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41
◈ 541화. 변함없는 존재들이여 (1)
쉴 새 없이 점멸하는 시야.
[제2관문, ‘악몽의 전초성’에 진입하셨습니다.] [전초성의 규율이 몸을 옥죄어온다.]…….킨베르가 마른침을 삼켰다.
‘젠장,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킨베르는 호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 클래스조차 밝혀지지 않은 만큼. 당신에겐 비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늘.
‘모든 게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진짜 미쳤군.’
그의 앞에서 순한 양이 된 흉신악살들이었다.
[지옥 수호자]스킬, [은신]을 마스터한 킨베르에겐 보상이 뒤따랐다.
새로운 고유 스킬, [강약약강].
그 이름부터 비열함이 가득한 스킬의 효과는 간단했다.
[강약약강(Master) : 강자와 약자를 한눈에 판단할 수 있다. 그 상대가 강자일 때 모든 스탯이 소폭 하락하지만, 그 상대가 약자일 때 모슨 스탯이 소폭 증가한다.]힐끗.
킨베르는 고개를 돌려 지나쳐온 지옥 수호자를 바라봤다.
[강약약강]을 다시금 발동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무반응. 강자도 약자도 아니다.’
그를 넘어서 ‘대상’조차 아니다.
몬스터가 아닌 쓰러트릴 수 없는.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
그래서일까.
놈들의 시선이 몸을 훑을 땐.
서늘한 메시지까지 떠올랐었다.
[※경고 : 그대는 죽은 자가 아니다.]하지만 극도의 불안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말했듯 호열이 앞으로 나서자.
지옥 수호자들이 고분고분하게 길을 연 것이었다.
‘소문, 그 이상이시다.’
당황할 법도 하거늘.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호열의 행동.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킨베르가 눈을 힐끗거렸다.
‘……진짜 뭔가 알고 계시는 건가?’
이 지옥에 관해서도.
“오호. 문 뒤에 풍경을 숨기고 있었군.”
낭만 탐험가, 로렌츠크조차도 제2관문부터는 초행길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리 로렌츠크라고 해도 죽은 자가 아니었으니까. 지옥 수호자의 시선을 피해 관문을 지나칠 방법은 없었던 거겠지.
그러나.
‘아무리 대단하셔도…….’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대격변 이전.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했던 시절.
비유하자면 과거의 수준은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벌어지는 이벤트의 규모는 물론이요, 플레이어들의 레벨, 신규 업데이트로 새로 출현하는 몬스터, 새롭게 등장하는 필드의 수준에도 예외는 없었다.
‘아무리 힘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해도 말이 안 돼.’
……그렇지만.
언제라고 말이 되는 활약을 펼치셨나?
킨베르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은 더 큰 근심을 불러올 뿐.
그래, 클라우디 가문에 얽힌 사연처럼.
킨베르가 자신의 목적만을 상기했다.
‘됐고. 그냥 너만 잘하면 된다, 킨베르. 이 병신아.’
스스로 다그치던 순간이었다.
작은 의문이라도 간과하지 않겠다는 듯.
호열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응,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니…….
설마, 지옥에 관한 감상이신가?
흠칫하기도 잠깐.
이어지는 말들.
“단지 잠시 망각했을 뿐.”
킨베르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역시, 지옥에 관해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거였나.
일찍이 경험해 보신 건가?
마찬가지로 답하듯 들려오는 말.
“허나, 결국 돌아왔으니 되었다.”
그 말인즉슨.
지옥에서 현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지옥으로.
당신께선 지옥을 수차례 거슬러 오르셨다는 뜻.
그때였다.
불현 듯.
킨베르의 머릿속에 낭설 하나가 떠올랐다.
‘그, 그럼 호열교에 퍼졌던 부활설이 진짜였다고?!’
*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나, 요새 서운하려고 그런다?’
나는 너한테 숨기는 게 없는데 말이야, 그랑펠.
어떻게 된 게 너는 과거부터.
이젠 아이템에 얽힌 비밀까지.
솔직한 게 없냐?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하면서 꼭 나한테만.’
나, 이호열의 사뭇 진지한 추궁.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입방정이 변명하듯 말을 끝마친다.
“단지 잠시 망각했을 뿐.”
망각이라.
‘흠, 네 머리로 까먹는다는 게 안 믿기긴 하는데…….’
뭐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믿어야지 별수 있으랴.
‘그래서 뭔데? 육망성 브로치에 얽힌 진실은?’
답지 않게 인정까지 했으니.
이젠 술술 말해주겠다 생각했거늘.
과연, 우리 그랑펠 님 호락호락하지 않으시구만?
뻔뻔하게 읊조리는 그랑펠식 화법.
“허나, 결국 돌아왔으니 되었다.”
그랑펠식 화법 전공자로서 해석하자면.
‘다섯 개를 모았다고 다가 아니라니까?’
어쨌거나, 그토록 찾던 육망성 브로치를 한 조각만 빼고 수집했으니. 그 정도는 잊어버렸어도 너그럽게 넘어가달라는 뜻이 분명하렷다.
‘그래 뭐, 괜찮아.’
내가 또 눈치 하나는 빠르잖아?
네가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야, 정보창을 보고 짐작하면 된다.
나는 육망성 브로치의 정보를 확인했다.
일단, 하나씩 살펴보자.
[육망성 브로치 3/6] [등급 : 유니크] [제한 : Lv.666] [효과 : 모든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 상승.] [설명 : 여섯이 모여 하나가 되는 브로치 중 일부이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에 그 효과가 상당히 손실되었다.]확실히 레벨 제한이 높아질수록.
효과도 상당해진다.
나는 진지하게 효과를 평가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랑 효과가 겹치긴 해도…….’
추가로 세트 효과가 남아 있었다.
[세트 아이템 효과가 적용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세트 효과 : 5/6] [1. 모든 기본 스탯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2.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모든 피해량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3. 다수의 적과 적대 시, 받는 피해량이 10퍼센트 감소합니다.]…….세 번째 조각과 대응하는 세 번째 세트 효과.
‘각자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여섯으로 하나가 되는.
한 개의 아이템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건 말도 안 되는 부가 효과였다.
‘이 정도면 에픽 등급에서도 흔치 않은 효과야.’
에픽 등급 세트 아이템인 [여명을 기다리는 자] 세트를 보유한 내가 하는 말이니까 괜한 호들갑이 아니라는 뜻이다.
[육망성 브로치 4/6] [등급 : 유니크] [제한 : Lv.777] [효과 : 최대 생명력이 대폭 상승한다.] [설명 : 여섯이 모여 하나가 되는 브로치 중 일부이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에 그 효과가 상당히 손실되었다.]이번엔 최대 생명력이 대폭 상승인가?
곧바로 네 번째 추가 세트 효과까지 살펴본 지금.
나는 흠칫하는 걸 넘어서 헉하고 말았다.
[4. 전투 중 최대 생명력이 70퍼센트, 50퍼센트, 30퍼센트, 10퍼센트, 1퍼센트에 이르렀을 때 ‘각성’ 효과를 획득합니다.]……실화냐?
각성 같은 특이 효과가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아무리 세트 효과라고 해도.
고작 유니크 아이템이 이런 효과를 갖고 있다고?
‘원혼들에게 고맙다고 절을 해도 부족할 판인데.’
내가 속에서 차오르는 기쁨을 극도로 자제하던 순간이었다.
어째서인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건 과거의 이호열이었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감각이었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후.
나는 그랑펠에게 휘둘려 다른 플레이어들은 경험하지 못할 사건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참여는커녕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보스 레이드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는 거겠지. 덕분이었다.
‘……비슷해.’
세 번째 브로치까지는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네 번째 브로치의 세트 효과.
그건 조금 다르게 설명한 것에 불과했다.
생명력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페이즈에 돌입하는.
[보스 몬스터]의 특징을.‘……정체가 뭐지, 이 브로치?’
다섯 번째 브로치의 효과를 확인하면 조금 더 확신이 생길 것 같았다.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고, 마지막 다섯 번째 브로치 정보창에 시선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
시야가 점멸했다.
‘하긴 내가 왜 이렇게 잠잠하나 했다.’
지옥에 입성.
지금껏 마주한 건 원혼들밖에 없었다. 어떤 죄를 지어야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는지까지는 알지 못하는 나였다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발전이 없는 존재들이여.”
그래.
악마 사냥꾼에게 사냥당한 악마.
놈들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제2관문, 악몽의 전초성.
작은 성채.
곳곳에서 악마의 기척이 난립한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악마의 정체.
‘……응?’
뭐냐 임프잖아, 저거?
솔직하게.
김이 빠질 정도로 싱겁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게 거악도 모자라 상위 마왕까지 사냥했던 나랑 그랑펠이잖아? 이제 와서 임프 같은 이름도 가지지 못한 하급 악마를 사냥하기엔 솔직히…….
‘폼을 잡기도 양심에 찔린다는 거지.’
그러나 우리의 그랑펠 님이 누구시던가?
십좌 보기를 임프처럼, 임프 보기를 십좌처럼 대하시는, 악마를 사냥하는 데엔 매사에 진심이신 타고난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
“영원토록 발전이 없는 그대들을 배려하겠다.”
하여튼 멋진 척은 진짜…….
펄럭.
탄식과 무관하게 여명의 재킷이 마력에 흩날린다.
“나 역시, 한결같이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
블러드 엘프.
어떤 적 앞에서도 고고한 태도를 잃지 않았던 엘시도어. 하지만 이 순간, 그의 세포는 생전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위험하다.’
저건 고작 임프가 아니었다.
그 외형은 임프일지라도.
뿜어내는 기세가 임프가 아니었다.
“임프잖아? 저런 건 제게 맡기시고…….”
“다물어라. 쓰레기.”
“뭣?”
킨베르는 이질적인 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조차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오랜 세월 속에서 극도로 벼려진 악의를 품고 있다.’
제1관문 지옥촌의 보잘것없는 원혼들과 같았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임프들은 자신들의 악의를 더욱더 불태운 것이었다.
엘시도어의 시선이 호열을 향한다.
‘그걸 당신께선 일찍이 간파하신 거군요.’
한결같이 전력을 다하겠노라.
호열은 이미 마법을 발현한 상태였다.
파지직.
대기 중에 발현된 전류가 빛을 발한다. 사방에서 접근하는 임프들을 향해 일제히 뻗어 간다. 하지만 그걸로 전투가 끝났다면 긴장할 필요도 없었겠지.
“캬하하하핫!”
벼락보다도 빠른 속도.
지옥의 임프들은 차원이 달랐다. 주변에 퍼진 공기에 간섭했기에.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라이트닝 볼트를 기어코 회피하며 이쪽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서걱.
엘시도어는 검을 휘둘렀고, 킨베르는 [은신]을 발동, 로렌츠크와 함께 어그로를 회피했다. 엘시도어가 검 끝에 걸렸던 감각을 되새김질했다.
‘공격이 얕았다.’
정확하게는 놈들이 나의 반격을 피한 것이다.
더더욱 문제가 되는 건.
저 임프들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이었다.
엘시도어는 주변의 공기를 파악했다.
‘그래서겠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어.’
호열과 엘시도어.
등장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를.
기세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전력이 한데 뭉쳤음에도.
임프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주제를 모르는 것 또한 여전하구나.”
당신께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군.’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자신의 부족함이 절실히 느껴졌다.
엘시도어는 또 한 번 자신의 젊음을 원망했다.
‘……내가 아닌 아젠트레스였다면.’
당신을 곁에서 보좌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을 보좌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러나 엘시도어는 이를 악물었다.
……빠득.
‘머리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만큼 몸으로 굴러야 한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길을 열어야 한다.
다짐한 엘프의 시야가 활로를 포착했다.
‘길의 끝에 세 번째 관문이 있겠지.’
전초성의 길은 오직 하나였으니까.
판단을 내리자 머리가 차분해졌다.
만약, 임프가 당신의 발을 붙잡는다면.
내가 대신 발목을 붙잡히면 될 일이다.
“미, 미친.”
마스터에 다다른 [은신]의 효과.
임프의 공격을 간신히 회피한 킨베르.
엘시도어가 가쁘게 숨을 고르는 그를 바라봤다.
“허억.”
저런 쓰레기에게 당신을 맡기는 건 불안한 일이지만, 말했듯 쓰레기는 독기를 품는 법이다. 보다 강적일수록 쓰레기의 독기를 귀찮게 여기게 될 터.
‘내 몫까지 해내라, 킨베르.’
엘시도어가 결단을 내렸다.
타닥.
호열의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곳은 제가 맡겠습니다.”
결연하게 선언한 순간이었다.
“……히이이이익?!”
어째서인가.
자신의 살기 앞에서도.
호열의 마법 앞에서도.
감정 변화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던 지옥의 임프들.
녀석들이 공포에 질려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흠칫하는 엘시도어.
이내, 그의 커다란 귀가 움찔거렸다.
별안간 들려오는 쇳소리.
철컥.
“오랜만이군.”
“……?”
“악크샨, 나의 전우들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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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악마 사냥꾼과 조우하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