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0)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10화
당시를 찬찬히 설명하던 지화성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작게 중얼거렸다.
“…정신과 약이었어요. 약 봉투에 적힌 병원 이름 제대로 봤거든요.”
나는 침울해진 지화성을 잠깐 바라보다가, 가만히 이마를 짚었다.
아니, 진짜, 정말로.
…상황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내가 굳이 ‘손재하와 지화성의 관계 개선 프로젝트 B안’이라는 같지도 않은 거창한 이름을 붙여가며 화성이에게 제안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를 듣게 되면 분명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열화 버전으로 지화성이 몸소 체험하게 된다면, 자연히 재하 형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테니까.
“…….”
솔직하게 인정을 해야 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좋다는 건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그러니까, 어떤 날은 그게 최악이 될 수도 있는 거지.
화성이의 오늘처럼.
“…그래서 저희 리테이크 갔던 거예요. 제가 표정 관리를 하나도 못 해서. 재하 형은 그때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제가 너무 못 해서. 모레 다시 찍는 이유도 뻔하죠. 리테이크 사진도 개같이 나왔을 테니까요.”
급기야, 지화성의 그 낮은 목소리에는 천천히 자책이 담기기까지 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생은 무슨… 이젠 그냥 꼴도 보기 싫을 거예요. 그동안, 일부러 그런 모습 안 보여 주려고 형이 일부러 부탁한 것도 모른 척한 미친놈이 저인,”
“잠깐! 잠깐만, 화성아. 지금 너 스스로를 너무 탓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럴 거까진 없어.”
그저 멤버들과 일탈을 겸해 러닝을 뛸 생각으로 따라 나왔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유찬 형은, 그럼에도 침착하고 논리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금 들은 걸로는 그냥, 네가 재하가 정신과 약 먹고 있는 걸 본 거 아냐? 그게 다인 거지? 재하가 그때 잠깐 표정이 안 좋아졌던 거고, 그 이후로는 딱히 너한테 말이 없었고.”
“맞… 아요.”
“그럼 일단, 내 생각에는 이렇게 네가 침울해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
“…네?”
“재하가 아무렇지 않았다고 그랬으니까, 너한테 화났다기 보다는… 그냥, 그게 없던 일이길 바라는 걸로 보여.”
자기 뺨을 몇 번 더듬은 유찬 형은 손가락을 몇 개 헤아리더니,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재하가 약을 먹는 이유가 있을 거고. 그걸 우리한테 알리기 싫어하는 이유도 있을 거잖아? 그걸 좀 분리해서 봐야 할 거 같은데.”
유찬 형의 논리정연한 말을 듣고 있자니, 약간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와, 진짜….
저래서 사람이 대학을 가야 하나?
물론, 유찬 형이 나중에 안다면 ‘나는 대학에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어!’라며 너스레를 떨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두통 때문에 살짝 흐려졌던 눈앞이 천천히 선명해졌다.
내 앞에 있는 멤버들의 멀끔한 얼굴에 비친 가로등 불빛마저 제대로 보일 때쯤.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재하 형은.
“…그것도 부담으로 느껴질 거라고 여긴 거 같아요.”
“춘용아, 뭐라고?”
“다른 멤버들이 자기가 그런 약을 먹는다는 걸 알고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갈 거라 생각한 거 아닐까요?”
퍼즐이 천천히 맞춰진다.
형이 그런 약을 언제부터 먹었는지, 지화성도, 8년 동안 한 숙소에 살던 렉쓰레기도 몰랐던 이유.
알게 되면 신경이 쓰이고, 괴롭고,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숨긴 거네.
“하, 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게 맞는 거 같아. 춘용아. 넌 진짜… 대단하네.”
유찬 형의 헛웃음 섞인 감탄에, 나는 약간 씁쓸한 미소로 화답해 줬다.
아니에요, 유찬 형.
애당초 제가 재하 형 상태가 어떤지 진작 눈치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걸요!
“휴….”
한 배를 탔다고, 내게는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다던 문장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하여튼, 참… 재하 성격이 착하다고 해야 할지, 책임감이 넘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약간, 너무 간 생각 같기도 하고?”
유찬 형은 진정으로 의아한 낯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 유찬 형이 재하 형이 알고 있는 게 어떤 건지, 얼마나 오랫동안 알아 왔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였다.
그 스펙을 하나하나 들으면 이해가 안 될 수가 없을걸.
“…재하 형은 장남이에요.”
지화성은 눈앞에 마구 쏟아진 자기 금발을 대강 머리로 넘기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까 유찬 형이 ‘너와 재하 관계가 완전 끝난 건 아니다’라고 말해 준 덕분에, 약간은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덕분에, 내가 머리로만 한 생각을 자기 입으로 읊어 주기 시작했다.
“응? 그래? 그때 생방송 때 부모님이 오신 건 봤는데….”
“동생만 세 명이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계세요. 다 형을 엄청 의지하고 있고요. 애초에, 재하 형 집은 전주에서 제일 큰 떡집을 해요. 하루 손님만 천 단위라나.”
“윽. 그건 좀 힘, 힘들 거 같은데?”
지화성은 곧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런 곳에 있다가 서울에 왔는데 회사에서도 에이스라서 엄청 기대하지, 온갖 연습생들이 도와 달라고 그러지. 와중에 팀에서는 리더까지 맡았지. 이제 알겠어요. 와, 씨. 알겠다고요.”
우리 중 그 누구도 다음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같았다.
…그동안 자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랬네.
자, 이제 왜 재하 형이 약을 먹는지와, 그걸 숨기려고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두 알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결책을 강구해야겠지.
“당장 무언가를 하긴 어려울 거 같은데. 혹시 생각해 본 거 있어?”
“제가 그냥 가서 대놓고 얘기할까요? 혼자만 짊어지지 말라고. 어차피 약 먹는 거까지 다 봤는데, 더 이상 모르는 척하고 입 다물고 있기도….”
“아냐, 화성아. 그러진 마. 그러다가 재하 형 너 진짜 투명인간 취급한다.”
“윽….”
나는 빠르게 지화성의 성급한 결정을 막아서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건 100% 역효과가 날 뿐이었다.
특히, 재하 형처럼 조심스러운 사람에게는.
나는 최대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실패하면 안 됐다.
왜냐하면, 이제 꺾이는 사람이 지화성이 아니라 재하 형이 되었기 때문에.
데뷔가 코앞인데, 리더 형 멘탈을 깨트려서는 안 되잖아.
화성이야 어르고 달래서 회복시킬 수 있지만, 재하 형은 내가 그래 본 적이 없다니까.
“…이렇게 한 번 해 봐요, 우리. 로건이랑 시우한테는 은근히 돕게 만드는 걸로 하고.”
나는 손가락을 탁, 튕기며 두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B안 따위보다는, 훨씬 나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기에 이름을 붙이지 않을 거였고.
그래, 관계 개선 프로젝트는 무슨. 사람 관계가 그런다고 좋아지고 나빠지고 하나?
…직접 몸으로 겪어 봐야 아는 거지.
* * *
달도, 별도 잘 보이지 않는 새벽 3시.
티오제의 숙소에 그 누구보다 늦게 들어온 손재하는, 굳어진 얼굴 근육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며 욕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 하필이면,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표정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필 화성이한테 그걸 들킬 줄은 몰랐어. …그동안 정말 잘 숨겨 오다가, 하필.’
당황이 명백히 드러나던 지화성의 얼굴을 떠올린 손재하는, 두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침음했다.
어차피 없던 일인 척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원래도 멀쩡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이미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화성에게 손재하는 늘 좋은 사람이었음에도, 손재하의 머리에는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자신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강박적으로 착하게 굴어야만 한다고.
어느 좋은 사람이 앞으로 활동에 분명히 지장이 생길 거라고 멤버를 갈아치울 생각을 하며, 그런 못된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굴 수가 있냐며 말이다.
수면 부족과 긴장, 불안. 가끔 뻣뻣해지는 사지.
두려움에 떨며 몰래 찾은 병원에서 심각하게 혹시 어디서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 아니냐는 말과 함께 약을 처방받으면서도 그런 생각은 쉽사리 변하질 않았다.
손재하는 그게 병이 아니라 제 천성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신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고.
제 얼굴을 몇 번 마구 문지른 손재하는, 천천히 자기 침대로 몸을 옮기며 옆에 누워 잠든 김춘용을 바라봤다.
서바이벌을 하며 손재하가 보아온 김춘용은, 짧게 말해서….
아마도, 본인과 가장 닮은 사람.
이 애라면 자기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도 괜찮지, 하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는.
‘…아마 화성이랑 얘기를 할 거야. 그리고, 어떻게든 또 나를 도와 보겠다고 하겠지.’
그건 정말이지, 손재하가 가장 바라지 않는 일 중 하나였다.
손재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내일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되짚어봤다.
그리고, 멤버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평소랑 같아야 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게.’
그게 맞으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적어도,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니까.
제 입꼬리를 양 손가락으로 한 번 쭉, 올린 손재하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위해 억지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잠들고 일어난 후에는….
손재하가 전혀, 상상도 못 한 일들이 일어날 예정이었다.
* * *
“…어.”
아침에 눈을 뜬 손재하는, 이상하리만치 바깥이 너무 밝다는 생각을 하며 두 눈을 끔뻑였다.
[AM 10:12]그런 아침이 있지 않은가.
무서울 정도로 개운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갑자기 잊고 있던 사실이 훅 기억나는 아침.
“…잠깐만.”
안무 연습 가야 하는데?
“다들, 일어났어? 우리 지금 되게 늦었는데.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
황급히 트레이닝복과 모자를 머리에 끼운 손재하가 거실로 나와 마주한 광경은.
“Oh, 재하 형. 일어났네요! 딱 좋은 타이밍이에요. 새로 셔플할 거거든요. 와서 끼겠어요?”
아침 댓바람부터 포커 게임을 펼쳐 놓은 다섯 명의 멤버들이었다.
제가 일찍 일어나지 않고, 미리 스케줄을 공지하지 않은 까닭이라 여긴 손재하는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펴며 조근조근 입을 열었다.
“우리, 안무 연습 가야 할 시간이야. 음. 지금 늦었으니까, 다들 빨리 준비해서….”
“아, 그거요.”
손재하의 여상한 목소리를 들은 김춘용은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다솔 쌤한테 연락 받았는데요, 이따 2시로 레슨 미루신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형 더 자게 둔 거예요.”
“…어? 그걸 언제 들은 거야?”
“아침에요? 8시인가. 갑자기 외부 강의 잡혔다고 하시더라고요.”
모든 스케줄을 정리해서 들고 다니는 손재하에게는 충분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건 이해가 가능한 선이었다.
진다솔은 AG 소속이 아니라 따로 초빙해서 데리고 온 안무가였고, 그의 일정이 조금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은 그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구나. 몰랐네. 알려줘서 고마워, 춘용아.”
“하하, 뭘요. 형도 와서 껴요! 오늘 일정은 좀 널널할 거 같더라고요.”
김춘용은 송곳니까지 내보이며 손재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짓는 그런 웃음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디 일정이 널널하기만 하겠어요, 형?’
오늘 있을 모든 일들이.
손재하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속 흘러갈 예정이었다.
꼭, 누군가가 짜 놓은 마법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