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33)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33화
* * *
모든 무대가 끝나고, 각 커버 대결의 승리팀을 발표하는 자리.
그 사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나는 우리를 향하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와 멘토, 그리고 방청객들을 보며 축축한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자! 그럼 이제 커버 미션의 두 승리팀과 전체 1위 팀을 발표하기 전에, 각 팀 연습생들의 간단한 소감을 들어 보도록 할까요? 자자, 먼저 손재하 연습생!”
“아, 네. 안녕하세요, 스타 슈터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연습생 손재하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레오폴드 선배님들의 ‘그림자’ 무대를 보여 드렸는데요, 이렇게 좋은 곡을 커버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고….”
방송을 아는 최가온의 안배로 몇몇 유력한 AG 연습생들이 먼저 인터뷰를 시작했다.
눈에 독기를 품은 그들은 준비해 온 자기 어필의 멘트를 술술 뱉었다.
그렇게 해야 한 번이라도 더 카메라를 받고,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으니까.
“자, 잘 부탁드립니다….”
“2OCD팀의 성원협입니다! 저희 팀에 한 표 부, 부탁드려요!”
그러나 무대에서 자기가 맡은 파트를 소화시키기 급급해 방청객들을 잘 인지 못하던 연습생들은 이 순간에 확 몰려오는 긴장감에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해가 됐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무대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는 건 떨리는 일이다.
그게 누구든 말이다.
나야, 뭐. 이전 아이돌 생활의 짬과 엑스가 준 아이돌의 아우라니, 6위의 의지니 같은 스킬들로 얼추 그런 긴장감에 대한 커버가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 희한한 이름의 스킬들 중 가장 도움이 된 건 단연 첫 경연 팀 1위 보상으로 선택했던 스킬이었다.
[그래도 저 마음에 드시죠? (F):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본인 어필을 해 웃음 유발 시 매력 보정 10%]당시 선택지 중 ‘매력’을 선택해서 나온 스킬. 본인 어필 후 웃음 유발,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스킬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왜냐하면.
“자, 그럼 민시영 팀의 B등급 김춘용 연습생의 소감도 들어 보겠습니다!”
“푸확!”
내 이름만 들으면 사람들 대부분이 저렇게 웃으니까.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지만!
“네, 김춘용 연습생! 하하, 옆으로 모실게요!”
보라. 최가온 선배님은 나를 만난 지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불시에 내 이름을 불러야 하는 순간만 오면 저렇게 웃음이 터뜨린다.
근데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다를까?
나는 방청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덩달아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며 최가온에게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가온 선배님! 오랜만에 뵈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어우, 저야 늘 잘 지내죠. 김춘용 연습생, 이번에 민시영 선배님의 ‘저 파도 너머의 우리’를 준비하면서 떨리고, 기대도 됐을 것 같은데. 오늘 무대를 끝낸 기분이 어떤가요? 해적 컨셉이라니. 저는 생각도 못해 본 컨셉이에요. 준비하면서 어려운 일은 없었나요?”
“아, 그건….”
어려운 일이라.
나는 눈동자를 굴려 무대 끄트머리에 서 있는 김주안을 바라봤다.
“―!”
무대를 말아먹은 대한 여파인지, 아직도 축 처져 있던 김주안은 내 시선에 어깨를 파르르 떨며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다행히도 이제 상황 파악은 좀 한 모양이었다.
나는 최대한 발랄한 목소리를 꾸며내며 내 옆에 서 있는 팀원들에게 손짓했다.
“역경이라기보다는, 대선배님의 대단한 곡을 커버해야 한다는 생각에 팀원들과 밤을 자주 샜던 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내 너스레에 시우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조용히 묻어 버린 내 태도에 살짝 놀란 모양이었다.
인마, 그럼 내가 김주안이랑 너 때문에 골머리 썩었다고 무대에서 얘기하겠냐?
같이 데뷔할 막내한테?
절대 그럴 일은 없지.
나는 빨리 마이크를 넘기라 손짓하는 막내 작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렇게 스타 슈터 여러분들과 처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려서 꼭, 데뷔하고 싶습니다.”
내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대답에 혀를 내두른 최가온이 내 어깨를 두드려 줬다.
“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 참 보기 좋아요. 자 그럼, 이제 각 커버 미션 승리팀과 전체 1위 팀을 만나 보겠습니다. 다들 스크린에 집중해 주세요!”
다트판에 주로 쓰이는 색상인 빨간색과 초록색, 흰색과 검은색. 네 개로 나뉜 칸에 각 팀의 이름이 붙고, 00으로 설정된 기본 명수가 떠올랐다.
“한 번 더 설명드리겠습니다! 각 커버 미션의 승리팀이 두 팀,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스타 슈터분과 멘토분들이 선정한 전체 1위 팀이 곧 화면에 나타납니다!”
300명의 디지털 투표가 이제 저 스크린에 떠오르면….
눈물 흘리고, 웃을 팀이 정해질 것이다.
“이 무대를 준비했을 연습생들의 고생이 순위로 치환될 수는 없겠지만, 데뷔라는 큰 목표를 조준하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첫 관문이 되겠습니다. 그럼 승리팀, 보여주세요!”
최가온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화면에 어지럽게 숫자가 돌아갔다.
0에서 9까지. 그리고 다시 9에서 다시 0까지.
사실 무대를 끝낸 연습생들의 얼굴만 봐도 승리팀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우리 팀, 그리고 로건과 지화성이 속한 ‘캘린더’ 팀.
신들린 뽑기 운으로 인기 남자아이돌 그룹을 커버한 ‘그림자’ 팀과 ‘Be the LOW’ 팀은 상대적으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우리 팀과 ‘캘린더’ 팀의 편곡과 무대 수준이 그들 생각보다 더 좋았으니, 사람들 뇌리에 남는 곡이 무엇일지도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중요해지는 건 전체 1위 팀이다.
“후….”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그렇게까지 잘할 줄 알았으면 네 편곡을 팀원들에게 들려줘라, 같은 조언은 하지 않았으려나.
때마침, 나와 눈이 마주친 로건이 벙긋거리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춘용 형, 덕분이에요!’
그 얼굴을 보자, 방금 떠올린 생각이 금새 우스워졌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우리 팀은 충분히 잘했고, 캘린더 팀도 결국엔 잘할 운명이었던 거니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믿을 건….
사람들의 눈뿐.
“셋, 둘, 하나! 지금 바로! 공개합니다!”
우와아아!
연습생들이 촬영 중 억지로 뿜어내는 환호가 아닌, 방청객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펑, 하고 터져 나오는 무대 효과.
나는 꾹 감은 눈을 천천히 뜨며 전광판을 확인했다. 흐릿한 시야로 겹쳐진 숫자들이 서서히 머리 안에 들어왔다.
레이디 스완 [캘린더> 205표 : 레오폴드 [그림자(SHADOW)> 95표
민시영 [저 파도 너머의 우리> 214표 : 2OCD [Be the LOW> 86표
전체 1위: 민시영 [저 파도 너머의 우리>
“아….”
다리에 힘이 풀려서 꼴사납게 주저앉을 뻔했다.
전체 1위.
[저 파도 너머의 우리>를 커버한, 우리 팀이 1위였다.기뻐하기에 앞서, 나는 순간적으로 우리 노래의 원곡자인 민시영 선배님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 무대는 정말 제게 선물 같이 느껴집니다.”
도재찬 사장이 절대적으로 ‘캘린더’ 팀을 지지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 팀이 1위를 했다는 건 누군가가 우리 팀이 1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는 소리니까.
“―.”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춘용아아아악!”
“춘용 아니키이!”
…우리 팀원 둘이 내게 달려들어 안겨서.
료타는 그렇다 치고, 유찬 형마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던 우리 팀이었으니. 형도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진짜, 와! 오늘 진짜 잘했어. 고마워. 고맙다, 춘용아!”
“…뭘요.”
형이 머리에 쓴 두건을 내던지고 내 머리를 마구 헤집고, 나는 그런 유찬 형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치며 함께 방방 뛰었다.
그리고, 그때.
내 무방비하게 열린 왼쪽 어깨로 누군가가 쑥 들어왔다.
“추, 춘용이 혀엉….”
살짝 민망해하지만, 스스로 신이 난 걸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
“어어?”
…장시우?
시우가, 이렇게 나한테 쉽게 안긴다고?
얘, 이전에는 만나고 1년은 되어서야 나랑 포옹했는데!?
“고마워요, 형….”
나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우리 막내의 등을 살살 두드려 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막내는 등이 좀 더 넓었다.
묘한 그리움에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시우에게 말을 전했다.
“…수, 수고했어. 시우야.”
“…죄송해요.”
나는 또 한 번 쓸데없는 사과를 하는 막내의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려 놓았다. 이걸로 시우의 마음속에 마이너스 점수를 받아도 상관없었다.
1위.
나의 애로우즈 멤버 둘, 그리고 료타와 함께 만들어 낸 결실.
“후우….”
“뭐야, 춘용이 울어!? 너 울어?”
“안 울어요!”
나는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유찬 형의 놀림을 빠르게 부정했다. 정말 울지 않았다.
단지, 이제야 현실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위는 이전 Aiming 무대에서도 받아 보았지만, 이번 무대를 준비하면서 워낙 일이 다사다난했어서 그런가.
고양감이 발끝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에 미소가 만개한다.
입이 제멋대로 지껄였다.
“다들 너무 고생, 고생했고….”
“고생은 춘용 아니키가 했습니다! 아니, 김주….”
“쉿, 료타. 지금은 그냥 즐겨!”
“오 맙소사. 그래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입니다!”
나를 끌어안은 팀원들 너머로 다른 연습생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기뻐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로건, 분해하는 다른 AG 연습생 안진우, 애써 밝은 표정으로 다른 연습생들을 다독이고 있지만, 창백하게 얼굴이 질린 재하 형.
“…….”
그리고 무슨 생각 중인지 감도 안 오는, 싸늘하게 식은 얼굴의 류웨이까지.
이게 진짜 서바이벌의 모습이다.
…내일 첫 방송이 시작되면 더 격렬해질 거고.
[타겟팅 스타>의 진면목이, 슬슬 드러날 시간이었다.* * *
– “숙소 내 카메라 철수했습니다. 다음 촬영은 첫방 공개 이틀 후에 다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연습생분들은 잠시 숙소에서 퇴소하셔서 본가를 방문하거나, 숙소에서 자유롭게 휴식하셔도 됩니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메인 작가의 말에, 드물게 연습생 통조림, 아니. 연습생 숙소에 활기가 돌았다.
“아싸! 엄마 보러 간다!”
“민호 형이랑 상우, 저희 집 가서 같이 놀기로 했는데, 가실 분?”
“어, 나! 나 갈래! 술 마실 거야? 맥주!?”
“그러겠어요? 미성년자들 앞에서 지금 무슨 소리를!”
“아, 그럼 콜라나 마셔야 하잖아! 어린이들끼리 가라, 그냥!”
“아학학! 이 형 진짜 웃겨!”
적당한 비속어,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는 웃음소리. 이제야 좀 남자애들이 18명이나 몰려 있는 장소 같았다.
그건 우리 다국적 룸메이트들도 같았다.
“Oh. 드디어 쉬는 날이네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24 Hours 내내 잘 거예요.”
“저도 공감입니다. 잠을 푹 자야 다음 경연도 잘할 수 있어요. 예쁘게 나와야지요!”
외국인 연습생들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휴식 시간이니까. 아마 숙소에 머물거나, 개인적으로 구해 둔 한국의 다른 숙소로 가겠지.
아마 로건과 료타는 그냥 숙소에 머물기로 한 듯했다.
“아, 춘용 아니키는 집으로 가시나요? 캐리어를 챙겼네요!”
“응. 가서 가족들도 보고, 같이 첫방도 봐야지.”
“―Wow. 가족끼리 사이가 좋은가 봐요. Good for you. 근사해요.”
“응? 어어… 그렇긴 한데.”
내게 ‘가족과 사이가 좋은가 봐요’라는 말을 하는 로건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러고 보니까 로건이 가족들과 전화하는 모습을 통 보지 못 한 거 같은데.
촬영용으로 일부러 공중전화를 가져다 놓으며 ‘가족들과의 전화’ 시간을 유도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좋은 시간 보내고 와요, Bro. 저도 가오옌이랑, 료타랑 재밌게 놀고 있을게요.”
“…그래. 다녀와서 보자, 로건.”
나는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건물 밖으로 향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이렇게 첫 휴가를 받고 나서야 다시 떠올랐다.
[아이돌 서바이벌 ‘타겟팅 스타’ 이로건 연습생 하차 안내문]로건이 다가오는 다음 경연 후에 하차를 했던 사실을 말이다.
이번 레이디 스완 커버 ‘캘린더’ 무대도 그렇고, 영국인 연습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화제가 굉장히 많이 됐는데.
“…씁.”
애로우즈 멤버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다국적 룸메이트들에게도 정이 꽤 들었는데. 이렇게 그냥 가게 되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았다.
만약 이번에도 똑같이 하차하게 되더라도, 뭐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가는 건지 대화는 한 번 해 보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계단 너머 건물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여기는 한국이다, 중국인. 로마 법인지 뭔지처럼, 한국에서는 한국의 말을 하라!”
…계단 아래, 지하층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가 없어서 은밀한 대화를 하기에 적합한, 내가 종종 이용하던 그 공간에서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홀린 듯 캐리어를 잠깐 벽 쪽에 붙여 둔 채, 아래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 딱딱하지만 자신감 넘치고, 어딜 가서도 절대 기죽지 않을 것 같은 말투는….
“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게 아니면 어림도 없다! 나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룸메이트들과 놀고 싶다! 너 같은 시체 말고!”
가오옌?
그리고 그렇게 비상 계단 떠나가라 울림통을 쩌렁쩌렁 울리는 가오옌의 앞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安静点,我没有那个理由。(조용히 해. 내가 그럴 이유는 없어).”
“헛소리! 나도 그럼 너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자랑스런 홍콩의 남자, 가오옌이니까. 곧 한국에서 멋지게 데뷔도 할 예정이지.”
가오옌과 달리 볼륨을 줄여 조심스럽게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대화 상대가 누군지 깨닫자,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하아….”
가느다랗고 숱 많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며, 로봇 같은 표정은 어디에 두고, 한껏 짜증을 얼굴에 담은……
“그래. 이제 만족하나?”
―류웨이.
난 떡 벌어지려는 입에 주먹을 처박으며 헛숨을 들이켰다.
…쟤네 둘이 저기서 뭘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