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3)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23화
* * *
고작 10분 사이에 넝마가 되어 돌아온 아이돌 연습생들의 모습이 그렇게나 재밌었는지, 제작진과 최가온이 웃음을 멈추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아학, 아하하! 여러분, 아니, 싸웠어요? 공민호 연습생, 옷은 또 왜 그렇게 늘어진 거예요?”
“그게, 상우가 저를 잡아당기는데….”
“잡아당기는데?”
“…안 잡히려고 몸을 돌리다 보니.”
“그걸 돌리긴 왜 돌려! 진짜 도둑이에요?”
최가온에게 지적당한 연습생은 자신의 축 늘어진 맨투맨을 주워 올리며 수치스러운 표정을 했다.
이렇게까지 진심전력으로 도망치려던 자신이 뒤늦게 부끄러워져서였다.
공민호뿐 아니라, 거의 모든 도둑 연습생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혈기왕성한 남자 연습생들에게 경찰과 도둑 같은 게임을 하니 난 사달이었다.
그중에 깔끔한 사람이라고 하면, 방유찬이나 류웨이 정도일까.
뭐 류웨이는 언제나와 같이 로봇 같은 얼굴로 저항 없이 잡혔겠거니, 하면서 다들 납득하지만….
방유찬은 왜?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시선이 꽂히자, 방유찬은 허탈한 표정으로 뒷목을 긁적이며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상품으로 받은 로맨스 소설들을 땅에 내려놓다가 제일 먼저 잡혔어요.”
“와하하하학! 아, 나 눈물! 눈물! 지유야, 나 메이크업 수정 좀!”
급기야 눈물까지 흘린 최가온은 얼른 수정 메이크업을 받고 곧 다시 대강당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게임으로 기가 빨린 연습생들은 자기 팀끼리 옹기종기 둘러 모여 앉은 상태였다.
최가온은 순식간에 다시 톤을 잡으며 상황을 이끌어 나갔다.
“자, 이제 그럼 각 팀의 경찰분들, 제 옆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아, 최종 도둑 4인의 베네핏은 차차 공개될 예정이니, 걱정 마시고요! 네네, 얼른 나와 주세요, 경찰분들.”
곧 자신의 옆에 선 연습생들을 모두 확인한 최가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제작진에게서 자그마한 박스를 받아왔다.
“일단 커버 미션을 진행하기에 앞서, 커버할 가수분들을 뽑아 볼 텐데요. 이 안에는 수많은 여러분의 아이돌, 가수 선배들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성원협 연습생, 혹시 뽑고 싶은 선배가 있다면?”
성원협은 잠깐 멈칫, 하는 거 같더니 최가온을 향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저희 타겟팅 스타의 슈퍼스타 MC, 최가온님이죠!”
“아, 부끄럽게! 갑자기 이렇게 비행기 태우기? 그럼 제 노래 중에 뭘 제일 좋아해요?”
“어, 역시… 가장 최근에 발매하신 ‘매드니스 보이’?”
“매드니스 보이! 제가 작사에도 참여한 좋은 힙합 알앤비 댄스곡이죠. 이렇게 홍보할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성원협 연습생. 그렇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제 이름은 들어 있지가 않네요.”
성원협은 진심으로 ‘아깝다’라는 표정이었지만, 최가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없는 걸 있게 만들 수는 없지. 물론 아부는 고맙지만 말이다.
“제가 더 알려 드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일단 뽑으면서 이야기해 볼까요? 제 왼쪽에 서 계신 한상우 연습생부터 순서대로 뽑을게요.”
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제작진의 안배로 직접 손으로 곡을 뽑게 된 하위권 연습생들은, 떨떠름하게 손으로 박스 안을 뒤적거리며 쪽지를 하나씩 골라냈다.
최가온은 프로 방송인답게 그들이 쪽지를 하나하나 펼칠 때마다 깜짝 놀라며 반응을 했다.
“먼저 한상우 연습생은 선배 남자 아이돌, 레오폴드를 뽑았네요! 이야, 레오폴드. 멋진 곡이 많아요. 역시 남자 아이돌이라면 이런 강렬한 컨셉을 한 번쯤은 해 봐야겠죠?”
한상우는 한시름 크게 놓은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유독 까다롭고 어려운 아크로바틱 동작의 안무가 많은 레오폴드지만, 일단 남자 아이돌인 게 어딘가.
게다가 정 너무 어렵다면 레오폴드가 그런 어려운 안무를 하기 전의 곡을 골라서 하면 된다.
물론 그런 안일한 선택이 어떤 반응과 결과를 불러올지, 지금의 한상우는 예상할 수 없었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다음으로는 성원협 연습생. 2OCD? 또 남자 아이돌이에요! 연속으로 운이 좋은데요. 이러다가는 전부 다 남자 아이돌을 커버하게 되는 게 아닌가 몰라! 아, 이채혁 연습생도 혹시?”
그러나 그런 최가온의 호들갑이 화가 된 걸까.
뽑은 쪽지를 연 이채혁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저, 저는….”
웬만해서는 저런 표정이 안 나오는데, 왜?
최가온이 잠깐 방송용 표정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궁금해하자, 이채혁이 더듬더듬 이어 말했다.
“레이디 스완 선배님들… 뽑았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최가온은 이채혁의 어깨를 팍팍 두들겨 주며 신나게 얘기했다.
“소속사 선배를 뽑다니, 운이 좋아도 너무 좋네! 이야, 도재찬 사장님께서 좋아서 어깨춤을 추시겠어요!”
어깨춤을 추긴 하겠지.
자기 백조들을 자기 손으로 망쳤었다는 괴로움에 잠긴 비탄의 눈물과 함께 말이다.
레이디 스완.
소속사 선배인 여자 아이돌에, 장렬하게 망한 걸그룹. 그런 그룹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이때까지는 최가온을 포함한 모두가 이채혁의 팀이 가장 큰 폭탄을 뽑아 갔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의 료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최가온을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MC님. 저, 저도 AG 소속사 선배님을 뽑았습니다아아….”
“오, 료타 연습생! 제가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얘기하다니. 장해요! 그래서 누굴 뽑았죠?”
“저어는….”
근데 있더라고.
“민시영 선배님을, 뽑았습니다….”
더 큰 폭탄이.
모두의 시선이 한 번에 료타의 팀에 있는 누군가에게로 꽂혔다.
“…….”
가오옌이 상품으로 챙긴 에너지바 하나를 나눠 받아 입에 넣다 말고 굳은 김춘용에게.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저 팀 조졌다.’
* * *
팀 확인과 커버 가수 선택이 끝난 후 찾아온 팀별 자율 회의 시간.
바들바들 떠는 다리로 팀원들 앞에 선 료타는 넙죽 도게자부터 날렸다.
“죄, 죄송합니다아악!”
료타의 입장에서는 지금 자신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임에 너무 과하게 몰입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팀원을 적게 뽑았는데, 거기에 커버해야 하는 가수는 대선배에, 여자 솔로 가수 민시영?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 보게 됐어!’
안 그래도 17위가 된 것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료타가 감당하기에는 중압감이 너무 큰 상황이었다.
“어어? 갑자기 웬 절? 일어나, 얼른! 아직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안 했어.”
두꺼운 로맨스 소설을 들고 끙끙거리다가 제일 먼저 잡힌 방유찬이 황급히 료타의 어깨를 잡으며 일으키려 들었다.
그러나 료타의 지옥에서 기어나온 것 같은 목소리에는 여전히 절망감이 가득했다.
“그럼 언젠간 저에게 뭐라고 하실 거군요….”
“아니거든!? 야, 춘용아. 좀 도와주라.”
“…아, 아? 뭐야. 료타는 왜 그러고 있대요. 잠시만요.”
잠깐 무언가 고민하는 눈치로 먼 산을 보고 있던 김춘용도 도게자 중인 료타를 일으키는 일에 얼른 합류했다.
두 사람이 붙잡고 힘을 좀 쓰자, 개구리처럼 바닥에 붙어 있던 료타도 결국은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됐다.
무릎을 꿇고 앉은 료타가 고개를 땅에 처박으려는 기세로 숙이고 조심조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일단 경찰이 되고 보니까, 어떤 팀을 만들겠다는 계획보다는….”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잡았다?”
“네에. 그래서 이미 팀을 해 본 사람들과….”
“룸메이트인 춘용이를 잡았구나.”
김춘용와 방유찬이 척척 자신의 속내를 맞출 때마다, 료타의 고개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다시 도게자를 하는 형태가 되었다.
“죄송합니다아악!”
“아니, 그만해! 너 이거 금지야! 또 하면 혼난다!”
“도게자 금지라니, 너무 잔인한 처사입니다아….”
“잔인은 무슨. 이럴 필요가 없는 걸 가지고 자꾸 그러네.”
방유찬은 그런 료타의 등을 퍽퍽 두드려 주며 잠깐 달래고는, 이 코미디 같은 상황 속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거울 앞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
에어컨 바람에 살랑거리는 머리카락. 오른쪽 눈 아래쪽에 박힌 눈물점.
아직 청년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예쁘장한 얼굴의 17살 AG 순혈 연습생.
장시우.
이미 료타, 그리고 방유찬과 함께 팀이 되어서 오리지널 곡 Aiming 무대를 꾸린 전적이 있는 연습생이지만, 방유찬은 여전히 장시우가 어려웠다.
“화성이 혀엉. 재하 혀엉.”
글쎄, 같이 오래 연습한 지화성과 손재하에게는 살갑게 잘 굴던데.
“아, 시우 안녕?”
“…안녕하세요.”
“시우야, 형이랑 같이 밥 먹을래? 다른 팀원들은 다 먹었다고 해서―”
“전 괜찮아요.”
“시우야! 어디 가! 형이랑 인사 좀 해 줘라!”
“…….”
어째 다른 사람들만 보면 찬 바람이 쌩쌩 부니.
Aiming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방유찬과 마주치자마자 도망가기까지 했다.
나름 같이 무대를 꾸민 전우인데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 모르겠단 말이야. 물론 나도 그때를 겪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10분만 주어지면 친해질 수 있었던 방유찬에게 이런 상대는 또 처음이었다.
‘근데 또 같이 팀이 됐단 말이지, 이렇게.’
방유찬은 잠시 연습실을 훑어보며 생각에 빠졌다.
팀원은 총 네 명. 방유찬, 료타, 장시우, 그리고 김춘용.
커버해야 할 가수는 대선배 민시영.
방유찬은 무근본의 무맥락 팀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뭐, 료타에게는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결국에는 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위로했지만….
‘진짜 괜찮나, 이거?’
“일단 곡을 골라 봐야 할 것 같은데. 다들 생각해 보신 거 있나요?”
그런 방유찬의 고민을 깨고 나온 건 김춘용이었다.
방유찬은 그런 김춘용을 보며 이상하게도 든든함을 느꼈다.
지금 민시영의 커버를 하게 되어서 가장 곤혹스러운 건 본인일 텐데. 저렇게 의연한 반응이라니.
“…저랑요? 저랑 친해지고 싶다고요?”
첫 등수 평가에서 민시영에게 찍히고서, 방유찬에게도 피해 가진 않을까 고민하던 사람이 말이다.
‘역시 좋은 애가 맞아.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잘 안 틀리지. …지금까지 여러 일이 있었으니까.’
방유찬은 뿌듯한 마음으로 얼른 김춘용의 옆에 다가가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음… 일단 선배님 곡 중에서 댄스곡만 일단 뽑아 보는 건? 발라드는 아무래도, 안무 만들기가 어려울 테니까.”
“아, 저도 동의를 합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료타지만, 동의는 할 수 있어요.”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저, 시우는… 아, 춘용이는 아직 시우랑 안면이 없던가?”
방유찬과 료타의 시선이 장시우와 김춘용을 번갈아서 바라봤다. 장시우는 김춘용을 잠시 바라보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습하면서 이름은 들었어요. 춤 잘 춘다고.”
그런 장시우의 말에 김춘용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이름은 들었어. AG에 장시우라는 천재 연습생이 있다고.”
“어어? 시우가 천재 연습생이야?”
“그럼요. 편곡, 랩, 노래, 춤, 다 잘하는 천재라고 소속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해요.”
“어, 시우가 못하는 게 없는 거 같긴 했는데….”
방유찬은 처음 듣는 말에 고개 확 돌리며 장시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장시우의 표정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저는 연습하면서 그런 말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요.”
“응? 나는 다른 소속사에서 연습하면서 엄청 많이 들었어. 네가 못 들었다는 게 더 의왼데?”
그 말을 하며 김춘용은 슬금슬금 장시우의 옆으로 엉덩이를 옮겼다. 둘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 모습을 본 방유찬은 자신의 머릿속 비상벨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춘용아! 내가 벌써 그래 봤는데 시우는 도망 가기만 했다고!’
“아하하, 잠깐 우리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라도―”
방유찬이 뒤늦게 상황을 뒤집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김춘용은 장시우의 옆에 스스럼없이 앉아 버린 상태였다.
그 상태로 느물느물 웃은 김춘용은 장시우의 어깨를 자연스럽게 툭 건드렸다.
“천재 장시우. 우리 무대 잘할 수 있게 의견 좀 내볼래.”
‘망했다. 저건 춘용이라도 안 돼. 이제 시우 일어나서 도망 칠….’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떠오르는 게 당장은 없어서.”
…안 가네?
방유찬은 멍한 표정으로 김춘용과 장시우를 바라봤다. 김춘용이 제 몸에 손을 대고 있음에도 별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자기가 말만 걸면 도망가던 사춘기 남학생이!
‘이, 이게 뭐야? 춘용이한테 무슨 기운이라도 나오는 건가?’
물론, 기운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방유찬이 모르고 있는 게 있다면.
예민하고 또 예민한 고양이, 장시우에게는 다가가는 메뉴얼이 정해져 있고.
김춘용은 7년의 세월 동안 그걸 몸으로 박치기해 가며 알아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