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dicine-Selling Crown Prince RAW novel - Chapter 612
612화. 외전 : 용왕비의 초청장 (1)
“아아. 꼭다리 먹으면 좋겠다.”
“……예?”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데미안 카이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방금 뚱딴지같은 소리를 읊어댄 자신의 주군을 돌아보았다.
그곳.
별궁 한의원의 원장실 책상에 턱을 괴고서 앉은, 이제는 황태자가 아닌, 아드리아 대공이 된, 마계왕이기도 한, 라키엘이 중얼거렸다.
“김치는 꼭다리가 제일 맛있어. 알아?”
“…….”
모릅니다, 그딴 거.
이쪽의 마음속 대답을 표정으로 이미 알아챈 걸까. 주군이 능글거리며 말했다.
“생으로 먹으면 좀 질긴 깍두기 같거든. 게다가 김치찌개에 넣어도 맛있어. 이삼 일쯤 먹다가 재료 더 넣어서 재탕하고 남은 김치찌개 최후의 날에 그거만 쑉쑉 빼다가 밥에 비벼먹으면…… 크아아아아아…….”
“주군? 괜찮으십니까?”
“아니. 안 괜찮아.”
“…….”
“야. 내가 유계에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반 년이 지났잖아?”
“예, 그렇지요.”
“그러니까 돌아온 후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잖아?”
“예, 그렇습니다.”
“덕분에 김장 김치 생각을 하다 보니까 김치 꼭다리까지 떠올라 버렸다는 거거든.”
“…….”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는 말씀이신지.
하지만 주군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어휴. 전임 마계왕 그 작자가 좀만 덜 날뛰었으면. 그랬으면 마법장이 이렇게까지 교란되는 일도 없었을 거고. 차원이동도 이렇게까지 어려워지진 않았을 건데. 그럼 이렇게 생각이 팍팍 날 때면 숑 하고 건너가서 김치찌개 한 뚝배기 뚝딱하고 오는 건데. 아휴, 진짜.”
“……그렇게 김치라는 게 드시고 싶으신 겁니까?”
“어.”
라키엘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매일 먹던 거거든. 그런데 벌써 몇 년째 구경도 못 하고 있는 거야. 너는 그 심정이 이해가 돼?”
“안 됩니다.”
“그렇지? 안 되지?”
“예. 솔직히 상상도 잘 안 되고 말입니다.”
“상상이라니?”
“어떻게 같은 음식을 매일 먹는다는 말입니까? 차라리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는다는 말이 더 신빙성이 있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먹는데?”
“……예?”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는데?”
“…….”
“그냥도 먹고, 끓여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씻어서도 먹고, 데쳐서도 먹고, 비벼서도 먹고, 익혀서도 먹고, 다져서도 먹고, 얼려서도 먹고, 볶아서도 먹는데?”
“…….”
“배추로도 만들어서 먹고, 무로도 먹고, 오이로도 먹고, 고추로도 먹고, 부추로도 먹고, 양배추로도 먹고, 양파로도 먹고, 가지로도 먹고, 파인애플로도 만들어 먹는데?”
“…….”
무슨.
김치에 미친 민족이세요?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주군의 눈빛과 표정이 너무나 진심(?)이어서였다.
“아아. 내면에 충전돼 있던 김치력이 떨어진다아……. 이러다가 한국인 약정이 끝나 버린다아아…….”
“주군.”
“어. 왜.”
“진료 시간입니다.”
“……벌써?”
“예. 점심시간이 끝났습니다. 이제 곧 오후 예약 환자들이 올 것 같은데요.”
“그중에 김치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김치 대신 마족들은 잔뜩 올 것 같긴 합니다만.”
“아아. 싫어어. 마족 싫어. 그놈들 미쳤어. 전에는 아파야 더 강해지니 어쩌니 하면서 치료도 거부하고 그러더니 요즘은 이상한 유행이나 타고들 말이야.”
“……병약가련미가 마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거 말씀이십니까.”
“어. 바로 그거. 어휴 징그러, 그것들 진짜.”
라키엘은 치를 떨었다.
방금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마계왕으로 등극한 직후였던가. 당시 자신이 마계에 선포를 하였더랬다. 이제부터 마족들은 1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별궁 한의원에 와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아픈 곳을 고쳐야 한다고.
물론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병환이 깊고 아플수록 강해지는 세상인 마계. 그곳에서 건강해진다는 것은 힘과 권력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밀어붙였다.
마계왕의 위세로 찍어눌렀다.
가장 강한 영주, 성주급 마족들부터 강제로 잡아다가 진료실에 앉혔다.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대신 공증서도 안겨주었다. 이자는 마계왕에게 치료를 받아 자신의 질환을 없앤 명예로운 자입니다, 땅땅땅, 뭐 그런 공증서를 말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마계의 트렌드(?)가 바뀌어 버린 것은.
공증서를 받고 건강해진 자는 힘을 잃은 대신 병약가련미의 명예로운 자가 되었다. 마계왕의 명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힘과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은 자로서 오히려 존경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요즘은 건강 주스니 웰빙이니 뭐니. 어휴. 아주 더 건강해지려고 눈이 벌게졌다니까. 그놈들 보면 뭐랄까. 이래서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생겼구나 싶기도 하고. 어휴, 참.”
라키엘은 투덜거렸다.
마족들의 바뀐 트렌드.
덕분에 확 바빠진 별궁 한의원.
나름 좋으면서도 귀찮았다. 아니, 지금은 다른 건 모르겠고 김치 생각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하필이면 별궁 한의원 구내식당에서 나온 오늘의 점심 메뉴가 온통 새하얗고 느끼한 크림투성이 음식들이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똑똑똑.
경쾌한 노크 소리가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이내 간호사 아니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원장님? 환자분 들어가시겠습니다.”
“……어. 그래. 들어와요.”
결국 시작이구나.
오늘도 나는 쓰린…… 아니, 느글거리는 입맛을 혓바닥 융털돌기 한가득 부둥켜안고서 오후 진료의 시간을 감내하여야 하겠구나.
‘하. 인생.’
차라리 이곳 시녀들한테 김장 담그는 법을 알려줄까. 그런데 나도 김장은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데. 어디 지구의 인터넷에 접속이라도 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면 레시피 하나쯤 따올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별별 생각들을 간신히 접으며 라키엘은 책상에 괴고 있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열리는 원장실 문과, 그 너머에서 들어오는 오후의 첫 환자를 바라보았다.
덕분에 목격해야 했다.
웬 갑옷 덩어리(?)가 원장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철컥, 철컥, 철컥!
번쩍거리는 풀 플레이트 메일 차림의 환자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투구를 벗었다. 한데 투구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도, 머리도, 그냥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갑옷 안쪽도 마찬가지였다!
“……엥?”
이건 또 뭘까.
속이 비어 있는데 걸어 다니는 갑옷?
‘이거, 전에 본 도감에서는 리빙아머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의아함 속에서 그런 기억이 떠오르던 무렵이었다. 리빙아머가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비어 있는 제 갑옷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내밀어 왔다.
정갈하게 각이 딱 잡혀 꾸며진 봉투였다.
“으음? 이거, 나한테 주는 거?”
라키엘이 얼결에 물었다.
리빙아머가 그사이에 다시 쓴 투구를 끄덕거렸다.
“삐각! 삐가각, 삐각!”
마치 대답처럼 삐걱거리는 갑옷 소리.
“…….”
대체 뭘까.
라키엘은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속에서 밝은 빛이 위쪽으로 화악 솟구쳤다. 영상을 띄웠다. 익숙한 모습의 사람, 아니,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왕, 베르키스였다.
– 하아. 귀찮아.
“…….”
– 그냥 용건만 말할게. 용왕굴로 와라. 우리 꼬맹이…… 아니, 와느님이 너님 초대했어.
“예?”
– 식사나 한번 하재…….
“예에? 왜요?”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왕비가?
나를?
초대?
어째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 뜬금없게도 느껴졌다. 그동안 한 번도 교류하지 않았던 분이 어째서 이쪽을 부르는 걸까 싶었다. 혹시 무슨 부탁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한데 그때였다.
용왕에게서 뜻밖의, 그러나 거대한, 귓구멍 속 세반고리관을 발바닥으로 박수치게 만들 대답이 들려온 것은.
– 김장…… 담갔거든.
“……!”
두둥.
이것은 달팽이관에 치는 벼락일까.
혹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축포일까.
용왕의 대답이 이어졌다.
– 원래 김장 담그면…… 친한 사람들 초대하는 게 예의인 거래.
“정말입니까, 그게!”
– 아아. 나님도 몰라. 귀찮아아……. 오든가 말든가…….
……뚜욱↘
영상 통신은 거기까지였다.
용왕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때 이미 라키엘은 진료용 가운을 벗어던지고 있었다.
“……가자! 오늘은 휴진이다!”
“예? 주군?”
“김장 담갔다잖아!”
“그게…… 주군?”
“절실하게 치료를 바라고서 온 환자들을 외면하려는 거라면 괜찮아! 오늘 예약한 진료 접수 내용 보니까 크게 위험한 질환 없었어!”
“하지만…… 주군?”
“……라지만, 진짜로 진료 다 제치면 안 되겠지?”
“신속하게 마치고 건너가는 걸로 하시죠.”
“응…….”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모조리 동원하였다. 한의사로서 닦아온 지식과 경험. 마계왕으로서 지니게 된 권능까지. 물론 쉬운 벼락치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은 지상계. 마계가 아닌 이곳에서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권능은 그리 거창하거나 다양하지 못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경혈 스캐닝과 약간의 염동력을 조합한 원격 침술! 타이머가 없음에도 정확한 시점으로 세팅할 수 있게 된 오토매틱 쑥뜸까지!
덕분에 원래라면 다섯 시간은 걸렸을 오후 외래환자들을 불과 두 시간 만에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용왕굴을 향하여 출발!
“가즈아아!”
열었다.
셀프로 만든 공간이동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곧바로 용왕굴 입구에 도착했다. 올림픽 체조 심사위원들이 보았다면 눈물의 기립박수를 쳤을 착지를 선보이자마자 땅을 박찼다. 전격적인 용왕굴로의 입장을 감행하였다.
그러다가 입구 근처에서 만났다.
“어?”
통로 앞쪽을 먼저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버린 뒷모습들.
“천사장님? 지옥왕님?”
이쪽의 목소리를 들은 천사장 로이드와 지옥왕 하비엘이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초대를 받았지. 혹시 너도?”
“네.”
“설마 용왕비의 초대장?”
“넵.”
“쓰읍. 우리만 받은 줄 알았는데.”
“그랬으면 제가 섭섭할 뻔했네요.”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설마하니 이쪽뿐만 아니라 무려 천사장에 지옥왕까지 초대를 받았을 줄이야.
“그나저나, 나중에 천계와 지옥으로 돌아가실 때 불편하지 않으실까요?”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나름 근거가 있는 걱정이었다.
9년 반 전.
당시 마계왕이 난리를 쳤던 덕분에 교란되었던 지상계의 차원적 자표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다른 차원이나 계에서 지상계로 건너오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지상계에서 나갈 때는 많은 문제가 생기는 실정이었다.
심지어 천사장과 지옥왕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닐 지경.
한데 저 둘은 대체 어쩔 생각으로…….
“어쩔 생각이긴. 허리에 끈 꽉 묶어두고 건너온 거지.”
“네?”
천사장 로이드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지옥왕을 가리키며 대꾸해왔다.
“나나 이 녀석이나 돌아갈 자리에 좌표를 묶어두고 왔다고. 비유를 하자면 뭐랄까. 물가의 나무에 묶어둔 밧줄을 허리에 감고서 연못에 다이빙을 한 상황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되려나?”
“아하.”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자고. 김장. 김장. 후후후.”
“…….”
그러고 보니 천사장 로이드는 은근 엄청나게 들뜬 모습이었다. 저 탐욕 많은 자가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이라니.
설마…….
“김치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
“그러시는 모습을 보니까 꼭 100년쯤 고춧가루 못 먹어본 한국인 같으신…….”
“헛소리는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자. 얼른.”
“…….”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꼭 뭔가를 감추려는 거 같은데.
라키엘은 미심쩍은 찜찜함을 느끼며 천사장과 지옥왕을 따라 용왕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자신도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김치. 김장. 이 얼마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란 말인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더 신기하네. 용왕 베르키스의 아내인 용왕비가 김장이라니. 무슨 한국인도 아니고.’
이것이 차원을 넘나드는 K-푸드의 위력이라는 것일까.
라키엘은 오장육부가 오그라드는 국뽕의 향기를 살포시 느끼며 용왕굴 가장 깊숙한 중심부에 도착했다.
그 순간이었다.
“……다들 안녕하시어요? 저는 황주 도화동의 심가네 여식이자, 용왕 배길수 님을 지아비로 둔 청이라 하여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더없이 포근한 미소를 장착한.
용왕비의 인사가 모두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