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4)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14화
* * *
막상 밖으로 나가자 정했다고 해도, 이제 막 데뷔를 앞둔 아이돌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편의점 앞에 있는 노상을 갈 거야, 아니면 뭐, 한강을 갈 거야.
그렇게 남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곳을 갔다가는 분명 말이 나올 게 뻔했다.
그러니 어쩌겠어.
유찬이 형과 화성이와 함께, 진솔한 대화를 했던 놀이터를 가는 수밖에는.
“하하… 여기 되게 아기자기하다. 응.”
비장하게 출발한 것치고, 우리 키에 비해 너무 깜찍한 사이즈의 장소로 인도하자 재하 형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 얘기들 했던 거야? 어쩐지,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평소 자는 거랑 다르게 좀 어색하게 누워 있더라. 막, 후드도 입고 있고.”
“아, 뭐… 급하게 올라간 건 사실이죠.”
“그렇지? 그런 거 같더라. 으음… 그네라. 내가 직접 앉는 건 되게 오랜만이네… 밀어주는 건 많이 해 봤는데.”
재하 형은 그때 화성이가 앉아 울분을 토했던 그네에 천천히 엉덩이를 붙이며, 잠시 추억에 잠긴 얼굴을 했다.
“동생들이랑 내 나이 차이가 많아서, 자주 밀어줘야 했거든.”
분명 키는 화성이가 훨씬 큼에도, 그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감은 형이 더 거대했다.
왤까?
재하 형이 등에 지고 있는 짐이 너무 커서?
아니면, 내게도 재하 형과 이런 대화를 하는 건 지난 8년의 세월을 되짚어 봐도 처음이라서?
쏴아아아―
잠깐의 정적.
바람이 흐르고, 먼저 다시 입을 연 건 재하 형이었다.
“음, 왜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는지 어느 정도 알 거 같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너도 알겠지만….”
“…….”
“네가 시간 좀 내어 달라는 말을 굳이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이렇게나 공기가 맑은데, 형이 꺼내는 문장은 먼지가 가득한 창고 방에나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하하… 그래도, 마음은 고마워. 정말이야. 그렇지만 나 약도 꼬박꼬박 먹고 있고. 그거랑 내가 여러 일을 도맡아서 하는 건 또 상관없는 일이니까.”
예의 저 살짝 부서지는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 하니, 역시 예상대로 재하 형은 자기 의견을 꺾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후….”
그래. 재하 형한테 제일 큰 문제가 저거라고, 지금.
남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제가, 정작 당사자인 형에게는 딱히 문제로 인지되지 않는다는 점.
옆에 있는 우리는 억장이 무너지고 속상하지만, 재하 형은 ‘그게 뭐? 그게 무슨 상관인데?’라는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내가 가오옌을 일일 매니저로 불러서 ‘사실 지금까지 형이 했던 일들은 모두 매니저가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형은 너무 많은 일을 지금 한꺼번에 하고 있다고요!’ 같은 사실을 알려줘도 말이다.
“매니저는 이만 퇴근해 보도록 하겠다. 내일 새벽에 다시 보도록 하지. 이렇게 일찍 일찍 들어가야, 안 좋은 선례를 남기지 않고 바른 노동 문화를 인지시킬 수 있다. 물론, 나의 촬영팀들에게도! 이게 노이지 보이 채널의 코어다!”
“그, 그래….”
“가오옌은 대한민국 법이 지정하는 근무 시간을 어기지 않아. 이게 바로 홍콩 남자가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 다들 알고 있도록.”
…녀석에게 숙소 상주 매니저 역까지 시켜야 했나, 싶으면서도.
그건 너무 간 거 같고.
“…….”
툭툭-
나는 가만히,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손가락으로 그네 끈을 건드리는 재하 형을 바라봤다.
밤공기 너머로 살짝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형의 검은 눈동자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안경에 가려져 있었다.
그 속내를 눈치채지 못 하게 하려는 것처럼.
“…….”
형이 저런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몰라?
리얼리티 카메라가 달리기 전, 형의 방을 찾아갔을 때 그렇게 단호하게 들은 말인데.
게다가 그런 상황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되면, 당연하게도 자신이 그런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곤 한다.
지난 삶에서 내가 나를 스스로 쓰레기라고 정의하고, 바뀔 생각조차 안 했던 것처럼.
형의 생각을 돌려 보겠답시고 여기까지 불러냈지만, 사실 나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그때 내가 한 행동은 쓰레기가 맞았거든.
아무리 내가 힘들다고, 세상 사람들 전부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도 그러면 안 됐고.
…아마 지금 형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기 때문에 내 사정을 제대로 모르면서도, 재하 형이 우리가 한 배를 탔다고 설명한 거다.
결국 우리는 자기 생각을 꺾을 마음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런 형에게로 한 발짝, 다가가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하 형.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래도.
“응?”
정말 많이 양보해서, 우리가 애초에 그런 부류라고 쳐도.
“…그네 밀어 줄까요?”
어쩌라고.
“으응…? 그네? 방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네,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그네 밀어 줄까요, 형?”
형을 배려하고, 배려 받는 것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리고, 그간 해온 일들이 그저 좋기만 한 게 아니었다고 인지시키는 거.
좋지, 좋아.
근데, 나는 나 때문에 고생하던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고 렉쓰레기로 살만큼 이기적인 종자였기 때문에….
이번에 굳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면 나만 하고 싶단 말이다.
엑스라는 최악의 카운슬러가 분명 계약 따위는 결국 실패하리라 점찍은 최악의 아이돌 멤버답게.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앞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설명하고 자기를 설득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재하 형의 두 눈이 당황으로 커다랗게 뜨였다.
가오옌이 일일 매니저로 찾아왔을 때보다도.
혹은, 내가 유찬 형과 화성이와 작당하고 형을 돕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도 더.
그렇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내게는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유쾌한 척 어깨를 으쓱이며 형을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아니, 왜. 동생들 밀어주는 건 많이 해 봤는데, 형이 그네 타는 건 오랜만이라면서요. 밀어 줄게요. 한 번 타 봐요. 재밌을걸요?”
“아니, 그럴 필요는, 잠깐, 잠깐. 춘용아. 우리 다른 얘기 하려고 했던 게―”
“꽉 잡아요, 재하 형!”
“…헉――.”
내가 이때까지 춤추고 싸돌아다니던 온 힘을 다해 형의 등을 뒤에서 밀자, 재하 형은 순간적으로 뭐라 소리도 못 지르고 그네 끈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딱히 이럴 때 쓰려고 춤을 열심히 춘 건 아닌데….
“재밌죠, 재하 형!”
기분은 더럽게 상쾌하네.
“춘용, 춘용아! 머, 멈춰 줄래?! 잠깐만….”
“그냥 가만히 있어요! 안 멈출 거니까!”
몇 번 발을 멈춰 보려고 애쓰던 형은, 그러기 무섭게 다시 뒤에서 자기 등을 밀어 주는 내 손길을 보고는 곧 그 판단을 포기했다.
키에 비해 퍽 가벼운 형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오르고, 내린다.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어린이용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데뷔 직전 아이돌 두 명이라.
남들이 보면 좀 웃기기야 하겠지?
그렇지만, 뭐….
내 과하게 쭉 찢어진 두 눈에, 그네 의자에 앉아 허공으로 떠오르는 재하 형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박혔다.
그건, 아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크지 않은 등이었다.
스물하나.
지금 형의 나이였다.
아직 세상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도 못 하고 웃자란 스물하나 말이다.
그런 스물하나가 아무도 없을 때 그네 좀 타는 게 어때서.
그럴 수도 있잖아?
…그렇게, 잠깐의 7세 남아 놀이가 끝나고.
“으아, 정말이지….”
내가 형을 미는 손을 멈췄을 때, 형의 얼굴에 올려져있던 안경이 코끝에 엉망으로 걸려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춘용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나 이해가 안 되거든. 분명, 네가 얘기하자고 부른….”
“저는 얘기하자고 한 게 아니라 시간 좀 내달라고 그랬고, 또 무엇보다도… 재밌었잖아요, 그렇죠?”
“…….”
재하 형은 언제나 그네를 밀어 주는 입장이다.
이제는 멀리 떨어진 집에서도, 매일같이 찾아가는 회사에서도, 눈을 뜨고 감는 우리 숙소에서도마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힘들겠냐고.
재밌겠냐고, 그게.
그네는 직접 타야 재밌는 거였다. 밀어 주는 건 하나도 재밌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번갈아 가면서 등을 매만져야만 모두가 행복한 거였다.
나는 안경을 벗으며 제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재하 형을 가만이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하 형.
“…부담의 문제가 아니에요. 형이 그 일 좀 안 한다고 세상 안 망해요. 아니, 아이돌 리더 한 명이 자기 일도 아닌 거 안 했다고 망할 그룹이면 차라리 망하는 게 낫지.”
“…….”
내가 왜 냅다 그네를 민 이유를 이제 알았는지, 형의 눈이 다시 차분해졌다.
“…네가 그렇게 얘기해도, 내가 안 바뀔 걸 알잖아. 넌 똑똑한 애니까.”
“물론이죠. 아, 똑똑하단 건 아니고요.”
이런 걸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제 나도 쉽게 알았다.
“근데, 솔직히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어요. 형은 계속 형 하던 거 하고, 저는 이제 제가 하려는 일 할게요.”
“그럼 결국 여기에 온 건….”
“아, 그건 좀 다르겠네요.”
나는 재하 형의 말을 잘라 먹으며,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천천히 말했다.
“형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
“그러니까, 굳이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요. 제가, 나아가서는 다른 멤버들이 마음대로 하는 건데. 왜 형이 부담을 가져요? 그냥 이 골칫덩어리들을 어쩐다, 하고 이마나 짚으면 될걸.”
“…….”
“아, 형이랑 재밌게 놀았으니까. 저는 이제 들어가 봐야겠네요. 그리고 형은….”
나는 그네를 미느라고 눈앞으로 마구 쏟아진 머리카락을 뒤로 슥, 넘기며 놀이터 바깥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엔.
“…제가 따로 연락도 안 했는데, 몰래 따라나온 저기 저 화성이랑 얘기 좀 하시고요.”
“…….”
나와 재하 형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지화성은 어깨를 움찔, 하며 놀이터 앞 아름드리 나무 뒤로 자기 몸을 숨겼다.
그렇다고 가려지는 어깨가 아닌데, 참나.
툭-
나는 나무 아래로 달려가 지화성의 어깨를 한 대 쳐 주고는 멍하니 안경을 벗은 채로 나를 바라보는 재하 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 가요!”
놀이터를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과, 이제 곧 가을이라는 걸 알려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것들이 내가 가는 길에 카펫처럼 깔린다.
재하 형에게 조금 더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가벼워지는 발걸음이,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깜빡거리며 [ㅁㅊ 나도 그네 탈래 개재밌겠다] 같은 메시지를 무한히 보내는 엑스가.
이번에 내가 한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 * *
띠, 띠, 띠, 삐리릭―
“…세수하고 자, 화성아. 얼굴 붓겠다.”
“세수는 무슨 세수요? 안 울었어요, 저!”
“으음… 그래, 그래. 알겠어.”
내일 보자.
탁―
쉬기 위해 누운 침대이건만, 손재하의 머리를 잠식한 멍한 감각은 쉽게 떠나갈 생각을 안 했다.
둘이 함께 어떻게 하자고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지화성이 손재하에게 한 말은 김춘용의 것과 비슷했다.
“저도 알아요, 재하 형. 사실, 알면서 모른 척한 거예요. 왜 저한테 회사 사정을 하나하나 얘기 안 해 주는지. 알아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달라질 게 없으니까요.”
“…응.”
“근데요, 형. 저는….”
“…….”
“제가 형이 그런 상태라는 걸 몰랐다는 게 더 속상했어요.”
‘앞으로도 형은 저한테 알려줄 생각 같은 건 없겠죠. 근데, 이건 벌써 알아 버렸으니까. 일부러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
글쎄, 손재하는 여전히 자기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자기가 조금 더 조심했다면, 그걸 들키지만 않았다면 저 애들이 자신을 저렇게 신경 쓸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네를 탄 자신의 등을 미는 김춘용의 손이, 그리고 막 대구에서 상경해 자기소개를 할 때처럼 덜덜 떨리던 지화성의 어깨가.
자꾸만, 자꾸만.
긴장으로 굳은 몸을 풀리게 만들고, 오히려 잘 숨기고 있을 때보다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서.
“…….”
손재하는 옆에서 빨간머리를 잔뜩 흐트러뜨리고 잠든 김춘용을 바라보다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덮었다.
어째선지.
…오늘은 꼭, 꿈 없이 오래 잘 수 있을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