은가? 아니면 여러 요리를 먹으려고 그런 거야? 왜 그걸로 만족하고 마는 거야?
‘거기다 먹는 것도 왠지 모르게 기품이 느껴지고!’
서민은 서럽다.
에서도 셀럽인 블루문과 서민인 루비 사이에 그런 묘한 괴리가 있었더랬지. 내가 당사자가 되니까 영 불편하다.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 한 장소에 있는 느낌이랄까.
“이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된다는 건가봐….”
서민 주인공이 재벌 집안사람을 만나서 인생 꽃피거나 하던 옛날 TV 드라마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내용인지.
옆에 놓아둔 비싸보이는 오브제를 슬쩍 쳐다보고, 도시락을 열었다.
“우와, 이 아저씨 평소보다 공들인 것 같은데.”
오밀조밀하게 도시락 상자를 채운 색색깔의 요리들.
고기처럼 보이는 것. 계란처럼 보이는 것. 채소처럼 보이는 것.
‘아니, 실제로 지구랑은 식재가 다르니까. 이게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요리할 때 보니까 야채인 줄 알았더니 사실 고기였던 것도 있었고, 고기인줄 알았더니 야채인 것도 있었다.
돼지나 소나 닭이나 고양이 같은 건 비슷한 게있는 것도 같지만, 그것도 자세히 보면 어딘가 다르다.
적어도 날개가 달린 고양이 같은 건 지구에서 본 적이 없다.
‘쿠키는… 날개가 달려있긴 한데, 그건 뭐.’
고양이가 아니라 인형이니까.
어쨌든.
뭐가 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식재가 오밀조밀 들어있어서 식욕을 마구 돋군다.
거기다 3단 도시락!
많이 먹는 것까지 신경써서 양을 잔뜩 챙겨줬어!
“냠~♪”
우걱우걱 기쁘게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으… 마지막까지 풀파워로 빔포라도 쏴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위에 떨어지는 포만감에 밀려 과거의 수치스러움도 미움도 전부 휩쓸려 사라진다.
배가 부르면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꺄아~♪ 디저트까지 있어!”
도시락의 맨 밑바닥에는 작은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고정된 비싸 보이는 케이크.
그 여관에 머물던 마지막 날까지 디저트는 계속 나왔다.
항상 맛있게 먹었더랬지.
도시락에는 자그마한 병과 함께 예의 고급스런 향기의 차도 찰랑이며 담겨 있었다.
“하읍. …맛있어! 달아! 달콤해!”
남자였을 적에는 단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여자가 되고 나니 단 것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단맛 귀신이 되어버렷!
“하우~ 맛있다… 근데 나 이렇게 먹는데 살이 안 찌네.”
그만큼 고생하고 있긴 한데.
이것도 마법적인 어떤게 적용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차라리 엄청 뚱뚱하고 못생겨지면 괜히 안 건드리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그건 좀 싫긴 하네.”
전혀 관리가 안 된 자신을 떠올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서도 엄청 많이 먹는 캐릭터는 있지만 마법소녀들은 하나 같이 매력적이었다. 살이 조금 오른 통통한 캐릭터까지도.
마법소녀로서의 이미지는 깨고 싶지 않다….
“내가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지… 이상한 짓 안 당하게….”
결국 그렇게 결심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제부터는 남자의 손이 조금도 닿지 않도록 더 조심하자.
철벽 케이가 되는 거야!
‘아… 어라….’
“하아아아암~….”
꾸벅, 꾸벅.
갑자기 눈 앞이 살짝 흐려지고, 고개가 멋대로 떨렸다.
눈꺼풀이 무겁다.
갑자기 수마(睡魔)가 확 덮쳐온다.
“졸려… 아직… 시간이 별로….”
이제 겨우 낮이다. 졸릴만한 시간은 아닌데.
항상 디저트를 먹고 곧바로 잠들었더니, 습관이라도 들어버렸나.
“조금만… 잘까… 어차피 할 일도 없… 으니….”
나는 침대 위에 고양이처럼 몸을 만 채 누웠다.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의식은 금방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