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9화
‘미, 미쳤다.’
나지혁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는 손을 꾹 내려놓아야 했다.
한 번도 다른 연습생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행동을 함부로 해선 안 됐다.
다른 이들이 그걸로 자신의 평가 기준을 예측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고…!’
물론, 이전에 나와 무대를 꾸민 연습생 중에 김춘용만큼 실력이 있는 연습생이 없었나, 하면 아니었다.
분명 더 잘한 연습생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연습한 것을 보여 주는 것에 불과했다.
자신이 노래와 춤을 이런 식으로 소화했고, 음역대는 어느 정도이고, 춤은 어느 정도 춘다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랄까.
그렇지만 정말 지금 저기 서 있는 김춘용은 정말로 ‘무대’를 했다.
매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해 온 나지혁이기에, 그 차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제, 제가 먼저 심사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은 나지혁은 제 흥분을 감추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정말, 정말 좋았어요. 노래 포지셔닝도 좋았고, 곡이 믹싱되면서 노래에서 춤으로 넘어간 부분도 기획이 좋았어요. 자기 장점이 뭔지 확실히 보여 준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래 연습은 더 해야겠지만요.”
어렵사리 지적할 부분도 집어넣었겠다, 자신의 심사평에 만족한 나지혁은 제 옆의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문윤하는 뭔가 아리송하고 어렵다는 표정으로 김춘용을 보더니, 이전처럼 딱 한 마디만 남겼다.
“…이름 같은 무대네요. 잘 봤어요.”
그러나 그게 꽤 괜찮은 칭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의외로 세 번째로 마이크를 잡게 된 진다솔은 이전처럼 한참이나 입 떼기를 망설였다.
그의 특히나 가라앉은 분위기에 사람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진다솔은.
“정말, 아이돌 할 생각, 인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방금 무, 무슨….”
충격적인 진다솔의 발언에 무대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다솔은 그저 김춘용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지, 진다솔 멘토님.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분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기 위해 당황한 최가온이 황급히 진행에 나섰다.
“…아.”
이제껏 진다솔은 그런 말을 들어도 가만히 고개를 내젓기만 했으나, 이번에는 의외로 빠르게 다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음… 굳이 아이돌… 안 해도 되지 않나, 싶어서.”
“더, 더 자세히요!”
최가온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외쳤다.
분명 프롬프터에 [더욱더! 더! 더! 자세한 설명!>란 글씨가 띄워져 있음에도, 진다솔은 아예 눈길도 안 주고 있었다.
결국 최가온이 손가락으로 프롬프터를 가리키고 나서야 진다솔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춤, 되게 잘 추는데. 코레오(Choreo), 본인이 짠 거죠?”
멘토들의 반응을 유의 깊게 살펴보고 있던 김춘용은 빠르게 대답했다.
“네, 네. 제가 직접 짰습니다.”
가요대전에 올라갈 당시, 스스로 안무를 짜고 안무가 형이 다듬어 줬으니, 어쨌든 김춘용이 짠 게 맞긴 했다.
양심이 조금 동그래진 김춘용의 대답에 한결 인상이 진지해진 진다솔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이돌, 안 하고… 제, 크루에…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연습생들이 술렁였다.
진다솔이 자신의 크루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였다.
‘춤이 탈아이돌급이라는 거잖아!’
진다솔의 연속된 파격 발언에, 카메라 밖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주 피디가 기쁨의 허공 박수를 쳐 댔다.
‘맙소사. 김춘용이 저놈. 잘해 주길 바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이런 소리까지 들을 줄은 몰랐던 김춘용이 살짝 당황하며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물론 주 피디의 눈에는 그것마저 완벽한 편집점으로 보였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요. 그래도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음. 나중에라도 괜찮으니까. 혹시 휴대폰 번호….”
이것도!
“자! 그, 그럼 민시영 멘토님의 심사평도 한 번 들어 볼까요?”
지금껏 대충 심사하더니 이제는 자기 사심을 채우려 드는 진다솔의 악독한 행동에, 최가온은 얼른 그의 말을 끊어 내고 진행을 이어 갔다.
“…….”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진다솔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약간 일그러졌지만.
“…제작진 여러분.”
마이크를 손에 쥐게 된 민시영만큼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 있는 김춘용이 아닌 자신들을 겨냥한 말에, 제작진은 허둥지둥 스케치북에 ‘????’를 적어 들어보였다.
“왜 사전에 곡 체크를 안 하셨죠?”
민시영의 말은 꽤 날이 서 있었다.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사실상, 두 곡을 한 거예요. 다른 연습생들은 이렇게 못해서 안 한 걸까요? 전 아닐 거 같은데.”
그녀는 펜을 쥔 손에 힘을 한 번 꾹 주고는 김춘용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민시영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지금 김춘용이 해 온 편곡은 좋게 말하면 머리를 잘 쓴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규칙의 허점을 이용한 거였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의 노력과 실력을 ‘공정’하게 판단하겠다 선언한 민시영에게 이런 상황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
김춘용과 민시영 사이에 시선이 오가고, 살짝 긴장은 했지만 여전히 미미한 미소를 띄운 김춘용의 얼굴에 민시영이 눈썹을 크게 치켜올렸다.
그리고는.
“…저는 이 무대에 점수를 줄 수 없어요. 최하점을 드릴 겁니다.”
“……!”
지금껏 모든 멘토들이 한 심사평을 잊게 만드는 말을 꺼냈다.
그건 방송 분량 챙길 생각에 잔뜩 신이 났던 주 피디마저 당황하게 만든 발언이었다.
‘최, 최하점을 준다고? 민시영, 드디어 미친 건가? 에이, 과장이겠지! 방송용 과장!’
주 피디의 입이 떡 벌어진 걸 본 민시영은 기회를 잡은 것처럼 몰아쳤다.
“지금 구두 평가도 안 할 거고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애초에 스타트 라인부터가 잘못된 거예요. 제작진분들이 미리 체크를 안 해서 일어난 방송 사고입니다.”
“그, 그래도 결국 쓴 시간은 똑같이 2분 아닌가요? 아예 점수를 안 주는 건 좀… 차라리 다른 곡으로 무대를 보는 건 어떨까요?”
옆에 앉은 나지혁이 당황하며 변호를 하려 들었지만, 그녀는 굳건했다.
“지혁 씨가 뭐라고 하셔도 저는 제 생각을 안 바꿀 거예요. 다시 무대를 한다고 해도, 김춘용 연습생께 드릴 제 점수는 없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김춘용의 무대가 좋았던 것보다, 이 서바이벌을 공정히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시영도 모르는 그녀의 어떤 속마음에서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봐 왔던 AG 순혈 연습생들이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평가 마칠게요. 끝입니다.”
“…….”
그러나 그녀의 그런 선언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에는 묘한 정적이 맴돌았다.
왜일까?
그럼에도 김춘용의 무대가 너무 좋았어서? 앞으로 저 연습생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 감히 예상도 할 수 없어서?
아니면.
“…나는, 100점 줄 건데.”
김춘용이 앞으로 누군가의 확실한 비호를 받으리라 느껴서?
“―!”
김춘용에게 100점을 주겠다는 진다솔의 그 작은 목소리는 그대로 마이크에 잡혔고, 그걸 들은 민시영은 촬영 중이라는 것마저 잊고 진다솔을 째려봤다.
‘저 인간들이 지금 카메라 다 돌아가는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잠시 넋을 빼고 있던 메인 작가 이현정이 황급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 잠시! 잠시 쉬어 가겠습니다!”
* * *
갑자기 찾아온 쉬는 시간.
“후우….”
나는 여기저기 널린 카메라 앞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무대 뒤쪽에 마련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거듭된 상황에 미세한 손 떨림이 느껴졌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주지하려 애썼다.
사실 결론만 따지자면, 내 계획 자체는 통했다.
처음부터 내가 노린 건 진다솔이었으니까.
대체 무얼 보고 고점과 저점을 주는 건지 긴가민가한 다른 멘토들과 달리, 진다솔은 노려야 할 지향점이 확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시영 선배님이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또 예상 밖이었고.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반응이 상반될 줄이야.
‘이걸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아니, 굳이 멘토분들이랑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어. 다음에 민시영 선배님께 잘 보이려면….’
위기와 기회가 혼재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고민하는 와중, 누군가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응?”
나는 내 뺨에 닿은 차가운 이온 음료보다, 내게 먼저 말을 건 상대의 정체에 놀랐다.
따로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푸른끼가 도는 새카만 머리카락. 살짝 나른한 듯, 반쯤 감겨 있는 쌍커풀 없는 눈.
‘네 잘못이 아닌 거 알아. 그렇지만 이래서도 안 되는 거 알잖아.’
“아, 이거 마셔요. 목마르죠?”
…나를 어르고 달래던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나는 멍한 얼굴로 잠깐 망설이다가 간신히 그가 건넨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방유찬, 연습생… 맞죠.”
내가 바로 자기 이름을 얘기하자, 상대는 크게 놀란 듯 감겨 있던 눈을 크게 떴다.
“어? 나, 나 누군지 알아요? 나는 일반인인데, 어떻게 알지?”
모를 리가.
201X년도 한국대 음대 실용음악과 89: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수석 입학자, 방유찬.
…애로우즈의 메인 보컬.
‘알다마다요. 형이 우리 팀 메인 보컬이었는데요. 내가 못 올리는 고음 형이 다 올려 줬잖아요. 하하, 저한테 마지막에 정신 차리라고 8옥타브로 소리 질렀던 거 기억해요?’
그러나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
나는 잠깐 머리통을 굴려 유찬 형이 나보다 먼저 무대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아, 아까 무대 했잖아요. 노래 잘하던데요. 나이도 저보다 두 살 많고… 말 편하게 하세요, 형.”
“아, 그럼 말 놓을게. 평소보다 못 불러서 엄청 쪽팔렸는데. 되게 좋게 얘기해 준다, 너.”
말문이 트인 유찬 형은 내 옆의 의자에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방금 한 내 무대가 멋있었다거나, 자기는 대학교 휴학 중에 나오게 된 거라 많이 긴장된다거나,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나랑 친해지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
단지 예전 멤버 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감회에 젖어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유찬 형이 마지막에 한 말을 한 번 곱씹고 경악했다.
“…저랑요? 저랑 친해지고 싶다고요?”
“어? 그게 이렇게 놀랄 일인가?”
“아, 아뇨. 그건 아니고! 저도 좋은데. 그게….”
나는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서바이벌에서 유찬 형과 가까이 지낸다라.
“이렇게, 귀한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 너무, 너무 감사하고… 데뷔해서도 이 사랑에 보답할….”
유찬 형은 회를 거듭할수록 쑥쑥 늘어나는 실력과 유쾌한 성격으로 인기몰이를 해 4위로 무사히 데뷔조에 안착하는 연습생이었다.
그런 형과 가까이 지낸다면 ‘서바이벌 프로그램 [타겟팅 스타> 최종 6인’이라는 현재 목표를 이루는 데에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래도 될까?
유찬 형이랑, 다른 멤버들한테 여태껏 민폐만 끼친 난데. 하나도 도움이 된 적이 없는데. 뻔뻔하게 또 버스 탈 생각을 한다고?
“어어, 그게… 그러니까.”
마음속 문장이 정리가 안 되어 빙빙 맴돌기만 했다. 나는 갑갑한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말을 고르려고 애썼다.
“어어, 왜 그래? 음료수 마시고 체했어?”
내 이상 행동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라보던 유찬 형은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소곤거렸다.
“너 설마 민시영 멘토님한테 찍힌 거 때문에 그래? 나한테 불이익 올까 봐?”
형의 말에 나는 눈동자를 마구 흔들며 형을 쳐다봤다.
아닌데요.
제가 이전에 고생시킨 멤버한테 또 업혀 갈 생각에 미안해서 그런 건데요.
민시영 선배님한테 찍힌 거랑은 전혀 상관없는데요!
그러나 유찬 형은 내 그런 행동이 긍정의 뜻으로 보였는지, 안쓰러워하는 얼굴로 내 등을 퍽퍽 두드려 주며 이어서 소곤거렸다.
“야, 괜찮아. 우리가 일고여덟 살 어린 애도 아니고. 친구도 가려서 사귀어야 하나? 그리고 너랑 가까이 지내는 걸로 촬영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인터넷에 올리면 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나는 유찬 형의 말을 듣고 입을 떡 벌렸다.
아, 맞다.
형과 대화를 나눈 게 너무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다.
유찬 형이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춘용아, 이런 말을 왜 참고 있어? 고소하자!”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해서 사회생활 감각이 망가진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평범하게 초중고를 나오고 대학 입시까지 무사히 마친 유찬 형은 빠릿빠릿하게 바깥의 문제들을 잘 해결했다.
데뷔 초 나를 향한 짜깁기 기사나, 악플 고소도 형이 도와줬었는데….
유찬 형은 노래 부르듯 웃으며 내 어깨를 잡고 짤짤 흔들어 댔다.
“야, 너 왜 이렇게 소심해? 생긴 거랑, 어? 무대에서 하는 거는 누구 한 명 잡아먹을 것처럼 굴면서! 너 진짜 재밌다. 나 춤 많이 알려 줄 거지?”
이것도 그대로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그럼 형도 저한테 노래 알려 줘요.”
“어우, 당연하지. 내가 또 주고받기 잘하지.”
여전한 형의 너스레에 내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흘리려는 그때, 무대 쪽에서 막내 작가의 외침이 들렸다.
“다시 촬영 진행하겠습니다! 다들 모여 주세요!”
나는 유찬 형과 함께 웃는 낯으로 함께 무대 옆에 있는 연습생들의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독한 결심을 꼭꼭 씹었다.
이번에는 꼭, 멤버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애로우즈’로 함께 데뷔해서,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