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21
아바르틴에서라면 삼각기둥 형태의 건물은 선호되지 않는다. 제한된 지표면에 삼각형은 공간의 낭비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바르틴과, 아바르틴과 같이 물리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 많은 아우터 스페이스의 지표면에는 사각기둥, 즉 육면을 가진 입방체로 건물이 지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수 많은 삼각기둥 모양의 첨탑이 솟아 있다. 이곳에서 공간은 물리적 한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 의미이다. 하나의 각은 각각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를 의미하거나, 이제는 사라진 옛신과 그에 맞섰던 악신,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나타난 새로운 신을 뜻하거나, 정과 반과 합의 시공간의 논리적 구도를 암시하거나, 아우터 스페이스의 아바르틴과 이너 스페이스의 마의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만성전의 관계를 은유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서로를 향해 마주보지 않는 세 개의 각은 보는 이에 따라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만성전의 성좌들은 그 모두를 긍정한다.
수 많은 삼각기둥의 첨탑이 솟은 이곳이 만성전이다.
여전히 만성전의 아래에는 태초의 초원이 존재하지만, 시험의 탑은 제거 되었다. 탑이 제거 되었다고해서 만성전에 도달할 방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험 받는 이들은 자신의 배후성이 제시하는 각각의 시험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거쳐야하며, 아바르틴 또는 태초의 초원 어딘가에 있을 자신만의 최후의 문을 지나쳐야만 한다.
그 문을 지나치면 만성전을 지지하는 상아색의 거친 돌바닥을 밟고, 저 우주를 향해 높게 솟은 삼각 첨탑의 마천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첨탑은 서로간의 높이가 다르고 세세한 문양과 장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서로 유사하고 닮았다. 하지만 만성전에 처음 들어서는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첨탑은 성좌의 숫자만큼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각 첨탑의 주인이 성좌인 것도 아니고, 하나의 첨탑이 하나의 영역을 대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첨탑은 수평하게 이어지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겉보기에는 중앙에 가까울수록 더 많은 회랑과 연결되지만, 물리적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므로 당연히 보이지 않는 더 많은 회랑들이 존재한다.
만성전은 이러한 수 많은 첨탑 사이에서 존재하고 그 내부 공간은 보이는 것 보다 넓으며, 누군가가 어림잡은 계산에 따르면 이미 아바르틴, 그리고 아바르틴과 같은 크기를 가지는 태초의 초원을 더한 것보다도 넓었다. 만성전의 저 겉보기 삼각 첨탑들은 그저 만성전의 성좌들이 가지는 수직적 가치 지향과 수평적 연계를 건축학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장 높게 솟은 삼각 첨탑의 최상단에는 만마경(萬魔鏡)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만마경에는 크고 거대한 하나의 천체 망원경이 놓여 있다.
이 망원경은 황동으로 만들어졌으며, 과학 기술만이 아니라 마법 신비가 더해진 마도공학의 산물이었다. 망원경의 렌즈는 지난 300년 동안 수행한 만성전 최고 장인들이 나노 공정을 통해 깎아냈으며, 시간의 비의가 담긴 황동 톱니바퀴들은 바세니올 마탑의 마법사들이 저 인과를 넘어 추출하였다. 제작자는 성운과 ‘설계의 성좌’, ‘섬세한 직조자’, ‘이미 완성된 끝’ 위즈덤이었다. 성좌들의 고향에서는 지혜라는 의미로, 그가 그것을 획득했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갈망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바르틴에서 오랜 갈망 끝에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름, 지혜로 섰으니, 만마경은 성역 이후 위즈덤의 가장 위대한 제작품이었다.
수 십미터 크기의 만마경의 본체 아래에는, 몸집이 크지 않은 리자드맨이 붉은 벨벳을 덧댄 고풍스런 고동색 나무 의자에 앉아 접안경을 바라보고 있다.
만성전에서 검은 비늘 리자드맨을 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이 리자드맨의 왼팔은 특이하다. 이 리자드맨의 왼팔은 자신 앞의 만마경을 연상시키는 얇은 황동 동체에 황동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의수다. 이 외팔이 리자드맨은 만마경의 주인이었으며,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별잡이라고 불린다.
별잡이는 만마경에서 눈을 떼고, 맨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름답군.’
태초의 평원은 아바르틴을 흉내낸 대기와 흉내낸 광원 덕분에 인공적인 밤과 낮이 교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만성전은 그러한 궤도 밖에 존재하며, 따라서 보여지는 것은 항시 밤하늘 뿐이다.
만성전에서 보이는 이 밤하늘은 아바르틴의 그것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별잡이가 보고 있는 하늘은 아바르틴의 우주기도 했다.
‘어디보자···’
별잡이는 의자를 살짝 꺾어 자신의 품에서 단망경 하나를 꺼내든다.
목재로 만든 자그마한 단망경이지만 별을 들여다보는데 이골이 난 별잡이에겐 충분하다.
별잡이가 우선 바라보는 것은 아바르틴 첫 번째 달, 욘다다.
별잡이에게 있어 욘다는 그렇게 흥미로운 구석은 없는 위성이다.
대기가 없는 위성들이 그러하듯,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아도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변화가 없다.
하지만 최근의 욘다는 재미있었다.
별잡이는 단망경의 접안부를 살짝 돌려 현재가 아닌 욘다의 과거를 본다.
욘다에 다 망가져가는, 하지만 그런것 치곤 능숙하게 착륙하는데 성공하는 우주선이 보이고, 거기서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들이 내린다. 사도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만성전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 기술로 저런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 별잡이로서는 기특하기까지 하다.
별잡이는 그대로 단망경을 통해 무엘이란 이름을 가진 뱀파이어가 세 명의 신을 깨우고 난 뒤, 제 임무가 끝났음을 알고 유유자적 달 위를 산책하는 것을 본다. 이 뱀파이어는 욘다에 가장 많은 발자국을 남겼고, 사도에게서 운전대를 빼앗아 바퀴자국도 많이 남긴다. 뱀파이어는 충분히 여유가 허락하는만큼 욘다를 즐기고 돌아가는 우주선에 올랐다.
이제 욘다는 다시 조용해진다.
‘하지만···’
별잡이는 접안부를 반대쪽으로, 현재를 넘어 미래로 돌린다.
욘다에는 간간히 우주선이 도착하고 실험과 조사를 이어가는 우주인들이 점차 많아지더니,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건축물들이 세워지고 장기 체류를 이어가는 우주인들도 나타난다. 달기지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쉽게 불어나진 않지만 조금씩 착실하게 그 크기를 키워나간다. 달을 산책한 뱀파이어도 몇 번 더 얼굴을 내민다. 달산책이 퍽 즐거웠던 모양이다.
연구자가 아닌 연구자의 가족들이 체류하기 시작할 무렵, 별잡이는 단망경에서 눈을 뗀다.
맨눈으로 욘다를 보자, 미래가 아직 오지 않은 욘다는 움직임 없이 늘 해왔던대로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얌전히 쉬고 있다.
별잡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이번엔 또 다른 위성을 들여다본다.
두 번째 달, 룸이다.
이제 룸은 아바르틴의 궤도에서 벗어나 태초의 평원의 궤도로 들어섰고, 이제는 그 궤도도 틀어서 만성전을 궤도로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룸은 이제 아바르틴의 두 번째 달이라기보다, 만성전의 첫 번째 달이다.
수 많은 신앙 자원을 소모해서 만들어졌던 저 파괴 병기는, 초기에는 다른 설계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든지 수 많은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장이 있으며, 내부에 있는 엄청난 공백을 통해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위성의 역할이 방주였음을 암시한다.
암월, [13.08.21 10:14] 중요한 것은 이 방주가 어디로 떠날 생각이었냐는 것인데, 이제 성좌들은 물론 별잡이 또한 룸이 어디로 떠날 계획이었는지 알고 있다.
룸의 목표는 마의 공간, 우주 밖의 우주였다.
룸은 마의 존재들, 즉 악신과 악신의 아이들이 아바르틴과 격리되어 있었던 공간이었다.
옛신들은 그것을 약속하며 악신들 사이에 간계를 펼쳤고, 그 사이에 룸을 제작했다.
악신 일부가 속아넘어간 사이 완성된 룸은 파괴의 화신이 되어 그들을 공격하고 불태웠고, 비록 그것이 상처뿐이었다지만, 승리를 얻어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룸은 예정대로 마의 존재들을 태우고 고향을 찾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성전의 도움으로 룸의 지표면과 내부 모듈은 거의 다 복구가 되었다.
이제 만성전의 성좌들은 룸이 초기 설계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었고, 악신이었던 성좌들은 그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동시에 룸의 제어권을 만성전에 넘겨주었다.
별잡이는 단망경을 들고 다시 한 번 그 광경을 바라본다.
새카만 룸의 지표면 위에서 성운이 말한다.
“괜찮겠나? 만성전은 그대들을 구속하지 않아. 떠나고 싶다면 떠나도 된다.”
“아니,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
상실의 성좌, 듸데가 말한다.
“우리는 고향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다.”
“왜?”
“이제 아바르틴이 새로운 고향이 되었으므로.”
성운은 그 뜻을 받아들였다.
별잡이는 단망경에서 눈을 뗀다.
그리곤 이제 밤하늘이나 만마경의 접안대가 아닌, 단망경 그 자체를 내려다본다.
이 단망경은 평범한 물건이었다.
모험을 좋아하는, 이제는 사도가 된 리자드맨이 항해에서 별을 보는 법이 얼마나 요긴했는지, 별잡이를 존경 한다며 선물한 것이다. 그 시대의 기술 수준 덕분에 이제 와서는 아바르틴의 시중에서 파는 값싼 쌍망경만도 못한 확대율이다. 이제는 접안 부위까지 헐거워져 그저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물론, 다른 사람이 사용한다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바뀐 것은 별잡이의 눈이었다.
처음 이 사후세계에서 별잡이가 본 것은 밤하늘이었다.
밤하늘에 대해 그토록 궁리를 이어가고 놀라운 발견을 이어간 것은 별잡이에게 축복같은 일이었으나, 곧 한계에 부딪쳤다.
관측 가능한 우주는 생각보다는 비좁은 곳이다.
그쯤하여 별잡이는 이미 천체망원경만이 아니라 수 많은 우주의 관측 정보를 기록하는 천문 관측 기술에 해박해 있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숫자 사이에서 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별잡이에 대해 성운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별잡이는 아우터 스페이스가 도달할 우주의 끝과 그 이론에까지 해박해졌고 관측 가능한 우주에 대해서 이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 결론은 너무 선명하고 밝아서, 의아하게도 별잡이가 보기엔 마치 결정된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별잡이는 미래를 보았다.
별잡이는 성운이 헤게모니아와 오랜 전쟁을 이어가다가, 결국 승리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악신들이 나타나고 두 번째 달 룸으로 만신전을 위협하는 것을 보았다.
룸에게서 승리한 만신전이 이번에는 타천을 당하고, 제국이 옛신들과 결전을 벌이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끝내 성운이 승리해 만성전이 세워지고 성좌들이 새로운 질서를 여는 것도 보았다.
별잡이는 자신의 지식과 통찰이 빚어내는 귀결이 실제 세계에서 반복되는 걸 확인했다.
별잡이는 자신이 미래를 본다는 것, 자신이 현재의 별을 넘어 별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서툰 입으로 미래를 흐트리지 않기 위해 오래 침묵하였다.
···자신의 이해자가 나타날 때까지.
─┼
「별잡이, 그대의 침묵을 걱정하는 이가 많습니다.」
별잡이 앞에 성역의 시스템 창이 떠오른 것은 라크락의 첫 번째 심판 직후였다.
별잡이는 침묵을 고수할까 했으나, 오랜 외로움으로 입을 열었다.
“성역이여, 나는 위대한 라크락의 성창이 옛신의 정수리로 떨어지는 것을 수 십년 전에 보았다.”
「미래를 예지한 것입니까?」
“그래. 믿을 수 없겠지만.”
「아뇨,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별잡이. 그대의 통찰이라면 충분히 ‘외삽(外揷)’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외삽?”
「위대한 마법사들이 조율에 이르듯, 위대한 학자들이 외삽에 도달합니다.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점을 알고 있다면 세 번째 점인 미래로 이어지는 선을 그릴 수 있게 되겠지요.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경지에 이르렀음에 성좌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별잡이는 슬퍼했다.
“그럼 내가 본 미래가 진짜란 말인가?”
「예, 아마도.」
“그 슬픈 미래가?”
「별잡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이것이 다음으로 일어날 일이니···”
끝
암월, [13.08.21 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