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8화
* * *
메인 작가, 이현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촬영장을 살폈다.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
“흐, 흐흑… 아, 그쳐야, 하는데…”
평가 후 무대 옆에 울면서 앉아 있는 연습생들은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지금 저기서 털린 멘탈 붙잡고 울지 않고 있는 애들이 대단한 거지.
어차피 연습생들은 눈물도 웃음도 화도 전부 분량이 된다.
그러니,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멘토들.
“네, 김춘용 연습생. 노래랑 춤 같이 보도록 할게요.”
일단. 민시영.
그녀의 심사 기준은 깐깐해도 너무 깐깐했다.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민시영은 AG의 살아 있는 전설이니까.
AG의 몸집이 이렇게 커지기 전, 천재 솔로 가수로 혜성처럼 등장해 차트를 휩쓸고 가요대상을 석권한 그녀에게 웬만한 연습생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정말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서야 말이다.
‘그래도 저러면 안 되지. 정론만 날리면 어디 방송이 나오나?’
이현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른 멘토들을 바라봤다. 다른 이들이라고 크게 잘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
잘생기고 실력 있는 댄서라서 귀하게 모시고 온 진다솔은 그 어떤 리액션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고.
“네에, 김춘용 연습생… 기대하겠, 하겠습니다.”
그나마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는 나지혁도 민시영의 기에 눌려 자기 의견을 제대로 피력도 못 하고 있는데다가.
지금, 제일 폭탄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문윤하는….
“무대 보기 전에, 잠깐만요.”
“아, 네.”
“김춘용 연습생, 이거 본명이에요?”
“아, 네! 본명입니다.”
“이런 프로그램 나올 생각이었는데, 예명 준비를 안 했어요? 이름이 좀 촌스러운데. 이미지랑 맞지도 않고.”
저러고 있고!
현정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이마를 퍽, 후려쳤다.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니 비단 현정만 그런 제스처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연습생 실력을 보러 건지, 아니면 시비 걸러 온 건지.
현정은 고개를 뒤로 돌려 크게 한숨을 쉬며 주 피디를 바라봤다.
“…….”
주 피디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카메라 너머에 나온 연습생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올라온 연습생이, 피디님이 예의주시할 거라는 걔였던가.’
잘생겼지만 날티 나는.
좋게 말해서 날카롭고 도회적인 얼굴과 달리, 이름이 촌스러운 연습생, 김춘용.
주 피디가 아무리 그에게서 다른 모습을 봤다고는 하지만, 현정은 그 의견에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아무리 뭔가 다른 연습생이라고 해도, 이런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 무얼 더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무대를 지적하는 것도 아니라 냅다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멘토 앞에서.
“아아, 제 이름이요.”
늘 보는 광경이지만, 이럴 때는 현정도 힘들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 지적은 너무 갔어. 피디님에게 말씀드려서 잠깐 끊고 가야….’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현정이 주 피디에게로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주 피디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어우, 제 할머니께서 지어 주신 이름인데요. 촌스럽나요?”
…김춘용의 능글거리는 발언과 함께!
촬영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모습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쟤, 쟤가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 * *
나는 당혹감이 맴도는 촬영장 한가운데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마이크를 타는 게 아닐까, 순간 걱정될 지경이었다.
“…할머니께서 지어 주신 이름, 이라.”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문윤하는 내 인적 사항이 적혀 있는 종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얼굴을 찌그러뜨렸다. 탐탁치 않은 것처럼 말이다.
렉스란 예명을 썼던 이전엔 문윤하가 저런 말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
‘뭐, 렉스 연습생? 알아서 잘해 봐요. 음악 주세요.’
이름이 촌스럽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에 할머니가 지어 주셨다, 라고 대답한 건 순전히 임기응변이라는 소리다.
문윤하 앞에서는 바짝 엎드리는 것보다 당돌하게 구는 게 더 먹힌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뷔했던 당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행동하던 나와 애로우즈 멤버들의 태도를 지루하다는 듯 바라보던 문윤하의 눈빛을 잊어버리지 않았거든.
“너희 계속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컨셉 포토 찍을 거야? 진짜 짜증 나네. 이게 지금 몇 번째인 줄은 알아? 그렇다고 또 찍은 게 더 낫지도 않아. 어쩌자는 거야?”
처음 작업했을 때, 그녀의 요구‘만’ 충실히 따르는 우리를 보며 그녀는 이마를 짚어 가며 답이 없단 표정을 보일 정도였다.
심지어 그녀는 우리 팀의 프로듀싱에서 손을 뗀 후에 그런 인터뷰까지 했었다.
“그냥 마냥 인형처럼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이 진짜 아이돌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 같지가 않아. 시체 같아서 좀 징그럽기도 하고….”
서사와 이야기를 부여해 주되, 자유롭게 살아 숨쉬길 바라는 프로듀서.
미학 광인, 문윤하.
그녀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에는 자신감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네. 역시 예명을 지어야 할까요? 아, 저는 촌스럽다고 생각을 못 했어서….”
때문에 나는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나의 이 승부수가 먹힐지, 안 먹힐지는 운에 걸어 봐야겠지만.
그저 가만히 작가가 컷을 하길 기다리거나 예명을 짓겠다는 대답을 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으니까.
문윤하는 느릿한 시선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봄 춘 자에 무슨 용 자인가요?”
“용 용(龍) 자요. 봄날의 용이라는 뜻입니다.”
내 막힘없는 대답에 입을 살짝 벌린 문윤하는 곧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답했다.
“뜻은 예쁘네. 촌스럽다는 말 취소. 무대 기대할게요.”
어디로 튈지 모를 폭탄 같던 그녀가 그렇게 대답하자 촬영장의 분위기가 유순하게 풀렸다.
“우, 우와. 저도 이름이 독특해서 한 번 물어보고 싶었는데, 문윤하 멘토님께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얘기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춘용! 입에 착착 감기네요. 왜 예명을 안 쓰려고 하는지 알 거 같기도 하고?”
MC인 최가온도 슬며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옆에서 몸을 굳힌 채로 나와 문윤하를 번갈아 보던 나지혁은 안도감에 뻣뻣하게 굳어 있던 자세를 바꿀 정도였다.
“…….”
민시영 선배님과 진다솔은 딱히 반응이 없었지만, 이 정도면 성공적이었다.
이런 의외의 상황 속에서, 문윤하와 나지혁에게라도 나쁘지 않은 반응을 끌어냈다면 이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준비한 게 있으니까.
“네, 네! 당당한 김춘용 연습생의 무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이제 이쪽으로 모실게요.”
나는 MC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무대로 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기며, 어제 엑스가 보낸 메시지를 떠올렸다.
– X: 너 진심 그렇게 연습하고 무대하러 갈 거?;;
– X: 니 스탯 꼴 봤을 때는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아이돌은 무슨… 데뷔도 못 함 ㅇㅇ
– X: 너 다시 돌아가면 체포됐던 때인 거 알지? 감당 가능? 내 생각에는 ㄴ
엑스의 말대로, 내가 아무리 종일 연습을 하고 발악을 해도 떨어진 스탯을 전부 다 원상 복구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 능력치는 7년차 아이돌인 나의 능력치인데, 일주일 만에 7년의 시간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이었으니까.
“대체! 왜! 이걸! 제대로! 못! 추냐고!”
점입가경으로 정신과 신체의 괴리인지 뭔지 때문에 원래 이맘때 실력도 안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나름대로 전략을 짜는 걸 선택했는데, 그게 통할지는 무대가 끝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7년 전에는 해 본 적도, 해 볼 수도 없었던 시도.
결국 이건 결국 모 아니면 도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목울대를 일렁이며 고개를 꾸벅이자, 요 며칠 지겹도록 들었던 노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촬영장 전체에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
그 노래가 뭔지 한 번에 눈치챈 나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3년 전에 나온, 5인조 남자 아이돌 엑솔리티의 2집 앨범의 더블 타이틀 중 하나인 [The Sunshine behind me>.
엑솔리티 멤버들의 다양한 음색과 뮤지컬적인 무대 구성으로 다른 타이틀보다 더 인기를 끌었던 곡이었다.
‘나중에 나도 페스티벌 무대 기획 때 참고해 볼까 싶어서 몇 번 봤었는데, 이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네.’
발끝을 통통 구르며 박자를 맞추던 김춘용은 정박에 노래를 시작했다.
– 가끔 나는
어둠 속에 혼자 있다고 느꼈어
내 뒤에 있는 너를 몰랐기 때문에
김춘용의 음색은 독특했다.
살짝 갈라지는 것 같기도 한 허스키한 목소리가 거슬리지 않게 귀에 쏙쏙 박혔다.
노래를 메인 보컬처럼 잘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다른 이들과 섞였을 때 더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보컬.
묵직한 저음과 가성 섞인 고음으로,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그런 보컬이었다.
– 날 어루만지는 손길
멈춰있던 발걸음이 다시 Run
Cuz You’re the sunshine behind me
거기에 아까 문윤하에게 능글맞게 대답할 때도 느낀 거지만, 딕션이 정말 좋았다.
가수에게 있어서 가사 전달력은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게다가 김춘용의 톤은 굳이 노래뿐만 아니라 랩을 해도 어울릴 법했다.
‘괜찮은데. 너무 무리하지 않고 음역대를 보일 수 있는 노래야. 오래 연습한 건가?’
그러나 열심히 노래하는 김춘용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지혁은 곧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보컬에 강점이 있는 연습생이 아니라서 음색이 돋보이는 곡을 선택한 것 같은데, 김춘용의 [The Sunshine behind me> 무대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이 곡은 춤을 안 추잖아.’
맞다.
최근 아이돌 멤버의 최신 트렌드인 군무나, 댄스 브레이크 같은 부분이 이 곡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엑솔리티도 [The Sunshine behind me>에서는 톡톡 튀는 음색과 표정 연기를 메인으로 보여 주고, 강렬한 고음과 격한 안무는 다른 타이틀곡에서 보여 주는 식으로 상호 보완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엑솔리티와 달리 김춘용은 두 곡씩이나 선보일 수 없었다.
“연습생들이 선보일 수 있는 무대는 딱 하나입니다.”
연습생 한 명당 제출할 수 있는 곡은 하나이고, 그마저도 제작진이 2분 내외로 편곡한 것으로 한정 지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러면 옆에서 민시영 씨가 또 되게 뭐라고 그럴 텐데. 나도 계속 다 커버쳐 주는 건 힘들단 말이야….’
그럼에도 상황 파악을 마친 나지혁은 재빨리 뭐라고 실드를 쳐 주면 좋을지 김춘용의 인적 사항 옆에 적기 시작했다.
힘들어도 다 돈 받고 하는 건데, 대충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였다.
“…어? 음향 왜 이러죠?”
지직- 직? 지직-
김춘용이 무대를 시작하고 약 1분쯤 흘렀을 때.
잘 나오던 MR이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뚝뚝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다른 노래의 비트가 뒤쪽에서 섞여서 들려왔다.
그 괴현상에 멘토들은 물론, 카메라 밖에 있던 제작진들마저 당황했다.
“음향팀이 확인하니까 기기 결함은 없대요.”
“아니, 그럼 지금 나오는 노래가 왜 저래?”
“저거 지금 끊고 다시 테이크 들어가야 하나? 아, 진짜 미치겠네.”
모두들이 우왕좌왕하며 촬영만 걱정하던 그때.
무대 한가운데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누군가가 늘어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도, 같은데.”
진다솔이었다.
지금껏 연습생들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 침묵을 지키던 그가 말을 하자 모두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다솔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 다시 무대로 고개를 옮겼다.
“…세상에.”
진다솔의 말대로였다.
곡이 뚝뚝 끊어지는, 방송 사고 같던 그 찰나.
박자에 맞춰 자연스럽게 관절을 튕기며 마이크 스탠드에 마이크를 꽂아 넣은 김춘용은, 어느새 주머니에서 새카만 비니를 뒤집어쓰고 스텝을 밟고 있었다.
그 사이 노래는 완전히 다른 노래로 바뀌었다.
김춘용이 연습실에서 죽어라 연습했던 그 노래였다.
– I love your black shirt
Oh, A black shirt
노래 가사에 맞춰 김춘용이 양팔과 다리를 쭉쭉 뻗었다.
그리고 [The Sunshine behind me>의 휘파람 소리가 나올 때는 시원하게 턴을 한 번 돌며 자칫 갑갑할 수 있는 동선을 한 번 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When you smile
I feel something, you know
That’s what you think, baby
이 노래, 그리고 이 안무는 김춘용에게 특별했다.
데뷔 1년차, 가족들이 아직 사고를 당하기 전.
신인상을 받는 가요대상 특별 무대에 올렸던 춤이 이 춤이니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조회 수 100만대의 입덕 직캠이 이거였지.’
김춘용은 첫 서바이벌을 씹어먹을 정도로 성장하지 않는 자신의 스탯을 보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어떤 걸 보여 주고 어떤 걸 포기할지, 어떻게 해야 무사히 데뷔까지 안착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게 이거였다.
아이돌 서바이벌 경연장에서, 아이돌이 자신의 레전드 무대를 재연한다면?
그야, 당연히….
“대, 대박….”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뱉은 나지혁은 입을 떡 벌리며 자기가 써 놓은 실드의 문구들을 벅벅 지웠다.
지금 김춘용이 추고 있는 춤?
5살짜리 어린애들이 봐도 잘 춘다고, 같이 놀아 달라고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아니, 5살짜리 어린애들한테 갈 것도 없었다.
“…….”
당장 이전에 무대를 끝내고 앉아 있는 다른 연습생들의 표정이 말해 줬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쟤는 대체 뭔데 저렇게 춤을 추는 거야? 하고.
– Don’t say anything, baby
We can Stay, Sleep, Dream
Together
‘데뷔? 해 준다. 역사상 최고의 케이팝 아이돌? 할게, 한다고.’
그러니까….
‘다시는 그때로 안 돌아갈 거야.’
이를 악문 김춘용이 쓰고 있던 자기 비니를 휙, 집어던지고.
– Together.
무대가, 완벽한 순간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