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1)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11화
* * *
잠시 후.
“아, 잠깐 옆에 좀 앉을게. 미안.”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정리한 손재하가, 다시 표정 관리를 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 그리고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춘용아. 하하, 형도 챙겨 주고. 진짜 좋은 동생이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돌아오는 것도 금방이었고.
일어난 직후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얼굴은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긴장하고 살아야 이 정도일 수가 있는 거지?’
이제야 한 꺼풀 벗겨진 손재하의 속내를 제대로 보게 된 김춘용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손에 들린 카드를 꾹 쥐었다.
알아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내가 자기연민에 빠져있지만 않았으면, 형이 이런 생각 중이었던 것도 더 빨리 알 수 있었겠지.
김춘용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손재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또 상대를 배려하는 말을 꺼내기 바빴다.
“그래도, 앞으로는 내가 제대로 꼬박꼬박 일어나서 얘기해 줄게. 너도 다솔 쌤이랑 코레오 짜는 거 때문에 되게 피곤하잖아.”
“…뭘요.”
김춘용은 형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이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날카롭지만, 둥글게 휘어진 두 눈에는 한 톨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뭐, 김춘용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별 게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김춘용은 소파 쪽으로 느긋하게 몸을 기대곤 어제 자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을 바라봤다.
방유찬, 그리고 지화성.
새벽의 놀이터에서 왁왁 대며 이야기하다가, 벤 한 대가 천천히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던 걸 보고 황급히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던 어젯밤.
“일상생활에서 아주 사소하게, 조금씩만 엇나가게 해 보자고?”
“네. 뭐, 평소 형이 깨우는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든지, 아주 잠깐 한눈을 팔았는데 무언가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있다든가, 그런 거요.”
“어음, 좋긴 한데. 임팩트가… 좀 적지 않을까? 아니, 뭔가. 이런 건 보통. 그, 알지?”
“아, 제 말이요. 용용 형. 이런 걸 할 거면 그래도 갑자기 확확 바뀌는 게 보여야 인식이 강렬하게 되지 않아요? TV 상담 프로그램 보니까 보통 다 그렇게 하던데!”
“어휴, 화성아. 뭐든 급하면 안 된다고. 너도 아까 느꼈으면서, 인마.”
확실히, 지화성이 이번 기회에 알게 된 레코딩 일정 변경으로 수를 쓴다든가.
혹은, 김춘용이 돌아옴으로써 알고 있는 정보들을 쓴다면 보다 인상적으로 손재하의 머리에 남을 게 분명했다.
이른바 충격 요법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렇게 돌아오기 전에 약을 복용하고(술을 곁들인 오남용이긴 했지만), 이것저것 들어본(결국 테라피스트 말이라고는 하나도 안 들었지만) 사람인 김춘용의 의견에 따르면….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는 형처럼 예민한 사람에게 오히려 역효과라고.’
“화성이 너, 로건이 자기 기타 진짜 소중하게 여기는 거 알지.”
“갑자기 로건이요? 어, 음… 왜 그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알아요.”
“근데 네가 걜 위하겠다고 새 기타를 사 주고 그 기타를 부숴 버리면 어떨 거 같냐?”
“헉, 그건… 좀. 절연 당할 거 같은데요!?”
“누군가한테는 자기 일상이 틀어지는 게 그렇게 다가오기도 하는 거야.”
“…용용 형이 무슨 말하는지는 알겠지만요.”
“그래. 나도 네가 뭐 때문에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하는지, 알아.”
손재하와 직접적으로 부딪힐 오늘이 지나고, 내일 다시 찾아올 컨셉 포토 촬영.
지화성은 할 수만 있다면 그 전에 이 일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제 그렇게 망쳤으니까, 퍽 신경 쓰이긴 하겠지. 내일은 반드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고.’
더 나아가서는 남은 데뷔 준비도, 데뷔 이후도.
기본적으로 사람은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알고 난 후에는 그걸 영원히 가슴에 품은 상태로 살아야만 했다.
김춘용이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멤버들과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지화성이 실수로 손재하의 숨기고 싶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그러나, 계속 그곳에 멈춰 서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된다.
“아, 이제 다 걸었네요! 패 공개해 볼까요?”
로건의 쾌활한 목소리에, 손재하가 조심스럽게 손에 들린 카드를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플러쉬. 이러면 과자는 다 내 거일 거 같아.”
“앗, 안 돼… 스트레이트였는데. 형, 너무해….”
“하하, 이러면 시우한테 과자 하나는 줘야겠다.”
손재하가 웃는 모습은, 김춘용이 돌아오기 전에도, 돌아온 후에도 같았다.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고, 어떤 입모양으로 웃는지 보이지 않게.
그러나, 새어 나오는 소리는 부드럽게.
그 모습을 향해 시선을 한 번 준 김춘용은, 손재하가 내려놓은 카드 옆에 자신의 패를 내던졌다.
“―풀하우스요. 제가 이겼네요.”
“어어?”
김춘용과 손재하의 시선이 한 번 마주쳤다.
김춘용은 그 눈을 빤히 바라보며 손재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제스처와 어조. 그리고 달라진 방법까지.
“하하, 이제 카드 게임은 그만해야죠! 안무 연습 시간만 달라졌다뿐이지, 저희 오늘 할 일 많잖아요?”
김춘용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놈의 렉쓰레기인 나도 변했는데, 재하 형이 못 변하겠어.’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할 뿐이었다.
정신 못 차리고 땅바닥이나 굴러다니던 김춘용에게는 그게 거짓말처럼 찾아온 엑스의 목소리였지만, 손재하에게는 달랐다.
“…으응, 그렇지. 할 일 많지.”
“가요, 재하 형.”
손재하에게는, 그와 어울리게 부드럽고 따듯한 안배가 준비될 예정이었다.
* * *
모든 일은 티가 나지 않았다.
“‘각자 멤버들에게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템을 하나씩 사 오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해 주세요…’ 오, 나 이거 전부터 생각했던 거 있는데. 진짜 잘 됐다!”
“유찬 형, 저를 보면 뭘 사야 할지 알겠네요. You Know, 제가 같이 방에서 지내면서 몇 번 얘기한 적 있잖아요?”
“뭐어? 로건, 솔직히 그 기타는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야? 우리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안무 레슨 시간이 미뤄진 걸로 인해서 붕 뜬 시간에 이때다! 싶었던 리얼리티 제작진이 시킨 미션에도 다들 아주 자연스럽게 반응한다든가.
“아, 재하 형! 이쪽이요. 이쪽.”
“어? 다들 벌써 와 있었구나. 오면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네에… 형, 바빠 보이길래요.”
“하하… 아냐, 별로 안 바빴어. 그리고 다 해야 하는 일인데, 뭐.”
“그래도요. 그리고, 매니저님 붙으면… 미리 나와 있어야, 할 테니까.”
회사에 다녀온 손재하가 굳이 먼저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다른 멤버들이 미리 벤으로 향해서 대기하고 있었다든가.
“…벌써 누가 물을 가져다 뒀네요?”
“음? 아, 그거. 우리 오기 전부터 여기 있더라고. 다른 분이 두고 간 걸 수도?”
“으음, 그러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제가 나가서 음료수라도….”
벌컥―
“헤이, 티오제 멤버들? 이 음료수는 화성이가 쏘는 겁니다!”
“…와하하! 안 사와도 되겠다, 재하야. 화성이가 쏜다는데? 정산도 받은 적 없는 애가 어디서 저렇게 돈이 나서 쓴대.”
평소 손재하라는 사람이 천성에 기인해 세심하게 살피던 사소한 부분들.
혹은, 너무 자연스럽게 존재해서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까지도.
너무나도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둔한 사람은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잠깐… 쉬었다가, 더… 하도록 해요. 춘용, 씨는… 잠깐만….”
“넵!”
“유찬 형. 밑에 편의점 잠깐만 다녀올래요?”
“오, 이번에도 네가 쏘는 거지?”
“아잇, 귀여운 동생한테 뭐 좀 사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예민한 사람은 어떨까?
손재하 말고도, 티오제에는 분명 예민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어쩌면 이쪽이 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 사람 말이다.
“Holy. 시우, 우리 안무, 정말 너무 어려운 거 같지 않아요? 춘용 형이랑 다솔 쌤이 보여주실 땐 쉬워 보였는데요! 제 몸이 문제인 걸까요?”
오후로 미뤄진 안무 레슨 중.
잠깐 쉬는 시간이 찾아오고, 티오제 멤버들 각자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몸을 옮긴 그때.
“아, 로건… 형.”
거울 앞에 앉아있던 장시우는, 제 곁으로 다가오는 로건에게서 살짝 떨어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렵긴 한데… 그래도, 춤이 멋지니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요.”
“I agree. 확실히 멋지긴 하죠! 게다가 이게 저희의 오리지널곡인데, 이걸로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면… 음? 뭐 보고 있었어요?”
“어, 뭘 좀 보고 있긴… 한데.”
“Sorry, 방해 안 할게요.”
“아, 아니에요. 방해 안 됐어요.”
장시우는 제가 보고 있던 SNS 창을 꺼 버리며, 제 옆에 앉은 로건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로건 형은 아직 잘 못 느끼는 걸까?’
같이 방을 쓰며 장시우가 로건에게서 느낀 바가 하나 있다면.
―생각보다 타인에게 무관심하다는 점.
상대방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존중해 주고, 원치 않으면 그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장시우는 오히려 그런 무관심이 고마웠으니까.
‘좋은… 사람 같아.’
지금껏 자신이 만나 온 이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인 로건에게 내심 속으로 천천히 호감을 쌓고 있던 장시우는, 로건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로건 형.”
“Huh? 왜요, 왜요? 무슨 일이에요?”
“어… 있잖아요.”
오늘,
“좀 다들, 친절하고 부드러운 거 같아요.”
“What? 세상이 다정하고 친절하다고요? 그건… 좋은 건데요!”
“아이, 그런 의미는 아닌데….”
어젯밤 놀이터에서의 대화에 참여한 건 아니었지만, 장시우는 분명히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
다들 데뷔 준비 때문에 엄청나게 바쁘던 와중이 아니던가.
때문에, 평소에는 갑작스럽게 생겨난 돌발 상황을 풀어나갈 때는 뻣뻣한 느낌이 없지 않아있었는데.
“그런데, 오늘은 좀더 유연… 하고, 조직적으로 짜여진 느낌이라서요.”
“그런… 그런가요? 씁,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렇지만요.”
그렇게, 예민하고 예민한 장시우가 로건의 말에 앞머리가 살랑거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맞아, 나도 그랬던 거 같아.”
앉아있던 둘의 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꽂혀 들었다.
“아… 재하 형.”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는데, 시우도 그런 줄은 몰랐네.”
“으음, 근데 로건 형은, 또 잘 모르겠다고 해서… 착각일 수도 있어요.”
“그런가?”
손재하는 뒤편의 거울에 자기 뒤통수 기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착각이 아닐걸.”
* * *
“일단, 지금… 연습, 한 곳까지는. 다들 잘 따라… 오니까요. 수정은… 하지 말죠.”
“아, 수정을 안 한다는 말씀은…?”
“댄스 브레이크도… 그대로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다솔에게 90도로 인사를 한 나는, 그의 개인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매우 좋다.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지도 않고, 재하 형이 당황할 만한 요소도 그다지 없으며, 오히려 팀 시너지는 더 오른 상태.
형이 아예 눈치채지 못 하는 건 생각도 안 했다. 내가 재하 형 성격을 아는데, 설마 눈치를 못 채겠냐고.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중요한 건, 이런 방식이 ‘먹힌다’는 걸 재하 형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조금은 느슨해도 괜찮다는 것.
그렇게 한다고 해서, 팀이 완전히 와해된다 거나 무너질 일은 없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저, 춘용아.”
…내가 사무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복도에서 팔짱을 끼고 기다리던 재하 형이 나를 부르기 전까지는.
“어, 어. 네?”
형의 표정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우리가 미션을 하고, 벤에 타고, 연습을 하고. 무얼 하든, 언제나.
그러나.
“이렇게 안 해도 괜찮아.”
“…에?”
아, 이것까지 다를 것까진 없었는데!
내가 나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자, 재하 형은 끼고 있던 팔짱을 천천히 풀며 내게로 다가왔다.
한 발짝, 두 발짝.
분명 가까워지고 있는데, 왜 마음은 멀어지는 것 같지?
“네가 뭘 알았고, 왜 이런 걸 생각했는지는 알겠어. 응, 솔직히 좋은 거 같아. 그렇지만….”
“…….”
“정말 나를 위하는 거면, 안 해 줬으면 좋겠어.”
아.
이렇게 했는데도 이런 반응이다?
나는 가만히 이마를 짚으며 재하 형의 살짝 떨리는 손을 바라봤다.
그래. 어제 컨셉 포토 촬영이 이맘때였으니까, 지금 형 약 먹을 시간이겠지.
그리고 그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거고.
나름 형에게 티가 날 듯, 안 날 듯 잘 조절을 했는데도 부드럽게 돌아온 거절에, 나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까지만요.”
“응?”
“형, 일단 오늘 밤까지만 이렇게 다 겪어 보고, 밤에 저랑 얘기해요.”
자기를 위한다면 굳이 변화를 부르지 마라. 그게 아니더라도, 풍파는 계속해서 찾아온다.
그렇게 생각하는 형의 생각을 바뀌게 하려면,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지화성이나 유찬 형의 말마따나.
조금 더, 직접적인 방법이 필요한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