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9)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09화
* * *
모든 일정이 끝난 늦은 밤.
“후….”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아주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힘들다.
…그것도 엄청!
결론만 말하자면, 카메라 테스트를 가장했던 컨셉 포토 촬영은 그럭저럭 마무리됐다.
듣기로는 오늘 별로 안 좋았던 페어를 모레 한 번 더 촬영하고 더 나은 걸 사이트에 업로드 한다나, 뭐라나.
중간에 내 물 빠진 머리를 본 문윤하 디렉터님께서 고함을 내지르는 바람에, 촬영 순서가 가장 뒤로 밀리긴 했지만, 뭐.
“아니 나는 춘용씨 헤어, 아예 완전 핑크로 가도 될 것 같….”
“아, 그냥 빨간색은 안 될까요? 제가 그, 핑크를 좀.”
“아, 핑크는 싫다? 뭐, 그럼 저희가 생각해 둔 게 좀 있는데. 봐 봐요. 이런 건 어때요? 지금 기장이 좀 기니까, 살짝 쳐내고 약간 옴브레 느낌으로.”
“좋네요, 좋아요. 완전 좋아요!”
핑크를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연우 형이 조언해 줬던 걸 듣는 게 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그리고, 우리 지금 컨셉을 보면 핑크가 아니라 이 색으로 하는 게 맞았다고.
그리고, 당장에 중요한 건 내 머리카락색 같은 게 아니니까.
“…….”
붉은색과 검정색이 섞여 다소 희한해진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봤다.
촬영장에서 있었던 이슈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내 머릿속에 콱 박혀 버린 것이 몇 개 있었다.
‘안 좋았던 페어’가 다름 아닌 재하 형과 화성이 페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재하 형을 면밀히 살피다가 발견한 게…
손목 스카프 틈새에 껴있던, 알약이라는 것.
대충 형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종류의 약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마 먹던 와중에 실수로 하나 떨어뜨린 게 분명해 보였다.
늘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누구보다 늦게 자고, 바쁘디바쁜 리더 형이 약을 먹는다, 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몰라서는 안 됐다.
…대체 언제부터 먹어 온 거지?
왜?
애로우즈 시절에도 먹었던 건가?
그런 거라면 나는 왜 몰랐지? 아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는 그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했던 미친놈이었으니까!
“끄으으….”
리얼리티 촬영용 카메라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 심란함을 티 내지 않기 위해선 이불을 덮어 써야만 했다.
어쨌든, 그런 일들로 인해서 내가 정리할 내용은 간단했다.
첫째, 재하 형은 약… 을 먹고 있는 것 같다.
둘째, 그리고, 그 형이 취하는 태도가 방어적인 것도 그 영향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셋째, 그 사실을 알게 된 내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푸핫….”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이럴 거면 정리를 왜 하냐고, 진짜.
“…….”
나는 비어 있는 옆자리 침대를 바라보며, 가만히 입을 일자로 만들었다.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에게 ‘들어가서 먼저 쉬고 있어라’라는 말을 다정하게 건넨 재하 형은 아직까지도 숙소로 복귀하지 않은 와중이었다.
잘 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신경 쓰이고, 뭔가 조금씩 거슬리는데.
제대로 된 실마리가 안 잡힌단 말이지.
“어휴, 일단 자자. 자. 내일도 일이 산더미다….”
그렇게 내가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붙잡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려던 그때.
――.
휴대폰 화면이 깜빡거렸다.
언제나와 같이 나의 최악의 카운슬러, 엑스였다.
– X: 진짜 쓸데없는 걸로 생각이 많다 니는 ㅡㅡ
– X: 아니 지금 되게 물 흐르듯이 잘 흐르고 있는데? 왜 사서 생각을 하지?
– X: 손재하랑 지화성이랑 개싸운 거 > 어캐든 해결함
– X: 앨범 준비 > 잘 되어 가고 있음
– X: 김춘용 > 또 쓸데없는 걸로 생각하면서 머리 쓰고 있음
– X: 저 기 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 X: 너 그런거 1나1나 신경쓰면 신인상 못 받는다
평소 같으면 얘가 또 사람 속 긁으려고 이상한 말 보내는구나, 하겠지만.
– X: 머 손재하가 뭔지도 모를 약 몰래 먹는 거? 이상할 수 있지…
– X: 근데 지금 그래서 걔가 데뷔 준비에 피해를 주나?
– X: 지화성이랑 손재하 싸우는 거 해결해 보려고 한 거 [ 이거는 이해가 된다고 왜냐면 지화성 성격에 안 풀었으면 팀 분위기 망했을 테니까
– X: 그치만 손재하는 아니잖아?? 감정에 안 휘둘리고 자기 할 일 열심히 하잖아??
– X: 너 그러는 거 예전에 실수한 거 미안해서 자꾸 신경 쓰는 거야
– X: 야 미안하지만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단다 그걸 니가 전부 알 수는 없어
– X: 걍 좀! 받아들여! 그리고 쳐자!
웬일인지, 이번에는 엑스가 핵심을 꿰뚫었다.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부분을 슬쩍 문지르며, 나는 천천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맞는 말이었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그렇지만 말이야.
…악성 멤버로 살던 나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우기면서 살아서 그 지경이 된 거다, 이 자식아.
“어후, 목말라. 물, 물….”
그렇게, 심란함을 이겨 내지 못한 내가 방문을 벌컥 열어 재낀 그 순간.
“어, 어?”
“더헉, 용용 형.”
나는 방문 앞에서 막 노크를 하려고 하던 지화성과 마주쳐야만 했다.
“뭐야. 재하 형 때문에? 형 아직 안 들어왔….”
“쉿, 쉿!”
살짝 오바스럽게 내 입을 틀어막은 지화성은, 거실에 박혀 있는 카메라 쪽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용용 형, 있잖아요. 혹시….”
산책 다녀올래요?
“하하. 멤버들 몰래 둘만? 밑에 아파트 한 바퀴만 쭉 돌고 오죠. 지금 새벽이니까, 사람도 없고 좋을걸요! 형도 계속 스튜디오만 돌아서 답답하다고 그랬잖아요.”
굳이 목소리를 낮추려고 하지 않는 부분에서, 나는 무언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 무대뽀 화성이가 드디어, 프로페셔널하게 카메라 의식을 한다는 점을.
내가 지화성더러 스튜디오가 답답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근데도, 굳이 ‘우리 둘 다 소소한 일탈을 하고 오자’고 말을 하는 이유는….
따로 말할 게 있다, 이 말씀이지.
“…그럼 러닝 좀 같이 뛰고 오자. 나 모자 챙겨올게.”
“좋아요, 형. 빨리 나와요.”
나는 대강 던져놓은 옷가지 사이에 섞여 있을 모자를 찾으며, 녀석이 나를 이렇게 불러낸 이유를 짚어 봤다.
높은 확률로 재하 형 때문이겠지.
아까 재하 형의 손이 부자연스럽다고 리테이크를 함께한 것도 지화성이었고, 가까이 붙어 있으면 평소에 보기 어려운 걸 눈치채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까.
뭐. 지화성이 재하 형에게 ‘믿을 만한 동생’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그거 말고 다른 일로 나를 불러내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고.
어쨌든.
심란한 와중에 같은 주제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방금 막 엑스가 그런 걸 ‘신경 쓰는 건 목표를 이루는 데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 말하긴 했지만….
“…….”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며 침대 사이에 있는 거울을 한 번 바라봤다.
그건, 내가 꿈속에서 봤던 렉쓰레기와 퍽 닮은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망가지는 건 아주 작은 계기를 필요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징조를 발견했다면 서둘러 막는 게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일이었고.
“어, 화성아. 이제 나가….”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은 후 지화성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그때.
“에헤이. 러닝 갈 거면 같이 가야지, 얘들아. 형 두고 가려고?”
“어….”
나는 지화성의 목에 팔을 턱 두르고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지화성 쟤.
“나 이런 거 빠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괜히 학교는 안 나가는데 동아리는 다 나간 게 아니야!”
룸메이트 유찬 형 안 자는데 그냥 빠져나왔던 거야?
…이래서야, 은밀하게 정보 교환을 하기도 어렵잖아!
내 날카로운 눈빛을 피해 딴청 피우는 녀석의 머리통에 주먹을 한 번 쥐어박아 준 나는,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비장하게 말했다.
“…더 이상 일탈하는 멤버를 늘리고 싶지 않으니까, 빨리 나갑시다.”
다른 거라면 로건과 시우를 깨워서 의논해도 될 일이지만….
이건 재하 형의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일단은, 알고 있는 인원을 최소로 하는 게 먼저였다.
* * *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숙소 아파트 옆에 위치한 한 놀이터였다.
어린이용 그네에 커다래도 한참 커다란 남자들이 앉아있는 꼴이란.
웃기기도 하고, 갑자기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장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러닝 뛴다면서 왜 하필 이런 곳을?’이라는 표정으로 그네를 타는 유찬 형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유찬 형.”
“어, 이제 왜 여기 왔는지 설명해 줄 거야?”
“…네. 말해야죠, 그럼. 계속 그네만 탈 수도 없고.”
뭐라고 말문을 열면 좋을까?
나는 잠깐 두 눈을 끔뻑이며 작금의 사태가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는지 짚어 보려고 애썼다.
지화성과 재하 형이 내가 숙소 온 첫날 다툰 이유부터?
그걸 빼면, 뭐. 재하 형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힘든 일을 숨기고 있다는 거?
하나 더 빼서, 재하 형이 뭔가 약을 먹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야 하나?
그렇게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 내 말머리를 가로챈 건 지화성이었다.
“유찬 형. 저랑 재하 형이 다퉜던 거, 혹시 기억하고 있어요? 아잇, 뭐. 다퉜다기에는… 제가 그냥 고함지른 거지만.”
“…아.”
저기서부터 말할 생각이구나.
“어. 기억하지. 잊기도 어려운 거잖아, 그런 건.”
워낙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유찬 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로등 불빛이 우리 셋 사이에 떨어지고, 동시에 화성이의 목소리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게, 음. 제가 재하 형한테 조금 서운한 게 있어서 그랬던 건데요. 그걸 뭐, 용용 형이 어떻게 잘 해결해 줘서 풀리겠구나 싶었는데.”
급기야 고개를 푹 숙인 지화성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씹어 뱉었다.
“어… 잘 풀리는 방법이 아니었나 봐요.”
아니면, 제가 전부 다 망쳐버렸거나….
그리고 그 이후로, 지화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와 유찬 형의 탄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예상하던 것에 대한 답이기도 했고.
* * *
요 며칠 들어 지화성은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확실히, 김춘용의 제안을 들은 이후로 듣는 귀와 보는 눈이 훨씬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아, 저기 스텝분. 담배 피우러 가시네? 저쪽으로 가면 담배 같이 피는 분들 얘기도 좀 들어볼 수 있겠다.’
‘와씨, 저 중요한 얘기를 아무 곳에서나 막 말씀하시잖아? 우리 앨범 곡이 하나 더 늘어날 거라고? 근데 왜 우리한테 아무 귀띔도 안 주시는 거지?’
귀동냥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화성이 알게 된 게 많았다. 굳이, 김춘용이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아도 말이다.
특히, 방금 막 주워들은 소식.
티오제의 첫 미니 앨범 곡이 하나 더 늘어날 거라는 것.
이는 레코딩 일정이 더 생긴다는 뜻이기도 했고, 멤버들의 차후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잠깐, 잠깐. 이건….”
…아직 재하 형도 모를 거 같은데?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지화성이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멤버들 일자 레코딩 일정이랑 스케줄은 나도 아니까, 같이 의논하자고 해야겠다.’
아, 드디어 이걸로 내가 믿고 따르던 형에게 도움되는 동생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겠다.
힘들 때 의지하고, 대화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연습생 생활로 인해서 좁아진 인간관계는 사람을 다소 맹목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병아리가 처음 본 대상을 제 부모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대구에서 올라와 ‘말투가 험하고 무섭다’며 AG 연습생들과 약간 거리감을 갖던 지화성에게는, 손재하가 그런 인물이었다고.
그래서, 지화성은 평소보다도 훨씬 빠르게 손재하가 대기 중인 대기실로 향했다.
크리스천인 손재하가 ‘촬영 전에 기도를 하고 싶다’며 항상 자리를 잠깐 비워 줄 걸 요구했던 사실을, 잠깐 잊어 버린 척하며 말이다.
방금 들은 걸 알려주기 위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
“재하 형, 누가 왔게요!”
그리고 지화성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대기실 안에는.
“…….”
이제 막 약 봉투를 뜯은 손재하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