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8
198. 귀의[鬼醫]
소림의 중심에서 벗어난 외곽.
깔끔하게 정돈된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암자의 주인은 마당의 평상에 옆으로 드러누워 서책 하나를 설렁설렁 읽고 있었다.
다만 그 암자 주인의 행색이 꽤나 특이했는데,
중원의 복식에 여러 이민족들의 장신구를 걸치고, 더해서 세외 각국의 옷가지를 중구난방으로 입은 데다가 결정적으로 얼굴을 새하얀 면사를 둘둘 말아 가리고 눈만 내놓은 것이 실로 괴기하기 그지없었다.
사락사락
“…….”
암자의 주인은 속독법을 읽혔는지 꽤나 빠르게 서책을 넘기고 있었다.
하늘은 높고 햇빛은 따사로우며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피부를 간질이는 그런 그림으로 그린 듯한 좋은 날.
스륵
평상의 주인도 오늘이 유독 좋은 날인 걸 깨달았는지 서책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암자의 주인이 몸을 일으킨 것은 오늘이 유독 좋은 날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평소 들르는 이라고는 끼니를 챙겨주는 동자승밖에 없는 이 암자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저벅저벅저벅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딱히 자신의 방문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걸어왔고 이내 작은 암자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암자의 주인은 그런 사내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얼굴로 보건데 나이는 대략 약관 전후일 것이고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과 평균을 상회하는 건장한 키와 체격, 그리고 허리춤에 찬 검을 보건데 무림인, 그것도 느껴지는 분위기로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무림인이 분명했다.
툭
암자의 주인은 내려놓은 서책을 한 쪽으로 밀어내고 평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시간에 기별도 없이 날 찾아올 사람은 없을 터인데…… 너는 뭐하는 놈이냐?”
암자 주인의 물음에 청년은 천천히 무림인들의 인사, 포권을 취해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굳은 남자가 포권을 취하려던 손을 풀고 이내 천천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닌가?
“뭐, 뭐냐?”
청년의 돌발 행동에 꽤나 담대한 성정을 지닌 암자의 주인조차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호의 무명소졸 장백서가… 은인인 귀의를 뵙습니다……!”
끓어 넘치는 것을 간신히 참은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청년은, 아니 장백서는 그리 말했다.
***
장백서도 딱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적당히 귀의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또 적당한 말로 구슬려 친해진 후, 또 적당히 회유해서 유현문에 모실 작정이었다.
회귀 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와 친분을 다진 터라 그의 성격이나 그가 좋아하는 것,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십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귀의를 마주하게 된 순간.
장백서는 속에서부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괴로워하는 소현이를 구하기 위해 용하다는 의원들을 거금을 들여 모셨으나 그들 중 누구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모두가 고개를 젓는 와중에 단 한 명, 단 한 명의 의원만이 그들에게 이리 말해주었다.
‘괜찮다, 살릴 수 있다’ ……라고.
그 한 사람이 바로 귀의였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무능으로 인해 소현이를 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 해 주며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그 때의 은혜는 몇 십 년이 흘러도, 아니 죽어 회귀한 이 순간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네 얼굴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은인이란 건 도대체 뭔 소리냐?”
잠시 당황한 듯하던 귀의는 곧 평정을 되찾은 듯 그리 말했고 장백서도 막상 질러놓고 아차 싶었는지 잠시 머리를 숙인 채로 변명을 떠올렸다.
“커흠, 천하에 명성이 자자하신 귀의께서 이제껏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리셨겠습니까? 귀의 본인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실지 모르나 제 친인이 귀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셨으니 어찌 은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목숨을 구했다는 그 친인이 누구…….”
“그! 나저나 참 좋은 암자입니다!! 경치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시원하니 풍류를 즐기기에는 딱이로군요?”
“그래, 그렇긴 하지.”
노골적으로 질문을 끊는 장백서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귀의는 대충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곧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말했다.
“또 귀찮은 놈들이 온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군, 뭐, 됐다, 그래서 너는 무슨 볼일로 나를 찾았느냐? 그냥 감사인사나 하려고 들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 말한 귀의는 들으라는 듯 ‘이런 어린 놈도 찾아올 정도면 내가 소림에 있단 사실이 이미 구주팔해에 다 퍼진 모양이군, 얼른 하던 일 마치고 떠나야지 원…….’ 따위의 말을 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장백서는 뒷말은 못들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귀의께서 꼭 봐주십사 하는 환자들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용한 의원을 찾는 이유야 언제나 뻔한 법이기에 장백서의 말에도 귀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직 소림에 볼일이 남았으니 지금은 안 된다…… 라고 말하면 힘으로 억지로라도 끌고 갈 셈이냐?”
용한 의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행동이란 으레 공통분모가 있기 마련이었다, 당장 와주셔야 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애원하거나 무림인의 경우에는……
‘힘을 앞세워 끌고 가려 하겠지.’
물론 그런 일이 한 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귀의 역시 그냥 끌려가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절레절레
“아닙니다, 귀의께서 볼일을 마치실 때까지 저도 소림에서 기다리도록 하지요, 마침 소림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남아 있었으니 잘된 일이지요.”
너무 선선하게 그리 말하는 장백서의 태도에 귀의가 오히려 흥미를 느끼고는 물었다.
“아픈 이가 너에게 별로 중한이가 아닌 모양이군?”
“아닙니다, 그 아이는 저의 여동생이자 친구이자 자식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별로 급해 보이지 않는데?”
“티를 안내서 그렇지 속 마음은 그 누구보다 급합니다.”
“……그럼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는 거냐?”
그 말에 장백서는 굳은 믿음을 가진 눈으로 둘둘 감긴 천 너머 귀의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귀의께서 결코 병마에 괴로워하는 환자를 외면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곧고 굳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잘 볼 수 없는, 그 강철같이 단단한 믿음이 오롯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귀의가 고개를 돌렸다.
“쩝, 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하는군, 뭐 됐다, 소림에서의 일이 끝나면 내 찾아가도록 하지,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 거냐?”
“감사합니다 귀의! 장소는 사천 강정현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렇게 귀의와 장백서가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먼 곳에서부터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노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장백서가 들어섰던 마당의 문으로 불혹을 좀 넘겨 보이는 중년인이 분노를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콧김을 쒹쒹 뿜어내며 들어섰다.
‘무림인이군.’
노호성에 담겨있던 공력과 분노에 차 있을 지언정 흐트러짐이 없는 걸음걸이,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투박하지만 동시에 강령한 기세까지.
중년인은 최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그렇게 ‘나 화났어!’ 를 온 몸으로 표현하며 들어선 중년인은 곧장 귀의에게 다가섰다.
순간적으로 그를 막아서려 한 장백서였지만.
스윽
“…….”
귀의가 작게 손을 움직여 제지했고 그렇게 외야로 빠진 장백서는 일단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
“방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의!!”
그렇게 귀의의 정면에 선 중년인은 여전히 콧김을 뿜는 위압적인 모습으로 그리 말했다.
장백서와 비교해도 딱히 꿀리지 않을 정도로 큰 체격을 가진 중년인과 오척[150cm]반 정도 되는 귀의가 마주 서 있으니 그림이 딱 봐도 폭한이 선량한 민초를 겁박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과연 귀의.
“거 다 들었으면서 왜 또 물어?”
상대가 성이 났던 말던 일도 관심 없다는 듯 태연하게 그리 맞받아친 것이다.
“거 저리 어린 놈이 사천에서 먼 하남까지 나를 찾아온 것을 보니, 딱 보아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환자가 있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의원인 내가 그를 찾아가 진찰을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 왜 먼저 찾아온 우리 쪽이 아니라 저쪽부터 진료를 보냐 이 말이요!!”
아무래도 저 중년인 역시 귀의에게 진료를 부탁하기 위해 찾아온 인물인 듯하다.
‘소림의 산문을 넘어 여기까지 오는 게 허락된 인물인 만큼 흑도나 사파 쪽 인물이거나 영 대책 없는 인물은 아닐 터인데…….’
장백서가 그리 중년인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으려니, 중년인은 어떻게든 귀의를 설득하기 위해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중병입니다! 중병이 확실합니다! 귀의께서 보고 우리 부인 좀 도와주십쇼!!”
아무래도 아픈 사람은 저 중년인의 아내인 듯했다.
“아니 씨! 내가 몇 번을 말하냐!? 그건 병이 아니라 피로가 심해 신체 활동이 저하된 거라고!! 적당히 운동을 하고 일을 줄이고 수면 시간 늘리고 좋은 거 먹으면 천천히 알아서 나을 거라고!!!”
“아닙니다!! 겨우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처는 중병에 시달리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 건강하던 이가 그리 짧은 시간에 쇠약해지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한 쪽은 그냥 단순한 피로 때문이다, 다른 한 쪽은 중병이 확실하다로 실랑이를 계속하고 있으려니 또 다른 인물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장주님 진정하십쇼!!”
“시주, 이러시면 안됩니다!!”
복식을 통일하고 허리에 도를 맨 열댓 명 정도의 무리가 중년인을 장주라 부르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고 마찬가지로 서너 명 정도 되는 민머리 소림의 제자들 역시 그 장주라는 남자를 말리려고 했다.
다만, 장주라고 부르는 이들은 중년인의 수하인 듯하니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이해가 갔지만 소림의 제자들이 경내에서 저리 소란을 피우는 자를 저렇게 말로만 말리려는 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장백서는 슬그머니 장주라는 자를 말리고 있던 소림의 제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분이 누구길래 이리 조심하시는 겁니까?”
기척없이 등 뒤로 다가온 장백서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소림의 제자는 곧 평정을 되찾고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저분은 소림의 속가인 금룡장의 장주 되시는 분입니다, 금룡장이 소림의 속가 출신 중에서도 손꼽히게 많은 시주를 보내주시는 곳이라…… 크흠, 좀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아, 네…….”
구파일방의 수장인 소림도 돈 앞에서는 결국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묘한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돈 많이 보내면 저 정도 대접은 해줘야지 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장백서가 신상잡기에 대해 캐내는 사이 말리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언쟁은 더 격화되어만 갔고 그렇게 오고 가는 말 중.
남자가 말하는 그의 처가 겪고 있는 증상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꽤나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
그래서 급히 말을 걸려고 했는데……
“나를 물로 보는 것이냐!!?”
언쟁을 벌이는 중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한 금룡장의 장주가 귀의에게 주먹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인 상황에 장주의 부하들은 물론이고 소림의 제자들 역시 한 박자 움직임이 늦었다.
그렇게 장주의 주먹이 귀의의 얼굴에 틀어박히려는 순간.
“거 귀하신 분께 그리 대하시면 아니되죠.”
순간 주먹을 날리던 금룡장의 장주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닥에 처박혔고, 그의 주먹을 흘려 바닥에 처박은 장백서가 이어서 금나수를 펼쳐 그의 움직임을 제압했다.
“큭,억!?”
“일단 진정 좀 하시죠?”
장백서가 그리 말하는 순간……
채채채채챙!
“당장 놓지 못할까!?”
“감히 장주님께 손을 대다니!!”
열 댓 명가량의 장주의 호위무사들이 일제히 장백서에게 검을 겨누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행동력을 보고 피식 비웃음을 흘린 장백서가 제압당한 금룡장주를 보며 말했다.
“일단 저들 좀 물려주시죠?”
“크,윽!!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힘으로 제압을 풀려 낑낑대는 금룡장주를 내려다보며 장백서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야 제가 장주님의 부인을 치료해 드릴 테니까요.”
“뭐!?”
경악한 금룡장주가 두 눈을 크게 떴고 이내 떠듬떠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넌 도대체 누구냐?”
“……아직 부족한 몸입니다만, 무림에서는 협행검이라는 분에 넘치는 별호로 불리고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