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32)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32화
* * *
다음 팀의 공연을 위해 무대를 정비하는 짧은 시간.
방청석 제일 뒷줄 끄트머리에서, 백 개에 달하는 잘 감춘 카메라의 렌즈가 아래로 쑥 내려갔다.
모자와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소위 ‘찍덕’ 여성은 험악한 얼굴로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시큐리티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걸릴 뻔했네….”
다년간의 ‘뮤직 데이즈’ 서바이벌에 단련된 서바이벌 광인 찍덕이라고 해도 시큐리티의 눈을 피하는 것은 늘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걸리면 블랙리스트 등록은 물론, 앞으로의 모든 방청 참가 금지. 아직 팬클럽이 없으니 팬클럽 불이익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서바이벌에서 데뷔까지, 딱 그 사이만 짧고 굵게 활동을 하며 본인의 촬영 욕구를 채워 왔다.
그 이후로는 서바이벌 시절의 반짝임이 없었다.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 반짝거리는 연습생을 찾아 서바이벌로 돌아간다.
남들이 들으면 ‘징그럽다’ 할지도 모를 그녀만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젠간, 그 순간순간이 절실한 아이돌 피사체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멈춰도 될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이 순간에 최대한 많이 찍어 둬야 해. 지금이 제일 절실할 때라고. 어디 보자, 그러니까 이번에는….’
[ㅇㅇ @FDNPFADKADㅌㄱㅌㅅㅌ 무대 순서 유출
1. 단체곡 ㅇㅇㅁ
2. loe폴드-그림자
3. lady스완- 캘lin더
4. 민ㅅㅇ- 저 파도 너머의 우리
5. 2오씨디- be 더 low]
아동용 애니메이션, ‘갤리온을 타고 떠나요’의 오프닝 송인 ‘저 파도 너머의 우리’.
다른 사람들이라면 애니메이션 노래로 무대를 한다고 놀라고도 남았지만, 이미 수많은 서바이벌을 통해 온갖 곡과 컨셉을 섭렵한 그녀에겐 그저 ‘바다 배경인 노래니까 마린룩이겠군’이란 식상한 결론만 도출될 뿐이었다.
‘뭐. 민시영 노래인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괜찮지. 신나고, 노래도 좋고. 게다가 마린룩이 아무리 진부하다고는 해도… 평타는 치니까.’
간단하게 평가를 마친 그녀는 카메라를 쥔 손에 단단히 힘을 주며 무대가 다시 밝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이번에 찍을 연습생은 방유찬과 장시우.
이미 꽤 알려진 연습생들을 미리 사전에 체크해 두는 건 찍덕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입장 전 하이터치회에서도 유력 연습생을 위주로 얼굴을 확인해 뒀다.
앞서 말한 방유찬과 장시우에 더불어, 손재하와 지화성. 류웨이 같은 연습생들 말이다.
“저, 혹시… 잠깐만 얘기….”
어째서인가 하이터치회 마지막에 그녀를 붙잡던 소심한 연습생이 있긴 했지만, 큰 관심이 가진 않았다.
갑자기 생각도 안 했던 연습생에게 치이거나 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되면 기적이지, 기적.’
기적.
너무 멀고도,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단어 아닌가.
“그럼, 바로 민시영 선배님의 ‘저 파도 너머의 우리’ 팀을 만나 보겠습니다!”
무대 사이드 쪽에서 들려오는 최가온의 낭랑한 진행에, 찍덕 여성은 하던 생각을 빠르게 접어 두고 카메라를 눈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제는 집중해야지.’
장내로 살짝 어두운 푸른색 조명이 들어오며 어렴풋이 연습생들의 인영이 드러났다.
그들 뒤쪽의 스크린에서는 하얗게 빛나는 달과 잔잔한 밤바다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커다란 천 하나로 자신들의 몸을 가린 사람이 셋.
“…….”
우뚝 서서 이마에 손을 대고 먼 곳을 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스피커를 통해 청량한 통기타음이 울려 퍼지고, 넉넉한 품의 흰 와이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서 있던 소년이 핀 조명을 오롯이 받으며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 잠을 이룰 수 없던 어젯밤
내게 달이 말을 걸었지
수평선 너머를 본 적이 있냐고
선 얇고 예쁘장한 얼굴, 눈가에 찍힌 눈물점.
‘장시우!’
렌즈 너머 대상이 누군지 빠르게 파악한 그녀는 무음 처리된 셔터를 마구 눌러 댔다.
정말 달이 자신에게 말이라도 걸었다는 듯, 홀린 것처럼 허공으로 손을 뻗는 장시우에게서는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얼굴에 순진무구한 표정을 띄운 장시우는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홀로 옆으로 빠져 빙그르르 턴을 돌았다.
– 데려다 줘 그 끝으로
내가 보지 못한 찬란한 내일로
그리고 다시 방청객들을 보는 그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박혀 있었다.
순간, 잔잔하게 깔리던 기타 소리에 변주가 들어오며 앉아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천을 확 젖히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도 핀 조명이 하나 따라붙었다.
잘 세팅된 머리 위로 넉넉하게 맵시 잡은 두건을 머리에 얹은 연습생은, 장시우의 반대쪽으로 턴을 돌고는 힘껏 노래했다.
– 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알고 싶어 파도 너머의 것들을
쏟아지는 보석, 달콤한 황금!
장시우와 똑같이 하늘거리는 품 넓은 흰 와이셔츠가 움직임에 따라 펄럭였다.
그러나 옷 자체의 단추 개수가 달라서일까. 그의 움직임에서는 묘한 성숙함이 느껴졌다.
거기에 나른한 인상과 대비되게 편안하게 올라가는 고음, 쩌렁쩌렁한 성량.
방유찬이었다.
찍덕 여성은 그의 사진 역시 몇 장을 건져 올리며 방유찬이 들려주는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진짜 존나 잘 부른다… 스튜디오 뚜껑 날아가겠네. 저래야 한국대 실음과 수석을 하나? 관상에는 명창이 없는데. 신기하네.’
그리고 와중에 아직 무대 가운데에서 천을 덮고 앉아 있는 연습생들을 향한 의문 역시 지우지 않았다.
뮤지컬적인 요소를 좀 넣은 건 알겠는데, 계속 저러고 있는다고?
왜?
그리고 그녀의 그런 의문에 대답을 해 주겠다는 듯, 장시우와 방유찬이 동시에 노래를 주고받으며 천을 확 들어 올렸다.
– 데려다 줘
파도와 바람, 유리병 편지가 떠다니는
저 너머의 바다로
데려다 줘
“…아?”
찍덕 여성은 카메라 너머 넘실거리는 천 쪼가리의 정체를 알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천인 줄 알았던 것은 천이 아니었다.
…깃발.
깃발이었다.
그 깃발이 무대 옆에 있던 스탠드 마이크에 꽂히고, 네 명의 연습생들이 모두 모여 단체 안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장시우와 방유찬에게만 쏘아지던 조명이 가운데로 쏘아지며 그들의 의상 디테일을 드러냈다.
“어….”
막연히 ‘바다 관련 애니메이션이니까, 마린룩이겠지’ 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건 찍덕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그러니까.
해…
‘해적? 모험하는 마린 보이가 아니라!?’
마이크 스탠드에 박힌, 검정색 바탕 위에 흰색으로 크게 X가 쳐진 깃발.
료타와 방유찬이 쓰고 있는 쉐입을 잡은 두건. 장시우의 반바지 아래로 끈을 살랑거리는 웨스턴 스타일의 부츠.
– 처음이 아니야 이런 기분
널 만났을 때부터
난 이미 그 다음 날을 꿈꿨던 거야
그리고, 가운데에서 춤을 추고 있는 김춘용이 끼고 나온 검은색 안대까지.
메인 댄서 포지션인 멤버의 시야가 제한되는 것은 크나큰 디메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김춘용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이 곡의 컨셉을 알려야만 했던 것이다.
밤 배경이었던 스크린이 밝게 빛나고, 이윽고 높은 파도가 철썩이는 망망대해로 바뀌었다.
– 흔들리는 물빛 너머 나는 볼 수 있어
더 높이 더 높이
함께이기 때문에 무서울 게 없어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편곡하고, 밤이 새도록 안무를 짜고, 장시우의 멘탈 터짐이라는 역경을 겪으며 준비한 무대, [저 파도 너머의 우리>.
이건 단순히 모험을 떠나는 노래가 아니고.
– 데려다 줘
같이 가자
바람을 타고 떠나는
무엇일지 모를 내일이 기다리는
그래.
저 파도 너머의 우리
우리의 ‘데뷔’라는 보물 상자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라고.
살짝 유치할 수 있는 밴드 사운드에 신디음을 얹고, 통기타와 더블 일렉으로 메인 멜로디를 끌고 가며, 김춘용과 장시우가 밤낮으로 짠 코레오를 넣은 무대는….
‘대박, 존나 대박이다…!’
정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이 앞의 ‘캘린더’ 팀이 워낙에 세련되고 깔끔한 무대를 선보여서, 바로 다음에 나올 무대는 시큰둥하리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쪽은 연습생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풋풋함이 넘쳐 흘러서, 방청객석 여기저기에 포진한 서바이벌 광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어색하더라도 카메라를 찾는 눈, 자신이 센터가 아닐 때 방청객을 향해 보이는 웃음. 그럼에도 부족한 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춤과 노래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찍덕 여성의 눈길을 가장 끄는 건.
– 부러진 노와 돛이
우리를 다치게 해도
저 바다 아래 달이 웃고 있어
아프지 않아, 이것쯤은
Beyond the wave (Beyond the wave)
드럼 비트에 맞춰 격한 동작을 취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료타와 함께 랩을 주고받는 김춘용이었다.
‘쟤. 아까 그 하이터치회 마지막 순서에 있던….’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찍덕 여성의 렌즈가 저도 모르게 김춘용 쪽을 향했다.
분명, 그녀 취향이 아닌 연습생인데.
아까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어리고 예쁘장한 장시우나, 나른하게 섹시한 느낌이 드는 방유찬 쪽이 더 정배인데.
하다못해, 지금 그 옆에서 콧잔등에 깜찍하게 밴드를 붙이고 있는 료타가 더 그녀 취향인데!
‘내가 왜, 저렇게 날티 나는 애를 찍고 있지…?’
그리고, 김춘용이 회심을 다해 만든 손수건을 이용한 댄스 브레이크가 나오기 직전.
– 그래, 함께 가자
이전에 본 적 없던 세상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슥, 들어 올린 김춘용이 그녀의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찍었다.
“……!”
쾌활하게 올라간 입꼬리 아래 나타난 송곳니, 안대 아래에서 빛나는 어딘가 깊은 눈동자와 그에 어울리는 뾰족한 눈매까지.
김춘용이 갖춘 모든 근사한 요소가 온전히 찍덕 여성의 렌즈 안으로 들어왔다.
완벽한 셔터 찬스였다.
“어, 어…?”
그녀는 셔터를 마구 누르면서도 얼빠진 소리를 냈다.
벌써 찍덕을 알아본다고? 방청객은 처음 보는 연습생이?
‘지금도 제일 뒤에서 시큐리티 몰래 찍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당황한 찍덕 여성은 모르고, 지금 무대 위에서 몸이 부서지라 춤을 추고 있는 김춘용만 아는 사실.
“렉스야! 오늘도 힘내! 언제나 응원할게!”
김춘용의 기억 속 그녀가, 떠나가기 전까지 늘 뜨거운 응원을 보내 줬던 탑시드 홈 마스터. ‘슈팅 렉스’였다는 것.
항상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최대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그녀였지만, 김춘용이 그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렉쓰레기가 악성 멤버로 이름을 떨치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때도 꿋꿋이 그에게 좋은 SNS 글을 남겨 주던 사람이 ‘슈팅 렉스’였으니까.
‘…슈, 슈팅 렉스 누나잖아. 이번에도 첫 방청부터 온 거야?!’
하이터치회에서 그녀를 보게 되었을 때, 김춘용은 심장이 발바닥까지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른 방청객들에게는 능글능글 끼도 부렸는데, 그녀에게는 뻣뻣하게 몇 마디 꺼내 보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나 말고 다른 연습생을 좋아하는 게 저 누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미안함. 죄책감.
날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온전히 기쁨이 되어 주지 못 했다는 슬픔.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렌즈는 결국 또 김춘용에게로 향했다. 제일 뒷줄에서 시큐리티를 피해 반짝이는 그녀의 카메라 렌즈를 본 순간, 김춘용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그녀가 8년의 시간을 되돌아와서도 김춘용을 찍고 있었으니, 김춘용은 그런 그녀에게 무대로 보여 줘야만 했다.
[⎿슈팅렉스 @Shooting_REX언젠간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나에게도, 너에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으니, 해보이겠다고.
지금 김춘용이 선보이고 있는 무대는 속죄의 장이며, 다시 없을 결심의 순간이었다.
* * *
“―감사합니다! ‘저 파도 너머의 우리’ 팀이었습니다!”
무대를 마친 민시영 팀이 짧은 인사를 하고, 2OCD팀이 무대 위에서 가볍게 몸을 풀 때까지도, 찍덕 여성은 자신의 카메라에 담긴 김춘용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이름도 모르는데….’
아까 하이터치회에서 만났을 때 조금 더 신경 쓸걸.
아니, 미리 프로필 확인 좀 하고 올걸!
“그으… 걔 이름, 김춘용이래요. 저도 현장 와서 알긴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확 들었다. 그녀 옆에 앉은 여자, AG물산회사는 살짝 민망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며 작게 속삭였다.
“아니, 아실 수도 있는데. 혹시나 싶어서요. 그냥….”
“아뇨, 아뇨!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진짜, 진짜 감사해요.”
그녀는 AG물산회사에게 연신 인사를 하며 빠르게 휴대폰으로 새 SNS 계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이 춘용, 춘용이랬으니까. 용의 순수 우리말이….’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지 않아도, 눈물을 흘리며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닿는 감정이 있다.
[늘봄미르 @NBML__0000#타켓팅스타 #김춘용 #용용이(용이모티콘) #입덕완]
그리고 마지막 해시태그.
#기적.
‘슈팅 렉스’의 계정 주인이 이번에는 ‘늘봄미르’ 계정을 새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