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494
◈ 495화. 기이한 회담 (2)
호열이가 누굴 소개해 준 게 얼마 만이지?
아무리 기억을 돌아봐도 초등학교 때 이후론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예림은 구석 테이블 앉아 숨을 죽이고는 호열이를 바라봤다.
고독도, 그림자도 없는 얼굴.
‘그냥 내 착각이었나?’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서로 고충을 털어놓을 사이처럼 가까워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특히 저 두 사람이 호열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완전히…….
‘호열이를 무슨 사장님 대하듯 하고 있는데?’
아니, 그럴 만도 하려나? 성전 연합군의 계급도까진 알지 못하지만, 우리 호열이가 총대장이라고 했으니까. 저런 태도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
그보다.
이예림은 눈치를 살피는 부모님에게 입을 뻐금거렸다.
“둘 다 거기서 뭐 해?”
“응? 호열이 일하는데, 혹시라도 방해될까 봐서.”
“그러고 있는 게 더 신경 쓰이겠다.”
왜, 방금도 대통령 이름이 나오는 순간.
우리 아빠 우당탕─ 하고는 접시를 떨어트렸잖아?
이예림은 믿기지 않았다.
‘이게 뭐야, 갑자기.’
화목할 만두.
이 작디작은 분식집에서.
서울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줄이야.
‘이런 걸 어떻게 짐작하냐고.’
그럼에도 이예림은 애써 담담한 척했다.
‘결국, 우리도 알게 될 이야기라고 했으니까.’
게다가.
……꾹.
이예림은 테이블 아래에서 지그시 주먹을 쥐었다.
‘알고 싶어.’
말했다시피 더는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호열이가 정확하게 어떤 상황과 위협에 처해있는지를.
일반인에 불과한 자신이 호열이에게 도움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지.’
가족이자 셋밖에 없는 누나로서.
이예림은 심호흡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 어떤 이야기가 나와서 절대로 놀라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난이 아니야.’
그 덕분일까,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만했다. 남철민, 남태민과는 정반대의 인상을 가진 남자가 서울의 미래에 관해 온갖 흉흉한 예측을 쏟아낼 때까지만 해도.
그러나 이예림은 끝내 참아내지 못했다.
남철민,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는 호열이의 입술.
“내가 서울의 주인이 되겠다.”
하나뿐인 동생의 난데없는 선언.
……호열이. 너, 설마?!
이예림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너, 정치하려고?”
*
정치?
무슨 개소리야.
이 웬수는 또.
‘그렇지 않아도 말투 때문에 민망해 죽겠는데.’
꼭 그렇게 되짚어야 직성이 풀리겠어?!
서울의 주인이 되겠노라.
내가 그랑펠식 화법으로 난데없이 선언한 이유는 간단하다.
슥.
남철민이 태블릿까지 꺼내며 예상한 시나리오들.
“정한택 대통령께선 저희 거대 연합과 신화 길드에 긴밀한 협조를 요청해 오신 상태입니다. 서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선 높은 확률로 무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유그위드가 유산을 남긴 덕분. 서울은 더 이상 일반적인 땅이 아니게 됐다.
더욱이 세계 각국의 언론과 플레이어들을 통해 그 가치가 증명과 동시에 퍼져 나간바.
“쉽게 말해서 버프가 유효한 서울 권역은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든, 서울을 제외한 모두에게 노려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영향력은 아마 마찬가지로 서울인 이곳까지도 유효하겠죠.”
그 말도 옳았다.
화목할 만두.
아빠 엄마의 긍지의 공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 내 상태창엔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
아르카나 대륙에서 적용 중인 버프와 같은 버프가 적용 중이었거든.
“보다 현실적으로 비유하자면…….”
잠자코 듣고 있는 아빠, 엄마, 웬수.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에 취약한 남태민을 배려한 걸까?
남철민은 핵심을 한 줄로 정리했다.
“아르카나 대륙과 연결된 지금. 서울은 기원전 이후, 전 세계 역사를 샅샅이 뒤져봐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땅이 된 겁니다.”
그렇다.
그게 바로 내가 서울의 주인을 자처한 이유였다.
누군가는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네 이놈, 이호열.
드디어 같잖은 청렴결백을 내던지고 본심을 드러내는구나, 하고는……! 하지만 청렴결백이 그렇게 쉽게 내던질 수 있는 거라면, 아마도 내가 첫 번째로 내던졌을 거다.
‘탐욕도, 출마 선언도 아니야. 이것도 일종의 짐이지.’
서울에 아르카나 대륙의 버프가 유효하다는 것?
즉, 서울이 아르카나 대륙의 땅과 다를 바 없는.
[영지]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니까.‘당연하게도.’
서울엔 [영지] 시스템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쯤 말했으면 슬슬 짐작이 되겠지?
그렇다.
나는 해당 지역에서 관계도, 영향력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활성화되는 [권한] 시스템의 악용을 우려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니까.’
유스라 왕국에서, 프로스트에서, 그리고 크고 작은 수많은 장소에서 숱하게 [권한] 기능을 활성화했던 나였다. 물론, 그런 [권한]의 위력을 제대로 선보인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랑펠이 누구냐?
균열을 돌아서 번 돈조차 사리사욕에 쓰지 않는 성인군자.
그 성격에 [권한] 기능을 남용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 만약을 상상해 보자.
그랑펠이 아닌 누군가가 서울의 [권한] 기능을 활성화한다면?
서울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은 더 이상 규율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권한] 기능을 활성화한 인물이 내뱉는 말이 곧 새로운 법이 될 테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이 땅을 노리는 건 플레이어뿐만 아니겠지.”
“과연, 총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역시……!”
플레이어가 아니라 모종의 아르카나 대륙 존재 또한 얼마든지 [권한]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마안을 통해서 모든 상황을 지켜봤을 상위 마왕들도 간과할 수 없겠지.
탁.
그쯤에서 남태민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저흰 총대장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각한 첫마디와 대조적으로.
만두를 흡입해서 그런 건가.
남태민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밝았다.
“사실 방금까진 머리가 복잡해서 저도 모르게 먹는 데 열중했는데……. 총대장님이 서울의 주인이 되시겠다면, 저희 거대 연합도 최선을 다해서 총대장님께 협조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한 협조라니.
‘하여튼 나를 과하게 신뢰한다니까, 다들?’
하지만 그 믿음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나, 이호열.
솔직한 심정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만. 서울의 주인이라는 자리에 앉을 만한 인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밖에 없을 것 같았거든.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그랑펠이지만.’
서울이 기이의 땅이 된 지금.
그 가치는 물론, 위험성 또한 몇 번이나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균열이란 안전장치도 없이 아르카나 대륙의 위협이 범람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다.
‘현실의 위협도 간과할 수 없다.’
남철민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멈칫거렸다.
“특히 세계적인 길드 대부분이 마탑과 가까운 서울에 지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모두가 성전 연합군이라는 한배를 탄 이상, 불필요한 의심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우려를 알고 있다.”
이건 단순히 길드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가온이 대한민국의 상징이었듯.
랭킹권의 길드는 곧 국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진다.
‘플레이어, 개개인의 긍지를 떠나서.’
과거, 일본 정부에 휘둘리던 이나즈마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플레이어들이 국가에게 협력할 수밖에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 서울엔 틀림없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곧 주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일 터.”
그랑펠이 누군데?
무려 클라우디 가문의 가주이자 기이의 땅이 된 서울보다도.
막대한 가치를 가진 영지, 클라우디령의 주인이었으니.
‘부담감 같은 거 느낄 리가.’
확신에 찬 나의 말은 확실한 대답이 된 모양이었다.
남씨 형제의 눈이 번뜩이기도 잠깐.
남태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접시를 옮겨 나르기 시작했다.
“어머님, 아버님. 정말로 잘 먹었습니다.”
“그래요? 입에 맞아요? 다행이네.”
“언제라도 저희 가온 타워 방문하시면 제가 우리 어머님, 아버님,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아, 제가 자리에 없을 수도 있는데요. 그럴 땐 여기, 명함에 있는 제 번호로 연락을 주시면…….”
“어머 어머,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을까요? 호호.”
……하여튼, 넉살도 좋으셔.
생각하던 와중.
남철민이 테이블을 닦다가 말고는 내게 말을 건네왔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총대장님.”
그의 눈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마탑이 서울에 등장한 이후. 저희 가온은 국가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총대장님께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어주신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조력자가 되겠습니다.”
조력자라.
나를 위해 자처해 준다면 당연히 고마워해야겠지.
말했다시피 자신이 없었거든.
‘전문분야가 아니니까.’
현실의 정치, 암투, 국가 간의 신경전은 나도 그랑펠도.
아는 게 별로 없었으니까.
물론, 현시점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아직까지 모든 건 예상에 불과하잖아?
‘그리고……. 장소도 좀 그렇고.’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엿듣고 있는 건지!
웬수, 이예림이 신경 쓰여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방정을 떨기는 했다만.
“오늘은 진심으로 실례했습니다.”
“아니에요. 나중에 또 와요.”
“싸인 고마워요, 태민 씨!”
“아닙니다, 어머님!”
잘 먹고 갑니다.
남씨 형제는 가게에 그런 메시지를 남기고는 떠났다. 아, 사진도 몇 장이나 찍었구나? 남태민 정도 되는 플레이어의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오늘 만두는 그냥 거저 수준…….
내가 속물적으로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야, 이호열.”
……젠장,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웬수가 나를 부른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이야기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할까?
지은 죄가 하도 많아서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부활? 아니면 서울의 주인? 아오……!’
할 수만 있다면.
이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몇 대만 때리고 싶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거든.
“이 누님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경청하고 있습니다.”
“너.”
그런데.
“나중에 우리한테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줄 거지?”
……어라?
당장 추궁을 당해도 며칠 동안 당해도 이상하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엄마, 아빠야 나를 이해해 주신다고 해도. 웬수만큼은 나를 향해 집요하게 질문을 퍼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우린 그냥 믿고 기다리면 되는 거지?”
웬수.
이예림.
……아니지, 작은 누나는 그 질문을 끝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뭘 잘못 먹었나 싶을 정도였지만, 나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결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지금도 대답할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죽었다 살아난 건 칭호, [최후의 모험가] 덕분이고. 서울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도 사실 서울의 [권한] 기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뿐이었으니까.
‘다만.’
단 한 가지만큼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와 그랑펠의 흑역사만큼은.
아직은 도저히 내 입으로 내뱉을 수 없었기에……!
나는 이 순간에 말을 아꼈다.
“그 무거운 신뢰를.”
모든 게 끝나고.
모든 걸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순간이 추억이 됐을 때.
뭐, 그땐 모든 걸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나도 나지만, 그날을 위해선 누나도 노력을 좀 해야 될 거다.
문득, 일그러지는 작은 누나의 미간.
“그건 그렇고……. 너, 그 말투 쫌 진짜 어떻게 좀 안 되냐?!”
봐봐, 지금도 이러는데 내가 전부 털어놓을 수 있겠냐고.
*
마계.
십좌가 일제히 눈을 깜빡였다.
마안을 통해서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아홉 번째 왕좌의 마왕, 존귀한 파이몬.
“그대여.”
그 또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찻잔 속.
홍차의 수면이 심기처럼 잘게 흔들렸다.
“우리의 약속과는 조금 다른 상황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