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성운의 물음에 답한 것은 크람푸스였다.
“그래.”
“거기다 과학 선생?”
“그래.”
성운은 위아래로 크람푸스를 훑었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또 빌어먹게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아냐. 그냥 당연히 백수… 취업준비생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장완, 얘 친구 없었지?”
옆에 있던 장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쓰던 사자탈은 벗고 있었다.
지금 하는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과학 선생이라고 과학에 대해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걸 보라고.”
크람푸스는 나이프 끝으로 가볍게 식탁을 두드렸다.
식탁 위에는 호화찬란한 요리들이 올라가 있었다.
상석에 앉은 성운을 가운데로, 플레이어들이 각탁에 둘러앉아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겐 식사가 필요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수면도 필요 없고, 호흡도 필요 없다.
원한다면 모습을 제멋대로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성운은 이런 종류의 ‘식사’가 아무 쓸모도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룬다를 필두로 하는 플레이어들의 식당칸 제안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성운의 의견은 간단했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일종의 관습이자 관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식당을 만들고 운영하는 잠깐의 시간, 그리고 신앙 자원이 그리 많이 들지 않더라도 낭비는 낭비이므로 만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룬다를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식사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더이상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때 사람이었던만큼 이러한 의식을 수행하는 것이 인간이었을 때의 작업을 수행할 때처럼 정신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성운은 지금까지 그런 일없이 다들 잘 해내지 않았냐고 말했는데, 그게 실책이었다.
알고보니 성운만이 게임 외의 다른 여흥에 취미를 가지지 않았을 뿐, 다른 플레이어들은 식사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취미를 연장하고 있기도 했다.
결국 성운이 또 하지 않으면 좋았을말을 뱉었다.
“그래서 진 거 아냐?”
기어코 룬다가 성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장완도 정강이를 걷어찼다.
성운은 엘다르에게 입을 조심해야 한다며 꾸중을 들었다.
갈등을 중재한 것은 위즈덤이었다.
위즈덤은 완벽한 실험이 되진 않을 거라는 걸 말하면서도, 비밀리에 성운을 제외한 두 개의 그룹을 나누었다.
한 그룹은 잘 설득해 성운 몰래 취미를 즐기도록 응원하고 다른 그룹은 성운의 비위를 맞춰주자며 취미를 즐기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위즈덤은 플레이어들의 성과를 정량화하여 각 그룹이 이후 어떻게 성과가 바뀌었는지 문서화 해서 성운에게 제출한 뒤, 만신전의 플레이어 모두에게 발표를 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사람마다 다르고 그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취미를 즐기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 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
성운은 식당을 만들고 거기에서 일할 창조물을 창조하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후세계의 혼령들을 불러모았고, 각 플레이어들의 개인실에서의 취미도 넓은 범주로 허용하기로 했다.
만신전이 모두 모여 회의하는 경우 만찬회를 열기로 한 것도 그때였다.
성운이 말했다.
“왜? 스테이크 맛에 문제가 있나?”
“그게 아니라…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지.”
“하지만 존재하는 이상 물리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단 말이지.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데도 멀쩡하다는 말은, 사실 다른 곳에서 에너지가 들어오고 있다는 말로 볼 수 있지 않나?”
성운이 잘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우리가 지구에서 알고 있던 지식으로 설명이 안되는 걸 많이 봤잖아. 그럼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더 있긴 하겠지.”
크람푸스가 뭔가 더 말하려는데, 옆에 있던 임춘식이 말했다.
“그나저나, 휘경 건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성운은 간략히 상황을 이야기했다.
휘경은 헤게모니아의 눈을 피해 제2 대륙 곳곳을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서야 실마리가 잡히는 중이었다.
헤게모니아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전장 곳곳에서 사도와 창조물, 그리고 제국의 군대가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환비가 나쁘지 않으므로 최종적으로 휘경을 찾을 수 있다면 이득을 볼 것이란게 성운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 휘경은 왜 노역장에 있는 거지?”
“예상되는 이유가 있어. 확인해봐야겠지만, 거의 맞을 거야.”
“무슨 이유인데?”
성운이 말했다.
“‘가짜 신 전략’이라고 들어봤어?”
─┼
루베일은 한때 가랑 왕국의 중심부였다.
하지만 이제 루베일은 번성한 나라의 흔적을 찾아보긴 힘들다.
제국이 점령지역에 대해 일반적으로 유화 정책을 시도하는 것에 비해, 연합왕국은 그렇지 않았다.
연합왕국이 도시와 나라를 점령하는 경우, 그냥 자신들의 체계를 뒤집어 씌웠다.
왕과 귀족들은 죽거나 노예가 되고, 그 핏줄은 연합왕국이 점령한 점령지 곳곳에 있는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이와 같은 조치 때문에 유미와 무미 계급 차이가 선명해진 셈이기도 했다.
연합왕국이 보여주는 모습 때문에 많은 나라들은 결사 항전의 의지를 굳혔고, 연합왕국의 주류 종족들에 대한 차별을 부추겼다.
그 차별이 다시 연합왕국의 주류 종족들의 분노를 키우는 동력이 되었다.
분노하는 자는 그 이름대로 종족들 사이의 고통과 증오로 힘을 키웠다.
노역장은 그 분노의 결과였다.
제국은 어느 정도 경제성에 따라 기초 자원을 어디에서 수급할지 정했다. 때문에 너무 위험하거나, 과한 노동력으로만 산출이 가능하다면 자원이 풍부해보여도 포기하고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았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지역 관리와 그 자리에 사는 해당 주민, 상인들 사이의 마찰이 있으므로 플레이어의 기준에서 보는 ‘자원 생성량’은 항상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연합왕국의 경우, 노역장의 노예들이 죽을 때까지 노동을 통해 자원을 벌어들이므로 그러한 문제가 없다.
특히나 노예 계급이라고 해도 의학 발달과 곡물 생산량 증대를 통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분노하는 자의 시점으로 볼 때 지극히 합리적인 방법론이었다.
“경비가 삼엄하군요.”
쌍안경을 들고 전방을 바라본 고르고타가 말했다.
라민과 그 일행은 루베일 계곡에 들어섰다.
노출된 바위산과 절벽 아래로는 수풀이 가득하다. 덕분에 세 사람이 몸을 숨기는데는 문제 없었다.
고르고타가 바라본 지역은 절벽 아래의 작은 건물이었다.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서진 석재 건물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라민이 말했다.
“저희 때문일까요?”
“그럴지도요. 노역장이면 외부 경계보단 내부 경계가 더 철저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신호가 조금 보입니다. 초소는 물론이고 외부 정찰대도 돌리고 있고.”
열차에서 내린 뒤의 도보 여행은 그리 즐겁다고 할 수 없었다.
연합왕국의 이빨 요원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을 작정인지 사람이 사는 곳이면 경관들이, 그렇지 않으면 군인들이 수색을 해댔다.
난항이 있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었다.
고르고타가 말했다.
“저기 보이는 기지는 아마 벌목장의 작은 캠프 중 하나일 겁니다. 제가 알고 있기에 루베일 노역장의 주된 생산 자원은 나무가 아니라 석탄입니다. 중앙으로 들어서려면 저길 지나 훨씬 더 깊게 들어가야 합니다.”
라민이 주란을 보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죠? 더 상급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주란이 말했다.
“실지렁이들은 신호가 없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교환소와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저희들끼리 결정을 해야 합니다.”
고르고타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저희는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목숨을 걸고 저길 들어가자고 할 수는 없군요. 이빨 요원들도 생각이 있다면 이미 저 노역장 내부에 저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럼요?”
라민의 물음에 고르고타가 말했다.
“여러분을 안전한 지역까지 모신 뒤, 저 혼자 진입하겠습니다. 제가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한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요원과 접촉하신 뒤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민은 인상을 쓰고 말했다.
“반대로 하죠.”
“반대라뇨?”
“휘경을 찾을 수 있는 건 저희 둘이지 고르고타 씨가 아니니까요. 주란 씨만 괜찮으면, 저희 둘이 들어가고 고르고타 씨가 대기하세요.”
“예?”
고르고타가 반문하는 사이 주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좋습니다. 그리고 누님도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뭔가 생각이 있으신 것 같고요.”
“어떻게 알았지?”
“대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그냥 희생하실 분 같지는 않아서…”
“….”
라민은 잠깐 먼산을 바라보았다가 고르고타를 돌아보았다.
“일단 들어보세요.”
노역장의 일과는 단순하다.
노역장은 크게 세 집단으로 나뉜다.
관리자, 경비대, 노역자.
관리자가 가장 소수지만 사실상 경비대와 노역자를 둘 다 부리고 있고, 경비대는 군 소속으로 노역자가 노역장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힘들다.
관리자와 경비대 모두가 무기를 들고 있다고해도 노역자의 숫자가 스무 배 가량은 많으니까.
때문에 노역자들은 항상 조를 짜서 움직였고, 각 조들은 서로를 감시하도록 했다.
만약 노역장 내부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서로 고발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상벌을 내리는 것이다.
라민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동일한 경비 인력으로 내부 감시보다 외부 감시가 더 삼엄하다면, 당연히 내부 경계가 약해졌겠죠?”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예, 조금은 그렇겠죠.”
“이미 눈으로 확인했지만 벌목 작업을 해야하는만큼 각 조들이 퍼져 있고 도망칠 여지가 있어 보여요. 그 중에는 분명 도망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어보이고요.”
고르고타가 말했다.
“노역장의 탈출 시도는 잦은편입니다. 제 아무리 연합왕국이라고 해도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연합왕국의 음지에는 이런 도주 노예 출신이 많이 자리를 잡은 걸로 압니다. 해외로… 그러니까 제국 같은 곳으로 도망치는 이들도 많고요.”
라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리가 그걸 도와줄 수도 있겠죠.”
고르고타가 의심스럽게 말했다.
“그 혼란을 틈타 돌입하잔 말입니까? 하지만 그걸론 충분하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라민이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죠. 정확히는…”
라민이 설명하자 고르고타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지금까지의 아이디어 중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별빛의 가호를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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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일 노역장의 벌목 현장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내부 경계가 소홀해진 틈을 타 노역자 다섯 개 조가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이 소란이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한 까닭은, 이 다섯 개 조 중 끝까지 도망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비대는 해당 조의 인원 명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머릿수만 세어 확인했는데, 비는 숫자가 없었다.
경비대는 다섯 개 조를 일괄로 묶어 노역장의 중심에 있는 옛 가랑 성터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끌려가는 노예들 가운데, 라민과 주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