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3
053. 마 부인과 흑의인
청도와 장무연은 그날 밤이 새도록 다투었지만 결과적으로 표행은 계속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이번 표행을 무르고 강정현으로 돌아간다면 호현표국은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하지 못해 파산할 테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이번 표행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생사를 건 표행이었던 것이다.
대신 안전을 위해 표행의 경로는 수정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성도를 경유해 안양을 지나 중경으로 갔어야 했지만,
일전의 사태를 고려해보면 상대에게 표행의 경로가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악산과 의빈을 지나 강을 따라 중경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로 표행을 이어 갔지만…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이후로 더 이상의 습격은 없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표행이 계속 이어지자 잔뜩 긴장되어 있던 표사와 보표의 얼굴이 점점 펴기 시작했지만 장백서만은 아니었다.
“동생~ 도대체 왜 이럴까? 왜 연아 소저는 내가 말만 하면 저렇게 새침하게 대하시지?”
“……그야 하루 종일 붙어서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니 그런 게 아닐까요?”
청연아의 분홍빛 청춘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해 사랑의 오작교가 되기로 결심한 장백서였지만 문제는……
‘이 자식 연애 고자구만!!’
누가 화산의 도사 아니랄까 봐 화목연의 여자 꼬시는 실력은 가관이었다.
도대체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도경 이야기는 왜 꺼낸다는 말인가? 정말 그런 지루한 이야기를 청연아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차라리 골패와 도박 관련된 이야기라면 흥미라도 끌 수 있었을 것을…….
‘세상 천지 어디의 어떤 여자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라 말하는 것 듣고 ‘어머, 너무 멋진 남자!’ 이러겠냐고!?’
마음 같아서는 오작교고 나발이고 싹 뒤집어 엎어 버리고 싶은 장백서였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장백서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화목연은 계속해서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청연아가 자신을 한심한 눈으로 봤다는 말이나 말을 걸었는데 무시했다 등의 한심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장백서는 더더욱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청연아부터가 별종이다 보니 꼬이는 남자도 별종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는 장백서였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래서 내가…… 유란아 듣고 있어?”
“아!? 네, 네! 듣고 있어요 연아 언니!”
장유란의 반응이 뭔가 어색하자 청연아는 그녀가 보고 있던 곳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응? 뭐야 뭐야? 유란이 취향이 연하였어?”
“네!? 아,아니에요!”
청연아의 질문에 장유란이 황급히 양손을 휘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녀의 반응이 더욱 청연아를 자극했는지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하긴 우리 사질이 진국이기는 하지, 하지만 쉽지는 않을걸, 쟤가 보기보다 인기가…….”
“아니라니까요!!”
빼액 소리치는 장유란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바라보던 청연아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설마 저 떠벌이가 좋은 거야?”
“아, 그건 진짜 아니에요.”
떠벌이, 즉 화목연을 가리키는 청연아의 말에 장유란이 아까와 달리 정말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청연아는 묘한 표정을 짓고는…
“흐음~ 그래 단호하네?”
“저런 떠벌이는 진짜 제 취향 아니거든요.”
“뭐, 그 정도로 별로는…… 아니지 않나?”
“네 뭐라구요 언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청연아와 말을 주고받은 장유란은 여전히 곁눈질로 장백서를 살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표행 첫 날 자신을 구해 준 장백서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분명 그때 그자는 검기를 쓰지 않았지만 절정의 고수였다’
일류의 경지에 오른 장유란을 가지고 놀다시피 했던 산적으로 위장한 절정고수, 그리고 그 절정고수를 가볍게 쓰러트린 장백서.
이것에 대해서 장유란은 솔직하게 장백서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장백서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냥 장유란 소저가 방심했다 당한 거겠죠, 전 고작 이류의 경지인데 절정의 고수를 이길 리가 없잖아요?’
진짜 한심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니 열불이 났지만 또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장유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백서는 여전히 화목연의 푸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화목연에게 붙잡혀 있던 장백서가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어머, 백서구나”
“네, 혼자 마차 안에서 심심하실 것 같아서요.”
장백서가 두들긴 것은 한마의 혈육, 아니 스스로를 마부인이라 지칭하는 여인이 타고 있는 마차의 창이었다.
처음 그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표행을 강행시킨 날 이후로 장백서는 의도적으로 마부인에게 접근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모습을 보이던 마부인이었지만 장백서의 끈질김과 그가 아직 열 네 살의 소년이라는 점이 겹쳐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접근에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
‘한마의 혈육이 어째서 중원에 나와 있는 거냐?’
너무나도 의외의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의 배후를 캐기 위해 장백서는 의도적으로 마부인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그저 이야기로만 들었던 서역의 이야기에 흥미진진한 소년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말이다.
“피곤해 보이 구나? 걷는 게 힘들면 같이 마차에 타고 가겠니?”
“아니요, 걷는 게 힘든 게 아니라요~”
그렇게 화목연과 청연아 사이에 낀 자신의 고충과 둘의 성과 없는 연애전선에 대해서 장백서는 미사여구를 더해서 맛깔나게 설명해 주었다.
마부인도 이십 대 중후반의 젊은 여인이다 보니 이런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고 장백서는 이를 통해서 점점 마부인과 친해져 갔다.
“후후, 내가 보기에는 정말 아무 성과도 없는 건 아닌 것 같구나~”
“네? 청연아 사고가 저렇게 나오는데 이게 성과가 없는게 아니라니요?”
의뭉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백서를 웃는 낮으로 바라보던 마부인은 말했다.
“후후, 여자의 마음이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한 게 아니란다~”
“음, 어렵네요~ 아! 이번에도 서역 이야기 좀 해 주세요!”
“후후 그럴까?”
그렇게 마부인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서역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백서는 확신을 가졌다.
‘역시 한마의 혈육이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서역 이야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서역이 아니라 신교의 이야기였다.
신교는 교주인 천마가 기거하는 신궁, 그리고 그런 신궁이 자리한 성교도를 중심으로 총 열 두개의 성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열 두 개의 성시에 각각 하나의 마궁이 위치해 있고 각 성시에는 모두 자기만의 문화, 생황, 그리고 무공의 특색이 있었다.
그리고 특히 한마의 영역인 한마시는 서역과 북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었다.
마부인이 하는 이야기 속 서역은 진짜 서역이 아닌 한마시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신교는커녕 서역에 대한 것도 모르는 어린이라 생각해 거리낌없이 말하는 마부인이었지만.
그녀가 모르는 사실은 지금 눈 앞에 있는 소년의 정체가 그냥 열 네 살짜리 소년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회귀해 온 미래의 검마라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장백서는 한마시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 속 서역이 진짜 서역이 아닌 한마시에 대한 이야기인 걸 처음 듣는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 장백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부인은 행복한 얼굴로 한마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한마…… 아니 서역의 건물들은 중원의 건물들과 달리 색이 있는 기와를 올리거든. 그 색이 정말 예뻐서…….”
그렇게 말하는 마부인의 눈은 한마시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장백서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마부인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내 고개를 든 마부인은 조금 슬픈 빛을 머금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 괜찮아 그냥 조금 감성적이게 된 것뿐이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마의 혈육이 중원을 헤매고 있는 것이냐?’
그러는 사이에도 호현표국의 표행은 계속되었고 이내 표행은 아안을 지나 악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
아안을 지나던 길, 장백서는 밤중에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이전에 방문했던 흑점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몇 가지의 정보를 사들였다.
장백서가 원하는 것은 현재 마부인, 아니 한마의 딸을 쫓는 이들의 정체였다.
이런 저런 정보를 조합해 그 진실을 알아내려 한 장백서였지만 아쉽게도 헛물만 캐고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완전히 헛물만 켠 것은 아니었고 알아낸 정보도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한마가 중원으로 나왔다!’
흑점에서 구매한 정보 중 그 어느 것에도 한마의 중원행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회귀 전 신교의 중역을 맡았던 장백서는 여러 단편적인 정보를 조합해 한마가 현재 중원에 나온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해 나온 것인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신교에서 중책을 수행하고 있어야 할 한마가 중원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마부인 때문이겠지…….’
한마와 마부인 둘의 관계를 모르는 이상 무엇도 속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화목연의 푸념을 들어주며 장백서와 표행은 악산을 오르고 있었다.
악산은 마차가 지나갈 정도의 길은 있었지만 그 산세가 험하고 높아 짐을 짊어진 보표들과 마차는 속력을 내지 못했고 표행은 느릿하게 악산의 가도를 지나갔다.
“어우, 이 절벽 봐라…… 여기서 떨어지면 뼈로 못 추리겠어 동생.”
“보지 마십쇼, 원래 저런 건 보면 볼수록 더 무서워지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장백서도 화목연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만큼 그들이 지나는 길은 험했다, 절벽을 깎아 만들어진 길은 폭이 제법 넓어 떨어질 위험은 없었지만, 길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깎아지른 단애절벽 인지라 절정 고수인 화목연이라도 공포심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아래에 안개가 짙어 그 밑이 보이지 않으니 공포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산을 오르던 중, 잘 걸어가던 장백서가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한숨을 내쉰 장백서는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화목연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거 일이 꼬이네…….”
“응? 뭐라고 동생…… 진짜 꼬였네.”
장백서의 혼잣말에 무어라 말하려던 화목연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얼굴을 굳히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습이다!!!”
단애절벽에 산길, 적들을 피해 행로를 바꾼 것이 도리어 악재로 작용했다.
도망칠 곳도 없는 좁은 길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일행을 향해 절벽 위에서부터 검은 인영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이전에 덤벼들었던 산적들과는 달랐다.
모두 흑의로 몸은 물론 얼굴까지 철저히 가리고 있었고 그 기도부터가 안정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작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도 노련함이 묻어 나왔다.
이는 곧 이들이 이전에 산적사이에 섞여서 나타난 이들에 비해서 경험이 많으며 또한 이런 ‘일’에 능숙한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이전처럼 활로 기습을 하면서 나타나지도 않았다.
마치 검은 까마귀처럼 소리 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흑의인들은 착실히 표행 무리를 포위했고 그 중심에서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저릿할 정도의 살기와 기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이 무리의 대장이며 동시에 무서울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