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31
제731화
터억.
라온이 덤덤하게 데루스의 손을 잡았다. 그 어떤 오러나 기세도 일으키지 않은 채 악수라는 의사소통에 충실하도록 손만 위아래로 흔들었다.
‘지금 놈을 건드려서는 안 돼.’
데루스 로베르트는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의심이 많고, 조심스러운 인간이다.
지금 놈이 손을 내밀었다는 의미는 모든 대비를 끝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기다리자.’
라온은 심장을 뚫고 나오려는 듯한 죽음을 가르는 칼날을 내리누르며 입술 안쪽을 씹었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거야.’
데루스가 집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놈의 정체를 밝히는 게 불가능하다.
오히려 저쪽의 의도대로 넘어가서 정보만 넘겨주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분노와 복수심을 가라앉히고, 거짓된 웃음을 그려야 할 때였다. 데루스가 나를 농락했듯이.
-부, 분위기가 매섭구나. 얼음 성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니라.
라스가 날씨가 추워진 것 같다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천검성과 악수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온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엄지 손가락으로 데루스의 손등을 가늘게 훑어내렸다.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군.’
데루스가 착용하고 있는 검은 가죽 장갑이 너무 두꺼워서 손등의 상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여튼 더럽게 조심스러운 놈이었다.
라온은 데루스의 장갑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내리누르며 짧은 악수를 끝냈다.
“라온 님은 훗날 저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은 곳에 오르실 수 있을 겁니다.”
데루스는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며 빛을 머금은 듯 환한 웃음을 드러냈다.
“아, 그렇지.”
그가 이제 생각났다는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혹시 라온 님의 이명이 바뀐 걸 알고 계십니까.”
“네.”
라온이 눈동자를 살며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찬탈자라고 불리더군요. 멋스러운 이명이지만, 아직 제게는 과분한 듯합니다.”
과분하다는 말을 할 때 데루스의 뒤에 있던 레폰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전혀 과분하지 않습니다.”
데루스가 과장된 표정으로 두 손을 저었다.
“타락한 왕들을 옥좌 위에서 끌어내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정말 잘 어울리는 이명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실 그 라는 이명….”
데루스가 뒤에 있던 레폰 로베르트를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저희 막내 녀석이 지은 겁니다. 여전히 라온 님의 팬이죠.”
그는 질투가 날 정도라며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레폰이 부끄러운 듯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여왔다.
“아….”
라온이 레폰의 인사를 받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 찬탈자라는 이명이 남쪽에서부터 올라왔다고 했었지.’
채드가 새로운 이명을 알려주면서 신기하게도 남쪽에서부터 전해져온 이명이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눈앞의 아이가 찬탈자라는 이명을 지어준 것 같았다.
‘레폰 로베르트….’
때 묻지 않은 눈동자에서 숨길 수 없는 선량함이 피어난다.
전생에서는 본 적 없는 아이. 자신이 죽은 뒤에 태어났고 올해 성인식을 치르기에 아직은 데루스에게 물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지만.’
데루스는 친아들에게도 세뇌를 가하고, 레이지 웜을 먹이는 괴물이다.
눈빛이 선하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죄, 죄송합니다.”
레폰이 본인의 발끝을 쳐다보며 어깨를 축 내렸다.
“제가 쓸데없이….”
그는 자신의 말을 오해한 듯 좋지 않은 이명을 지어서 미안하다며 입술을 떨었다.
“아닙니다.”
라온이 흔들리는 레폰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찬탈자라는 이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아직 제가 그 이름을 받기에 부족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실망하지 않도록 확실히 설명해주었다.
“저, 정말이신가요?”
레폰이 햇볕이 비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예. 마음에 듭니다. 좋은 이명을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이 반짝이는 레폰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가 감사하죠!”
레폰이 민망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눈동자를 굴렸다.
“저기 라온 님. 죄송한데요….”
그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두꺼운 책 두 권을 꺼냈다. 조금 전에 보았기에 모를 수가 없는 라온 지그하르트 전기였다.
“으윽….”
라온이 본인의 이름이 제목에 새겨진 책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저거 대체 어디까지 퍼진 거야.’
엔시아의 유통 능력에 감탄을 넘어서 황당함까지 밀려왔다.
“레폰. 다른 분들이 회의장에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사인은 나중에 받는 게 좋겠구나.”
데루스가 미안하다는 듯 레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빨리 안 오냐!”
“젊은 놈들이 왜 이리 늦어! 기다리다 사탕 다 먹겠다!”
오그람과 체임버도 어서 오라는 듯 회의장 안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
“회의가 끝난 뒤에 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온이 당황한 레폰에게 끝나고 사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아, 넵!”
레폰은 상사 앞에 선 듯 차렷 자세로 답했다.
“그리고 정말 찬탈자라는 이명은 마음에 듭니다. 조만간 추한 왕 하나를 높디높은 옥좌에서 끌어내릴 생각인데….”
라온이 레폰이 아닌, 데루스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자의 왕관이 땅에 떨어진다면 레폰 님이 지어주신 이명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을 것 같군요.”
“기대가 되는군요.”
데루스는 그 추한 왕이 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라온과 데루스는 서로 다른 웃음을 그리며 야수연맹의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 * *
“그럼 육황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의 사회자를 맡은 야수연맹의 부맹주가 원형 회의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첫 번째 안건을 꺼내기 전에 이번 전쟁이 진행된 상황과 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상황을 다시 정리하고 시작하자며 서류를 들었다.
“전쟁의 시작은 지그하르트 광풍대주와 남북맹 부왕의 생사결이었습니다. 남북맹이 부왕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기습을 해왔고, 그림자의 수장인 푸른 드래곤 투구의 검사가 나타나….”
야수연맹의 부맹주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설명한 후 소매를 걷었다.
“육황의 피해도 적지는 않지만, 남북맹이 멸망한 건 고무적인 일입니다. 오마에게 기울어졌던 무게추가 다시 균형을 잡았으니까요.”
“다른 문제도 있지 않소?”
레크로스 국왕이 손을 들며 눈썹을 내렸다.
“맞습니다. 그림자가 새로 오마에 들어왔고, 드래곤도 저희의 적이 되었죠. 여전히 육황이 불리한 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부맹주가 오른손으로 주먹을 말아쥔 채 말을 이었다.
“적이 확실해졌다는 건 저희에게 긍정적인 점입니다. 이번처럼 드래곤에게 기습당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그는 피아가 구분되어 좋을 수도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데루스는 점점 열기가 차오르는 회의장의 분위기를 읽으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예상대로군.’
전부 나를 노리고 있어.
육감조차 뛰어넘은 초월적인 감각이 속삭인다.
지금 이 회의장에 있는 괴물들이 은밀하게 자신을 살피고 있다고.
‘그것도 내 손등을.’
육황의 수장들은 시선, 소리 그리고 감각으로 자신의 손만을 살피고 있었다.
손등에 상처가 있는지,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숨겼는지, 또 어떻게 찾아내야 할지 궁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이 회의장에서 회의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운 좋게 참관한 중립 세력의 수장들뿐이었다.
‘재밌군.’
데루스 로베르트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긴장감을 느끼며 눈동자를 굴렸다.
서로가 서로의 패를 까놓고 싸우는 전쟁이나 다름없었기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특히 저 녀석이.’
부맹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라온을 훑어내렸다.
‘무력은 달려도 눈치와 연기만큼은 육황의 늙은이들보다 위야.’
가장 좋은 기회가 가장 큰 함정이라는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군.
라온에게 악수를 건넨 건 당연하게도 함정이었다. 그가 손등의 상처를 노리려고 하면 역으로 정보를 빼내고, 트집을 잡기 위한 날카로운 덫이었다.
‘물론 저놈도 결국에는 조급해졌지만.’
라온은 악수를 하면서 손으로 향하는 시선을 감추지 못했고, 엄지손가락으로 은근슬쩍 손등을 확인하려는 조잡한 수를 쓰기도 했다.
‘라온.’
데루스가 고개를 내린 채 입술을 짧게 말아 올렸다.
‘너는 다시 태어나도 다를 게 없구나.’
라온은 암살자로 살았던 전생에서도 모든 상황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신에게 목이 날아갔다.
환생을 해서 조금 나아졌나 했더니만, 딱히 변한 게 없었다.
‘이 싸움은 절대 네가 이길 수 없다.’
너는 내 상처를 드러나게 할 수 없을 테니까.
라온이 손등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새긴 것은 맞지만, 두 번 다 방심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부터 놈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도플갱어의 가죽이 뚫릴 일은 없었다.
‘거기다….’
죽음의 기운을 끌어내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지.
죽음의 기운은 영혼의 밑바닥에 봉인해두었다.
글렌이 직접 찾아도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기에 라온이 노릴 수 있는 건 오직 손등의 상처뿐이었다.
‘이건 무조건적 후퇴를 해야 하는 임무지만….’
데루스가 라온의 붉은 눈동자를 비웃으며 손끝을 까딱였다.
‘너는 물러나지 않겠지.’
내가 그리 가르쳤으니까.
‘결국 너는 이번 생에서도 내게 도움만 주고 사라질 운명인 모양이다.’
데루스 로베르트는 이번에는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겠다고 중얼거리며 두 손을 모았다.
그의 뇌리에서 이번 일을 끝내고 얻어낼 보상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이제 저희에게 중요한 건 사라진 드래곤들의 위치와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의 정체입니다.”
부맹주가 두 번째 서류를 들어 올리며 턱을 살짝 내렸다.
“그날 이후로 드래곤 로드와 드래곤들이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둥지 자체를 버린 이들도 있더군요.”
그는 이미 드래곤에 대한 조사를 끝냈는지 머뭇거림 없이 보고서를 읽었다.
“아마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거야.”
체임버가 사탕 막대로 원탁을 치며 입맛을 다셨다.
“드래곤은 대륙 최강의 종족으로 태어났어. 그 거만한 놈들이 벌레처럼 여기던 인간에게 단체로 뒈질 뻔했으니, 제정신이겠어? 어디 구석에 숨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걸?”
그녀는 꼴이 좋다며 낄낄 웃었다.
“드래곤들만이 아닙니다.”
레크로스 국왕이 발언하겠다며 손을 들어 올렸다.
“타천, 성검련주, 백혈교주 그리고 푸른 드래곤 투구를 쓴 검사도 움직이기 힘들 겁니다.”
그는 살아남았다고 해도 긴 시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거 다행이네에….”
마탑주는 한동안 안 싸워도 된다는 게 기쁜 듯 처음으로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세력을 정비하고, 힘을 키워야 해. 다시 붙으면 놈들을 압살할 수 있도록.”
체임버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희 오웬도 기사단의 역량을 성장시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레크로스 국왕이 원탁에 걸쳐둔 묵검을 매만지며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로베르트는 이미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피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죠.”
데루스 로베르트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게 글렌 가주님 덕분이니,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서 글렌에게 허리를 굽혔다.
“심검이라고 했었지?”
“그래.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 검을 보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하더군….”
“오마에 드래곤까지 단번에 베어버리다니, 아직도 믿기질 않아.”
중립 세력의 수장들은 말로만 들은 심검을 떠올리며 헛바람을 흘렸다.
“물론 저 영감이 대단한 건 맞아. 하지만….”
오그람이 글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라온이 아니었다면 저놈도 심장이 꿰뚫린 채 수장됐을 거다.”
그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라온을 가리켰다.
“즉, 이 전쟁을 끝내고, 시간을 벌어준 사람은 글렌이 아니라 라온이라는 거지!”
“당연한 소리를 하고 앉았어.”
체임버가 모두가 아는 사실을 뭐하러 말하냐며 눈을 흘겼다.
“한번 되짚을 필요는 있죠. 저도 광풍대주가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고 생각하니까요.”
레크로스 국왕은 정말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안 무섭나…?”
마탑주는 본인이 그 자리에 있어도 막기 힘들었을 것 같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래서 말인데, 라온.”
오그람이 상체를 라온 쪽으로 돌린 채 히죽 웃었다.
“혹시 소원 같은 거 없느냐?”
“네? 소원이요?”
라온이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크로스의 말대로 네가 이뤄낸 일은 한 사람을 구한 게 아니라, 전쟁의 판을. 아니, 이 대륙의 균형을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오그람이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원을 말한다면 내 손이 닿는 한 모두 들어주도록 하겠다.”
그는 얼마든지 말하라는 듯 손을 안쪽으로 흔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해달라고 해도 들어줄게.”
체임버가 네 얼굴이면 괜찮을 것 같다며 마녀 모자를 살짝 눌렀다.
“저기 너무 양심이 없는데, 나이 차이가 100살이… 흡!”
레크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체임버의 뻘게진 눈동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오, 오웬에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주겠소. 광풍대주.”
그는 체임버의 시선을 피하며 소원을 말해도 된다고 외쳤다.
“귀찮은 것만 아니면….”
마탑주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고운 금발이 테이블 위로 흘러내렸다.
“저도 빠질 수 없겠군요. 로베르트도 동의합니다.”
데루스 로베르트까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라온. 말해보거라.”
글렌이 나오라는 듯 앞으로 손을 뻗었다.
“으음….”
라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원탁 앞에 섰다.
“민망하기는 하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기는 합니다.”
차분한 어조로 말문을 열며 글렌을 돌아보았다.
“저는 가주님께 검술을 배웠고, 야왕 님께는 격해무를 전수 받았습니다. 묵검존께서도 조언을 해주셨지요.”
실제로 묵검존에게 무학적인 조언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 거짓을 파악할 사람은 없기에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데루스 님께도 한 수 배우고 싶었는데, 로베르트와는 왕래가 적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라온이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데루스를 직시하는 그의 눈동자 위로 시뻘건 불길이 번뜩였다.
“천검성 데루스 로베르트 님께 대련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