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26
제826화
“하아….”
라온이 홀로 기란 섬 앞에 선 아리스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예전에 네가 한 말이 맞네.’
-예전에 한 말?
라스가 무슨 의미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 내 주변 여자들은 다 이상하다고 말했잖아. 그 말이 맞다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기본 병법 중 하나다.
하지만 아리스는 적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 바로 섬으로 달려가서 선전포고를 날렸다.
지그하르트 직계이자, 글렌의 첫째 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행동이었다.
-본왕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느니라!
라스가 당연하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게 네놈의 입에서 나올 소리도 아니니라.
‘나?’
라온이 검지로 본인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왜긴 왜야! 네놈이 제일 이상하니까 그렇지! 본래 또라이 주변에 또라이가 꼬이는 법이니라!
라스는 왜 모르냐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난 저 정도는 아니지.’
라온이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아리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히려 난 평범한 축에 속하는….’
-똥 싸고 자빠졌네!
라스가 어림도 없다는 듯 손을 크게 내리쳤다.
-본왕이 긴 세월을 살며 온갖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마왕 넷을 속여먹는 놈은 너밖에 없었느니라!
녀석은 자기성찰을 좀 하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흠….’
라온이 손목에 걸린 꽃팔찌 다섯 개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넷이 아니라, 다섯이겠지.’
, , , 그리고 얼마 전에 얻은 까지. 자신의 팔목을 휘감고 있는 팔찌는 다섯 개였다.
-보, 본왕은 속은 게 아니잖느냐!
라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사기를 당한 거라고!
녀석은 다른 마왕들과 같은 취급 하지 말라며 인상을 구겼다.
‘그래. 아니지.’
라온이 동그랗게 말린 라스의 눈동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는 안 속여도 알아서 보상을 퍼다 주잖아.’
-그, 그것도 본왕이 하는 게 아니잖느냐! 망할 시스템 짓이니라!
라스는 분한 듯 볼을 뻘겋게 물들인 채 손을 떨었다.
“…죄송합니다.”
라온이 라스를 놀리고 있을 때 라바윈이 퍼렇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리스 님을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라바윈은 잘못한 아이를 대신해서 사과하는 부모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괜찮아.”
리메르가 라바윈의 어깨를 두드리며 턱을 저었다.
“어차피 저 망나니가 정상적인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라온이 라바윈과 아리스를 번갈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라바윈은 기란 섬이 무인도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다수의 무인드이 무인도에 있다는 건 영혼석을 노리고 왔을 가능성이 높은데, 바로 쳐들어가서 포효를 터트리는 사람은 자신의 상식선 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런 걸 배워야 하는구나!”
“응. 멋있어….”
마르타와 루난은 아리스의 당찬 언행에 반한 듯 두 손을 모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지! 저런 건 배우면 안 되지!”
버렌은 지휘자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며 루난과 마르타에게 손을 저었다.
‘후우.’
라온이 버렌을 보며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버렌밖에 없네.’
실제로 광풍대의 부대주 역할을 하는 사람은 리메르가 아니라, 버렌이다.
요즘 지쳐 보여서 마르타나, 루난에게 그 위치를 넘겨줄까 했는데, 절대 안 될 것 같았다.
-보, 본왕도 동의하느니라.
라스도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난과 마르타를 아끼는 녀석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뭐해! 빨리 오라고!”
아리스가 어서 건너오라는 듯 경쾌하게 손짓을 했다.
“…가야죠.”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바다를 박차고, 아리스가 자리잡은 기란 섬으로 향했다.
적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아리스라는 무인에 대한 신뢰와 기대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도 광풍대에게 아리스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기란 섬에 발을 내렸다.
섬 외부는 자갈과 바위가 가득했고, 안쪽으로는 숲과 나무가 울창하여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어.”
아리스는 빨리 안 따라오고 뭐하냐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모가 강한 건 알지만, 너무 막무가내에요.”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짜기에는 인생이 아깝잖아.”
그녀는 장난스러운 말과 달리 진중한 음성을 흘리며 검병에 손을 얹었다.
“빨리 끝내버리고, 시아를 구해야지.”
아리스는 오직 시아를 구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지 고요한 눈빛으로 섬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죠….”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혹여나 이 섬 안에 있는 이들이 먼저 영혼석을 찾아서 도망친다면 추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의 말대로 정보가 없더라도 싸워서 쟁취하는 게 옳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라바윈.”
아리스가 라온의 뒤에 도착한 라바윈에게 손짓했다.
“영혼석을 본 장소가 어디인지 기억하고 있지?”
“예. 여기서 반대편 해안입니다.”
라바윈은 아리스의 진지한 눈빛에 놀란 듯 바로 답을 꺼냈다.
“그럼 결국 다 뚫어야 한다는 거네.”
아리스는 오히려 잘됐다고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화아아아악!
광풍대와 청풍의 선원들이 모두 기란 섬 앞에 도착했을 때 섬 안쪽 숲이 검게 타오르며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고오오오.
우측의 남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로브를 휘감고 있었는데, 아티팩트인지 로브가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좌측에서는 이 해안에 살고 있는 듯 구릿빛 피부에 키가 큰 여성이 서 있었는데, 눈동자가 칼을 머금은 것처럼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인상적인 외모 이상으로 웅대한 기파를 두르고 있었다. 자신 이상의 강자들이었다.
쿠구구구구!
로브의 남성 뒤로는 어둠을 두른 듯한 마인들이 섰고, 구릿빛 피부의 여성의 주변으로는 백색 로브를 걸친 괴인들이 튀어나왔다. 흑탑과 백혈교의 악귀들이었다.
“이거 이거 구면이네.”
아리스가 구리빛 피부의 여성을 보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2사도. 지난번에는 잘도 살아 나갔던데?”
“지그하르트의 포위망이 허술하더라고.”
2사도라고 불린 구릿빛 피부의 여성이 가뿐했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헌데 너희들….”
그녀가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 아리스와 광풍대를 훑어 내렸다.
“영혼석을 찾기 위해서 온 건가?”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라바윈의 예상대로 2사도도 이곳에서 영혼석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러면 어쩔 건데?”
아리스는 어차피 거짓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듯 고개를 까딱였다.
“…지그하르트라.”
검은 로브의 남자가 2사도를 보며 새까만 눈동자를 번뜩였다.
“네 정보가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군.”
“처음부터 맞다고 했잖아!”
2사도는 왜 믿질 않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넌 뭐냐?”
아리스가 검은 로브의 남자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음침하게 옷 입은 꼬라지를 보니, 흑탑 놈 같은데?”
그녀는 검은 로브의 남자를 떠보듯 조롱을 던졌다.
“…….”
검은 로브의 남자는 아리스에게 답을 하지 않고, 2사도를 바라보았다.
“저 여자는 누구지?”
그는 아리스를 모르는 듯 고요한 어조를 흘렸다.
“아앙?”
아리스는 본인을 모른다는 것에 화가 난 듯 이마에 힘줄이 드러냈다.
“아리스 지그하르트.”
2사도가 아리스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지그하르트의 초월자다.”
그녀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래서 최대한 빨리 찾고 나갔어야 했는데!”
2사도는 너희들이 늦장을 부린 탓이라며 미간을 구겼다.
“…….”
라온은 검은 로브의 남자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무언가 이상한데?’
생기가 너무 약해.
본래 고수일수록 생기가 강한 법인데, 저 검은 로브의 남자는 자신보다 강한 기파를 지니고 있음에도 곧 죽을 사람처럼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강하군. 가만히 놔두면 위험하겠어.”
검은 로브의 남자는 아리스의 무력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막아둘 테니, 너는 영혼석을 찾아라. 할 수 있겠지?”
“그게 가능해?”
2사도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도 검은 로브 남자의 실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충분하다.”
검은 로브의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진심으로 아리스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
아리스가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리스 지그하르트도 많이 죽었네. 저딴 커튼 따위에 무시당하다니.”
그녀는 검은 로브의 남자를 커튼 취급하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우리 동생 놈이 멍청해서 실례를 한 것 같은데, 오늘은 지그하르트의 검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도록 하지.”
아리스는 카룬을 대신해서 검은 로브의 남자와 2사도를 확실히 조져주겠다며 섬뜩한 미소를 그렸다.
“내가 묶어두는 동안 영혼석을 찾아서 돌아가도록.”
검은 로브의 남자는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자고 말하며 앞으로 나왔다.
“알겠어.”
2사도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스 지그하르트만 없으면 버러지들뿐이니까. 어렵지 않아.”
그녀는 전부 학살할 수 있다며 손끝을 세웠다.
“누가 누구 묶는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아리스가 라온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서늘한 안광을 번뜩였다.
“버러지? 우리 애들은 좀 그렇지만, 내 조카들은 강하거든.”
아리스는 라온과 광풍대를 믿는다고 말하며 바로 검을 뽑았다.
치이이이잉!
발검과 동시에 나아간 그녀의 공간검이 검은 로브의 남자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후우우욱!
하지만 검은 로브의 남자는 육체를 안개로 전환하여 아리스의 검격을 흘려냈다. 무인이 아니라, 마법사나, 주술사 같았다.
“성질이 급하군.”
검은 로브의 남자가 손을 뻗자, 아리스의 주변으로 검은 안개가 솟구쳐 그녀의 발목을 빨아들였다.
“이모!”
라온이 아리스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안개에 가로막혀서 닿지 않았다.
-저거 마족이로구나.
라스가 검은 로브의 남자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본체로 강림한 게 아니라, 육체에 스며들었어. 저 몸도 만들어진 것이겠지.
녀석은 아티팩트처럼 만들어진 육체에 들어간 마족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아, 기분 더럽네.”
아리스는 검은 소용돌이 속에 박힌 본인의 하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이라면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
안개 그 자체가 된 검은 로브의 남자는 포기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서!”
아리스는 블랙홀처럼 몸을 빨아들이는 검은 안개에 저항하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힘과 기파로, 마기로 이루어진 안개를 짓누른 것이다.
“으음….”
검은 로브의 남자도 아리스의 무력에 놀란 듯 작게 헛바람을 흘렸다.
“라온. 할 수 있지?”
아리스는 검은 안개를 억지로 짓누르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우리 애들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고 이길 수 있지?”
그녀는 그게 안 되면 지금 말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라온은 바로 답을 하지 않고, 냉랭한 눈빛을 드러낸 2사도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저쪽에 원한이 있거든요.”
2사도는 지그하르트의 성벽을 부수고 들어와서 실비아를 죽이려고 했었다.
그 일을 듣고 한참 동안 속이 들끓었는데, 복수할 기회가 왔으니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럼 믿는다.”
아리스는 씩 웃으며 몸에 힘을 풀었다. 그녀의 육체가 검은 안개와 함께 땅속으로 녹아내렸다.
“흠?”
아리스가 다시 눈을 뜨자, 온 세계가 새까맣게 물든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과 벽, 땅 모든 것에서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결계인가?”
“그 차원에서는 너를 이길 수가 없을 것 같더군.”
바닥이 진흙처럼 출렁이더니, 검은 로브의 남자가 솟아올랐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연기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는 이길 수 있고?”
아리스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이기지 못해도 상관없다. 시간만 끌면 그만이니까.”
그는 자신을 묶어두기만 하면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흑탑 새끼들은 이게 문제야. 뇌수까지 마기가 차서 제대로 된 판단이 안 되거든.”
아리스가 검은 로브의 남자를 보며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서 죽이지는 않으마.”
그녀가 비웃음을 흘리며 검을 세웠다.
“밖에 누가 서 있는지 보여주고 싶으니까.”
* * *
“원한이라….”
2사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라면 내가 너한테 패했을 수도 있겠지.”
그녀는 라온을 보며 턱을 모로 틀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복이 없는 날이다.”
2사도의 어깨 위로 강대한 혈기가 치솟았다. 그랜드 마스터를 넘어선 초월자의 기파였다.
“광풍대.”
라온은 2사도의 기파를 그대로 받아내며 손을 뻗었다.
“전부 베어라.”
“예!”
광풍대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검을 뽑고 흑탑의 마인들과 백혈교도를 향해 돌진했다.
“모조리 죽여 버려!”
2사도도 밀리지 말라는 듯 발을 구르며 돌격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뒤에 있던 흑탑과 백혈교의 악귀들이 광풍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두 세력이 정면에서 격돌하며 강대한 충격파가 폭발했다.
다만 두 세력의 격차는 첫 일격에서부터 드러났다.
쿠구구구구!
검진을 갖춘 광풍대는 강기를 일으킨 채 돌진해오던 백혈교도와 흑탑의 마인들을 한 줌의 핏덩이로 만들어버렸다.
무력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다.
“어딜 감히!”
마르타가 검을 세운 채 콧잔등을 찌푸렸다.
“수련 부족이다.”
버렌은 사람들의 피를 마실 시간에 수련을 하라며 손을 저었다.
“약해….”
루난 역시 한심하다는 듯 짤막하게 고개를 내렸다.
“이대로 몰아붙여서 단숨에 끝을….”
“애송이 놈들이!”
마르타가 전방에 서서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그녀의 눈앞으로 새하얀 손이 날아들었다.
“아….”
2사도였다. 그녀는 라온을 노리고 움직이지 않고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마르타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쩌어어어엉!
마르타의 목에 꿰뚫리기 직전 불길에 타오르는 검날이 2사도의 수도를 격하게 쳐냈다.
“음….”
2사도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
“나를 봐라.”
라온이 2사도를 굽어보며 턱을 모로 틀었다. 그의 눈동자가 거만함이라는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네 목을 가져갈 사람은 여기에 있으니까.”