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4)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04화
멤버도 달라졌어, 그룹명도 달라졌어.
당연히 데뷔곡과 컨셉도 바뀔 거라는 예상 정도는 했는데, 이건 정말이지….
팔랑―
[Target of Zenón 미니 1집 《 RUN AWAY BOYHOOD》] [ToZ, 타겟 오브 제논. 제논의 가장 거대한 장점이자 단점은 서바이벌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의 이미지 소비가 이미 매우 큰 가운데, ‘신인 아이돌’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서는….]“윽….”
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쏟아지는 활자의 향연에, 나는 앞의 한 페이지도 읽지 못 하고 기획서를 옆으로 밀어놓아야만 했다.
“김춘용 연… 아니지. 이제 연습생이 아니니까. 하여튼, 그냥 안 보려고요? 괜찮네. 아티스트라면 그런 해석도 있어야지.”
그래.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많고 많은 변수 중에서도, 가장 달라진 것.
“대신, 그러면 현장 디렉 제대로 따라와야 해. 뭐, 지금 읽고 있는 멤버들이라고 안 따라와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고. 적당히 다들 알아듣죠?”
문윤하 디렉터님의 디렉팅 욕구가, 이전보다 훨씬.
훨씬 거대해졌다는 점.
“웃으랬잖아. 너 한국말 몰라? 전에 있던 중국애는 그래도 따박따박 시키는 건 하던데. 지금 너 때문에 몇 번째 리테이크야. ”
“…죄송합니다.”
“후, 됐어. 어차피 재미도 없는 거, 대체 뭐하러….”
류웨이가 함께 있던 애로우즈 시절에는, ‘문윤하 디렉터에게 디렉팅 전권을 맡기겠다’던 도재찬 사장님의 호언장담이 말로 끝나 버렸다.
그때는, 류웨이를 데뷔시키는 걸로 투자자들의 신임을 얻은 신 이사님이 우리 팀을 쥐고 흔들 수 있었으니까.
최종 결재 단계에서 반려, 현장 반려, 이 컨셉은 중화 시장 진출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반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하게 해, 맡은 그룹에서 갑자기 나까지 사고가 생기고.
우리가 정규 1집을 준비하기 전, 문윤하 디렉터님이 AG를 떠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단 말이지.
“…쯧.”
나는 회의실 제일 상석의 빈 자리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의 연습생들이 데뷔하는 것이니 그래도 얼굴은 비추러 와야 맞는 건데.
류웨이가 중국으로 간 이후, 단 한 번도 신 이사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뭐, 얼굴 봐서 좋을 분은 아니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긴 하지만….
예술에 미치고 예술에 죽는 문윤하 디렉터님한테 진짜 모든 걸 맡기는 게 정말 맞나?
그렇게 내가 아리송하게 머리를 갸웃거리는 순간.
짝!
“다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중요한 것만 미리 좀 체크하고 갈게요.”
내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문윤하 디렉터님이 나를 포함한 멤버들, 그리고 다른 관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자기 손가락을 세 개 펼치고는 하나하나 접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관. 몰라도 돼요. 비주얼적으로 만족시켜 주면 그건 자연히 따라오는 거야. 팬들이 상상하는 걸 수도 있고, 성적에 영감을 받아서 다음 앨범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
“그리고 노래랑 안무. 노래는 지금 AG가 자랑하는 A&R팀이 데모곡 죽어라 뽑고 있다니까, 컨셉에 맞춰서 후보 나올 거고. 뭐, 안무는 당연히 진다솔 씨. 이름 들으니까 걱정 안 되죠? 이따 만나서 인사해요.”
“…….”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거.”
문윤하 디렉터님이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가리켰다.
나, 로건.
유찬 형, 시우.
재하 형, 그리고 화성이까지.
“자기들끼리 케미가 좋아야 해. 알아들어요?”
“어….”
“서로 친하고, 가깝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지만 지금 뭔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고. 그런 뉘앙스를 보여야 한다고. 그게 핵심이야.”
자기 손에 들린 기획서를 테이블에 툭 던진 문윤하 디렉터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폭탄 발언을 꺼냈다.
“메인 컨셉 포토는 두 명씩 페어링 한 걸로 찍을 거예요. 내가 서바이벌 멘토링 보면서 비주얼적으로 합이 괜찮았다 싶었던 사람들끼리. 상대가 누군지는 방금 내가 다 집어줬어.”
“…어헉.”
이건 내 입에서 나온 탄식이 아니었다.
오늘도 재하 형의 곁에서 살짝 멀어져서, 시우와 함께 짝을 이뤄 앉아있던 지화성의 입에서 나온 소리지.
그 당혹감 가득한 목소리에도, 문윤하 디렉터님의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니까, 아직 안 친하면 빨리 친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뭐, AG 연습생들끼리는 이미 친해서 별로 어려울 것도 없겠지만.”
“어….”
“자기들은 복 받은 줄 알아야 해. 왜냐면, 그 개같은 서바이벌에서 통편집을 당하면서도 내가 자기들이 마음에 들었거든.”
그녀의 높게 묶은 포니테일이 시원하게 한 번 뒤로 넘어갔다.
“난 무조건 이 앨범을 성공시킬 거야. 내 걸작으로.”
확신 가득한 목소리와 태도.
“…….”
덕분에, ‘문윤하 디렉터님에게 모두 맡기는 게 과연 괜찮은 건가’라는 내 불안은 조금씩 지워져 나갔다.
확실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닌 그저그런 컨셉의 앨범도 신인상을 받을 수 있게끔 디렉팅을 한 사람인데.
마음먹고 그려 내면 어떻겠어.
덕분에 내 남은 불안은 오로지 한쪽에만 쏠리기 시작했다.
“어, 음….”
금발 아래로 창백하게 질린 표정을 지은 지화성과.
“…….”
또 무슨 생각 중인지 전혀 모를 재하 형에게로.
당장에 둘이 붙어있어야 하는 촬영 현장.
그리고, 거기에 내내 쫓아다닐 리얼리티 촬영 카메라.
“허….”
“이거 좀 재밌을 거 같은데요. 춘용 형, 봤어요? 그러니까, Mystery Gunslinger Boys라는 게….”
“어어, 음. 그래. 하하, 정말 좋은 거 같네.”
로건의 목소리에 아연하게 대꾸해 주며, 나는 마음속으로 큰 결심을 했다.
누군가가 쪽팔림과 괴로움으로 옷장에 머리를 처박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밤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는 상황을 풀어놓고야 말겠다고.
* * *
이후로도 미팅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일단 곡 미리 뽑아 둔 거에서, 디렉터님이 말씀하신 걸로 10개 정도 뽑아뒀어요. 우리는 일단… 이거. D안이랑 H안을 제일 괜찮게 생각하는데요.”
“어어… 네.”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이게 A안이고, …이게 B안이고, 음.”
“응? B안….”
“방유찬 씨는 그게 마음에 드세요?”
“아뇨! 저 이거 온라인 가이드 보컬 알바 할 때 들어봤던 거 같아서요. 하하, 추억이네….”
데모곡 리스닝.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반갑긴… 한데요. 춘용 씨. …진짜, 아이돌 할… 생각, 이었, 네요.”
“네?”
“난, 당연히… 우리 크루, 들어올 줄 알고….”
“하, 하하! 다솔님, 여전히 농담 잘하시네요!”
“농담, 아닌… 크루 멤버, 개편도… 했는데.”
“에이, 제가 어디 거기 들어갈 수나 있나요. 그! 아일릭 리더 분도 들어가고 싶어 하시잖아요!”
“그런녀석알바아니고정말로자리빼줄수있다니까요.”
“…….”
이젠 데뷔곡 안무가로 다시 만나는 진다솔과의 짧은 인사.
“잘해야 돼, 응? 믿고는 있지만! 이미 믿고 있지만!”
“걱정마세요, 사장님. 저희가 정말 잘해 볼게요.”
“재하야, 내가 매일 꿈을 꿔. 정말이지, 우리 백조들이 꿈에 나오면 눈물이 얼마나 그렇게 흐르는….”
“하하, 진정하세요. 다른 애들이 보잖아요.”
그리고 ‘티오제에게 정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며 고함을 지르다시피 하시는 도재찬 사장님과의 면담.
정말이지, 아주 바쁘기 짝이 없었다고.
“Jesus. 죽을 것 같아요. 한국인들이 ‘죽을 것 같다’고 하는 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저도, 차라리… 기초 안무 연습을 더, 하고 싶어요….”
대충대충 ‘너희 알아서 해라’식의 방치형 데뷔 준비보다야 훨씬 나았지만, 그렇다고 편하다는 뜻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기대, 품이 든다는 건 퍽 긴장되는 일이었으니까.
때문에, 숙소로 돌아온 후에 쉽게 늘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돌로 데뷔하겠다 마음먹은 이상, 이런 빡빡한 일정에도 적응해야 했다.
“시우야, 잠깐 얘기 좀 할까?”
“…네에. 좋아요.”
유찬 형은 시우와 이번 컨셉에 관해서 잠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시우 방으로 들어가고.
“Oh, 혹시 문 열고 잘 사람 있나요? 저 아까 들어본 demo의 리프를 좀 따려고 하는데….”
“아, 괜찮아, 괜찮아. 편하게 해! 나도 이제 방에 들어가서 데모곡 좀 들어볼 생각이거든. 헤드셋 쓸 거라서, 들리지도 않을 거야.”
“Thanks. 춘용 형, 미리 잘 자요.”
로건은 홀로 방에 틀어박혀서 데뷔 후보곡 연구를 시작하고.
재하 형과 화성이도 ‘할 일이 있다’며 방으로 들어간 지금.
“…….”
잠시 그들의 동선을 모두 살핀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거실로 돌렸다.
그래. 해야 할 일을 해야지.
똑똑―
벤을 타고 돌아오며 떠올린 단상들은 복잡하지 않았다.
어제 있었던 대화는 대체 어땠는가.
그리고, 누가 그걸 내게 보다 침착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후.”
내가 가볍게 심호흡을 하는 사이, 살짝 열린 문 너머로 안경 쓴 누군가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딘가 살짝 파리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반짝반짝 잘생긴 그 얼굴 말이다.
“…춘용이?”
나는 상대를 향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재하 형. 저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응, 당연히 괜찮지. 들어와.”
닫아 놨던 상자를 열 시간이었다.
* * *
최소한으로 꺼내둔 자신의 짐, 생활감 없이 각 잡혀 놓인 물건들. 라벨을 붙여서 정리한 박스들.
“…아직 뭐가 많이 없네요?”
재하 형 혼자 쓰고 있던 방은, 룸메이트가 들어올 걸 배려해서 비워 놨다는 인상이 강했다.
“아, 사실 나는 네가 내 방에 들어올 줄 알고. 살짝 좀 치워 놨었거든. 이거 되게 민망하네.”
“아, 하하! 아니에요. 형도 제가 옷방에 들어가서 좀 당황하셨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 말에 재하 형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냐. 왜 들어갔는지 아니까. 네가 왜 다른 멤버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줬는지도.”
화성이 때문이지?
“…….”
“나랑 좀 어색해하는 거 같아서, 네가 챙겨 주려고 그런 거잖아. 고마워.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나도 요즘 정신이 없네.”
이렇게 빠르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형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해야만 했다.
항상 저렇게 다 알고 있고, 모르는 게 없고. 다정하지만, 또 그만큼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형이라서 그런가.
쉽게 문장을 뱉어낼 수 있는 화성이와 달리 말을 조금 골라야만 했다.
“그, 어제 보니까… 둘이 언성이 좀 높아졌던 거 같더라고요.”
“으음….”
어제의 대화를 상기하는 건지, 잠시 말이 없던 재하 형은 코끝으로 조금 내려온 안경을 다시 바로 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