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7)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27화
* * *
“…후우.”
나는 개인 인터뷰실 밖으로 나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긴장하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모든 대책이 있는 척하는 건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메인 작가, 이현정은 과하게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이번에 심사위원분들께서 쓴소리를 해 주신 건, 저희 팀이 더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부분을 짚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다음 본 경연 무대에서는 방청객 여러분들을 깜짝 놀래켜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소와 같이 악편을 피하기 위해 최선의 방어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을 잡았던 그 한 마디.
“김춘용 연습생. 잠시만요.”
“어어, 네? 추가 질문이시면 다시 앉아서.”
“아, 이건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거니까, 굳이 앉을 필요 없어요. 그냥 조언 같은 거죠.”
방송가에서 오래도록 일해 온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없었던 걸까?
“…이번에는 카메라 안에서 보이게 해결하는 게 좋아요.”
내가 ‘Aiming’ 무대를 준비할 때 팀원들과의 마찰을 해결한 방식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말.
그때 내가 지화성을 카메라 바깥으로 끌고 가서 해결하는 바람에 분량을 많이 못 챙겼으니까. ‘이번에는’ 그러지 말라고 미리 한 번 찔러 보는 거겠지.
“어, 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에이. 정말요?”
“하하, 제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요. 춤은 잘 추는데. 지금 좀 보여드릴까요?”
“…….”
이현정의 눈치에도 나는 그저 방글방글 미소만 짓고 바로 뛰쳐나왔다.
카메라 안에서 보이게 해결을 하라고.
내가.
“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거참.
나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참으며 카메라가 가려지는 음료수 자판기 뒤쪽에 서 있는 장신의 남성에게로 눈동자를 굴렸다.
저렇게 해도 목소리는 오디오에 잡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까.
“시우야. 네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 내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대화를 좀 해 보자, 우리.”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기고 드디어 자신과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해 어른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만, 한껏 지친 표정의 유찬 형.
그리고 그 앞에 창백한 표정으로 서 있는, 오늘 우리 무대를 말아먹은 장본인.
“…….”
장시우.
“나는 벌써 나이가 스물둘이고,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서 노래 말고는 장점이 아무것도 없어. 개인 연습생인데다가, 이런 환경이 처음이니까.”
“…….”
“그렇기 때문에 이 서바이벌은, 내가… 이제껏 마음속에만 담아 온 꿈에 도전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해. 그래서 후회 없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 근데 네가, 무대에서 넋을 놔 버리니까….”
항상 여유 넘치던 유찬 형의 얼굴은 드물게 절박했다.
찌푸려진 미간, 떨리는 목소리.
유찬 형이 여기까지 오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나는 감히 그 대화에 낄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서성였다.
…그리고, 지금은 시우가 잘못한 게 확실히 맞으니까. 어쩔 수 없지.
자기 뒷목을 가만히 더듬던 유찬 형이 한 번 더 장시우를 목소리로 찔렀다.
“…네가 무대에 집중 못 하는 이유. 뭐 때문인지 얘기 안 해 줄 거야?”
“저는….”
장시우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유찬 형의 염려와 화가 섞인 눈빛을 보고서 그대로 다시 입을 닫아 버렸다.
재하 형이 하해와 같은 다정함으로 멤버들을 어르고 달랬다면, 유찬 형은 매섭게 문제점을 파고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찬 형의 접근법은 장시우에게 ‘혼나고 있다’라고 느껴질 테고.
“다음, 방유찬 연습생 들어가실게요.”
“…이따가 더 얘기하자.”
참을성 있게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유찬 형은 자신을 부르는 막내 작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몇 번 절레절레 젓고는 개인 인터뷰실로 들어가 버렸다.
“…….”
덩그러니 남아서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는 시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았다.
물론, 화도 났다. 어떻게 화가 안 날 수가 있겠는가?
우리 무대를 본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하게 젖을 지경인데.
“…부디 제 노래가 아깝지 않게 해 주세요.”
원곡자인 민시영 선배님의 얼음장 같은 말에 더불어서.
“기대, 많이 했는데. 근데 장시우, 연습생이 좀….”
실망한 티가 팍팍 나던 진다솔의 코멘트까지.
“동선이 개판이야. 연습을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아. 나, 진짜 미친… 편집하세요, 이건.”
심지어 방송에 내보낼 수 없을 수준인 문윤하의 욕설들.
거기에 절정을 찍은 건 그동안 연습생들에게 꾸준히 당근을 제공하던 나지혁의 평가였다.
“…여러분.”
이제껏 다른 멘토들의 트롤링을 난처한 얼굴로 커버해 주던 나지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게 식은 목소리였다.
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는 말은 나지혁에게도 해당이 됐다.
“안무 만들어서 온 거, 좋아요. 유명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노래로 골라서, 무대 구성도 처음부터 짜고, 안무도 만들고. 힘들었겠죠. 개개인이 보여 주는 건 다 괜찮거든요? 근데 종합적으로. 지금 여러분이 보여 준 무대는 정말―.”
유치원생들 재롱잔치보다도 합이 안 맞아요.
그 말을 들을 때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던 나조차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였다고.
“방청객분들이 상암까지 힘들게 여러분 보러 오시는 건데, 수준 이하의 무대는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본 무대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특히, 장시우 연습생이요.
나는 나지혁의 뼈 때리는 조언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타닥―
“……!”
복도에 미끄러지는 내 발소리에, 여전히 자판기 앞에 서서 어깨를 떨고 있던 장시우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쳐다봤다.
“…….”
“…….”
대화 없이 시선이 오갔다.
네거티브 상태인 장시우에게 뭐라고 얘기하는 게 좋을까.
너 오늘 무대 최악이었다? 이런 식이면 같이 데뷔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네가 그렇게 과거에 얽매여서는, 다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가슴속에 있는 말을 묻어 둔 채로, 장시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일 연습실에서 보자.”
일단 대충 추스르고. 어?
내 말에 장시우는 눈동자를 불안하게 이리저리 굴리더니, 내게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후다닥 자신의 숙소 방으로 달려갔다.
“씁.”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가만히 혀를 내둘렀다.
어차피 지금의 시우에게는 내가 위로를 하든, 윽박지르든, 화를 내든. 뭘 해도 통하지 않는다.
상대가 나니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쌓인 벽이 뭔지도 모르는 타인이니까.
고양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순순히 손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떻게 다가가는 건 성공했을지라도,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건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고.
속에 든 알맹이는 얼굴 맞대고 지낸 지 8년은 넘은 형이라지만, 지금의 쟤가 뭘 알겠어.
“…렉스 형. 술 마시면, 어른 된 기분이 들어요?”
“그럼… 나도 한 잔만 주면 안 돼요? 형 너무 많이 마시는데….”
좀 아쉽긴 해도, 뭐.
“춘용 아니키이… 이제 저희는 어쩌면 좋습니까?”
복도 끝에서 거의 구르다시피 내게로 다가온 료타가 죽는 소리를 내며 징징거렸다.
“저, 저! 오는 길에 화성에게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화성이 ‘그때 바로 안 패고 뭘 했냐’라고, 지금 당장 복도에서 도게자를 하라고―”
“어어, 거기까지만 얘기하자.”
나는 료타의 목에 다급히 팔을 휙 두르며 지화성의 아이돌권을 지켜 냈다.
“넌 애가, 그렇게 막 다른 연습생 얘기를 하고 다니면 어떡하냐? 카메라가 도처에 널렸는데. 정신을 좀 차려라, 이시카와 료타 연습생.”
“힝….”
“힝은 내가 힝이고, 인마.”
그래, 진짜 말 그대로 힝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그런 가련한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결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힘이 좀 필요하다.
지금의 나보다 장시우와 더 가까우며, 의지가 될 수 있고, 동병상련의 처지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힘이.
* * *
이튿날 오후.
[타겟팅 스타>의 제작진은 오늘 연습생들 몰래 등장할 게스트들을 맞이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레오폴드는? 몇 시에 온대?”
“지금 압구정 쪽 차 밀려서 1시간쯤 더 걸린답니다.”
“그럼 그냥 더 늦게 와도 된다고 얘기해. 어차피 연습생들이 연습하고 있을 때 들어가야 그림이 나오니까.”
“레이디 스완분들 왔습니다!”
“어, 마이크 준비시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커버 미션을 기획했다면, 역시 그 원곡자들도 나와 줘야 제맛 아니겠는가.
그렇게 원곡자들을 등장시키면서 선후배 간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고, 그 원곡자 팬들의 시선이 [타겟팅 스타>의 연습생들에게 가게끔 만드는 것이 게 제작진의 노림수였다.
또, 연습생들의 신들린 뽑기 운으로 그 면면마저 쟁쟁했다.
현재 남자 아이돌 팬덤 불굴의 1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오폴드, 지난해 신인상을 받고 승승장구 중인 2OCD, 도재찬의 아픈 손가락인 레이디 스완.
그리고….
“저 지금 먼저 내려가 봐도 되나요?”
“네, 네? 시영 씨. 아직 그쪽 팀 연습생들 준비가,”
“제가 앉아있는 연습실에, 연습생들이 뒤늦게 들어오는 게 더 괜찮은 그림일 거 같은데. 어제 중간평가 때도 그렇고, 그 팀 준비 부족해서 평가가 안 좋았잖아요. 제가 따끔하게 얘기해 주고 싶어서 그래요.”
AG의 실세, 여자 솔로 가수의 현재 진행형 원탑,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타겟팅 스타>의 보컬 멘토.
“자기들 무대 다 지켜본 멘토가 그러는데 연습생들이 뭘 어쩌겠어요. 그렇죠?”
민시영.
“그으게….”
‘하, 이런 말 할 수 있는 제일 만만한 대상이 나니까 나 콕 짚어서 얘기하는 거잖아….’
해외 음악캠프 팀에 지원했다가 서바이벌팀으로 발령받은 막내 작가, 이하준은 민시영의 말에 불안한 눈빛으로 메인 작가를 바라봤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제 막 도착하고 있는 게스트들 관련 오더를 내리기 위해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렇게 출연자 한 명 한 명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이 존재하기는 했다.
민시영에 대한 부분은―
“말하는 건 웬만해서는 그냥 들어 줘. 그 사람도 경력이 있어서 엄청 억지 부리지는 않을 거야. 그거 말리려고 하면 수습 안 된다. 그냥 들어 줘.
“…정말요?”
“바쁘잖아요. 아, 빨리 찍고 싶은데. 나 분량 잘 만들 수 있는데.”
그럼 지금 이 여성이 말하고 있는 건 억지가 아니라 설득이란 말인가?
이하준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그럼 일단….”
더듬더듬 민시영에게 대응한 이하준이 자신과 함께 들어온 카메라팀 막내에게 손짓했다.
‘싫어, 미친놈아!’
카메라팀 막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결국은 이하준의 손에 질질 끌려 옆에 설 수밖에 없었다.
“…가시죠.”
막내 작가, 막내 카메라맨. 그리고 민시영. 그렇게 세 명은 ‘저 파도 너머 우리’팀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타기 시작했다.
“…….”
연습실로 향하는 내내 민시영은 굳은 얼굴이었다.
아니. 어제 ‘저 파도 너머의 우리’ 팀의 무대를 본 이후로, 민시영은 단 한순간도 웃지 않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무대를 하면 안 되지.’
그게 어떤 노래인데.
민시영에게는 삼촌과도 같은 도재찬이 데뷔 전 그녀를 위해 얻어다 준 귀중한 기회.
여자 솔로 최연소 한일 동반 데뷔 발판을 위한 곡이 바로 ‘저 파도 너머의 우리’였다.
당시 국내 연예계에서 아직 도재찬이 힘을 쓸 수가 없던 시기라, 공식 데뷔는 한참 이후로 미뤄졌지만, 그때의 첫 녹음 기억이 지금의 민시영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우리 시영이, 최고다!”
마이크 너머로 청량하게 울리는 어린 민시영의 목소리, 유리 너머 웃고 있는 도재찬,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는 디렉터까지.
‘…그 곡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이렇게까지 되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민시영은 처음에 김춘용이 있는 팀에서 그 소중한 곡을 골랐다고 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시우야! 오늘 연습 열심히 했어?”
“시영이 누나아….”
자기가 예전 본인을 보듯, 어릴 때부터 아끼고 귀여워하던 장시우가 김춘용과 같은 팀이었으니까.
근데 무대를 망친 장본인이 장시우라니.
그리고 그 무대에서, 제일 잘한 사람이 김춘용이라니!
“장시우 연습생, 이런 식이면 데뷔는 분명 어려울 거예요. 정신 차립시다.”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서는 매서운 호통을 날렸지만, 그녀의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지금, 출연하는 원곡자 라인업 중 가장 선배임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연습생들을 만나러 가는 거였다.
‘시우는 성실하니까, 제일 먼저 나와서 연습하고 있겠지. 그거 보면서 좀 달래도 보고, 말이 안 통하면 화도 내 보고 해야겠다.’
나는 시우 믿어.
우리 어거스트 연습생들의 성실함을 믿어!
민시영은 연습실 안에서 움직이는 인영을 보고, 다급하게 문을 쾅 열어재끼며 나이팅게일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시우야, 누나 왔다!’
“어머, 연습생들이 벌써 나와서 연습을….”
…어?
그러나 민시영이 박차고 들어간 연습실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건, 땀 흘리며 연습을 하고 있는 우리의 까만 고양이 장시우가 아니라.
「(환) 우 주 최 고 솔 로 가 수 민 시 영 (영)」
A4용지 위에 악필로 적은 환영 문구.
그리고.
“이, 이게 무슨….”
“안녕하세요, 민시영 선배님! 멘토님이 아니라 선배님이라고 말씀드리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하하!”
건실한 미소를 뽐내며 시원하게 인사하는 방유찬.
“그으, 저랑 유찬 형이 미리 와서 좀 준비를 해 봤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머쓱하게 웃지만, 아무리 봐도 양아치상인 김춘용이었다.
민시영은 일그러지려는 제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시우가 여기 없는 거야!?’
왜 ‘저 파도 너머의 우리’ 팀의 형 라인 둘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건 순전히.
“유찬 형. 형한테 제가 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그게 뭔데?”
“시우랑 관련된 이야기예요.”
“와 씨. 그런 거면 그냥 바로 얘기해도 돼!”
장시우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한 김춘용의 계획에 의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