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4)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24화
* * *
나는 나를 본 척 만 척도 하지 않고 제 연습장에 이것저것 적어 내리고 있는 장시우를 보며 카메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이라 혹시나 했는데, 아직은 낯을 좀 가리네.
아무래도 같은 팀이 된 면면들이 바깥세상에서 한껏 사회성을 쌓고 온 유찬 형과 일본에서 온 료타라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머쓱한 분위기가 되기 전에 적당히 환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잠깐 시간은 드린 거 같은데. 곡 관련해서 생각들 좀 해 보셨어요?”
“어, 아직은 좀… 되게 의외의 결과라서 막 떠오르는 게 없네.”
“저도 생각해 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입니다… 미안해요.”
“…….”
우리 막내, 예민한 고양이 장시우를 다루는 방법 첫 번째.
그건….
“이럼 안 되죠. 다 같이 더 빠릿빠릿하게 생각해 봅시다. 저희 다, ‘동등한’ 역할을 맡게 될 팀원들이잖아요?”
따로 골라서 애 취급하지 않기.
뛰어난 재능과 곱상하고 잘생긴 얼굴에 비해 눈에 띄게 어린 나이 때문일까. 장시우는 유독 다른 사람들에게 어휴 우리 막내 시우, 같은 취급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안 될 말씀.
시우는 그걸 눈에 띄게 질색한다. 깜찍한 아이돌 막내 이미지 탈피를 위해 일부러 섹시 컨셉의 솔로 데뷔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잘 안 됐긴 하지만, 차치하고.
제대로 존중해 줘야 한다. 하나의 인격체로, 단지 어리다는 말로 뭉개지 않고.
그리고 실제로도, 시우는 그렇게 대해 줄 때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니까.
“―!”
아니나 다를까. ‘동등한’에 힘을 준 내 말에 시우의 표정이 꽤 밝아졌다. 지금은 나만 알아보고 있지만, 방송으로 보면 꽤 티가 날 정도일 거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고. 당장 넘어야 할 산은 시우 하나가 아니니 말이다.
“제 생각에는 적으면서 이야기하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아, 그럴까? 아마 저쪽에 보드가 있을 텐데.”
“제가 가지고 올게요.”
나는 연습실 뒤에 있는 화이트 보드를 끌고 오며 마카로 커다랗게 글씨를 적었다.
[민시영]지금 이 팀이, 그리고 내가 넘어야 할 최고의 난제.
시우야, 내가 7년 함께 살아온 경험으로 어떻게든 해 보겠다 하지만, 이건 진짜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민시영 선배님이 누구인가?
중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로 데뷔를 해, 지금의 AG 건물을 세운 초대박 여자 솔로 가수.
AG의 기둥, 연말 대상털이범. 작사 작곡에 능하고, 자기 앨범의 모든 노래를 직접 만드는 천재.
“크읍.”
“응? 춘용아, 왜 그래?”
“아, 아니요. 잠깐 사레가….”
아까 저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차라리 레이디 스완 선배님들이면 아이돌이기라도 하지. 민시영 선배님은 연차가 차고 나서는 춤도 안 췄다. 노래도 자기밖에 못 부르는 고음 메들리로 승부했고.
…게다가 지금 나를 대놓고 싫어하시기까지 하잖아.
“너 같이 프로 의식 없는 애 때문에 우리 소속사 연습생 애들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너무 열 받아.”
…물론 이전에도 싫어했지만.
끼이이이이이익―
“으아아! 춘용 아니키, 무서운 소리가 납니다!”
“어, 미안해. 미안.”
순간 손에서 힘이 빠져 마카가 화이트 보드를 긁었고, 그로 인해 끔찍하고 서글픈 마찰음이 연습실 안을 왕왕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이렇게 들리기도 했다.
너희 망했어요….
망했어요….
했어요….
나는 이를 악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망하긴 누가 망해?
모든 걸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진짜 뭐든 할 마음으로 돌아온 거였다.
집에서 1화 방영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긴급 체포 당시로 돌아가서 빵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타겟팅 스타>를 통해서 데뷔를 해야만 했다.
이런 것도 내가 대비를 안 했을까 봐.
나는 ‘민시영’이라고 적힌 글자 옆으로 가지를 몇 개 그리며 쾌활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일단, 유찬 형. 민시영 선배님 곡 중에서 지금 딱, 생각나는 게 있다면요?”
내 말에 자기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고 있던 유찬 형이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고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 예전에 부르셨던 ‘25시의 메시지’? 하하, 내 노래방 애창곡이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찬 형이 말한 노래 제목을 화이트 보드에 적어넣었다.
[25시의 메시지>민시영 특유의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넓은 음역대를 자랑하는 보컬곡이었다.
그러나 보컬곡 치고는 가벼운 안무와 귀여운 무대 구성도 함께 곁들였기 때문에, 우리 팀원들과 가장 어울릴 법한 노래를 유찬 형이 고민 끝에 이야기한 것으로 보였다.
뭐, 실제로 저 형의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25시의 메시지’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네 연락을 기다리다가 어느새 25시가 되어 버렸다’라는 깜찍한 내용의 가사가 지금 서바이벌을 치르고 있는 연습생에게 퍽 잘 어울렸고, 고음과 저음톤이 딱딱 나눠져 있어 파트를 분배하기도 편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팀에 비해서 임팩트가 너무 적을 것 같은데요.”
그래. 저거.
“‘25시의 메시지’는 일단 안무가 너무 간단하고, 백댄서를 이용한 무대 구성에 의존을 많이 하는 곡이라서… 레오폴드나 2OCD 같이 강렬한 안무를 보여 줄 팀들에 비교되면 묻힐 거예요.”
자기 노트에 코를 박고 있던 장시우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유찬 형의 맹점을 지적했다.
그러고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는 게, 아무 의견도 없이 그저 반박만 했다고 도리어 공격을 받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다른 것도 생각해 보긴 했.”
“아, 역시 그렇지? 나도 그냥 떠오르는 걸 얘기하다 보니까. 시우 네 말이 맞네. 너 진짜 똑똑하다!”
“…….”
유찬 형은 눈치가 빨라서 내가 장시우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만 유의 깊게 본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바로 알 텐데. 아직은 손발이 잘 안 맞았다.
그래도 아주 나쁜 접근법은 아니었어요, 형.
나는 시우의 마음속에서 –42점쯤 되었을 유찬 형에게 몰래 엄지를 한 번 치켜올려 주고는, 이제야 우리 쪽으로 한 발짝쯤 가까이 다가온 장시우에게 미소를 건넸다.
“장시우, 생각해 본 것 좀 있어? 자유롭게 얘기해 봐. 마인드맵을 그릴수록 도움이 될 거 같거든.”
내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장시우는, 이로 손톱을 한 번 딱, 하고 물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시영 누, 아니. 민시영 선배님께서 작년에 올해의 앨범상을 받으셨던 7집 수록곡 ‘스노우 하이’요.”
“스노우 하이? 아. 그 더블 타이틀 곡! 뭔지 알 거 같아. 음음, 이 눈 속에서 우리 같이 Go high, 맞나?”
유찬 형이 메인 보컬다운 훌륭한 목소리를 뽐내자, 장시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백댄서 분들이 안무도 맞춰서 추시고, 지금이 여름이니까, 시원한 느낌 주기도 좋을 거 같아요. 의상도, 약간 고글이나 모자 같은 걸 맞추면 좋을 거 같은데.”
“음. 나도 시우 네 말에 동의하는데, 남자 넷이서 부르기에는 음역대가 너무 높지 않을까? 어, 춘용이랑 료타 톤이 좀 낮은 편이라서….”
“…아.”
유찬 형과 장시우가 민망한 눈빛을 교환했다. 나는 둘이 속으로 어떤 말을 나누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어려울 줄은 알았는데. 진짜 더럽게 어려워졌다.’
길을 잃은 연습실에서는 온갖 노래 제목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민시영의 천재성을 알린 데뷔곡부터, 지난달에 발매했던 디지털 싱글, 첫 1위를 했던 기타 연주곡 등등등.
나는 그들이 말하는 곡을 침착하게 전부 화이트 보드에 적어 내며 입맛을 다셨다. 물론 중간중간 나도 쓸만한 곡들을 언급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유도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노래가 나올 것 같기도 한데.
어쩐다.
이번 미션의 수월한 진행을 위해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아주 약간, 아아주 약간만 팀원들에게 힌트를 주기로 결심하고,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료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료타는? 아까 생각해 본다고 하지 않았어?”
“어, 음. 저는, 저는 말입니다아….”
나와 유찬 형, 그리고 장시우를 한 번씩 쳐다본 료타는 곧 식은땀을 뻘뻘 흘리더니, 냅다 머리를 연습실 바닥에 쿵 박으며 소리를 질렀다.
“미안해요! 민시영 멘토님의 노래, 잘 모릅니다!”
벌써 세 번째 도게자.
나와 유찬 형은 이제 익숙하게 료타를 잡아 올리며 기계적으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와중에 료타는 거의 죽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 있어. 료타는 한국인이 아니잖아.”
“남자 아이돌 노래를 더 많이 들었을 테니까, 충분히 이해해. 멘토분의 노래를 안 들었다고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얘기하는 것도 료타다워.”
“으아, 지금의 저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다니깐.”
나는 침착하게 료타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어느새 우리의 분위기에 살짝 동화된 건지, 멀찍이 앉아서 료타의 코미디를 지켜만 보던 장시우도 어색하게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 료타.
나는 네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은 척할 생각이었단 말이야.
“…아, 혹시. 민시영 선배님께서 일본에서 활동하실 때는 다른 활동명을 쓰셨는데, 알지 않을까?”
내 말에 오열하던 료타는 얼굴을 슥슥 닦으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다른 활동명? 미, 민시영 멘토님께서 다른 이름을 써야 했습니까?”
“아니, 뭐. 큰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접근성을 높이고 싶어서… 라고 했던 거 같은데. 뭐더라. 유키 아메였던가?”
어수룩한 척한 내 말에 순간 료타의 두 눈이 빛났다.
“…춘용 아니키. 혹시 유리노 아메(百合の雨)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모를 리가 없다니까.
나는 웃음을 참으며 료타의 허벅지를 마구 두드렸다.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혹시 알 것 같아?”
나를 포함한 한국인 셋의 눈치를 슬쩍, 본 료타는 아까보다는 조금 자신감 있어진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유리노 아메라면, 제가 아는 곡이 하나 있어요. 아마 여러분도 전부 아는 노래일 텐데….”
* * *
“허, 이 자식이 진짜….”
“응? 피디님, 왜 그러세요.”
“아니, 김춘용이 녀석이 있는 팀에서 곡 골라서 냈거든? 이 작가도 뭔지 한 번 봐 봐.”
주철영 메인 피디는 이현정 작가에게 곡명과 편곡 방향이 적힌 제안서를 넘겨주며 혀를 내둘렀다.
안 그래도, 이 노래를 골라 온 게 기가 막혀 편집실에서 촬영분까지 확인하고 온 마당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종이를 넘겨받은 이현정은 곧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기가 읽은 게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나 적혀 있는 곡명은 그대로였다.
“…‘저 파도 너머의 우리’? 세상에. 이거, 민시영 노래였어요?”
[저 파도 너머의 우리>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국에까지 수출된 아동용 애니메이션, ‘갤리온을 타고 떠나요’의 1기 오프닝 곡.
‘친구와 함께 나아갈 바다는 하나도 무섭지 않으며, 저 파도 너머에는 보물 상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라는 내용의 가사는 남녀노소 따라 부르기 좋았고, 일본과 한국 가수가 똑같아 번안해서 부를 때 오는 위화감도 거의 없다시피 한 신나는 노래였다.
지금 막 계절도 여름이 코 앞이겠다, 이것보다 더 좋은 선곡을 하기도 어려울 거다.
이현정의 당혹스러운 눈빛에 주철영이 박수를 짝짝 치며 이어 말했다.
“그래. 나도 깜짝 놀라서 찾아봤는데, 민시영이 일본에서 먼저 부른 거였어. 데뷔하기도 전에 불렀더라고.”
“민시영이 데뷔하기 전이라… 그럼 진짜 어린애일 때 부른 거네요. 그래서 몰랐나?”
“글쎄. 민시영 브랜드 네임에 꼬꼬마 때 부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넣기 싫었을 수도 있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이런 곡을 골라 온 게 또 김춘용이라는 거지.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네, 진짜.”
“노래 고르는 센스까지 있다, 이거네요. 그러니까 첫 등수 평가에서 곡 선정을 그렇게 해 왔겠죠.”
“그게 또 다가 아니야, 이 녀석. 노래 고르는데 자기 입으로 직접 ‘이 노래 하자!’ 한 게 하나도 없어. 다 다른 팀원들 유도해서 꺼낸 것뿐이라고.”
“음? 그건 좀 의외네요. 자기가 말을 꺼내야 더 주목을 받을 텐데요. 아무리 눈치가 좋다고 해도,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나 봐요.”
이현정이 꺼낸 정론에, 주 피디는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곧 무언가 깨달은 듯 무릎을 두드렸다.
“아, 맞다. 이 작가, 서바이벌은 이게 처음이랬지?”
“…네? 네. 피디님이랑 하는 게 처음이죠.”
“그럼 연습생들이 곡 고르고, 편곡하고, 안무 짜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겠네.”
주 피디는 묘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 작가.
서바이벌에서는 잘 안 풀리면…
“뭐든 헐뜯게 돼. 그게 서바이벌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