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50
150. 목숨의 무게
처음 진행위원과 유력 후기지수들에게 목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장백서는 그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었다.
그것은 바로 이 목록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자리의 사람들 이외에게 퍼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자칫 목록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면 이 목록에 오른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백서의 말에 그 자리의 모두가 동의했을 터였는데……
‘도대체 어떤 놈한테서 말이 세어 나간 거야!?’
물론 장백서도 목록에 대한 이야기를 끝까지 묻어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좋든 싫든 결국 언젠가는 들통날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로 이야기가 퍼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에게서 말이 세어나간 것입니까?”
굳은 얼굴로 묻는 장백서에게 남궁표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 물어봤는데 다들 아니라고 하셔서…….”
‘그럼 아니라고 하겠지,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다 내가 했소’ 하고 나오겠냐!?’
답답하기 그지없는 남궁표의 대답에 장백서는 이들이 아무리 영특하고 노련한 척을 해도 결국 아직 스물 남짓의 애송이에 불구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물론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짜증을 삭히는 중 심각한 얼굴의 제갈서후가 현재 상황에 대해 물었다.
“지금 중요한 건…… 어쩌다 이렇게 대놓고 싸우게 되었냐는 것이겠죠,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남궁 공자?”
맞는 말이었다.
목록에 대한 이야기가 퍼진 건 이제 와서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목록의 이야기가 퍼졌다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리고 이렇게 대대적으로 적대하게 된 것에는 다른 무슨 이유가 있을 터였다.
핵심을 찌르는 제갈서후의 질문에 남궁표는 난감한 듯 눈을 돌렸고 우물거리며 말을 흐렸다.
“그, 그것이…….”
“남궁표 소협, 소협께서 이야기를 해 주셔야 저희도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장백서의 종용에 말을 흐리던 남궁표도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찌 된 일인가 하면…….”
그렇게 시작된 남궁표의 설명은 이러했다.
장백서, 제갈서후, 진소여, 그리고 금향오, 총 네 사람이 구출조가 되어 근거지를 떠난 사이, 남겨진 남궁표와 후기지수들은 각자 자리를 지키며 번을 서고 있었다.
그렇게 번을 서고 난 뒤 남는 시간.
그냥 쉬어도 되었지만 남궁표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낭비라 여겨 무엇이라도 좋으니 상황을 호전시킬 방법이 없을까 고심했다.
그리고 그 끝에 떠올린 것이 이 근거지 인근에 함정과 진지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탁 트인 곳에 있는 탓에 기습의 위험이 적었지만 그런 만큼 엄폐물이라고는 드문드문 있는 커다란 바위 정도뿐이었다.
실력이 비등한 무리와 싸울 때라면 모를까 고수의 수에서 밀리는 상황에서는 역시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표는 행동에 나섰고 과연, 자연스레 같은 시간 번을 서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후기지수들과 힘을 합쳐 진지와 함정의 설치에 들어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힘을 비축하고 주변을 경계하던 진행위원들도 그의 생각을 듣고 괜찮은 생각이라 칭찬하고 지지해 주었기에 진지와 함정을 준비하는 남궁표와 후기지수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만사 기세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무공을 익혀 아무리 힘과 체력이 좋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힘과 체력의 이야기.
진지공사나 함정 같은 일은 단순히 힘과 체력만 있다고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니었고 좋든 싫든 품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 진지와 함정의 완성도에 따라 목숨이 좌우될 수도 있었기에 그들은 심혈을 기울였고 그럴수록 진행 상황은 느려져만 갈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궁표는 다른 후기지수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그 순간에도 남궁표는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궁세가의 직계로서 평소 그가 다른 후기지수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들이 먼저 눈치를 보며 설설기며 도와주겠다 먼저 나서는 것이 남궁표의 일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좀 이상했다.
“그런 것 해 보았자 초절정 고수를 상대로 무슨 의미가 있겠소?”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진지와 함정의 제작을 도와달라 한 남궁표에게 처음으로 돌아온 답변이 이거였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빈정거림’에 남궁표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이렇게 죽을 날을 기다리는 죄수 마냥 풀 죽어 있기 보다는 그래도 무언가를 함께 하는게 더 가치 있지 않겠소!?”
‘빈정거림’의 첫 경험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남궁표는 웃음을 잃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시점에서 이미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는 목록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간 이후였고 버젓이 목록에 이름을 올려 적들에게 죽을 일이 없는 남궁표가 죽을 날이니 죄수니 지껄이니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로서는 영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남궁표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툭 찌르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의 이름은 석유혼, 석월문이라는 작은 무가의 장자였다.
그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띄운 채로 시답지 않은 농을 섞어가며 자신들을 설득하려는, 혹은 잘난듯이 타이르려는 남궁표를 향해 폭탄발언을 날렸다.
“죽을 일도 없는 놈이 이제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우리들을 부려 자신의 승인욕구나 채우려 하니 이보다 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한 마디에 남궁표도 일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목록’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퍼져 나갔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황급히 입을 열어 사태를 수습, 혹은 무마하려 한 그였지만……
한 번 기울어지기 시작한 꽃병은 쓰러져 진창이 나기 전에는 저절로 멈추지 않는 법이었고 그것을 잡아 멈춰야 할 남궁표의 손은 너무 작고 팔은 짧아 꽃병이 놓인 선반에 닻지조차 않았다.
석유혼의 그 한 마디가 막혀 있는 뚝을 부수기라도 한 듯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갖은 비난이 남궁표에게 쏟아졌다.
평소라면 칠대세가의 수좌인 남궁세가의 직계에게, 고작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반은 삼도천에 발을 담근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눈에 그런 것이 뵐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처음에는 남궁표와 중소문파 후기지수들의 싸움으로, 그러다가 점점 목록에 오른 명문의 후기지수들과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이제껏 남북무림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이던 그들이었으나 막상 이렇게 위와 아래의 싸움으로 대립의 양상이 바뀌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같은 ‘계급’에 속한 이들끼리 힘을 합쳤고 그럴수록 싸움의 양상은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라는 겁니까?”
“……네…….”
기가 팍 죽은 남궁표가 면목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말했고 장백서는 이 골때리는 상황에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고비 넘기니 또 한 고비라더니……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군…….’
속으로 한숨을 내쉰 장백서는 남궁표에게 물었다.
“저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그게…….”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목소리를 낼 때는 아닌 척 해도 그 안에는 실리적인 목적과 자신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이 있기 마련이었다.
“아무래도……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은 이번 습격이 저희 명가의 후기지수들, 그러니까 목록의 사람들을 노리고 행해졌다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죠…… 하지만 저들은 그걸 진심으로 믿고 있고 자신들은 억울하게 말려든 피해자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뜨끔!
“그, 그렇습니까?”
방금 막, 그들의 그 의심이 한 점 오해도 없는 사실임을 확인하고 온 장백서의 입장에서는 묘하게 뒤통수가 시큰거릴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빠르군.’
“그렇기에, 자신들은 명가의 은원관계에 말려든 것뿐이니 그 도의적인 책임으로 저희들, 즉 목록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지키고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또 노골적인 주장이었다.
자고로 도당을 이룬 자들은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번 사건에서 온전히 말려든 피해자이고 그러니 이 일의 당사자가 되는 명문의 후기지수들은 억울하게 말려든 자신들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주장의 기저에는 목록에 오른 이들은 죽이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는 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약자가 강자에게 우리를 지키라고 소리치는 모습은 그가 아는 무림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까지는 아니었지만 쉽게 나올 수 있는 주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이미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였다.
구출조는 물론 근거지와 좀 거리가 있는 곳의 번은 지금도 목록의 인물들이 도맡아 서고 있었다.
이미 그들의 바람대로 목록의 사람들은 나름의 책무를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완전 흔쾌히 책임을 다한다기 보다는 장백서가 은연중에 만든 분위기에 말려든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렇죠, 그렇기에 제가 그렇게 말을 했건만…… 글쎄 그놈들이 하다하다 이제는 진행위원들도 자기들만 지켜야 하고 아예 목록의 인물들은 쫓아내야 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그건…… 좀, 아니 많이 심하군요”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목록에 오른 후기지수들과 중소문파의 후기지수들 사이의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져 갔다.
장백서와 일행이 돌아왔을 당시에는 좀 거리를 두고 소리치며 싸우고 있던 것이 점점 그 거리가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서로의 몸에 손을 대는 이들도 나오고 있었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쓸데없는 일만 하지 않았어도…….”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남궁표는 손을 떨면서 침통한 얼굴로 그리 말했고 이내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보겠다 말하고는 싸움의 근원지로 향했다.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장 대협, 그리고 위향이와 원 소저는 쉬고 계세요, 제가 어떻게든 할 터이니.”
그렇게 말하고 제갈서후 역시 남궁표의 뒤를 따랐다.
‘후우…… 일이 어쩌다 이 모양인 된 것인가?’
환장할 것만 같은 사태에 장백서가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저희 ……쫓겨나는 건가요?”
원지여의 부축을 받고 있던 황보위향이 불안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
목록에 올라 있는 이들은 죽지 않는다.
분명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죽지만 않을 뿐이었다.
백천회에 고용된 이들은 목록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잡으면 죽이지만 않을 뿐 갖은 고통을 줘 마음속에 사파에 대한 증오를 심어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한 폭력에는 선도 수위도 한도도 없었고 황보위향이야 말로 그 노골적인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물론 죽는 것에 비하면 이런 육체와 마음의 상처나 흉터는 별게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그런 모진 고초를 당한 황보위향에게 이런 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괜찮아, 이런 때일수록 다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 거잖아? 다들 불안하고 무서우니까 저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거란다, 쫓겨나거나 그럴 일은 절대 없단다.”
“……네.”
밝게 웃어 보이며 그리 말하는 장백서의 모습에 황보위향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렇게 그녀를 안심시킨 장백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천천히 제갈서후와 남궁표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장백서는 이때 천천히 걸어갈 게 아니라 뛰어서, 아니 전력으로 경공을 전개해서 자리로 갔어야 했다.
장백서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두 세력을 중재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제갈서후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분열하는 것이 저들이 원하는 바라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흥!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실제로 분열하는 편이 우리들의 생존율이 올라간다면…… 그냥 갈라지면 되는 것 아니냐!? 그도 아니면…… 설마 놈들에게 당할 고통이 무서워서 우리를 고기방패 삼을 셈이냐?”
노골적으로 목록의 사람들을 비꼬는 석유혼의 말에 제갈서후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고 이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진정하십쇼,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목록의 인물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건 아직 확실한 정보가 아닙니다, 하물며 난폭한 사파의 흉수들이 힘조절이나 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살수를 쓸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미래의 정도 무림을 생각하시고 생명의 무게를 헤아려 주시지요.”
“무게? 하,하하하하! 지금 네 년은 우리와 네놈들의 목숨의 무게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