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5)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05화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나온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어투였다.
“부정할 수가 없네. 맞아. 왜 나한테 어색하게 구는지, 불편해하는지 대화를 해 보려고 그랬어. 근데 대화가 좀 틀어졌거든.”
“그, 둘이 싸운 거예요?”
내 질문에 재하 형은 오른손을 들어 입을 살짝 가리며 부서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싸워? 나랑 화성이가?”
“어제…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거든요.”
“에이, 그럴 일은 없지. 난 싸우는 걸 싫어하거든.”
정말로.
재하 형의 안경 너머 두 눈이 깊어졌다.
그 안경의 디자인이, 화성이의 것과 같은 거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입가에 맴돌던 재하 형의 손이 안경다리로 향하고, 다시 눈에 들어온 입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같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성이가 그러더라고. 류웨이한테 들었다면서. 자기한테 왜 전부 얘기해 주지를 않냐. 자기는 몰라도 되는 일이냐. 그렇게 말이야.”
이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지화성이라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냥 질러 버릴 것도 예상했었고.
오히려 의외이자, 나를 놀라게 한 건… 재하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뭐.
“몰라도 되는 게 맞다고 그랬어.”
“…네?”
“와, 춘용아… 너 화성이랑 똑같이 반응한다. 하하.”
어깨를 한 번 으쓱인 재하 형은 조심스럽게 자기 얼굴에 얹힌 안경을 벗어내고는 제 뺨을 더듬었다.
형의 하얀 얼굴은 어제 내가 본 화성이의 얼굴과 비슷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화성이가 그런 일들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화성이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
“춘용이 너라면 이해할 텐데. 아니야?”
서바이벌을 하면서.
“네가 알게 된 일들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이 분명 있었잖아.”
“…….”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서바이벌을 하면서, 내가 알았기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들.
신 이사님과 류웨이가 로건을 하차시키려고 했던 것.
더 나아가서는, 그걸 방해한 나를 보내 버리려고 했던 것.
내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자, 재하 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벽에 기댔다.
“…나는 AG 내에서 최장수 연습생이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입장이야. 근데, 다른 멤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화성이한테, 네가 몰라도 되는 게 맞다고 한 거네요. 알아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신경 쓰이고, 괴롭고, 계속해서 선택해야 하니까.”
이 팀을 자꾸 휘두르려고 드는 류웨이가 팀에 없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하는 것.
그래서, 데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나를 도운 것.
재하 형이 말하는 건, 서바이벌 당시 왜 나를 도왔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응. 그게 맞다고 생각해. 솔직히… 지금도 그 의견에서 달라진 건 없고.”
나는 재하 형의 높낮이 없이 차분한 목소리에, 가볍게 혀를 차며 허리에 손을 짚었다.
이래서, 화성이가 어제 그런 반응이었구나.
따로 남아서 대화를 하면 제대로 설명을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자기가 모를 말만 해서.
“후….”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갔다.
재하 형이 지화성을 왜 저렇게 싸고도는지도.
그리고, 지화성이 그걸 도리어 자기를 소외시키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근데 어쩔 거야.
이건 둘 중 한 명은 꺾여야만 해결이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아마, 안타깝게도 화성이가 꺾이게 되겠지.
나는 내 눈앞으로 쏟아진 빨간 머리를 대충 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재하 형. 저 이제 여기서 나가면 화성이랑 얘기할 건데요.”
“으응.”
“거짓말 좀 해도 돼요?”
“어떤 거짓말?”
그냥.
“…나중에는 형이 진짜 말해 줄 거라는 거요.”
내 말에 재하 형의 두 눈동자가 살짝 흐려지나 싶었지만, 너무 찰나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응, 당연히 괜찮아. 그렇게 해서 화성이 마음이 풀리면 좋은 일이지. 이제 리얼리티 촬영도 해야 하는데, 그러는 게 맞잖아?”
“네, 좋아요. 형 이름 좀 팔게요.”
“하하, 그래. 너 나가면, 나도 곡 좀 듣고 해야겠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받아온 데모곡들을 들어보기 위해 노트북 전원을 켜는 형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아는 거 같아도 모르고, 모르고 있어서 경계하면 세 발짝 다가오고.
나는 저 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나?
나 혼자만 알고 있는 8년의 시간 때문에,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재하 형. 저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요.”
방을 떠나기 전 내가 중얼거린 말에, 재하 형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반문했다.
“음? 뭔데 그래?”
형은 왜,
“이런 사실을 그렇게 오래 본 화성이보다, 저한테 먼저 말해 주는 거예요?”
노트북 불빛을 반사하는 재하 형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아까처럼 약간은 웃는 얼굴에, 눈동자가 깊어졌겠거니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 숙소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아날로그 시계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에야, 재하 형의 목소리가 내 귀를 타고 들어왔다.
“글쎄, 왜냐면 말이야….”
“너도 나도, 그 일을 이미 겪었잖아.”
“…….”
“난 우리 둘이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
한 배를 탔다라.
재하 형의 그 말은 꽤, 오래도록 내 머리에 남았다.
그리고 어떤 의도에서 형이 그런 말을 꺼냈는지, 어렴풋이 이해는 됐다.
나 역시 내가 로건을 하차시키지 않기 위해 분투한 것과, 류웨이가 티오제에 합류하지 않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나라는 걸 밝힐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후우.”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내젓고는, 머리속을 잠식해 오려는 고민을 빠르게 날려 버렸다.
이건 나중에 최악의 카운슬러인 엑스와 얘기해 보든가 하고.
어쨌든. 둘 중 하나와의 대화는 이걸로 마쳤으니까.
끼익―
나는 옷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옷장에 제 큰 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인영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화성아.”
“…….”
“지화성?”
자세히 보니, 헤드셋을 낀 녀석은 뭔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앞머리에 슬쩍 가려진 두 눈은 피곤하다는 걸 티 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쌍커풀이 풀려 있었다.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깨금발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많겠지, 생각.
…나도 많다, 이 자식아!
“웍!”
“와아아악 씨! 귀신! 귀신!”
내가 헤드셋을 확 들추며 소리를 지르자, 지화성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눈을 까뒤집었다.
사람 속 썩인 벌이라고, 이건.
“그래. 옷방 귀신이다, 인마.”
“용용, 아, 진짜. 형! 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
“야. 지화성. 너, 재하 형이 너한테 회사 일 같은 거 자꾸 숨기고, 몰라도 된다고 하니까 열 받은 거잖아. 맞지?”
내가 속사포로 쏟아낸 말에, 지화성은 안 어울리게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 걸 용용 형이 어떻게 알았.”
“모르겠냐? 일단 들어 봐. 재하 형이 앞으로 너한테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들 방법이 있으니까.”
“아니, 무슨, 잠깐!”
“형 믿어, 안 믿어. 내가 용꿈 꿨던 거 기억해, 못 해.”
“그으….”
오케이. 여기까지 왔으면 됐다.
나는 곧 조용해진 녀석의 어깨에 양손을 턱 올리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선의의 거짓말이자, 진실이었고, ‘손재하와 지화성 관계 개선 프로젝트’의 B안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재하 형을 믿고 따르는 지화성의 맹목적인 충성을 믿고 저지르는 B안.
“내가, 너 재하 형보다 먼저 알게 해 줄게.”
“…에?”
“내가 너랑 처음 ‘Aiming’ 무대 준비할 때 말했잖아. 나는 다른 기획사에서 와서 들은 게 많다고.”
네가 재하 형보다 먼저 알아서 그걸 먼저 해결해 버리면….
“형도 앞으로 너한테 말 안 하고는 못 배길걸?”
“…….”
그 말에 지화성과 내 두 눈이 빛나고, 내일부터 숙소 분위기가 조금 달라질 거란 건….
모르면 이상하지, 아무래도?
* * *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얼마나 빠르게 흘렀냐면, 벌써 오늘이 우리의 첫 리얼리티 촬영일만큼 빠르게.
“제가 분명히 들었어요. 화성이 ‘으아악 귀신!’이라고 그때 고함을 질렀는데!”
“아잇. 무슨 소리예요, 진짜? 로건이 피곤한 상태에서 기타 치느라고 착각한 거예요. 옷방에 귀신 같은 건 없다고요!”
극렬하게 당시 상황을 부정하는 지화성에, 보이지 않는 귀와 꼬리가 축 쳐진 리버풀 출신 가출 멍멍이 로건은 다른 이들에게서 증거를 얻고자 애썼다.
“God, 같이 들어준 사람 없나요? 춘용 형은 그때 씻고 있었다고 그랬고… 유찬 형이랑 시우는요?”
“어후, 글쎄. 들었다면 분명 재밌었을 거 같은데! 나랑 시우가, 어. 그때 좀 바빴거든.”
“마, 맞아요. 저희가 뭘, 좀 하느라고….”
“재하 형! 재하 형은 들었나요?”
“하하… 미안해, 로건. 나도 그때 노래 듣던 중이라. 제대로 못 들은 거 같아.”
안타깝게도 얻은 소득은 없었지만, 뭐.
“크흠….”
지화성의 자존심을 위해서 못 들었다고 함께 변명을 해 준 나는, 시무룩해진 로건의 등을 퍽퍽 두드려 주며 녀석을 달랬다.
“뭐, 네가 진짜로 들었을 수도 있지. 사실 옷방이 아니라, 너랑 유찬 형이 쓰던 방에 귀신이 있다든가?”
“What? 춘용 형, 지금 제 룸메이트가 한 명 더 있었다는 말이에요?”
“맞네, 맞네! 로건, 다른 사람들이 다 못 들었는데 로건만 들은 거면, 그 방에 있는 거일 수도 있죠. 와, 내가 드디어 누명을 벗는구나.”
누명은 무슨.
어쨌든 놀라서 고함 지른 건 맞잖아, 이 자식아.
나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아 내며, 지화성이 앉아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숙소에 리얼리티 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멤버들 모두 잠깐 벤에서 대기하고 있는 지금.
“재하 형, 이거 마실래요? 좋아하잖아요.”
어느새, 지화성은 다시 자연스럽게 재하 형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상태였다.
“응? 아, 이거 챙겨 왔구나. 고마워, 화성아.”
“하하… 별거도 아닌데.”
지화성은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떨며 시선을 내 쪽으로 옮겼다.
‘봤죠, 용용 형?’
우리의 마주친 두 눈에는, 로건이 옷방에 귀신이 있는 게 틀림없다 주장 중인 날 나눴던 대화가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제가 재하 형보다, 그런 사실들을 먼저 안다고요?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인마. 생각을 해 봐. 형은 따지고 보면… 너한테 그런 짐을 떠넘기기가 싫어서 말을 안 해 주는 거야. 너도 사실 알잖아?”
“…제가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걸 떠넘기기 싫다고―”
“그래. 네 마음 다 이해해. 그러니까, 형한테 네가 애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자고. 알아들어?”
“……!”
스스로는 애가 아니라고 되뇌이지만, 온실 속에서 쑥쑥 자란 애가 맞아서 그런 걸까.
‘리얼리티 촬영 중 일어나는 회사 일들을 네게 말해 주겠다’는 내 말에, 지화성은 가타부타하지 않고 홀딱 넘어왔다.
당시 자기 금발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나던 지화성의 두 눈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거라면, 재하 형에게서 마냥 어린 동생 말고 믿고 고민을 말할 수 있는 동생이 될 수 있겠다’고.
이게 정말로 해결 방안인지는 솔직히 의문이지만, 뭐.
그래도 당장 좀 나아지긴 했으니….
됐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