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6)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26화
* * *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곡을 선택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저 파도 너머의 우리>는 ‘갤리온을 타고 떠나요’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 우리 또래라면 모를 수가 없는 노래다. 아직도 노래방 애창곡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까, 어떻게라도 한 번쯤은 들어 보게 되지.그러니 대중성 확보했고, 어린 민시영 선배님의 고음과 저음, 그리고 나름 깜찍한 랩까지 있는 곡이니 노래 자체의 파트 분배 밸런스도 좋고.
그렇지만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무대 구성이나 안무가 존재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지금 장시우가 필요한 거였다.
똑똑-
여전히 료타의 뒷덜미를 잡은 채로 시우네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 있던 누군가가 인기척을 냈다.
– 누구세요?
“아, 장시우 만나러 왔는데. 지금 안에 있어요?”
– 엥, 이 목소리는… 어억!
뭔가 푸닥닥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 자기 무릎을 연신 문질러 대는 누군가가 방문을 열었다.
커다라 키에 방금 씻은 듯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금발, 피로해서 살짝 풀린 쌍꺼풀.
“쓰읍, 뭐야. 형이 갑자기 여길요?”
아, 얘가 시우랑 같은 방이었구나. 이건 미처 몰랐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상대방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지화성.”
내 인사에 도리어 자기도 민망해졌는지, 머리에 남은 물기를 탈탈 털어 낸 지화성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네, 제가 지화성은 맞는데요. 용용 형이 여기를 왜 왔냐니깐요.”
“어…”
용용 형이라.
…오랜만이네.
별안간 나와 애로우즈로 활동할 때의 별명으로 나를 부르는 지화성의 모습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으나, 나는 얼른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대충 지껄였다.
“나 시우랑 같은 팀이거든. 알지? 민시영 선배님 커버.”
“아, 어쩐지 애가 좀 이상한 거 같더니만.”
얼른 복도 쪽 카메라를 확인한 지화성은 나와 료타의 목에 팔을 확 걸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용용 형이랑 Aiming으로 같은 팀 했던 정이 있어서 좀 중요한 얘기를 해 줄게요.”
“저, 저는 왜!? 같은 팀이 아니었음에도요!?”
“쉿, 쉿. 어쨌든 이번에 시우랑 같은 팀인 거잖아요. 알아 둬서 나쁠 거야 없죠. 잘 들어요. 시우는 유리예요, 유리.”
“유, 유리요?”
갑자기 자기에게까지 어깨동무를 한 지화성에 어쩔 줄 몰라하던 료타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지화성은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흥 끼고는 우쭐해했다.
잘난 척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물론, 저런 모습이 어필되었기에 애로우즈의 인기 멤버였지만.
아, 인기 제일 없었던 멤버는 물론 나다.
생각해 보니까, 그런 짓을 하고도 인기 있는 것도 웃기네.
“몰랐죠? 고급 정보라니까. 시우는 진짜 진짜 조심해서 대해야 해요. 애가 나쁜 애는 아니거든요? 우리 소속사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좀 친해지면 형아 소리도 곧잘 한다니깐요.”
“예에? 이전에 저랑 유찬 아니키에게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저도 듣고 싶습니다!”
“그럼 그쪽이 잘못 접근한 거죠. 그러면 안 되는데, 씁. 하여튼, 걔 앞에서 절대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지화성의 목소리가 더 작게 줄어드는 찰나.
“화성이 형, 거기서 뭐해요?”
“이크.”
“어억!”
지화성은 나와 료타를 냅다 내던져 버리고는 얼른 빙글 몸을 돌렸다.
저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구만.
“으응, 아니. 그냥! 너네 팀원들이 너 찾아왔대.”
“…네? 저희 팀원들이요?”
지화성을 부를 때까지만 해도 사르르 녹은 솜사탕처럼 깜찍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는데, 아직 자기랑 안 친한 팀원들이 왔다고 하니 그새 또 장시우의 얼굴에 바람이 쌩쌩 불었다.
“렉스 혀엉.”
망할, 나도 저렇게 불러 줄 때가 있었는데!
나는 억울한 마음을 얼른 감추고 목을 가다듬으며 장시우를 불렀다.
“어. 3일 있다가 안무 레슨이 있긴 하겠지만… 그전에 우리가 안무 좀 짜 두면 좋을 거 같아서 왔어.”
“…저희가 고른 곡은 안무랄 게 없잖아요. 전문가분 도움을 받아야 할 텐데요.”
“우리도 데뷔하면 전문가가 되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가 미리 좀 짜두면 안무가 선생님도 좀 편하시지 않을까?”
내 말에 눈동자만 도륵도륵 굴리던 장시우는 곧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 밖으로 나왔다. 얘는 승낙마저 말이 아니라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 준다.
그래. 이게 우리 막내지.
“그럼 유찬 형까지 해서 오늘 포인트 안무만이라도 짜고 들어가자. 그래야 다른 팀이랑 진도가 맞을 거야.”
나는 장시우와 료타를 이끌고 아래층 휴게실로 향했다. 유찬 형을 픽업하기 위해서였다.
유찬 형은 메인 보컬답게 서바이벌을 할 때도 늘 보컬 개인 연습을 하곤 했다.
그전에 목 부드럽게 해 준다고 날계란을 까먹었고.
지금은 계란 먹는다고 휴게실에 있을 테니까, 딱 맞춰서 데리고 가기만 하면….
“으응?”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조합에 입을 헤, 벌리며 잠시간 멍을 때렸다.
1층 복도 끝에 있는 연습생 휴게실.
그곳에는―
“그러니까 이게 목에 좋은 거라고? 진짜 신기하다.”
“아, 네. 뭐, 좀 많이 비싼 거긴 한데… 형 드시고 싶으면 좀 드릴게요.”
“헐, 진짜? 고마워. 진짜 쪼끔만 먹을게, 그럼.”
김주안과 유찬 형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닌가. 김주안은 조금 표정이 안 좋은데, 유찬 형만 신나 보였다.
“오, 대박. 벌써 좀 목이 좋아진 거 같은데?”
사교성 좋은 유찬 형이 또 그냥 지나가던 김주안과 대화를 시도한 모양이었다.
유찬 형이 자기 프로폴리스를 넙죽 먹을 때까지만 해도 어찌어찌 표정 관리를 하고 있던 김주안은, 휴게실 유리문 바깥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금방이라도 쌍욕을 뱉으려던 김주안은 복도에 있는 카메라를 보고 입을 오므리며 짜증을 냈다.
“…아, 진짜!”
자폭하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네.
“더헙, 너무 많이 먹었나? 미안!”
“아, 아니에요. 형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요….”
“어라. 우리 팀 애들이다. 잠시만. 주안아, 인사할래? 얘들아, 들어와!”
이렇게 좋은 인연들끼리 통성명조차 하지 않는 걸 이해 못 하는 유찬 형은, 곧 우리 팀의 면면들과 김주안을 사이좋게 인사시켰다.
“이쪽은 일본인 개인 연습생 료타고, 얘는 춘용이야. 아, 춘용이랑은 같은 소속사 출신이랬지. 그럼 이미 알 테고― 여기는 우리 팀 막내 시우.”
“장… 시우요? 그 장시우?”
“어, 어… 네. 안녕… 하세요.”
나와 료타를 심드렁하게 훑은 김주안은, 별안간 ‘시우’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반색했다. 눈동자 돌아가는 속도부터가 남달랐다.
빠르게 장시우의 왼손을 잡아 올린 김주안은, 장시우 마음속에서 자기가 마이너스 200점이 된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떠들었다.
“와, 나 진짜 너 만나 보고 싶었어!”
“…네, 네?”
“네가 바로 그―”
어어?
이 자식이 입 간수를 못하는 거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야, 김주안, 너….”
나는 황급히 김주안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으나, 김주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미 그 문제의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은 후였다.
“―그 장시원 선배님 동생이잖아? 우유 CF 나왔던! 그, 카피가 이거 맞지?”
엄마, 나두 형이 마시는 우유 줘!
키 크고 싶단 말이야아!
“…….”
김주안이 낸 혀 짧은 어린애 목소리가 휴게실을 쩌렁쩌렁 울리고, 장시우의 얼굴이 백지장보다 하얗게 물들었다.
나라고 별반 다른 건 아니었다.
정말 간만에, 누군가의 뒤통수를 술병으로 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좀 비슷한가? 물론 그때 네가 더 귀여웠지만! 그, 있잖아. 나중에 괜찮으면 장시원 선배님 싸인 좀―.”
탁.
“…어?”
휴게실에 정적이 맴돌았다.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어깨를 떨던 장시우가 황급히 김주안의 손을 쳐 냈기 때문이었다.
“아, 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듯, 입을 몇 번 벙긋거린 장시우는 당황한 나를 보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저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안무 짜기 어려울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내가 미처 뭐라고 말리기도 전에, 장시우는 황급히 휴게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김주안을 포함한 세 명은 지금 상황이 왜 이는지 이해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리고 모든 이유를 아는 나만 골이 쪼개지게 생겼고 말이다.
…젠장.
분위기가 잘 잡혀 가고 있었는데, 김주안의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를 트롤링으로 장시우가 팀원들에게 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낭패감에 이를 악물며 자기 숙소 방으로 뛰어올라가는 장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만 봤다.
이걸 어떻게든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팀 케미가 완전히 망가진 우리 팀은….
진짜로 X된다.
* * *
커버 미션 무대를 일주일 앞둔 중간 평가 날.
“한 분씩 개인 인터뷰 딸게요!”
이현정은 아직 숨도 다 고르지 못하고 헉헉거리는 연습생들을 하나둘 개인 인터뷰실로 불렀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남의 무대를 미리 본 감정은 어떤지 생각을 정리할 생각을 주지 않을 셈이었다.
그래야 필터링 되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오고, 인터뷰가 자극적으로 뽑히거든.
첫 인터뷰 대상은 현재 기본 등수 14위의 성원협.
이전 커버 가수 뽑기에서 남자 아이돌인 2OCD를 뽑아 다른 암담한 팀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서인가, 낮은 등수였음에도 성원협의 얼굴은 비교적 밝았다.
“2OCD의 Be the LOW? 선곡이 괜찮네요. 춤도 잘 맞고, 방청객들 앞에서도 이 정도만 할 수 있으면 무리 없을 것 같아요.”
멘토인 민시영에게 꽤 수준 높다는 칭찬도 들었으니 말이다.
이현정은 그런 성원협을 흥미로운 얼굴로 보며 가볍게 운을 텄다.
“축하해요. 좋은 평가를 들었네요.”
“아, 감사합니다! 그, 아직 기분이 좀 얼떨떨해요.”
“그럴 수 있죠. 막 중간평가가 끝난 직후이니까요. 다른 팀 무대를 볼 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음, 일단 다들 열심히 준비했구나 싶었고, 특히 저희랑 맞붙는 료타네 팀의 곡을 들었을 때는 좀 놀랐어요. 제가 [갤리온을 타고 떠나요>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 오프닝을 민시영 멘토님께서 불렀을 줄은 몰랐는데….”
먼저 상대 팀 얘기를 해 주다니.
이야기가 쉽게 풀린다.
이현정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성원협의 대답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맞아요. 료타 연습생의 팀이 고른 [저 파도 너머의 우리>. 저희도 전달받았을 때 깜짝 놀랐어요. 신기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제가 들었을 때는 성원협 연습생이 있는 팀이 더 좋은 평가를 들었던 거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해요?”
“어….”
성원협은 이현정이 자연스럽게 함정을 친 줄도 모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그, 료타네 팀은 아직 무대가 좀 준비가 안 된 느낌이라….”
낚았다.
이현정은 성원협이 더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연습이 부족한 거 같았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아무래도, [저 파도 너머의 우리>는 안무가 없는 곡이니까, 안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필요한 건 알아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춘용이가 만들었다는 포인트 안무는 정말 좋았어요. 노래에 어울리게 동작도 큼직큼직하고, 그러면서 손수건 같은 아이템 쓴 것도, Aiming의 연장선 같아서 자연스럽고요. 근데 뭐랄까. 음, 시우… 가.”
방송에서는 이 성원협의 긴 말 중에, 가장 마지막에 말했던 ‘멤버들이 좀 따로 노는 느낌’과 ‘음, 시우… 가’ 만 붙여 편집돼서 나간다.
뭐, 악마의 편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럼 자기가 잘 생각해서 얘기했어야지.’
성원협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이미 필요한 부분을 모두 따낸 이현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 담당에게 손짓을 한 후였다.
‘슬슬 다음 애 들어오라고 해.’
이후로도 인터뷰는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저희가 좀 부족했던 거 같아요.”
‘좀 부족했던 거 같아요’ 부분만 편집.
“편곡이 정말 좋더라고요. 자극받았어요. 아, 저런 멤버가 있는 팀은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
‘저런 멤버가 있는 팀은 얼마나 좋을까?’ 부분만 편집.
“제가 이번에 진짜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Aiming을 할 때, 저희 팀이 1위를 하기는 했지만…. ‘연습생 김주안’은 각인을 못 시켜드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아크로바틱 부분에서 저도 하나 하겠다, 하고 재하 형한테 말했죠. 그랬더니 그때 다른 팀원들이….”
통편집.
“오늘의 가오옌은 끝내줬다. 이대로 데뷔만을 향해 달립니다. 기억하라, 홍콩의 남자 가오옌.”
편집 불필요.
가오옌이 입을 열 때마다 그저 ‘어디까지 하나 보자.’라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현정은, 대기하고 있는 연습생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가오옌을 내보냈다.
가오옌은 자기 말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별생각이 없는 표정이었다.
뭐, 가오옌 머리에는 가오옌이 최고니까 그렇겠지.
그런 자신감 만땅남을 뒤로 하고, 이현정은 비어 있는 인터뷰 의자에 앉는 상대를 보며 인사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거든.’
주 피디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타겟팅 스타>가 방영 시작하면 시청률을 보장해 줄지도 모르는, 지금 연습생들이 입을 모아서 신경 쓰고 있는….
“안녕하세요. 김춘용입니다.”
김춘용 연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