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12
◈ 513화. 유쾌하지 않은 일이거늘 (2)
그냥 VIP도 아니고 VVIP이긴 하겠지.
‘나 혼자니까.’
시공간의 사교장 최상층에 진입할 수 있는 건.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웅장한 음악을 깔아줄 필요까지 있는 걸까……?
“현악기의 화음이 감미롭군.”
뭐, 뭔 악기의 화음?
“관악기의 표현력 또한 훌륭하다.”
관악기 표현력이 훌륭해……?
너 뭘 알고 하는 소리냐, 그랑펠?
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그냥 닥치고 얌전히 올라가자.’
누가 듣고 있을까, 무서우니까.
현재 시공간의 사교장에 누가 입장했는지는 VVIP라도 알 수 없는 개인정보였다. 하지만 누가 됐든 맞닥뜨린다면 수치심에 얼굴을 붉힐 자신이 있는 나, 이호열이었다.
그런 면에선 다행이었지.
“그러나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 환대로군.”
천하의 그랑펠 님께서 사교계를 탐탁치 않아하시는 건.
그러니 나는 하층과 상층을 건너뛰고 곧장 최상층으로 직행했다.
[시공간의 사교장 최상층에 진입합니다.]눈이 시릴 정도의 풍경.
그렇지 않아도 화려한 시공간의 사교장인 만큼.
최상층은 하층이나 상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만.
‘지금은 한눈팔 때가 아니니까.’
그나저나 사람이 참 간사해?
‘클라우디의 심연에 비하면 여기도 뭐 수수하네.’
높아진 눈 덕분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으니.
곧바로 허공을 부유하는 두루마리로 다가갔다.
『최상위 시공간의 임무』.
즉, 현재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 목록이 적힌 두루마리였다.
‘하층과 상층에도 두루마리는 존재한다.’
하지만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의 종류가 달랐다. 특정한 몬스터를 사냥한다든가, 특정한 장소를 조사한다든가, 하는 일반적인 시공간 퀘스트와는 급이 다르다는 것.
‘봐봐, 이름부터 하나같이 거창하잖아?’
두루마리에 떠오른 퀘스트 하나하나가 전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아르카나 대륙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퀘스트들.
그러니 나는 진지한 눈으로 목록을 훑었다.
‘최대한 덜 중요해 보이는 걸로 가자고.’
괜한 나비효과가 일어나면 안 되잖아?
긍정적인 변화든 부정적인 변화든.
아르카나 대륙은 지금도 충분히 혼란스러웠으니까.
‘게다가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
-온전한 클라우디 가문을 목격하라. (진행 중)
갑자기 최상위 시공간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유?
어디까지나 현재는 볼 수 없는.
온전한 클라우디 가문을 목격하기 위함이었다.
‘보자.’
그렇다면 보상을 역으로 정렬해 볼까? 그 보상이 적을수록 난이도도 영향력도 낮은 퀘스트가 떠오를 테니까. 그런 나의 시선을 끄는 퀘스트가 있었으니.
[신화 퀘스트 : 첫 산책]나는 그 퀘스트 내용을 쭉 훑어보고는 결정했다.
‘……이거다.’
딱, 이런 퀘스트를 원했다.
이 퀘스트라면 무난한 성공은 물론.
원래 목적도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넘어가는 마른침.
느슨하게 착용한 갑옷.
흘러내린 머리카락.
구겨 신은 신발.
자신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다듬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쉽게 꺾이지 않는 레오니의 껄렁한 자세마저도 꺾였다.
슬그머니.
어느샌가 걸터앉았던 테이블에서 내려온 레오니.
거대 연합의 세 길드 마스터는 뜻하지 않은 메시지에 흠칫하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히사기가 물었다.
“VVIP라, 대현자님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아니, 시스템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맞아, 뭘 본 건데? 분명 거성이 저물었다고 했었잖아.”
둘의 구박에도 히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읊조렸다.
“그렇다면 누구일까요.”
~♩♬♩♬♪~
이 정도로 성대한 환대를 받으며 시공간의 사교장에 발을 들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김없이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지만…….
히사기는 곧 고개를 털어냈다.
‘총대장님께선 이런 자리를 즐기시지 않아.’
아득한 과거.
호열이 플레이어로서 처음 두각을 나타냈던 시절.
이나즈마는 호열을 포섭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뒷조사했었다.
-“지나치게 깨끗합니다, 대장.”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아요.”
-“주변인이라고 할 이들도 가족밖에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라면.
여타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호열이 사교계와는 일절 접점조차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치계, 연예계, 뒷세계에서도.
‘덕분에 대화다운 대화 한번 나누지 못했었지.’
그에 반해 다방면에서 온갖 접점을 가지고 살았던 히사기였다.
덕분에 히사기는 이러한 사교계의 구조에 능했다.
그리고 간만에 그 지식을 발휘했다.
“분명 어마어마한 거물일 겁니다.”
“……거물이라고?”
“이러한 사교장의 VVIP라고 하면 역시.”
그렇다, 모든 건 수지타산이 맞아야 하는 법.
짤랑.
히사기가 시공간의 금화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압도적으로 부유한 분이시겠죠.”
“……뭐야, 너 한 푼도 없다며?!”
“야씨, 히사기. 네가 얘 대신 내 생명수 값 좀 갚아라.”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다른 의미로 두 사람이 존경스러웠지만.
나름 익숙해진 히사기였다.
슥.
얼른 인벤토리 속으로 금화를 챙기고 말을 잇는다.
“그런 의미에서 궁금하군요.”
“뭐가 또?”
“시공간의 금화를 얻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
그 말에는 남태민도 레오니를 향해 드러냈던 성깔을 억눌렀다.
두 사람 역시, 시공간의 의뢰를 수행해 본 덕분이었다.
“그런 고난이도 퀘스트를 VVIP라고 불릴 정도로 많이 깼다는 건가? 확실히 네 말대로네, 히사기. 모든 면에서 거물이라 불러야 인물이겠어.”
확실히 얼굴을 봐둘 필요가 있겠군. 세 사람이 나름대로 결의를 다지고 사교장의 출입문을 주시하던 순간이었다. 그 입구에서 별안간 익숙한 머리통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뾰족 솟은 고깔모자.
“……응?”
그 아래에 흩날리는 건 금발의 머리칼.
어리둥절한 목소리.
레오니가 누구보다 먼저 물었다.
“뭐야, 제시 하인네스야?”
“앗, 안녕하세요! 여기서 다 뵙네요!”
“너, 너, 너 여기 VVIP였어?!”
진짜 재수 없으려고 하는데?!
레오니가 발끈하려던 순간.
제시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마탑에서 마법 서적을 읽고 있다가 메시지가 떠올라서 찾아온 거거든요. 시공간의 사교장에 VVIP가 입장했다는 메시지요!”
……메시지?
잠깐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마탑에 있던 제시에게까지 메시지를 띄운 건데?
그러나 세 사람의 흠칫거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시 하인네스를 필두로 속속들이 사교장으로 입장하는 초월자들. 거기엔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에 안면을 텄던 총대장님의 측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4가문.
전율의 아카몬드의 가주.
레텔 아카몬드.
그녀가 세 사람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 만나니 반갑군요, 햇병아리 모험가님들.”
“아, 넵…….”
그러나 세 사람은 제대로 대답할 정신조차 없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VVIP길래. 이렇게 수많은 초월자들이 총집결하듯 시공간의 사교장에 집결했단 말인가? 다시금 마른침을 삼키게 됐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는데. 시야가 완전 달라.”
그러니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VVIP라는 인물이 사교장에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사교장을 훑는 남태민의 시선.
“다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모인 거겠지.”
~♩♬♩♬♪~
감미로운 운율과 반대로.
시공간의 사교장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듯했다.
*
퀘스트의 목표는 그야말로 간단명료했다.
─대상을 호위하라. (진행 중)
귀찮은 조건 같은 것도 없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상을 호위하기만 하면 끝.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차림새를 살폈다.
‘이 복장은 무리겠는데.’
자체발광.
빛을 내뿜는 여명의 재킷은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허나, 그런 이유로 옷을 벗는 건 그랑펠이 허락할 수 없는 일일 터.
그러니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진짜 내키지 않는데.’
인벤토리에서 시커먼 무언가를 꺼냈다.
[악크샨의 망토 – 미완성] [등급 : 레어] [제한 : Lv.500] [효과 : 없음] [설명 : 부활한 악크샨의 제복이다.]그렇다.
전(前) 그림자 용병단이라는 신규 악마 사냥꾼들을 영입한 지금의 악크샨이었다. 과거처럼 악마 사냥꾼 특유의 복장이 필요했으니, 나는 악크샨의 제복 제작을 위해 드워프들에게 전언을 보냈었다.
‘그리고 디엔드가 이걸 가져왔지.’
어째서 하이엘이 아닌 디엔드가 감격하며 이 망토를 전해왔는가? 그 이유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틀림없이 입방정을 떨 테니까, 나의 분신 2호는……!
미완성.
그 때문에 드워프의 손재주로 붙은 방어력을 제외한 추가 효과는 붙어있지 않았다. 그저 그 시절, 치렁치렁했던 악마 사냥꾼 복장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
하지만 한결같으신 우리의 그랑펠님.
“미완성이라, 그럼에도 나쁘지 않군.”
취향도 한결같으셔서는.
흔쾌하게도 망토를 걸쳐주시니.
여명의 재킷이나 악크샨의 망토나 수치스러운 건 마찬가지려나.
‘그냥 눈에 덜 띄는 걸로 만족하자.’
또각.
이내, 나는 [천마군림보]를 내디뎠다. 스쳐 가는 풍경에서 보고, 들려오는 정보들을 규합해 본다. 일단, 확실한 건 이곳이 대격변 이전 아득한 과거라는 거겠군.
‘악마의 기척이 없다.’
악마의 기척이 대놓고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마계가 범람하기 이전이라면.
클라우디가 멸문당하기 이전 시점일 가능성도 높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클라우디령으로 통하는 포탈을 열고 싶었거늘.
그 전에 퀘스트 목표를 찾는 게 우선이겠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특정 방향을 향하자 메시지가 반짝거렸다.
‘이쪽이다.’
그 반짝거림을 쫓아서 걸음을 옮기는 도중.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퀘스트 이름이 [첫 산책]이라.
‘대상은 처음 밖으로 나서는 건가?’
무려 신화급 퀘스트의 임무 목표였다. 그 난이도나 보상을 떠나서 대상이 존재만으로도 훗날 아르카나 대륙에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일 텐데…….
‘엄청 대단한 가문 꼬맹인가 본데.’
그렇게 생각하던 내가 묘한 위화감을 느낀 건 머지않아서였다.
잠깐만…….
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냐?
슥.
뒤집어썼던 망토를 슬며시 들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리 봐도 익숙한 방향이었다. 그렇다. 지금 나의 발걸음은 클라우디령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젠 몸뚱이까지 말을 안 듣는 거야, 뭐야?’
흠칫했다만, 착각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나는 점멸하는 퀘스트 목표를 나침반으로 삼아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그저 그 길이 클라우디령으로 향하는 길과 똑같았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까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다.
‘……잠깐.’
처음으로 산책에 나서는 대상.
그 대상은 훗날 아르카나 대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인물.
그리고 그러한 대상이 있는 곳이 바로.
클라우디령과 같은 방향……?
나, 이호열.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러나 경악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슥.
다시금 깊게 눌러쓰는 망토.
{자연} 능력으로 숲에 기척을 숨긴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시야에 포착되었으니까.
한데 그들의 복장이 익숙했다.
황금으로 새긴 망치 문양.
저건 4가문 중 막시마 가문의 상징이었다.
막시마의 자랑, 황금 정예병들이 속삭인다.
“……빌어먹을 정말 해야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어. 이게 우리가 사는 길이다.”
“가주께선 하필이면 그런 분과 엮이셔서는……!!”
가주, 그런 분, 막시마 가문.
나의 머릿속에서 정보들이 조합되어 가던 순간이었다.
클라우디령의 숲 사이로 ‘대상’의 기척이 느껴졌다.
“……왔다.”
그러자 막시마의 사병들이 숨을 죽였다.
스릉, 그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대상을 호위하라. (진행 중)
퀘스트 목표가 강렬하게 점멸했다.
나, 이호열.
짧고 간단한 소감을 내뱉었다.
……그랑펠, 너 어릴 땐 귀엽게 생겼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