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9)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29화
* * *
그렇게 모든 연습생들이 원곡자와의 만남을 가진 이튿날 아침.
다국적 룸메이트들은 제각각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Jesus. 니나 선배님이 ‘편곡한 게 너무 좋아서 우리도 부르고 싶다’라고 했다고요. definitely, 내가 맞았던 거예요!”
보이지 않는 꼬리를 붕붕 흔들며 몸을 앞뒤로 마구 흔들어대는 로건은 이번 경연을 준비하면서 본 얼굴 중에 제일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고.
“나는 바로 데뷔해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홍콩의 별 가오옌. 로건은 상대도 안 돼.”
류웨이에게 치여 가며 약간은 자신감을 잃고 있나, 싶던 가오옌도 다시 그 감당 안 되는 미래를 신나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부 꽤 잘 풀리고 있다는 소리지.
“에에? 가오옌. 지금 거짓말을 치는 거지요!? 그럴 리가요!”
“거짓말 아니다! 홍콩말로 번역하면 그거나 그거나다!”
“그렇게 치면 저도 일본의 별입니다, 가오옌!”
“그래, 그래. 얘들아. 너희가 전부 별이야. 그런 걸로 싸우지 마라.”
나는 신이 나서 떠드는 룸메이트들을 잠시 뒤로하고, 다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쪽도 잘 풀렸나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똑똑…
– 누, 누구세요?
다행히도, 방 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살짝 가라앉은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쾌활한 척 지껄였다.
“나야, 김춘용. 잠깐 나와 볼래.”
– …잠시만요.
곧이어 방문을 열고 나온 장시우의 얼굴을 본 나는, 잠시 당황으로 입을 벙긋거려야 했다.
“어….”
“아직… 연습 시간 아닌데. 왜, 벌써 찾아오신…”
벌겋게 물들어서 퉁퉁 부은 두 눈. 한껏 잠긴 목소리. 나는 가볍게 혀를 차곤 뺨을 긁적였다.
펑펑 울었구만, 이거.
“장시우 연습생. 따로 좀 볼까요?”
어제 민시영 선배님과의 그 대담 이후, 적당히 촬영 분량을 쌓고 나자 선배님은 바로 장시우를 다른 사무실로 불러냈다.
다른 연습생들은 따라오지 말라는 엄포 때문에, 선배님이 어떤 식으로 시우를 대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것처럼 시우를 혼냈을 수도, 형과 비교하며 정신이 번쩍 들게끔 말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은연중에 상기시킨 것처럼 ‘공감대’를 강조하며 이해를 앞세웠을 수도 있고.
음, 그 뒤에 막내 제작진들이 쫓아갔으니, 카메라에 찍혔으려나.
하여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형도, 저한테 하실 말씀있으세요…?”
“어?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아, 어제 밤에, 그. 따로 찾아오셔서….”
시우는 말끝을 흐리며 그게 누구인지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유찬 형인 걸 알 수 있었다.
사정을 다 알게 된 유찬 형이니까. 대충 자기와 관련지어 어떤 식으로 이야기했을지 감이 왔다.
사람이 너무 좋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 형도.
“그래서, 형은 왜 오셨어요?”
“아니, 그냥…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는 얼른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꺼내 들며, 여전히 나를 빤히 보고 있는 시우에게 어색하게 말했다.
“너 혹시 이런 거 좋아해?”
“어…?”
장시우의 두 눈이 커진 걸 보고, 나는 이전에 화성이에게 그랬듯 진실과 거짓을 반반 섞으며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아니, 가방을 뒤져 보니까 이런 게 있더라고. 나는 이거 너무 달아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내 룸메이트들은 다 외국인들이라 이런 간식을 어색해하더라. 그래서 떠오른 게 너라서―”
“좋아해요.”
시우는 얼른 내 손에 들린 걸 들고 가며 웅얼거렸다.
“나, 남는 거 있으시면 저 더 주셔도 돼요. 제가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서. 이런 거 잘 먹거든요….”
“…그래. 너라도 좋아한다니까 다행이다. 더 찾아보고 나오면 줄게.”
안 그래도 너 줄 수 있으면 주려고 일부러 집에서 챙겨 왔거든.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래서. 오늘은 좀 열심히 연습할 수 있겠어, 장시우? 어제 면담은 좀 괜찮았고?”
“…….”
돌려서 핵심을 찌른 내 목소리에, 입술을 한 번 앙 문 시우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민폐 끼쳐서 죄송… 했어요.”
장시우는 이미 퉁퉁 부은 눈가를 거칠게 벅벅 문지르며 이어 말했다.
“팀 경연이니까 그러면 안 됐는데. 제가 너무 어리게 군 것 같아요. 제가, 좀, 어, 어려워하는 일이….”
“말 안 해도 괜찮아. 앞으로 무대만 잘하면 되니까.”
난 자신의 트라우마를 힘겹게 언급하려는 시우의 말을 빠르게 끊어 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쪽이기도 하고, 열일곱의 막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 말에 장시우는 불안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뇨. 제가 마음이 안 좋아요. 이따가 다른 형들한테도 따로 다 사과드릴게요. 형, 그리고….”
양갱, 고마워요.
나는 내게로 손을 흔들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는 시우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매니저 혀엉, 저 강냉이 하나만 사 주면 안 돼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할아버지 입맛인 우리 막내.
사실은 민시영 선배님을 거치지 않고, 우리 팀원들이 직접 기운을 북돋아서 다시 연습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너무 많은 신세를 진 막내니까. 나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봤으니까.
그렇지만 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는 법이다.
…지금 말고. 돌아오기 전에, 이렇게 잘해 줬어야 했는데.
이 상황에 약간은 씁쓸함을 느낀 내가 혀를 차며 뒤를 도는 순간.
“―시우랑 얘기했어?”
누군가가 내 어깨를 덥썩, 잡으며 차가운 무언가를 목에 들이밀었다.
“어, 어? 으아악!”
나는 내 목에 차게 달라붙는 이온음료에 기겁을 하며 소리를 뻑 내질렀다. 그 모습이 퍽 웃겼는지, 나를 놀래킨 당사자는 호쾌하게 웃어댔다.
“아하, 아하하! 진짜 웃기다, 춘용아.”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저 파도 너머의 우리’ 팀 연장자.
“아, 유찬 형! 진짜 놀랐다고요, 씁.”
“놀라라고 한 거 맞는데, 뭐. 네가 여기 올 거 같기도 했고.”
유찬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닫힌 시우네 숙소 방 문을 한 번 쳐다봤다. 그 눈길을 쫓은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제 시우랑 얘기했죠, 형?”
“아. 벌써 들었구나.”
“네. 그렇죠?”
“…우리 어디 좀 갈까?”
시선을 교환한 유찬 형과 나는 천천히 걸어서 어제 우리가 대화했던 비상 계단으로 다시 향했다.
둘 다, 지금 나눌 얘기가 카메라 오디오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 * *
“어땠어요?”
“…뭐가?”
“시우랑 대화한 거요. 형도 생각이 많이 들었을 거 같아서요.”
“춘용이 너는, 진짜….”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듯 자기 새카만 머리끝을 매만진 유찬 형은 살짝 허탈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처음에 나는… 시우가 너무 배부른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말하는 유찬 형의 두 눈은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형의 그런 말을 잠자코 들었다.
내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자, 형은 엷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별로 안 놀라네?”
“뭐, 놀랄 만한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거였고.”
“아니, 음. 내가 너한테나,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 준 이미지랑은 차이가 나는 말이니까….”
확실히, 내가 유찬 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정말 놀랐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걸 이해 못 해 줄 수 있어요?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거 같고.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시우도 알고, 유찬 형도 알고 있지.
나는 형을 향해 씩 웃어 보이며 쾌활하게 답했다.
“근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서 형이 이렇게 말을 꺼내는 거잖아요. 맞죠.”
“…응.”
톡- 톡-
유찬 형은 바닥에 발을 몇 번 구르고는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너희랑 좀 다른 환경을 보내다가 이제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잖아.”
“그렇죠.”
말 그대로였다. 유찬 형은 나와 시우 같은 다른 연습생들은 겪어 본 적 없는 바깥을 겪고 온 사람이다.
평범하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 입시까지 한 20대 초반의 청년.
“쟤가 왜 저럴까 싶었지. 저런 거에 하나하나 무너지면 다른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리고 당장 내 입장도 곤란해지고 있고.”
“이해해요. 저도 그런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 하고요.”
“그래서, 처음에 네가 시우 문제를 일단 덮어 놓고 해결하자고 했을 때. 아, 얘도 걔를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말하는 거구나. 했거든. 그러니까, 어…”
“아, 형은 제가 시우를 그냥 버스 태워 주려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어, 그래. 그거네. 응. 나는 네가 그냥 버스 기사를 하려고 하는 줄 알았어.”
그 말을 하며 유찬 형은 고개를 한 번 아래로 깔았다. 그리고 다시 들어 올린 형의 얼굴에는.
“근데, 어제 네가 민시영 멘토님께 얘기하는 거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어딘가 후련한 미소가 가득했다.
“물론 네가 버스 기사를 했어도 이해했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저 무면허예요. 형.”
“나도 면허는 없어! 학교 다니는 거랑, 어. 다른 거 때문에 얼마나 바빴는데.”
내 너스레에 내 어깨를 퍽퍽 두들긴 유찬 형은 살짝 머쓱해하면서도 자기가 하려던 말을 진지하게 전했다.
“하여튼, 고맙다. 춘용아.”
나도, 료타도, 더 나아가서는 시우도.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해 줘서 고맙다고.
나는 유찬 형의 그 말에 살짝 울컥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생한 건, 형이랑 시우인데.
둘 다 도움 되는 구석은 하나도 없는 문제 많은 멤버와 함께 팀을 꾸려 나가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당사자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애로우즈입니다!’
유찬 형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온갖 가수들의 피처링 작업에 매진했고, 시우는 우리 뒤에 데뷔해서 우리보다 더 잘된 후배들을 위해 콘서트 무대 구성을 도왔다.
…나는 그동안 술독에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그러니까 요 며칠, 내가 한 건 고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속죄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지.
“형 그래서… 어제 시우랑 무슨 대화를 했는데요?”
“어? 시우가 그건 얘기 안 했어?”
“네. 너무 운 얼굴이라서,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싶길래….”
“하하, 시우가 얘기 안 했으면 나도 못 해 주지. 우리 둘이서 한 얘기니까.”
“…싱겁네요.”
그러니, 이런 부분을 못 들었다고 서운해할 필요도 없고.
나는 시우와 함께 녹음 일정이 있는 유찬 형을 보컬룸으로 배웅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쨌든… 당장은 다 잘 풀린 거 같네.”
2차 경연까지 남은 시간은 오늘을 포함해서 4일.
‘저 파도 너머의 우리’ 팀의 팀워크도 앞으로는 문제가 없을 테고,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 일을 착착 해 나갈 테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 복도 끝에 자리한 텅 빈 휴게실 쪽을 노려봤다.
아직도 장시우의 광고 카피를 과한 애교와 함께 따라한 그 목소리가 꿈에도 나올 지경이었다.
악몽으로 말이지.
…망할 햄스터 자식 같으니라고.
우리 멤버들과 내가 잘 풀린 거랑은 별개로, 자꾸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가볍게 놀리는 입을 그냥 계속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김주안.
넌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