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흰 거미 힐로브는 그저 걸어가는 것만으로 라크샤사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제 아무리 노련한 라크샤사 전사가 힐로브에게 접근 하더라도, 여덟 개의 다리 중 하나를 머리 높게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전사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다리를 노리고 달려들던 전사는 자신의 검을 들고 멀뚱히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미간을 관통 당해 죽고 말았다.
하지만 라크샤사들도 언제까지고 근접해서 힐로브를 공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라크샤사들은 사피엔스 중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신체 능력에 따라 돌팔매질과 슬링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크게 소용은 없었다.
힐로브의 딱딱한 외피는 평범한 팽골리안들에 비하면 아주 두터웠기에 라크샤사의 원거리 공격으로 별다른 타격을 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단지 힐로브는 필멸자이면서 동시에 불신자인, 미천한 존재들의 공격을 받는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에 그 공격들을, 긴 다리를 가볍게 접거나 펴면서 춤을 추듯 피하고, 소리 없이 건물 뒤로 숨었다가 마치 유령처럼 적들의 등 뒤에서 나타나 덮쳤다.
고르디우스의 경우, 민가 사이에서 죽음을 열병처럼 퍼트려 나가는 힐로브와 달랐다.
고르디우스는 바센과 팽골리안을 노리고 숨어 있던 라크샤사들을 일거에 후려치거나 내려찍거나 뒷발로 걷어찼다.
라크샤사들은 영문도 모른 체 자신들의 수호자라고 믿고 있던 코프릭에게 얻어맞으며 사원 밖으로 수 십 미터 씩 튕겨져 날아가거나 곤죽이 되었고, 가끔 날카로운 발톱에 찢겨 나갔다.
다만 정신을 차린 아쿨다가 뒤늦게 제대로 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코프릭께서 미치셨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모든 건 저 팽골리안과 이방인의 술책일 터! 전사의 절반은 시간을 벌고 나머지 절반은 사원을 내려가 저들을 죽여라!”
하지만 이미 고르디우스가 모의 전투를 통해서 체험했던 것과 같이, 돌로 몇 개의 단이 쌓여 만든 피라미드형 사원 건물을 넘어 바센과 팽골리안들에게 접근해 내는 라크샤사들은 없었다.
처음 코프릭의 몸을 빼앗았을 때는 고르디우스도 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했다.
원래는 실지렁이나 다름없는 가느다란 몸이었기 때문에 눈과 턱이 있고 네 개의 다리가 달리고 꼬리까지 이어진 몸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고르디우스는 진짜 코프릭만큼, 아니. 어쩌면 과거의 코프릭 보다 더 능숙하게 그 몸을 다루었다.
사원의 높은 단을 여유 있게 뛰어다니고 라크샤사들을 씹어 삼켰다.
아쿨다는 라크샤사들을 사원 밖으로 쳐내면서 조금씩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고르디우스에게 겁을 먹고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전사 모두를 소진해도 막을 수 없다. 도망쳐야 한다!’
불행히도 아쿨다는 한 가지 착각하고 있었다.
코프릭은 전부터 고르디우스에게 몸을 빼앗겼으며, 이 모든 것은 계획된 극본의 일부라는 것을 몰랐다.
그 자신의 후퇴조차도 계획 범위 안의 일에 불과했다.
바센 라크 오라즌과 마고, 그리고 팽골리안들은 단상 위에서 달려드는 라크샤사들을 칼로 베어 죽였다.
덩치의 차이는 있지만 라크샤사들은 간단한 몽둥이 수준으로 무장했을 뿐이고, 바센과 팽골리안들은 작지만 날카로운 단검과 낫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라크샤사 전사들의 방비가 약해진 틈을 타 도시를 향한 팽골리안의 공격이 이어졌다.
-콰과광!
화승총 일제 연사 소리는 이제 라크샤사들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티오네 이티모가 이끄는 정예가 도시 시올의 정문을 가로질러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바센과 팽골리안들에게 무기를 건네주었다.
“고맙군, 선장.”
“별 말씀을요.”
“사원이 고지이니 방어에 유리할 듯하군.”
티오네는 뒤를 슥 돌아봤다.
“뭐, 팽골리안들이 금방 도시를 점령할 것 같지만… 그 말을 새겨듣도록 하죠, 단장님.”
바센은 무장한 팽골리안 부대 3천이 도시 안으로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화승총을 든 건 일부뿐이지만 방어하는 라크샤사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공황에 빠져 있었다.
바센은 피식 웃고는 마고와 팽골리안 정예를 이끌고 사원을 뛰어 올라갔다.
바센의 목표는 총독 아쿨다였다.
정확히는 자신이 아닌, 팽골리안들이 직접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
팽골리안들이 아쿨다를 잡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상징적인 사건이 되어 라크샤사들이 팽골리안들을 다시는 우습게 보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아쿨다란 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겁보였군.’
바센과 팽골리안들이 사원 반대편으로 달려가자, 이미 사원 아래로 달려 내려간 아쿨다가 보였다.
바센이 보기엔 팽골리안들의 짧은 다리로는 쫓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 힐로브와 고르디우스가 분전하고 있는 덕분에 팽골리안들과 아쿨다 사이를 막는 라크샤사 전사들은 없었지만, 아쿨다가 라크샤사들이 탈것으로 쓰는 코뿔소를 타고 달려가 버린다면 놓쳐 버릴지도 몰랐다.
‘놈을 놓치는 건 최악이다. 저 거리면 내가 지금 달려가도 잡기 힘들다. 팽골리안들이 잡을 수 없다면 힐로브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바센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팽골리안 마고가 뒤늦게 아쿨다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앗, 저기 아쿨다가 있다!”
마고가 외쳤다.
“굴러!”
바센은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팽골리안들은 지체할 것도 없다는 듯, 계단으로 달려가선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리곤 각자의 화승총을 축으로 삼고 계단을 따라 구르기 시작했다.
“…아니?”
바센은 팽골리안을 처음 만났을 때는 몸을 둥글게 마는 것이 그저 도주를 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다르게 쓰일 수도 있었다.
맹렬한 속도로 구른 끝에 가장 빨리 지면에 도달한 것은 마고였다.
하지만 마고는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다.
경사를 따라 받은 가속도가 그 어떤 종족의 달리기 속도보다 빨랐다.
“아쿨다! 팽골리안의 원수!”
마고가 몸을 풀면서 곧장 서서쏴 자세로 전환했다.
본래 몸을 구르도록 진화한, 경이롭게 진화한 반고리관 덕분에 마고의 총구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바로 등 뒤에서 제 이름을 들은 아쿨다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카튜루의 복수다!”
마고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
전투는 승리했다.
팽골리안들은 자신들 보다 배는 더 큰 라크샤사의 도시를 점령했다.
바센은 팽골리안들에게 말해 평민들을 내쫓고 전사들을 포로로 잡도록 했다.
팽골리안 일부가 아무것도 없이 내쫓긴 라크샤사들이 불쌍하다며 음식이며 물을 나눠줘야 한다고, 그리고 라크샤사 전사들을 잡아 두고 있어 봤자 쓸모없지 않냐고 말해 올 때 바센은 한숨을 쉬었지만, 자신이 지휘관 역할을 맡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바센은 어차피 정글에는 먹을 것들이 있는데다가 라크샤사들의 다음 마을은 이틀이면 당도하니 그들의 문제라고 설명해 주었고, 라크샤사 전사 포로들은 향후 다른 지역에 붙잡힌 팽골리안들을 풀어 줘야 할 때 거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고는 이미 팽골리안 영웅이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팽골리안들은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었지만, 라크샤사들처럼 왕국을 이룰 생각이라 마고는 왕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팽골리안 역사에 남을 빛나는 구르기 덕분이었다.
참고로 두 번째로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건 바센이었고, 세 번째는 훼사였다. 팽골리안들은 덩치 크고 힘이 센 훼사를 좋아했다.
바센은 당연히 사양했지만, 티오네는 훼사에게 왜 팽골리안의 왕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지에 대해서 꽤 기나긴 설명을 해야 했다.
도시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축제와 같은 밤이 몇 번인가 지났다.
바센은 마고와 함께 라크샤사 포로들을 심문해서 얻은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마고 너는 알고 있었나?”
바센 라크 오라즌이 질문했다.
팽골리안 마고가 답했다.
“에구, 그렇다고 듣기는 했었는데…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네요.”
바센은 잠깐 인상을 썼다가, 긍정했다.
“하긴, 나라고 해도 ‘성이 걸어 다닌다’고 했으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 보다는 그냥 비유라고 생각했겠지.”
바센이 말하는 ‘성’이란, 아슈라다 라크샤사들의 지배자인, 이른바 ‘위대한 아슈라다’의 이동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정보는, 동시에 플레이어들도 알게 되었다.
─┼
룬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세상에, 이동성이라니. 이제 10대 고대 유적 중에 두 개를 우리가 가지는 거야?”
크람푸스가 말했다.
“아니, 아직 가진 거 아니거든?”
성운은 10대 고대 유적에 대해 생각했다.
로스트 월드에는 수많은 고대 유적이 있었고, 이것은 대륙이나 산맥, 강과 같이 바뀌지 않는 지형지물에 속하지 않았다.
고대 유적의 위치는 계속해서 바뀌므로 이번에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 고대 유적에는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각종 재화나 아이템, 기술들이 숨겨져 있을 확률이 있었다.
이중 플레이어들에게 잘 알려진 고대 유적이 10대 고대 유적이었다.
‘네 개의 탑, 세 개의 성, 두 개의 벽, 하나의 길.’
성운의 생각에 이 열 가지 고대 유적은 모두 쓸모 있는 건 아니었고, 그 밖에도 쓸모 있는 유적이 있긴 했지만, 여러모로 유명한 이유만큼 쓸모도 있는 유적인 것은 맞았다.
이 중 현재 제3 대륙에서 이미 발견된 것은 세 개의 성 중 하나, ‘자동성’이었다.
‘지금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자동성은 기술과 마법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그 가치가 상승하게 되지. 괜찮은 고대 유적이야.’
그 밖에도 있을 것이라 유력하게 추측되는 고대 유적이 있긴 했다.
본래 제3 대륙은 고대 유적이 발견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탐험되지 않은 반도 위쪽, 동부 산맥이나 대륙 각 지역의 험지에 ‘삼켜진 탑’이나 ‘마지막 여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위치가 랜덤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고대 유적 별 속성이 있어 추측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했다.
‘제2 대륙에 확정적으로 등장하는 대장벽 같은 것도 있으니까.’
그런 10대 고대 유적 중 이동성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발견하기 전에 찾게 된 것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발견하더라도 그리 쉽게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고대 유적들과 달리 이동성은 그냥 발견하는 즉시 쓸모가 있었다.
‘이동성은… 걸어 다니니까.’
글자 그대로였다.
이동성에는 높게 쌓아올려진 성벽 안쪽에 꽤 넓은 정원, 그리고 허물어져 가는 성으로 이루어진 장소인데, 그 밖으로는 거대한 금속 다리가 몇 개나 달려 있었다.
그리고 컨트롤 룸에서 조종기를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이 가능했다.
‘대규모 병력 이동은 물론, 그냥 임시 수도로 쓸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전쟁 무기가 된다.’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고 파괴자 계열 창조물로 충분히 대응이 되기 때문에 최고의 고대 유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지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는 있었다.
그때, 제1 회의실로 장완이 걸어 들어왔다.
“나쁜 소식인지, 좋은 소식인지 모르겠는데.”
“뭐지?”
“내 창조물을 통해서 위대한 아슈라다가 뭔지 알아냈어.”
성운이 질문했다.
“나쁘면서 좋은 소식인 것도 있나? 말해 봐.”
장완이 말했다.
“위대한 아슈라다는 드래곤이야.”
성운은 그게 나쁜 소식이면서 동시에, 좋은 소식이라는 것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