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5)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25화
* * *
그렇게 팀 결성 게임인 경찰과 도둑, 다사다난한 곡 선택, 파트 분배, 그리고 개인 인터뷰까지 곁들였던 하루가 저물고, 지친 얼굴의 다국적 룸메이트들이 하나둘 숙소로 모여들었다.
“후우….”
“오, 가오옌! 돌아왔군요? 오늘도 수고했… 으응!?”
제일 먼저 샤워를 마치고 노곤함에 몸을 침대에 굴리고 있던 료타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가오옌에게 인사를 하다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가오옌, 무슨 일이지요? 얼굴이 아이돌 연습생 말고, 괴담 속에 나오는 아오오니 같잖아요!”
좀 심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료타의 말대로였다.
가오옌은 어딘가 잔뜩 뿔이 난 거 같기도, 서글픈 것 같기도 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료타. 나는 오늘로 진실을 깨달았다.”
“갑자기요? 으으음… 무슨 진실을 알았길래요?”
“아이돌이 되는 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드높은 자존감으로 승부하는 녀석이 정상적인 발언을 하기까지.
무언가 큰 문제가 있었음을 느낀 료타는 얼른 가오옌을 자신의 침대에 앉히며 어깨를 퍽퍽 두드려 줬다.
“가오옌. 오늘 연습이 많이 힘들었나요? 추첨으로 받은 에너지바는 다 먹었고요?”
“4개나 먹었다. 지금 나의 배 안에서 에너지바들이 춤을 추고 있어. 정작 나는 추지 못하는 춤을!”
으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잡아 뜯은 가오옌은 곧 광동어로 무언가 미친 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료타가 아무리 모르긴 몰라도, 그게 욕이라는 것쯤은 알 수가 있었다.
‘어어? 이거 괜찮은 건가요? 저기 카메라가 있는데!’
그러나 지금 숙소 방에 있는 것은 료타와 가오옌, 둘 뿐. 그들의 브레이크 역할을 맡아 주던 김춘용은 샤워실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며 씻는 중이었다.
료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꼭 감싸 쥐며 얼른 남은 다국적 룸메이트, 로건의 귀환을 바랐다.
‘로건! 빨리 돌아와요! 나 혼자서는 가오옌을 진정시킬 수 없어요!’
그러나 료타는 곧 돌아온 로건의 얼굴을 보고선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God, 엉망진창이에요….”
“로건은 또 왜!”
료타가 가오옌의 얼굴을 보고 오니 같다 평했던가. 로건은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한껏 서글프게 일그러진 표정. 어딘가 억울하다는 걸 표하는 제스처.
말은 다 통하지 않아도 심경만큼은 백분 이해하는 가오옌이 로건과 얼싸안으며 감정을 토해 냈다. 둘의 마음은 격했으나, 그걸 지켜보는 료타에게는 봉변과 다를 게 없었다.
“저는, 그냥. 잘해 보려고 했던 건데요.”
“나의 의견도 동일하다.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의 팀을 이끌고 싶었을 뿐인데!”
“아아니, 둘 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료타!”
“료타!”
“으아아, 그렇게 나의 이름을 비장하게 부르지 마요! 긴장된단 말이에요!”
왁왁 소리를 질러 대는 홍콩인과 영국인 사이에 끼여 바들바들 떨던 료타는 그때 들린 달칵, 소리가 천국의 문이 열리는 소리인가 싶었다.
“…너희 지금 료타 괴롭히는 중이야? 저기 카메라 있는 거 알고는 있는 거지?”
뭐, 이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는 김춘용이 뽀송뽀송한 몸으로 화장실 문을 연 거지만. 거의 비슷하긴 했다.
“춘용 아니키이이!”
제일 먼저 료타가 눈물을 흩뿌리며 김춘용에게로 달려가고, 곧이어 나머지 둘도 그 행렬에 동참했다.
“뭐야. 왜? 왜 이러는 건데? 어어?”
그 꼴불견들을 유연하게 피한 김춘용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그들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혔다.
“안 씻은 놈 나한테 접근 금지. 씻어도 우는 놈 접근 금지. 뭔데? 사람이면 사람 말로 해야지, 얘들아.”
“잔인해요!”
“맞다, 잔인하다!”
“방금 씻고 온 사람한테 땀범벅 옷으로 달려드는 건 안 잔인하고? 웃기는 녀석들이네, 진짜.”
건장한 세 남자 연습생이 바닥에 앉아 김춘용을 빤히 보는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고, 추후 주 피디가 ‘역시 방송을 아는 녀석’이라고 박수를 받는다.
지금의 김춘용이 그거까지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로건. 이제 말할 준비가 됐어?”
“yea. 조금, 조금요.”
약간 진정이 된 로건은 입을 일자로 만들며 얼굴을 찌푸린 가오옌을 한 번 흘깃, 보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적당히 카메라 눈치도 보아가며 단어를 고르는 모습이, 제법 서바이벌에 익숙해진 눈치였다.
“Hey, bro. 그게 말이에요….”
천천히 로건의 서툰 한국말을 듣고 있던 김춘용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뺨을 긁적였다.
* * *
웅얼거리며 몇몇 단어만 뱉은 로건의 말을 요약해 보자면 간단했다.
“Guys, 제가 들어보니까, 이 곡이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자기가 프로듀싱을 할 수 있어서, 레이디 스완의 곡 중 자신이 제일 잘 편곡할 수 있는 곡을 골라서 멤버들에게 추천을 했다.
자신있는 곡을 하면 성적이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걸로 정말 괜찮겠어?”
“음, 난 좀… 다른 곡을 셀렉하고 싶은데.”
다른 연습생들 반응이 과하게 시큰둥했다는 거지.
“아, 물론 화성은 좋다고 해 줬지만. 그래도 잘 안 됐거든요. 아직 편곡한 노래를 직접… 못 들어봐서겠죠?”
로건은 대충 카메라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지만, 나는 이 뒤에 있었던 일들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카메라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로건에게 ‘만약 이게 잘 안 풀리면 네 탓이다’ 같은 말을 했겠지.
살면서 그런 종류의 적대감을 받아본 적 없는 로건은 굉장히 황당했겠고.
보지도 못한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냐면.
로건이 했던 행동을 내가 이전에 이미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레오폴드면 역시, 안무가 강렬하고 멋진 게 특징이니까. 최신곡으로….”
“렉스야. 그럼 너무 댄스 멤버만 눈에 띄는 거 아니야?”
“그렇지는 않을걸.”
“뭐, 하는 건 좋아. 그럼 혹시 네가 우리 춤 다 알려 줄 수 있을까?”
“네? 제, 제가 안무를 전부요?”
“아니, 부담 가지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그런데 말을 꺼냈으니까 혹시, 준비가 된 건가 싶었지. 그리고….”
이게 잘 안 됐을 때.
‘네가 책임질 수 있겠어?’
나는 그때 느꼈던 당혹감과 적대감을 곱씹으며 어색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로건 팀의 그 누군간, 아직 어디에 카메라가 있는지 잘 모를테니. 그렇게 직접적인 말로 얘기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사람은 뉘앙스라는 걸 읽을 수 있단 말이지.
“류웨이가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이 전부 웃었다! 이건 부당해!”
음,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긴 하네.
나는 분개하는 가오옌을 보며 입을 축였다. 류웨이는 좀 직설적인 편이고, 외국인 멤버이다 보니 개그 포인트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내용에 뼈는 있다만.
내가 굳이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곡을 골라낸 것 같은 분위기로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연습을 하는 도중,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한 명이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
원인, 그러니까 범인을 찾아내서 빠르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장은 마음이 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다음은?
서로 눈치만 보고, 의견 하나 제대로 안 나오는 팀에서 대단한 무대가 나올 리가 없었다.
“무대가 왜 이렇게 소심하죠?”
“방청객들 모셔 놓고 하는 건데, 굳이 이렇게 평범한 곡을 골랐어야 했나 싶어요.”
“춤… 안 맞아요.”
“의상 진짜 별로. 그거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에요? 이러려고 내 디렉 안 들었어요?”
그때 무대를 말아먹고 별의별 얘기를 다 들었지, 정말. 커뮤니티 반응까지 떠올리면 끝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앉아서 입술을 댓발 내밀고 있는 다국적 룸메이트들을 눈에 담았다.
남의 팀이 어그러지고 있다는 건 경쟁 팀인 나에게 좋은 신호임에도, 그새 며칠 방 좀 같이 썼다고 마음이 좀 쓰였다.
이전에 인간 관계로 크게 한 번 실수를 해서 그런가. 잘해 줄 수 있는 상황이면 누구든간에 최대한 잘해 주고 싶었다. 그 김주안에게도 한 번은 조언을 해 줄 정도로 말이다.
근데 이렇게 괜찮고, 착하고, 웃기는 애들이니까 더 그렇겠지.
료타는 지금 우리 팀이니까… 내가 있는 이상 팀 분위기로 걱정할 염려는 없고. 가오옌은 내일 자고 일어나서 또 자기 의견을 밀어붙일 멘탈의 소유자니까 괜찮다.
이제 문제는 로건인데.
“아, 진짜 좋은 노래인데. I’m so sad. 정말 슬퍼요. 편곡만 잘하면 진짜 잘될 수 있단 말이죠.”
나름 룸메이트들한테 이야기하면서 털어 냈음에도, 여전히 미련이 남은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이전에도. [타겟팅 스타>를 진행하면서 로건은 제대로 자기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 줄 일이 별로 없었다.
편곡은 연습생들과 A&R팀에서 방향성을 맞추면서 대부분 진행하고, 오리지널곡도 그냥 주어진 노래를 우리가 부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하차를 했던 건가? 자기 능력을 보여 줄 기회가 별로 없어서?
“흠….”
지금 [저 파도 너머의 우리> 곡의 편곡 방향도 상세하게 더 의논해야 하고, 안무도 짜야 하고, 무대 컨셉도 제대로 정해야 하는 마당이라, 내 코가 석 자지만….
“로건. 너는 네가 편곡한 거 너희 팀원들이 들으면 설득될 것 같아?”
“에? 춘용 형, 지금 뭐라고 했어요?”
“어. 뭐 네가 생각한 편곡 방향이 있을 거 아냐. 그거 지금 머릿속에 딱 있어?”
“…Of course! 처음에 원곡을 딱 들어 보자마자, 아! 이거야! 했다고요. 그걸 들려줄 수만 있으면….”
“그럼 들려줘.”
“네?”
아무래도, 자기가 원하는 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보고 끝나는 건 좀 그렇잖아.
나를 올려다보는 로건 뒤에 있는 방문을 손가락질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너, 처음에 들고 온 기타, 제작진한테 맡긴 거 아냐?”
“어, 네. 그걸 숙소에 들고 오면 자리 차지를 너무 많이 할… 것… 같아서….”
유창하게 대답하던 말이 어물어물 뒤로 씹혀 들어갔다.
곧 로건의 두 눈이 커다랗게 뜨이고, 문을 가리키고 있는 내 손가락과 내 얼굴을 연신 번달아 쳐다보더니.
“―Wait. 저 먼저 나가 볼게요.”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어? 로건! 씻지도 않고 어디 간다! 냄새나!”
“냅둬. 뭐 두고 온 거 생각났나 보지.”
가오옌은 급발진한 로건의 뒷모습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자신의 샤워 순서가 더 빨라졌음을 깨닫고 신이 나서 금세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와 단둘이 방에 남게 된 료타는 로건이 뛰쳐 나간 문을 바라보다 내게로 뻘하게 입을 열었다.
“춘용 아니키.”
“으응? 료타, 왜.”
“‘형’이라는 단어가 아니키랑 같은 거라고 그랬죠, 전에?”
“내가 그렇게 얘기 안 했을 텐데. 분명 다른 단어를 알려 줬던….”
“아뇨! 방금 제대로 알았어요. 춘용 아니키는 진짜 진짜 아니키예요.”
얜 또 뭔 소리래. 저렇게 눈을 반짝거리면서, 부담스럽게.
“앞으로 진짜 아니키로 모실게요.”
“…얘가 지금까지 형 취급 안 했다는 소리를 돌려서 하네? 오늘 연습이 부족했구나. 하긴, 연습을 좀 안 하긴 했지.”
내 음산한 목소리에 료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어색한 연기톤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저는 화장실에 가 봐야 할 것 같.”
“어딜 도망가, 료타. 지금 화장실에 가오옌 있는데? 너 들어가서 샤워기로 맞고 싶어?”
“너무해요!”
“너무한 건 지금 료타 너고.”
나는 료타의 뒷덜미를 잡고 재하 형, 혹은 유찬 형을 닮은 상냥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그러자 료타의 마른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알 바 아니었다.
내가 로건을 살짝 도와준 건 도와준 거고. 지금부터는 우리 팀을 위해서 미친 듯이 움직여야만 했다.
남의 팀 도와줘 놓고 우리 팀 무대가 그저 그러면 쪽팔리잖아.
그럴 수는 없지.
“아니키! 지금 저를 끌고 어딜 갑니까아아!”
나는 연신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 료타에게 명쾌한 답을 내려 줬다.
“장시우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