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8
도로에는 사람들이 줄서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하늘을 가리키며 명령하면, 옆에 서있던 사내가 활시위에 화살을 매겨 하늘을 향해 쏘았다. 제비의 머리를 꿰뚫고 화살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벌레를 물고가던 어미 새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풀속으로 떨어져 죽었다.
“끔찍해라.”
우리는 수도를 통과하기 위한 긴 줄 앞에 멈춰서서 잠시 여독을 풀었다. 방금 전 보았던 사냥은 줄 선 사람들에게 제법 흥미로운 여흥이 되었다. 활을 쏜 사냥꾼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꾸벅 꾸벅 고래를 숙여가며 연신 화답했다.
마차들은 전부 멈춰있었지만, 그 이유는 사냥꾼의 무용을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수도로 가는 대로가 마차로 답답하게 막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도회에 참여하는 귀족들과, 수도에 매일같이 출입하는 상인들, 그리고 농민들이 서로 얽혀서 교통이 마비되었기에. 그들은 옆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유희삼아 관람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조금만 앞으로 가면, 줄을 새치기하려는 젊은 귀족과 그보다 뒤에 서있던 나이든 귀족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젊은 귀족이 늙은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하자 늙은 귀족이 칼을 뽑아들며 결투를 신청했다. 각자의 호위 기사들이 대리로 나선 결투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어느 귀족의 마차에 들이친 작은 꼬마들이 마차 안에서 고급 가죽지갑을 꺼내 헐레벌떡 달려갔다. 지갑의 주인인 귀족은 자신의 운명도 알지 못한 채 기사들의 싸움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보다 앞으로 가면 경비병들이 마차들과 연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모두 같은 풍경을 가진다고 하던가. 경비병들이 검문을 시작하겠다고 말하면,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고 물어보는 귀족들이 꼭 튀어나왔다. 그러면 경비대장은 왕명이 적힌 명령서를 들이대며 검문에 응하도록 만들었다.
왕명이 적힌 명령서는 경비대장에게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는 존재였다. 그는 마치 이 성문 안에서 만큼은 자신이 하느님이나 황제가 된 양 행동하고 있었다. 오만하게 뻗은 턱 끝은 상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했고, 지방의 이름없는 귀족들을 무시하는 건방짐이 눈 밑에 달려있었다.
“끄아아아아악!”
한눈을 판 사이 결투의 승자가 결정되었다. 늙은 귀족의 호위는 절단된 팔을 붙잡은 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젊은 귀족은 쓰러진 패자에게 은화를 한 푼 던져주며 말했다.
“이걸로 술이나 마셔라. 팔 하나쯤 없더라도 술은 마실 수 있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늙은 귀족은 쓰러진 호위 기사를 발로 툭툭 걷어차다가, 그가 죽은 걸 확인하자 발로 굴려서 도로에서 밀어냈다. 도로 옆에 솟은 풀들이 시체를 가려주었다.
저 풀숲 아래에 대체 몇 구의 시신이 이런식으로 묻혀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뒤 편에서 귀족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마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멀리 꼬맹이들이 지갑을 든 채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 곳 저곳의 마차를 돌아다니며 지갑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다 어느 귀족부인의 마차에서 자신의 것과 똑같은 지갑을 발견했는 지, 확인해보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사태가 커지기 전에 일어나려는 순간 마차를 호위하고 있던 기사가 칼을 뽑아 순식간에 귀족을 베어버렸다.
귀족은 저승에 갈 노잣돈 한푼도 챙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휘황찬란한 황금빛 마차를 타고 있던 귀족부인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기사에게 명했다.
“치워라.”
기사는 다시 한 번 죽은 시체를 발로 굴렸다. 귀족의 시체가 또다시 도로에서 밀려 풀 숲으로 사라졌다. 풀숲에서 토실토실 살이 오른 거대한 쥐가 고개를 슬쩍 내밀더니 시체의 발을 끌고 사라졌다. 들썩이는 풀숲으로 그의 족적을 쫓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나는 시에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차에 기댄채 잠에 빠져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다시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로빈은 말에서 내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한 번 한 번 검문이 끝날 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사건은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마치 보드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매 판마다 주사위가 1밖에 나오지 않는 보드게임. 내가 한걸음 앞으로 가면 그때마다 귀찮은 이벤트가 열리는 보드게임.
다시 사람들이 한 칸 앞으로 움직였다. 권세높은 귀족이 앞에 있어서 그런지 금방금방 검문이 끝났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정쩡한 상인이며 농부가 앞을 막아서면 귀찮고도 길고긴 검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 칸. 또 한 칸. 자동 공정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우리는 한칸씩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결투 기사가 죽었던 핏자국을 어느새 우리가 밟고 있었다. 늙은 귀족은 분풀이할 상대를 찾기 위해 이 곳저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걸린 건 하필이면 그의 뒤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던 농민이었다. 그는 짚단을 실은 수레 말고는 어떤 짐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귀족이 외쳤다.
“너도 네가 우스우냐?”
“네?”
“뭐가 좋아서 그리 싱글벙글 웃고 있느냐?”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다? 뭐가 아니란거지? 내가 뭘 말할줄 알고 아니라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농민이 바닥에 엎드려서 빌기 시작했다. 나는 앞을 바라봤다. 경비대장은 느긋하게 상인의 물품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로빈이 조심스럽게 칼을 집었다. 나는 메이스를 꺼내들고, 로빈을 말렸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냐? 죄송할 마음을 품고 있었느냐?”
“아이고, 아닙니다 나으리. 제가 어찌….”
“그럼 내게 거짓말을 고한 것이냐? 고얀 놈이구나! 나를 비웃는 것도 모자라서 나를 능멸하기까지 해? 너는 어디 영지에 사는 누구인지 소상히 고해라! 네게 체벌을 내려 내 위신을 세워야 겠다!”
귀족이 손찌껌을 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거기까지 보던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귀족은 때리려던 손을 내리고 내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대천신교의 남부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입니다. 어떤 일이 있는 지는 몰라도 노여움을 푸시지요. 날씨가 좋지 않습니까.”
“…..됐소.”
귀족도 더 죽이거나 정말 작정하고 패려는 생각은 없었는 지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성직자의 위치는 이런 면에서 매우 많은 쓸모가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쓸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농민이 고개를 푹 숙이며 내게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는 돈으로 해주세요. 대천신교 남부 지부.”
그 쪽으로 보내야 나한테 세금을 안뗐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대천신교를 믿도록 하겠습니다!”
농민은 정말 대천신교의 열혈신도가 된 얼굴로 내게 감사인사를 거듭했다. 나는 다시 메이스를 집어넣고 마차에 올라탔다. 구해준 이유는 선의가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수레 주인이 뒤지거나 박살이 나버리면 저 수레를 치울 인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은 뒷일은 생각안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한 칸 씩 전진하고 있었다.
행렬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는 마침내 경비대장 앞까지 당도했다. 그는 왕명이 적힌 명령서를 꺼내들며 이렇게 말했다.
“그, 고생하십니다. 검문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문에 응하지 않으시면 왕명에 의하여…..”
“빨리 시작하세요.”
저번에 왔을 때도 했던 검문이라 나는 경비대장의 말을 잘랐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친한 척 말을 걸었다.
“아이고, 그 대천신교 사제님 아니십니까. 거, 이번엔 어쩐 일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왔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제장 페타 루시우스였지만, 귀찮아서 그런 설명은 생략하는 편이었다. 사제나 사제장이나 경비들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라고 느끼는 듯 했으니까.
“옆에는 부인 분 되십니까?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시에리는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입술을 살짝 내밀거나 피식 웃기도 하며 그녀는 자신의 장기인 귀여움을 여지없이 뽐내고 있었다. 나는 경비대장을 재촉했다.
“네. 빨리 검문을 시작하시죠. 경비대장. 제가 좀 바빠서 빨리 마치고 돌아가고 싶거든요.”
“아이고, 사제님. 저희가 불철주야 이 검문에 노력을 하고 있는데, 소정의 위로금만 지급해주신다면…..”
이 씨발년은 결국 선을 넘었다. 얌전히 검문이나 시작할 것이지 대천신교 사제가 건드리면 돈이 나오는 ATM인줄 아는 모양이었다.
“돈을 달라고요?”
“아이고, 그저 위로금을 지급해달라는….”
“그러니까 돈을 달라는 거군요.”
“아, 이게 그 관행적인거라.”
“상관 불러오세요. 제가 지금 돈이 없는데, 돈을 달라니까 청원을 해드리죠.”
“네? 네?”
경비대장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내게 물었다.
“사, 상관을 말입니까?”
“모셔오라니까요. 월급을 두배로 올려달라고 제가 건의드리죠. 아니면 제가 지금 가서 모셔오는 건 어떨까요? 경비대는 기사단 소속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들은 어디 소속이죠? 제가 기사단원들 몇 분을 알고있는데 일단 가서 여쭤볼까요?”
“아, 그러니까…. 그…..빠, 빨리 검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경비대장이 황급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내 짐을 검사했다.
“씨발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요. 알았어요?”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짜증을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새끼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서 경비대장을 하고 있는거지? 번개같은 속도로 내 검문을 끝낸 경비대장이 경례까지 하며 말했다.
“이상없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나는 마차를 출발시키며 대체 저 경비대장이 아직도 살아있는 건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충봐도 몇달은 한 거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있었지? 내 뒤로 다시 마차들이 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고급 마차가 들어오고, 경비대장이 양손을 파리처럼 비비며 창문으로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아부하는 표현이 분명했다. 몇마디 말이 오간 뒤 마차를 호위하던 기사가 칼을 뽑아들었다.
“자, 잠깐만…! 죄송합니다! 제발…!”
“죽어라!”
“…..컥!”
아무래도 저 부인이 들어올 때 마다 경비대장이 바뀌는 모양이었다.
수도에서는 무도회에 참석하는 귀족들을 위해 수도 내의 숙소를 전부 수배하여 방을 주었다. 나와 시에리는 왕궁에서는 멀었지만 편하고 아늑한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무도회 시기가 되면 방을 구하려는 사람들과 방을 차지한 귀족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여관 주인은 싸움을 말리기 위해 바빴고, 경비병과 기사단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일어나세요. 시에리.”
나는 숙소 앞에서 잠든 시에리의 어깨를 흔들었다. 세상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있던 시에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입을 가리며 하품한 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벌써 도착했나요?”
“네. 벌써 도착했어요. 빨리가죠.”
장거리 마차여행은 시에리에게 제법 큰 피로를 가져다 준 듯 했다. 그녀는 아직도 잠이 덜깬듯 눈을 깜빡거리면서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나는 다시 내게 기대서 잠들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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