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89
089. 천하용봉지회
기나긴 무림의 역사에서 천하강호가 진정으로 멸망 직전까지 몰린 사건이 몇 있으니 가장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것은 역시 제 이차 정마대전[正魔大戰]일 것이다.
천마(天魔)라 불리는 인세에 강림한 무적의 초인과 무시무시한 대마인들이 쳐들어온 그 사건으로 천하무림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하지만 이 싸움은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사상과 문화를 가진 집단 간의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패왕성[覇王城]의 천하행진[天下行進]은 어떠한가?
정마대전이 어디까지나 무림 집단 간의 전쟁이었다면 패왕성은 민초에게도 가차 없는 진정으로 잔인한 살육자들고 침략자들이었다, 그들의 천하행진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헤아려 보면 가히 인세에 강림한 악마들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 이야기할 이 사건이야말로 천하가 가장 큰 위기에 빠진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혈천교[血天敎]의 난.
자신을 혈천자[血天子]라 칭하는 사이비(似而非) 교주가 혹세무민을 일삼고 교세를 불려 끝내는 천하를 집어삼키려 했던 끔찍한 사건!
그들은 실로 기괴한 사술과 외법으로 무장한 마귀들이었는데 혈천교의 난이 끝나고 2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들이 사용했던 기괴한 사술과 외법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이렇게 중원을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무수한 피를 흘리게 한 대마인 혈천자, 이 혈천자를 쓰러트린 자가 바로 당대에는 무신(武神), 혹은 천룡(天龍)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초절한 무공을 익힌 천룡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모아 천룡문[天龍門]을 만들었고 당시 혈천교의 기세에 눌려 있던 정파무림을 규합해 혈천교에 맞섰다, 끝내 혈천교를 무너트리는 데 성공한 천룡이었지만 그 대가로 자신을 따르던 천룡문과 가족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상심한 천룡은 그대로 은거하게 되고 그런 천룡의 위업을 기리는 의미로 과거 천룡문이 있었던 섬서에서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천하용봉지회[天下龍鳳知會]를 열어 그의 위업을 칭송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혈천자, 이 자의 연원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가설은 그가 마교 출신이라는 가설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이 가설에 신빙성을 더하는 어떠한 사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마교의 핵심 무력기관인 십이마궁이 혈천자의 난 이후로 그 구성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가 늘고 준 것이 아니라 한 마궁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필자가 내세우는 이론은 십이마궁, 그것도 궁주나 그에 버금가는 요직에 앉은 자가 어떠한 일을 계기로 마교를 배신하고 중원으로 나와 혈천자가 되었고 그에 대한 책임, 혹은 오점을 떨쳐 내는 의미로 궁의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닌가 짐작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가설이고 앞으로도 좀 더 연구와 보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림만학사[武林萬學士]저(著) 무림야담[武林野談]에서 발췌
스승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장백서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18살이 된 금현아였다.
“사형!”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장백서를 반기는 금현아는 마치 꽃이 피어나듯 그 아름다움이 만개해 있었다.
여전히 병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의 색은 은색이었으나 오히려 그 은발이 그녀에게 신비한 매력을 더해 주었다.
“내가 너무 늦었나 사매?”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백서에게만 보 여주는 그 상냥한 미소를 보며 장백서는 새삼 그녀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을 느꼈다.
“왔구나 백서야.”
금현아와 인사를 나눈 장백서는 이어서 스승에게 인사를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사부님?”
“그래, 일단 장문전으로 가자꾸나.”
그렇게 청무와 그의 제자, 장백서 장유한, 그리고 금현아는 장문전으로 향했다.
장문전으로 향하는 길 장백서의 눈에 한참 수련 중인 다른 삼결배의 사제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핫!”
“하앗!!”
사제들이 모습에는 아직 어설픔이 있었으나 뭇 명문정파들의 제자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개가 있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군.’
지난 삼 년간 장백서는 자신의 수련과 함께 문파의 전체적인 무공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첫 번째가 일결배와 이결배들을 자극해 무공을 발전시키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삼결배의 어린 제자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삼식육형연체법[三式六形軟體法]으로 평균적인 수준을 끌어올리고 각 사제에게 개별적으로 부족한 점을 장백서가 일일이 지적하고 보완해 준 덕분에 현 유현문의 삼결배 제자들의 수준은 진짜로 뭇 명문정파의 어린 제자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형편중화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장문전에 도착한 장백서 일행은 장문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래, 잘 왔다 거기 앉거라.”
장문의 허락을 받고 자리에 앉은 장백서 일행에게 장문인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곧 섬서에서 천하용봉지회가 열린다.”
“천하용봉지회라면……!”
천하용봉지회라는 말에 장유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천하용봉지회!
……뭐, 상세한 배경이나 그딴 건 집어치우고 핵심만 말하자면 5년에 한 번 열리는 후기지수들의 축제, 대충 이렇게 보면 된다.
참가 자격은 25세 이하의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가능!
정해진 기간 동안 실력을 겨루고 그중 뛰어난 자들, 즉 용(龍)과 봉(鳳)을 가리는 것이 이 자리의 목적이었다.
“음…… 장문인, 나쁘지 않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유한이가 천하용봉지회에 나가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사, 사형!”
용봉지회에는 위로는 나이 제한이 있었지만, 밑으로는 나이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6살은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사매도…… 아니 뭐 성취가 훌륭한 건 인정하지만, 금조상단의 금지옥엽에 그런데 참가하라 하는 건 좀…… 그렇지?”
“후후, 전 사형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답니다.”
태연하게 부끄러운 말을 하는 금현아를 보고 헛기침을 한 장백서는 ‘안 그렇습니까?’라는 얼굴로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장백서를 장문인은 물론 사부인 청무까지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째 너는 처음부터 네가 간다는 발상은 하지를 못하냐?”
“……제가요?”
“그래 너.”
“…….”
“…….”
“장문인 진심입니까?”
“그럼 진심이지 구라겠냐!! 뭘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하는 거냐!? 그래 너! 너! 너! 대사형인 너도 가야지, 안 그럼 누가 가겠냐!?”
“아니 그렇지만…….”
장백서는 골이 아픈지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추상적인 말이었지만 장문인과 청무는 그 말의 속뜻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말을 못 하는 두 사람을 상대로 쐐기를 박으려고 한 마디를 덧붙이는 장백서였지만…… 그게 패인이었다.
“제가 그런 애들 노는 데 가서 뭘 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장문인은 옳다구나 하고 말을 되받아 쳤다.
“아직 약관도 안된 놈이 무슨 헛소리냐! 18살밖에 안 먹은 놈이 무슨 영감처럼 굴어!?”
그 말에 장백서가 찍소리도 못하고 있으려니 사제들의 이목을 피해 장문인의 전음이 날아왔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지만, 이번에는 가거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사천 연합 때문이다, 이번 용봉지회에서는 사천 연합을 위한 친목 도모의 목적으로 청성, 아미, 그리고 당가, 각 문파의 대표들과 함께 가게 될 거다, 거기서 최대한 그들의 화합을 도모하거라.
요 3년간의 성과로 이제 공식적인 발표만을 남겨 둔 사천연합의 창설!
장문인의 말은 즉 사천연합의 발표 이전에 이후 각 문파의 핵심이 될 후기지수들의 친목 도모에 힘쓰고 오라는 말이었다.
거기까지 들으니 장백서도 더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사천연합의 창설 계기가 된 것이 장백서가 참여했던 협의지행이었다, 이후 서방무림에 대한 백천회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천연합과 서방무림의 통합은 꼭 이루어야만 하는 필수 과제였다.
“장문인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일단 성도로 가거라 성도에서 청성과 당가, 그리고 아미의 사람들과 합류해서 섬서로 올라가면 될 것이다.”
회귀 전의 삶에서 장백서는 천하용봉지회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당시 장백서의 무위는 잘 쳐줘야 이류 정도였으니 5년 뒤의 용봉지회를 기약했기 때문이다.
‘결국 끝까지 천하용봉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 뒤 머지않아 소현이가 병에 걸리고 곧이어 정마대전이 터졌다, 당연히 한가하게 천하용봉지회에 참가할 시간 따위는 없었고 애당초 더 이상 천하용봉지회도 열리지 않았다.
‘이참에 귀의를 모셔오면 되겠군.’
소현이의 병이 발병하기까지 이제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구태여 아이가 아프고 나서 치료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예방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장문전을 나오는 장백서에게로 조그마한 인영이 뛰어들었다.
“사형!”
“우리 소현이!”
이제는 12살이 된 소현이는 3년 전에 비해서 부쩍 키도 크고 여자아이 같은 태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백서에게 있어서 소현이는 여전히 귀엽고 깜찍한 자신의 사매였다.
“사형 또 어디가?”
“응, 나쁜 장문인 할아버지가 사형 보고 섬서까지 가라네?”
“으우, 가지 마 사형! 장문인 할아버지 나빠!”
마음 같아서는 소현이도 데려가고 싶은 장백서였지만 이번 섬서행은 유현문의 사람들끼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청성, 아미, 그리고 당가를 포함한 사천의 유력 문파들이 동행하는 길인만큼 아직 어린 소현이를 데리고 갈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못 볼 꼴도 많이 보게 될 테니까…….’
“혹시 저번처럼 엄청 오래 걸려?”
소현이 말하는 저번이란 건 반년 가까이 걸렸던 협의지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니야, 그렇게 오래 안 걸려, 길어 봤자 한 달 하고 보름? 사십 오 밤…… 음 좀 길 긴 하지만 금방 돌아올 테니까 소현이는 무공 열심히 배우고 편식하지 않고 밥 잘 먹고 있어야 해!”
“응……! 나 무공도 열심히 배우고 밥도 잘 먹을 테니까 사형도 열심히 해!”
“그래, 사형도 열심히 할게.”
‘이번에는 꼭 너를 구할 거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굳은 다짐과 함께 소현이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장백서였다.
***
사천의 중심지 성도!
사천 서부 평원의 중심에 있는 이 도시는 과거부터 자원이 풍부하고 강과 땅이 기름져 천부의 나라라고 불리고는 했다.
그런 만큼 성도의 시내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장백서와 장유한, 그리고 금현아는 그런 인파를 헤치고 사천 문파들과 합류하기로 한 객잔으로 들어갔다.
“후우, 이래서 난 성도가 싫다니까…….”
“……사형 이전에도 성도에 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건 아니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후후, 저도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건 별로네요, 우리 둘 마음이 맞네요. 사형.”
약속된 날에 맞춰 객잔에 온 장백서 일행은 일단 일 층에 자리 잡고 주문을 했다.
“여기 소면 하나에 탄탄면 하나 그리고 볶음밥 하나, 그리고 수자어[水煮鱼]랑 부처폐편[夫妻肺片], 그리고 양하주(洋河酒) 하나…….”
“사형, 술은 좀…….”
“그래도 한 병 정도는…….”
“사형, 사내대장부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술을 마시는 것을 담대하다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무릇 진정 덕 있는 자라면 중한 자리에서 만날 중한 손님을 두고 술을 마시는 건 그들에게 성의를 다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는 법입니다”
유한에 이어 금현아까지 반대하니 결국 술은 포기하는 장백서였다.
‘……후, 맨정신으로 그사이에 끼어야 한다니…….’
곧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마음고생 할 것을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하기 그지없는 장백서였다.
그렇게 한참 식사하는 도중……
“어우, 하여튼 무림인이라는 작자들은…….”
“살벌해서 밥을 못 먹겠군…….”
위층에서 무림인들이 소란을 일으킨 모양인지 무림인을 욕하는 손님들이 황급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장백서 일행이 들어온 이 객잔은 흔하게 존재하는 위층으로 갈수록 자릿값이 비싸지는 유형의 객잔이었다.
그런 객잔에서 장백서가 1층에서 식사하기로 한 것은 결코 돈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었다.
‘벌써 시작됐구나…… 아이구 두야…….’
장백서는 객잔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위층에 모여 소란을 피우는 한 무리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밥 정도는 맘 편하게 먹고 올라가려고 했었지만……
‘저 난리가 났는데 그냥 있을 수도 없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장백서는 사제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감히! 청성을 모욕하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 제가 못 할 말 했나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청성이 도가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동네 흑도패처럼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사실이잖아요!?”
“뭐라 이 건방진 여중년이!!”
“하!? 년!? 년!!? 너 씨 나이도 몇 살 안 처먹은 놈이 어디서 반말이야!?”
“둘 다 진정하시죠. 보기 안 좋습니다.”
“닥쳐! 독이나 사용하는 비루한 년이 어디서 감히 청성의 제자에게…….”
“……당신 죽고 싶은 것입니까?”
위층의 상황을 확인한 장백서는 골이 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내려가자…….”
“사형…… 저걸 저렇게 놔둬도 되는 겁니까?”
“그냥, 그냥 아무 말 말고 내려가…….”
그렇게 위층의 개판을 무시하고 내려가려는 장백서였지만……
“아! 장 공자!”
그 개판에 끼어 있던 작은 소녀 한 명이 장백서를 가리키면서 큰 소리를 냈다.
“사형 부르는데…….”
“아니야, 아냐 세상천지에 장 씨 성 가진 사람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
“협의지행을 성공시킨 협행검 장백서 공자!”
“사형 부르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
‘젠장!’
그렇게 반가운 기색을 물씬 풍기면서 달려오는 소녀, 하지만 장백서는 이 소녀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실례지만 소저, 저희가 만난 적이 있었는지……?”
“에? 기억 못 하는 거에요, 그럼…… 이러면 어때요?”
소녀는 자기 머리를 헝클어뜨려 앞머리로 자기 눈을 가렸다, 그것을 보고서야 장백서는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명화!?”
“헤헤, 기억해 주셨군요.”
소녀의 정체는 광하진인의 제자이자 광하진인의 억지 때문에 얼떨결에 어린 나이에 청성의 일대 제자가 된 명화였다.
“……여자였습니까? 명화 소저?”
“뭐예요 그게!? 당연히 여자죠!”
그렇게 예상외 인물의 등장에 반갑게 대화를 나누던 장백서는 문득 자신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깨달았다.
정면에서는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싸우고 있던 청성, 아미, 당가의 제자와 그들을 따르는 지회의 제자들이, 그리고 후방에서는……
“왜,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거냐 현아야……?”
“……글쎄요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으십니까? 사형?”
장백서는 정말 돌아 버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