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4화
* * *
내 마지막 탑시드 홈이 닫히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여느 날처럼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올라 댄스 브레이크를 장렬히 말아먹은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이었고.
[슈팅렉스 @Shooting_REX201×0710~202×0406: Close]
그 단어를 봤을 때는 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넘기기에는, 그 아래로 나를 향한 장문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슈팅렉스 @Shooting_REX렉스야, 나는 너를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어. 네가 [타겟팅 스타> 마지막 멤버로 뽑히고, 엉엉 울면서 정말 열심히하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니? 너는 오늘 전혀 열심히 안 하더라.]
문장 하나하나가 뼈를 때린다는 게 그런 거였을까?
지금의 너는 그때의 네가 아닌 것 같아. 네게 있었던 힘든 일? 물론 나도 알지. 그렇기 때문에 너를 비난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더는 응원하지 못할 거 같아. 그게 호구 같은 내가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거든.]
그걸 읽는 순간에도 나는 정신이 흐릿한 채로 손으로 맥주캔을 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마 맨정신으로 볼 자신이 없기에 했던 자기방어였던 것 같다.
…미친놈이 따로 없지.
[⎿슈팅렉스 @Shooting_REX사실 이렇게 쓰면서도 걱정이 돼. 만약 정말 네 곁에 아무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지? 누구도 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 길고 길었던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슈팅렉스 @Shooting_REX언젠간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대충은 맞았다.
조회수가 200만 가까이 되는 ‘렉쓰레기 탑시드 홈마의 절절한 팩폭과 생일 기념 계폭 ㄷㄷ’이라는 영상 댓글에는 ‘라임 쩔었다 ㅋㅋ 노린 거 아님?’ 혹은 ‘이게 바로 업보다’ 같은 조롱뿐이었으니까.
“응? 저기, 괜찮으세요?”
“아? 네, 네! 괜찮아요. 거기에 싸인해 드리면 될까요?”
어느새 밖에 나갔던 두 아르바이트생이 돌아왔다.
나는 방금까지의 우울함을 싹 지우곤 밝게 웃으며 그들이 들고 온 종이에 익숙하게 싸인했다.
춘(春) 한자 위로 불 뿜는 귀여운 용, 그게 내 싸인이었다.
“헉, 벌써 싸인도 만들어 두신 거예요? 귀여워… 이거 용이네요!”
“아, 네. 그게, 제가 개인 연습생이라서요. 곧 서바이벌에 나가요. [타겟팅 스타>라고….”
“헐. 그거 AG 엔터에서 하는 아이돌 서바이벌 맞죠? 기사 봤는데!”
“아, 네. 만약 보시게 된다면, 꼭 응원해 주세요.”
이번엔 정말, 정말 열심히 할게요.
나는 내게 손을 흔들며 연습실 바깥으로 나가는 두 사람과 첫 번째 팬, 이라는 휴대폰 속 문구를 번갈아 보며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잘해 줘야지.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악성 멤버 렉쓰레기 말고, 김춘용으로서.
* * *
저녁이 되고, 나는 내일 있을 사전 인터뷰를 위해 한 시간 일찍 집으로 향했다.
물론 내 팬이 되어 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에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가득 든 상태였다.
한 번 없다가 다시 생기니까 계속 신경 쓰게 되더라. 뭐라도 더 해 주고 싶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할 줄이야.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의 뜻을 여실하게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뿅!
– X: 아무리 그래도 좀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자연스럽게 ㅋㅋㅋㅋ
– X: 김춘용 너 지금 가족들이 지금 너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모르지? 눈치 좀 까;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 가족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 이게.
나는 엑스가 보낸 극악무도한 문자들을 가뿐히 무시하고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 다?”
집 안은 온통 새카맸다.
원래 가족들은 토요일 밤 저녁에 다 같이 모여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평소와 달리 거실에서는 영화 효과음 비슷한 소리조차 나지 않고 있었다.
다 같이 일찍 자나? 아니면 외출?
괜한 긴장감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 난, 곧 어둠 속에서 고양이 모양 무드 등만 하나 켜놓고 두런두런 대화 중인 가족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들 뭐….”
“김춘용 걔,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이상하다니까?”
나는 반쯤 열었던 입을 콱 닫았다. 그러곤 복도 벽에 달라붙어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얘기들을 하는 거야?
“왜, 어제 내가 연습실 갔다가 들어올 때 김춘용 보고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그랬거든.”
“근데?”
“진짜 사 왔어.”
“…지밖에 모르던 우리 아들내미가?”
“내 말이! 게다가 포인트도 내 이름으로 적립했더라. 김춘용이 원래 그러던 애야? 아니잖아.”
얘기를 들을수록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잘해 줘도 난리네? 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그들만의 심각한 토론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어쩌면 좋니… 진짜 어디 아픈가 보다. 녹용 같은 거라도 해 먹여야 하나?”
“아냐, 오빠 관종이라서 일부러 그러는 거라니까, 아빠. 걱정할 거 없어. 언니 아이스크림 사다 준 것도 뭐. 언니네 학생들한테 자기 홍보 좀 해 달라고 뇌물 갖다 바친 거겠지.”
“아니, 그래도….”
“아니, 애가 좀 그럴 수도 있지! 다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춘용이 마음을 그런 식으로 왜곡하면 안 돼.”
엄마, 역시 나를 쉴드 쳐 주는 건 엄마뿐이구나.
“아무리 애가 아파 보이기로서….”
아니었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엄마마저 나에 대한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재빨리 거실 불을 켰다. 네 가족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불을 켠 대상을 찾았다.
나는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고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다들 불 끄고 뭐해? 귀신도 아니고.”
“떠헙!”
내 말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가족들이 와르륵 흩어지며 포즈를 취했다. 그래 봐야 어두운 거실 각 귀퉁이에 자기 몸을 기댄 정도지만 말이다.
“아, 아들 왔어?”
엄마는 애써 아무 일도 없는 척 웃어 보이며 나를 맞이해 줬다. 손에는 어색하게 김나리가 사다 둔 고양이 무드등을 들어 올린 채였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맨날 새벽 다 돼야 오고 그러더니.”
“어어. 회사에서 내일 낮에 사전 인터뷰 한다고 그래서….”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거실을 가로지른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그들 가운데에 과자로 꽉 찬 편의점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따 넷이 영화 볼 거지? 이거 먹으면서 봐.”
“…아들이 산 거야?”
“어. 내가 먹으려고 산 건데, 내일 인터뷰 때 부을까 봐. 알아서들 나눠 먹어.”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재빨리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경악한 가족들의 목소리가 내 뒤를 사정없이 때려 댔다.
“자기가 먹으려 산 걸 왜 우리한테… 잠깐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있는데?!”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는 하나도 없어….”
“어머, 어머. 세상에.”
“어떡해. 김춘용 머리가 돌아 버린 게 맞나 봐.”
김나리의 허탈한 선언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나는, 문에 기대 주르륵 미끄러지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우리 가족들한테 내 이미지가 이랬다고?
그리고 나의 이런 참사를 비웃는 엑스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X: 그러게 내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그랬잖아 ㅋㅋㅋㅋ
– X: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3-
– X: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스킬 확인이나 해라!
나는 엑스와 끝장나는 키보드 배틀을 시작하려다 손가락을 멈칫거렸다.
“…스킬?”
눈살을 찌푸리고 기억해 보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첫 번째 팬이 생겼다고 알려 준 건 아는데.
– X: 도감 해금하고 보상으로 스킬 받았잖아! 벌써 까먹었냐? 너 생각보다 더 멍청하네??
아, 그거 말하는 거구나.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채팅창 가뿐히 무시하고 상태창으로 들어갔다. 아까랑 비슷했지만, 스킬란에 [아이돌의 아우라 (F)> 라는 것이 생겨나 있었다.
[아이돌의 아우라 (F): 누군가의 우상이 된 사람이 가지는 분위기, 혹은 에너지. 팬이 늘어날수록 랭크가 올라간다.효과: 무대 위에서 매력 +1]
이렇게 보니까 내가 정말 게임 캐릭터가 된 것만 같았다. 미묘하게 현실에 괴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 같기도 했고.…
“후우….”
슬쩍 방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해 보자, 가족들은 로봇이 펑펑 터져 나가는 영화를 보며 내가 사 온 과자를 먹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늘 함께 살았던 것처럼.
“근데 그걸 어떻게 하냐고.”
나는 가족을 잃고 살아온 지가 벌써 6년째인데!
다시 데뷔하려고 발악하는 것보다 가족들 대하는 게 더 어려워질 줄이야. 이런 건 꿈에도 몰랐지.
– X: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데뷔에나 집중해, 어?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거임
– 김춘용: 응 너는 싸가지나 좀 찾고 말하셈
– X: ;;
– X: 긴 말 안 한다 잠이나 자라
– 김춘용: ㅇㅇ
– X: ㅡㅡ
그래도 나는 엑스의 조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해서 징징거리는 것보단 내일을 준비하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무엇보다도.
[AG 엔터테인먼트 대중 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 계약서]…새로 가계약한 소속사는 그런 것에 과할 정도로 예민했다.
내가 원래 몸을 의탁하고 있던 소속사, 퀸스(QuinCE)는 꽤 괜찮은 중형 아이돌 전문 연예 기획사였다.
길거리 캐스팅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방과후에 늘 연습을 해 왔으니, 대략 5년가량 함께해 온 셈이다.
“춘용이 오늘 시선 처리 좋다!”
지하 연습실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퀸스의 4번째 남자 아이돌 그룹 메인 댄서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네? 이렇게 갑자기 말씀하시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실장님. 지금 제 나이가 스물이에요!”
“그게, 춘용아. 일이 그렇게 됐어. 나야 너 잘하는 거 다 알지. 근데 최종 결정은 이사님들이 하시는 거니까. 응? 정말 미안하다.”
“그렇, 그렇게 말씀하셔도….”
새로 낼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의 최종 데뷔조에서, 나는 이미지가 안 맞다는 황당한 이유로 떨어지게 되었다.
“…하하.”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지가 안 맞는다고? 갑자기?
말이야 그렇지, 사실은 뒤늦게 들어온 다른 연습생을 꽂아 주려다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연예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지금의 내가 유추 못할 리 없었다.
“춘용아. 일단 계약 자체는 쉽게 해지해 주신다니까… 이번에 어거스트에서 남자 아이돌 서바이벌을 하거든? 내 생각에는 그쪽으로 한 번 나가 보는 게 어떨까 싶어. 너는 충분히 가능성 있을 거야.”
그렇게 데뷔조에서 떨어진 내가 [타겟팅 스타>에 나가기로 결심하며, 새로 가계약한 연예 기획사.
어거스트 엔터테인먼트. 통칭 AG 엔터.
AG 엔터가 어떤 소속사냐, 라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획일적인 대답이 들려온다.
“음, 솔로 가수 명가죠. 최가온, 곽태은, 류정혁, 민시영. 전부 어거스트 아닌가?”
“배우들도 탄탄해요. [유령의 목소리> 찍은 서정욱도 AG로 옮겼다더라고요.”
“그에 비해 그룹은 좀 시원찮은 느낌. 그, 레이디 스완이 AG였죠? 요즘 솔로로 활동하는 거 보면 멤버들 실력은 확실한데, 당시 기획이 좀….”
“확실히 그룹 쪽은 약한 거 같아요. 이해도가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올곧고, 정직하고, 실력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느낌의 배우와 솔로 가수 전문 기획사.
확실하지 않은 것은 취급도 않는다. 우리는 완벽만을 추구한다.
그게 연예 기획사, 어거스트의 기조였다.
그래서 그들은 첫 여자 아이돌 그룹, ‘레이디 스완’을 내놓을 때도 어거스트는 매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우리 백조들 실력이 이렇게 좋은데, 못 뜰 리가 없잖아?”
이건 레이디 스완의 데뷔 쇼케이스 당일 소속사 사장, 도재찬이 실제로 했던 말이고, 그건 그대로 저주가 되었다.
레이디 스완 선배님들은 데뷔 후 3년 내내 단 한번도 1위를 못 해 봤다.
오히려 흩어진 후에 솔로로 상을 휩쓸었지.
그건 대한민국 넘버원 연예 소속사 사장, 더 나아가서는 아이돌 1티어 소속사 사장을 꿈꾸던 도재찬에게 굉장한 타격을 줬다.
“…이대로는 절대 그냥 안 물러나지. 내가 누군데? 나 도재찬이야!”
그는 자기 커리어에 ‘실패한’이라는 수식어를 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도재찬이 6년 동안 이를 갈며 준비한 게 바로 [타겟팅 스타>였다.
자기 기획사에서 연습한 연습생들 6명, 타 기획사에서 넘어온 연습생 6명, 협력 방송국을 통한 개인 지원자 6명.
총 18명 중 6명이 데뷔하는 소속사 자체 서바이벌 프로그램.
[타겟팅 스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너무 속 보이는 기획이라 손가락질받았다.자기 소속사 연습생이 6명인데, 데뷔하는 인원도 6명이라니. 너무 뻔하지 않냐고.
다른 기획사에서 온 연습생들이나, 개인 지원자들은 방송용으로 쓰다가 자기 애들만 데뷔시키겠다는 속셈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도재찬은 그 의혹들을 제작 발표회 당일 정면으로 반박해 버린다.
“돌과 돌을 맞부딪치면, 더 강한 돌이 남지 않습니까? 저희 마당 안 원석들이 더 약할 수도 있는 노릇이죠. 정직하게 판단할 겁니다. 저, 엄선한 멘토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요.”
물론, 이 발언 역시 ‘간절한 연습생들을 소모품 취급한다.’, ‘인간 개개인 강함의 잣대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같은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도재찬이 자기 말을 지켰다는 거다.
왜냐면 AG와 가계약 했다곤 하나 다른 소속사, 퀸스에서 왔던 나와 개인 연습생 한 명이 함께 애로우즈로 데뷔했으니까.
다음 날 아침. 나는 오랜만에 다시 보는 소속사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뭐 허구한 날 사고쳤다고 불려 간 건물이니까 뭐가 두렵냐 하겠지만. 두려워서가 아니라….
“뭐야. 너 김춘용이냐?”
이 자식이 회전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어서.
나는 앞에서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혐오 섞인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는 꼬꼬마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어떻게 그때랑 똑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