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10
10화 1인칭 회귀자 시점
첫 학기의 첫 주가 지났다.
한 주 동안에 전공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딱히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 전공은 영문학.
회귀 전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유학원에 돈을 내고 서류 준비나 유학 준비를 맡기지 않았다.
그럴 돈도 없었고, 그냥 영어로 번역하고 서류 준비하는 데만 백만 원이 넘게 들어갈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항목을 덧붙여 어떻게든 가난한 유학생 등골을 빼먹으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조금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찾아보고 입학 지원서를 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유학 커뮤니티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후기를 남겨둔 게 있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무사히 유학을 올 수 있었다.
솔직히 몇백만 원 내고 간편하게 하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싸게 했다.
그래서 겪은 시행착오 중 하나가 바로 내 전공이다.
처음에 전공을 선택할 때, 딱히 뭘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대충 아무 전공이나 선택하고 코어 수업을 들으면서 전공은 나중에 선택할 생각이었다.
이왕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거니까 영어라도 확실히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공에 English가 있어서 그걸 선택했다.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알고 보니 English 전공은 그냥 영어가 아니라 ‘문학과’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인 영어를 더 심도 깊게 배우는 건 Linguistics(언어학)를 해야 했었다.
뭐 근데 어차피 학교 1년 다니고 동식이 꼬임에 넘어가서 사업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전공은 나에게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졸업장도 딱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른들 말씀에 대학교 졸업장은 따놓으면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을 거라 했기에 졸업까지는 꾹 참고서 했다.
그래도 사업 준비도 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영문학 학사를 딸 수 있었고, 사업도 척척 잘 진행돼 졸업 즉시 사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도 대학교에서 무언가를 전공해서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라 회귀 전에 하던 K-푸드 사업을 더 확장하고 더 규모를 키워서 세계 제일의 K-푸드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게 목표기 때문에 이미 졸업해서 내용을 전부 알고 있는 영문학을 하면 개인 시간이 훨씬 많아질 거니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이다.
사실 아예 대학교를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은가 생각하겠지만, 이건 신분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비자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에 그때까지는 일단 학생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신분을 해결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MAVNI(매브니) 프로그램이다.
Military Accessions Vital to the National Interest의 약자인 MAVNI는 쉽게 말해 외국인이 미국 군대에 현역 혹은 예비군으로 복무하게 되면 시민권을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바마 정권 때 언어별 예비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에 대한 제한이 풀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프로그램이다.
지금이 2014년이니까 아마도 내년에 지원한다면 안정적으로 시민권을 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군대에 한동안 붙들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이미 군대를 다녀온 나로서는 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
그뿐만 아니라 솔직히 시민권을 따면 좋겠지만, 대한의 건아로 군대도 다녀왔는데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 시민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또 K-푸드를 세계에 알리는 기업을 세우고 싶은데 그 창업자가 미국인이라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건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일할 수 있는 영주권을 받는 것이다.
영주권은 사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비자 H1B를 받아 일하면서 회사 혹은 소속된 곳에서 후원을 해줘서 영주권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이게 사실은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고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그건 사실상 현재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한 가지 재밌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국 시민권자와의 결혼이다.
그런데 신분 해결을 위해 일부러 결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건 그냥 친구들끼리 신분 해결하는 게 힘들다는 푸념을 할 때나 나오는 농담 같은 거다.
미국 시민권자와 연애하고 결혼 약속했다면야 상관없지만, 지난 생에는 시민권자이면서 여자인 사람과는 친해져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아예 여자와 말도 잘 섞지 못했던 찌질이가 무슨 결혼인가.
뭐 어쨌든 신분 문제 우선순위는 대학 졸업 후 H1B 취업비자를 받고 영주권을 받는 절차가 첫 번째고.
정 안 되면 MAVNI 프로그램으로 시민권을 받는 건데, 이건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
“나랑 결혼할래?”
이젠 마음에 동요조차 일지 않는다.
새삼 놀라운 것도 없다.
“됐고. 이거나 먹어.”
나는 시아에게 싸 온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나 집에 돈 많은데···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됐거든.”
시아와 같은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무서울 정도로 친해졌다.
원나잇을 한 사이라서 이렇게까지 친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게 친해졌다.
“음~ 이거 진짜 맛있다. 너 불고기는 진짜 팔아도 될 거 같아.”
“불고기만? 실망인데.”
“아.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불고기가 진짜 대박이라고.”
평소에는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며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는 시아가 내 불고기만 먹으면 눈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워낙 평소에 힘도 없고 의욕도 없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신경이 쓰여 말도 많이 걸고, 일부러 그녀를 위해 한식을 싸 와 같이 점심도 먹곤 했더니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아직 후덥지근한 텍사스 날씨 탓에 아름다운 야외 캠퍼스를 구경하며 점심을 먹기에는 오늘 섭씨 37도를 찍었다.
사실 텍사스는 37도면 좀 덥네? 정도다.
한국도 진짜 덥지만, 그보다 훨씬 악랄한 게 텍사스 여름이니까.
건조한 것도 아니고 습하면서 햇볕은 진짜 엄청나다.
하지만 이런 텍사스에서 딱히 덥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가는 건물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에어컨을 24시간 풀로 가동하기 때문에.
주로 수업을 들으러 건물과 건물을 오다니기 때문에, 거기다 미국인들은 걷는 문화가 아닌 차로 이동하는 문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특히 텍사스에 관한 아주 유명한 말 중에 ‘Everything is bigger in Texas’란 말이 있다.
텍사스주는 대한민국 국토의 7배에 달하는 크기를 소유한 거대한 주기 때문에 텍사스주 끝에서 끝으로 여행 가면 하루 안에 못 갈 정도.
그래서 모든 게 넓고 모든 게 크다.
그러니 여기 댈러스에서 걸어 다니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사양할게.”
“빈방도 있어.”
“아니. 내일 과제 있잖아. 너 했어?”
“과제···? 그런 게··· 있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참견할 건 아니지만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자면 왜 사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다고 하는데, 그 여파인 건지 모든 일에 열정이 없이 연체동물처럼 다니기 일쑤였다.
예쁘면 뭐 하나.
인생을 살아갈 의지가 없는데.
그저 자기 좋아하는 거만 열심히 할 뿐인 철없는 녀석이다.
“그나저나 시아야. 내가 오빠야. 너 언제까지···.”
“오빠는 무슨. 나 혼혈이야. 한국말 할 줄 안다고 다 한국인이 아니란다? 나 엄연히 미국인이라고.”
“그래. 좋겠다. 차암~ 좋겠어.”
“나한테서 오빠 소리 평생 못 들을 거야~”
짧디짧은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려는 무렵.
시아는 다시금 초롱초롱한 눈빛이 죽은 동태눈깔처럼 변했다.
어깨는 축 처지고 세상 살기 싫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 내일 보자.”
“내일은 주말이네요. 주말도 학교 오게?”
“아.”
“아! 나는 와야 하네. 젠장.”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 주도 한인 학생회 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에는 친목 도모도 할 겸 볼링 치러 간다고 하던데.
“왜?”
“아~ 한인 학생회 활동 있거든.”
“···.”
“왜?”
시아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우물쭈물 망설이는 듯했다.
“뭔데?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나도.”
“뭐?”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지난번에 한인 학생회 들어오라고 꼬드긴 적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사람과 어울리면 이 지독한 무기력증이 조금은 극복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질겁하며 손사래 쳤었지.
“나도··· 갈래.”
“어딜?”
“학생회.”
“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분명 지난번에 말할 때는 싫다고 악을 썼었는데.
“한인 학생회? 그 학생회를 말하는 거야? 먹는 회나 다른 걸로 헷갈린 건 아니고?”
“아이씨. 진짜. 재미없거든. 나도 가고 싶다고··· 학생회.”
“너 거기 가입도 안 했잖아.”
“안 하면··· 못 가?”
“가입··· 하면 되긴 한데···.”
그녀와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로 눈을 맞추고는 가만히 있었다.
5분 뒤에 수업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을 정도로.
“가입··· 할래.”
*
망할 시아 때문에 수업에 늦어버렸다.
안 그래도 이 교수는 깐깐하기로 유명해서 조금만 지각해도 점수로 바로바로 까버리는 악명 높은 사람인데.
수업하는 동안에도 집중이 하나도 안 됐다.
과제로 내놓은 한 학기 분량의 영문학책은 이미 옛날에 다 읽고 내용도 훤히 꿰고 있는 터라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수업에 집중을 못 해서 그런지 교수가 몇 번이고 나를 보며 헛기침을 해댔다.
그런데 나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그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시아가 한인 학생회에 들어간다고 한다.
파티에서도 무료한 표정으로 서성이던 녀석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코피가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므흣한 원나잇을 하고도 무덤덤한 시아였다.
그런데··· 우리 시아가 달라졌어요.
“현식. 자네는 first-person narrator의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교수님이 참다못해 드디어 폭발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질문한 걸 멋지게 대답한다면 내가 이래 보여도 교수님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걸 피력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미 다 알고 있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교수님의 질문에 답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 first-person narrator의 장점은 서술자의 관점을 더 면밀히 살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서술자의 편향된 시선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unreliable narrator일 수도 있다는 점이 단점 아닌 단점이라 생각합니다.”
“호오··· unreliable narrator가 왜 단점 아닌 단점이라 생각하는 거지?”
“왜냐하면 Unreliable narrator가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라고도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Mary Shelley의 소설 Frankenstein은 unreliable narrator와 액자식 구성으로 구성되어서, 진짜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더욱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요.”
분명 우물쭈물하거나 더듬거리며 제대로 질문에 답하지 못 하리라 생각했던 건지 교수님의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오~ 라며 탄성을 지르거나 수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머리 외국인이 유창한 영어로 수업 내용을 정확하게 짚으니 신기하겠지.
교수님은 어느새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식이 벌써 다음 슬라이드 내용을 스포일러 했네요? 자, 그럼 다음 슬라이드에 unreliable narrator에 대한 설명이···.”
내 대답을 토대로 다시 수업을 진행하시는 교수님.
책 내용뿐만 아니라 들었던 수업 내용도 다 기억하고 있다.
물론 10년이나 지난 일이기에 이걸 어찌 기억하냐고 하겠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다.
유학을 처음 와서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순수 한인 청년이 미국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미국 학생들은 30페이지 정도 되는 내용을 읽어오라고 과제를 내주면 1시간 내로 읽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 3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책을 읽어오라는 과제는 매일 밤 고통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그 뜻을 풀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분량을 몇 시간이고 붙들면서 거의 내용을 외우다시피 했으니까.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냥 통째로 외워버리면 되니까.
“자, 그럼 오늘 수업을 마치도록 하죠. 다음 시간까지 블랙보드 들어가서 퀴즈 푸는 거 잊지 말고.”
오늘 있은 모든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내일 시아와 함께 한인 학생회 활동을 할 걸 생각하니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시아 볼링 칠 줄이나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