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3)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03화
* * *
끼익―
나는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훑어내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아까 짐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옷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180센티 언저리 남자 두 명쯤은 충분히 바닥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여기서 자도 아주 편하다고, 누구누구가 큰소리친 게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할까.
“…….”
방구석에 세워 둔 무드등이 빛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옷장 옆에 누워있는 인영의 넓은 어깨가 눈에 띄었다.
오늘 종일, 재하 형과 단둘이 숙소에 있던 지화성의 어깨 말이다.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들린 고함을 기억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화성아.”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살짝 움직인 금발 덕에 녀석이 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까 그 상황은, 정말이지….
“뭐야? 지금 둘이 싸워? 이게 무슨….”
“―싸우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냥, 화성이한테 좀 실수를 해서요.”
“Um, 그런 거라면, 어, 그래요? 괜, 찮은 거죠?”
“…혀엉.”
“진짜 괜찮아. 아, 다들 피곤할 텐데. 짐은 제가 정리할게요. 들어가서들 쉬어요.”
“…….”
“화성이 너도. 얼른.”
“…전 아직 할 말이 더,”
“지화성.”
‘들어가고, 내일마저 얘기하자.’
…엉망진창이었다고.
“음….”
나는 낮게 신음하며, 녀석의 옆에 이부자리를 깔고는 천천히 몸을 뉘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글쎄, 먼저 둘이 이야기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던 내 판단이 틀린 걸까?
그렇게 가깝던 둘이니까, 분명 괜찮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적어도, 그렇게 언성을 높일 상황까지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성이가 맹목적일 정도로 재하 형을 따랐으니까.
지화성의 나이가 19살, 재하 형 나이가 21살.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은 적어도 5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 둘은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틀어진 적이 없었다.
“제가 사실 AG에 와서 처음에 좀, 많이 겉돌았거든요. 그때 재하 형이 정말 많이 챙겨줬어요. 그래서 형 말이라면 좀 무조건 다 듣게 된다고 해야 하나? 뭐, 리더 잘 따르는 동생이니까 좋은 일이지만요!”
“오, 정말요? 화성 군 성격이 워낙 좋아서… 겉돌거나 하는 일 없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졌을 거 같은데요.”
“하하, 아뇨! 제가 지금은 좀 덜한데, 그때는 사투리가 정말 심해서 다들 제가 화내는 것처럼 들렸대요. 그래서 약간 성격이 세다는 식으로 말이 돌았는데, 재하 형이 오해를 풀어 줬어요.”
‘제가 질풍노도의 시기 없이 연습생 생활을 잘 이어간 것도 다 재하 형 덕분일걸요?’
나는 당시 인터뷰를 떠올리며 가만히 혀를 찼다.
애로우즈 시절에도 둘은 틀어진 적이 없었다.
화성이가 만약에라도 화를 내는 대상에는 재하 형이 없었고, 재하 형 역시 언제나처럼 지화성을 다정하게 대하고.
그러니까, 지금 화성이의 상태가 저렇게 된 이유를 짚어 보자면….
“항상 그런 어중간한 태도로 구니까, 손재하가 너한테 모든 걸 얘기하지 않는 거다.”
“…뭐라고요?”
“지금 소속사의 상황이 어떤지,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너한테 얘기하지 않은 이유는, 네 그런 알량한 태도 때문이라고. 멍청하긴.”
…류웨이가 찌르고 떠난 말 때문에, 서운한 거구나.
그렇게 믿고 따랐는데, 자기에게 전부 얘기를 안 해 준다는 게.
그리고 하필 그 사실을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녀석에게 들었으니, 상황 악화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적어도 무대에서는 프로페셔널하게 그런 감정을 잘만 감췄지만….
리얼리티 촬영을 시작하게 되면, 무대가 아닌 카메라와 마주해야만 한단 말이지.
나는 천천히 이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머리를 굴렸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둘이 아까 어떤 대화를 나눴길래 일이 그렇게 된 건지부터 알아야 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소리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지화성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작게 입을 열었다.
“야, 화성아.”
“…….”
“내일 형이랑 얘기 좀 하자. 그건 괜찮지?”
“…….”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랑 하면 좀 나을걸. 형이 장담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대강 나는 그걸 승낙으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여전히 속이 시끄러웠지만, 더이상 수면을 미뤄서는 안 됐다.
[내일 일정: AG A&R팀/비주얼 디렉 회의]어려운 사람을 좀 만나야 하거든.
* * *
서바이벌 출신 아이돌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바로….
[???: 티오제 언제 데뷔하나요?AG: 3…
???: 와 3주 뒤?!
AG: 2… 1… [ 맨날 이런다니까 미친새키들 우리 애들 데뷔도 이딴 식으로 해라 진짜 가만 안 둬] [종강까지 D-72 @DANFJAKWGG372
그래서 컨셉 뭐로 나오는데? AG 제발 뭐라고 얘기 좀 해 봐 어떻게 일주일이나 공계가 잠잠할 수가 있어] [⎿님 침착하세요 아직 애들 숙소도 다 안 들어갔겠어요]
컨셉과 데뷔 시기.
어떤 컨셉으로 나올 것이냐.
또, 어떤 시기에 무사히 나와서 빈집털이 겸 대중 각인을 마칠 것이냐.
이는 모든 신인 아이돌에게도 공통된 사항이었지만, [타겟팅 스타>로 인지도를 얻고 시작하는 우리 티오제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요소였다.
[ㅈㅂ 팬덤명이라도 알려주면 안 됨?? 설마 여전히 스슈인 건 아니겠지???] [티오제? 제발 스슈는 아니라고 해 줘티오제: 제발 스슈는 아니] [멘똘기이렇게살다죽긔 @mennnnheeriS2
아니 ㅋㅋㅋ 슬레딕스 좀 있으면 매년 있는 정기 단체 앨범 나올 시기인데 ㅇㅅㅇ 티오제님들 괜~히 겹치는 시기에 나와서 폭망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ㅎㅎ] [⎿ㅇㅇ @WHAWHFFLEK
님 쫄린다는 말을 왜 이렇게 길게 하세요] [나는 너무 컨셉추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음… 세계관 쌓는 거 leo폴드 선배들이 너무 잘해놔서 후발 주자로 나서면 그림이 ㅈㄴ 이상하다고 ㅠ] [⎿근데 그렇다고 투OCD나 슬레ㄷ스처럼 캐주얼하게 나오기도 애매해… 지금 1티어 남돌들 이미지가 너무 확실함]
그렇게 각 커뮤니티와 SNS에서 ‘언제, 어떻게 등장할 것이냐’로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는 지금.
미팅을 위해 이동 중인 우리 멤버들 사이에서도 ‘과연 어떤 컨셉으로 데뷔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말이 나왔다.
“[타겟팅 스타>가 다트 컨셉을 엄청 밀었으니까. 그거랑 좀 관련되어있지 않을까?”
“Oh, 말 되는데요. 뭔가, 저도 그럴 거 같아요!”
“시우는 어떻게 생각해? 아무래도, 우리보다야 아이돌 산업에 훨씬 더 익숙하니까.”
“어… 음. 제 생각에는, 청량한 걸로….”
“아, 그것도 그렇네. 역시, 데뷔할 때만 그런 걸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네에… 근데, 형들이 말한 것도 좋은, 거 같아요.”
“하여간, 저는 Guitar를 좀 썼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제가 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나도 그럼 좋겠다. 로건, 너는 기타를 정말 잘 치잖아. 멘토 평가 때 보고 정말 기대했어.”
“우왓, 고마워요, 재하 형.”
그렇게 모두들 기대에 찬 문장을 한 마디씩 얹는 상황에서.
어제 신경질적인 고함으로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던 지화성은….
“어우, 시우 말대로 무조건 청량. 청량이죠! 청자켓 딱 입고, 어? 데님진 딱 입고, 응? 아시죠? 다들 아시죠?”
그간 꺼내지 않은 말을 전부 꺼내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쉬지 않고 모두의 의견에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미묘하게, 재하 형의 의견만 빼고.
“…씁.”
좋지 않았다.
지금에야 괜찮은 것처럼 보이겠지.
어제 일에 당황한 멤버들도 ‘아 진짜 잠깐 언성이 높아진 거구나’하고 넘길 수 있고, 지화성의 텐션도 돌아온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최악에 가까웠다.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마음 속에 응어리로 남는다.
내가 애로우즈 멤버들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 갑자기 떠올리니까 또 쪽팔리고 열받네. 어떻게 그런 쓰레기가 다 있지, 진짜?
“어어, 용용 형? 얼굴이 심각한데요? 컨셉이 걱정이 되시나?”
“아니, 뭐….”
나는 보다 오버스럽게 내게 말을 거는 지화성을 보며 표정을 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컨셉은 걱정이 안 되지.”
다른 거면 몰라도.
내 말에, 순간 지화성의 두 눈이 흐려졌다 다시 밝아졌다.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에헤이, 이 형 너무 태평하네!”
“그럼 걱정을 해야 맞냐?”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중생아, 형은 지금 걱정되는 게 너랑 재하 형밖에 없단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우리를 담당하는 비주얼 디렉터가 누군데?
‘그’ 문윤하라고.
이전에 애로우즈는 물론, 앞서서 최근 5년 사이 히트 친 모든 여자 아이돌의 비주얼 디렉팅을 맡은 우리 문윤하 디렉터님이 어련히….
“미스터리 건슬링어 소년이랑 8, 90년대 보이스카웃으로 갈 거예요. 남자 신인 아이돌한테는 이게 맞아. 자기들 서바이벌에서 보여 준 이미지도 있으니까….”
잘, 하실 텐… 데.
“하, 하하….”
미팅이 이루어지는 회의실.
나는 살짝 떨려오는 손을 얼른 테이블 밑에 숨기며 눈동자를 굴렸다.
[타겟팅 스타>가 끝나고 갱신된 엑스와의 계약 속 다음 목표.대중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타낼 것.
나는 여기에 나름 적지 않은 자신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애로우즈의 렉스입니다! 이, 이렇게 평생 한 번 밖에 받지 못 하는 상을 받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이미 한 번 신인상을 타낸 경험이 있었으니까.
[애로우즈, 미니 1집 《 GREEN APPLE 》로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 수상!] [‘컨셉보다도 듣기 좋은 노래가 우선’ AG의 프로듀싱 철학, 다시 발군?]세계관이 있다기보다는 슬레딕스와 2OCD처럼 캐주얼하고, ‘Aiming’의 연장선에 있는 귀에 쏙쏙 박히는 후킹으로 차트에서 꽤나 선방한 데뷔곡으로 말이다.
굳이 어떤 느낌인지 말로 설명을 하자면… 현대판 로빈훗과 큐피드?
너무 컨셉추얼하지 않게, 굳이 ‘아, 사실 이거예요’하고 말하지 않으면 모르도록.
그렇지만,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은 확실히 잘 각인되도록.
그게 애로우즈가 신인상을 탔던 노선인데.
걱정할 건 멤버들 일로도 충분했는데!
“…저, 디렉터님. 죄송한데, 미스터리 건슬링어 소년이 혹시 뭐인…? 제가 생각하는 서부 총잡이 같은 걸까요?”
“아, 기획서 나눠 줄게요. 일단 읽어는 보는데,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어도 질문은 하지 마요. 그런 건 현장 디렉으로 해결할 거니까.”
“…넵.”
나는 뒷목을 척척하게 적혀 오는 식은땀을 슬쩍 훔치며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머리카락에 물이 빠질 시기라 그런지, 땀에 붉은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내 당황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